제12회 영남여성학 포럼, 다채로운 목소리의 향연: 여성학의 지평을 넓히며 (문은영)


지난 5월 17일, 제12회 영남여성학포럼 참관을 위해 계명대학교를 방문했다. 석사과정을 밟게 되며 처음으로 참관하게 된 학술대회인 만큼 긴장보다는 새로운 학술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대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포스터에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고 발표제목들을 천천히 곱씹어보며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 제12회 영남여성학포럼은 오전 대학원 세션과 오후 포럼 세션으로 이루어져 지역·여성·생태를 주제로 다양한 발표가 이루어졌다. 선생님들의 다양한 발표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음을 상기하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발표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김희경 선생님과 권수현 선생님의 발표, 「기술적 대표성이 실질적 대표성을 보장하는가?―고성군의회 사례분석」은 고성군의회 회의록에서 등장하는 젠더의제와 관련된 단어의 빈도를 분석하여 여성의원이라는 기술적 대표성의 증가가 과연 여성들이라는 실질적 대표성의 증가로 이어져왔는지를 검증하는 연구였다. 본 연구는 파이선(Python)으로 웹크롤링을 하여 회의록을 엑셀데이터로 전환해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지점에서 현재 UNIST 디지털 인문학 연구소와 젠더·어펙트연구소가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인문학 연구-교육과 정동이론 세미나>와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디지털을 통한 데이터 분석으로 정동을 발견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데이터 분석과 정동 이론을 접목시키려는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는 현재, 과연 정동을 포착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호와 기호 사이에서 순환하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흐름인 정동은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흔적을 추적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단어의 빈도나 횟수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명확한 맥락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김희경 선생님과 권수현 선생님의 발표 또한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기 위해서는 양적 연구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의 고려, 그중에서도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와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토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직은 현재진행형인 연구이기에 내용분석적 측면을 보완하면 더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함께 이어지기도 했다.

부산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김솔 선생님의 발표, 「존재에서 흘러넘치는 힘 : <미키 17>을 통해서본 존재윤리」는 바라드의 개념을 인용하여 영화 <미키17> 속 등장인물간의 ‘얽힘(entaglement)’에 주목하여 주인공 ‘미키17’을 윤리적 주체로 바라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미키는 지구를 떠나 반복되고 대체 가능한 존재인 ’익스펜더블‘이 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도구화되며 비인격화되고 행위자성이 삭제된다. 김솔 선생님은 이를 오늘날의 비인간 동물들의 현실과 겹쳐보며 인간과 비인간을 서로 다른 존재로 배치해온 세계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동시에 작품 속 생물체인 ‘크리퍼’와 ‘미키17’의 만남과 얽힘에 주목하고 ‘복수하지 않음’이라는 ‘미키17’의 선택이 보이지 않는 저항적 행위자성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영화 속 ‘미키17’의 특징을 윤리적 주체로의 가능성으로 파악하며 내재적 힘을 가진 존재가 가야할 윤리적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이를 젠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존재와 세계를 정의롭게 사유할 수 있는 태도와 연관 지으며 여성주의를 함께 말했다. 토론에서는 전유적 비평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키17’의 ‘복수하지 않음’과 같은 특정한 행위만을 선택적으로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이는 ‘미키17’이 ‘익스펜더블’이 되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생명력이 배치되고 할당된 존재라는 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나의 의문과도 연결된 부분이었다. 생명력이 결코 인간만의 속성이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공감할 수 있었으나 비인간 존재들의 ‘복수하지 않음’을 내재적 가치로 보는 것은 그동안 희생되었던 수많은 비인간 존재들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도 되는가와 같은 또 다른 의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남대학교 젠더연구소 이소영 선생님의 발표, 「‘유기견’의 구성과 길거리 개의 관리」는 한국에서의 관리 방식의 변화로 ‘길거리 개’가 ‘유기견’으로 변화해온 과정을 소개하며 동물보호소를 중심으로 ‘유기견’으로 전환된 개들에게 배제와 재편입의 메커니즘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였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이소영 선생님의 발표는 앞서 김솔 선생님의 발표에서도 언급되었던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포착 가능한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이소영 선생님은 개를 구조하는 행위가 비인간 존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행동을 조율할 수 있는 감수성과 능력을 기르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해러웨이의 함께-되기(becoming-with)의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발표에 대한 김현미 선생님의 토론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현재 다양한 조건들 아래에서 시도되는 ‘동물 보호’라는 명목 아래의 행위들이 실제로 동물권내에서는 상충하는 모순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캔이나 사료 등을 생산하며 다른 식용동물의 소비가 정당화 되는 등의 다양한 맥락이 공존하는 지점을 짚지 않고서는 진전된 논의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반려이외에도 동물권을 상상하는 방안으로 거리를 개들의 삶의 장소를 인정하는 ‘이웃’이라는 새로운 대안의 등장은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있던 협소한 나의 지편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권명아 선생님의 발표, 「비정착 시대, 트랜지언트 사회의 궤적과 대안 거주성의 전망 : ‘여성적’ 거주에서 ‘지방적’ 거주로」는 비정착 거주성을 고찰하며 이를 트랜지언트 사회성의 차원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발표는 ‘헬조선론’에서 지방소멸 담론으로의 변형 배경을 설명하며 소멸이라는 종말의 시간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지정하고 있는 시작점을 살핀다. 더 나아가 정착민 식민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한국의 시간성을 특이한 방식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숨의 『잃어버린 사람』 속 귀환의 과정에서 몇몇의 ‘토착’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동 중’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숨의 서술 방식이 그동안의 특정집단에 대한 역사, 연구, 기록, 서사 등이 어떤 방식으로 편취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전유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동시에 수많은 ‘이동 중’인 귀환자들은 어딘가에 도착하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한 ‘아직 아닌not yet’의 존재들이 될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트랜지언트 사회 연구의 밑바탕이 될 이론적 논의들을 다루었다.

이번 제12회 영남여성학포럼의 대미는 계명대학교 여성학과 폐지 반대 성명서 선언으로 장식했다. 성명서를 선창하는 김현미 선생님을 따라 나도 함께 목소리를 보태었다. 제12회 영남여성학포럼은 여성학이 위기에 처한 현재에 여성학을 논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대의 뜻을 밝히는 자리였다. 기억 속의 포럼을 되새기며 지역과 여성과 생태의 위기를 논하는 현재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분명히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가 내게 주어졌음에 감사하다.

 

 

 


문은영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석사과정.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보조원. 여성과 지역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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