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의 배치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에서 낸 ‘젠더・어펙트 총서’의 네 번째 타이틀은 ‘연결신체학을 향하여: 정동적 존재론과 정의’이다. 2020년 첫 번째 책 『약속과 예측: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에서 출발하여, 라는 공동 연구의 성과로 나온 네 권의 책에 지금까지 50편에 달하는 논문들이 담겼다. 첫 번째 책이 나온 시점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며 기존의 연결들은 차단되고 새로운 연결들이 발생하고 있던 때였다. ‘약속과 예측’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부제에 쓰인 ‘연결성’이라는 어휘가 당시의 시대적 혼란과 고립이라는 공유된 감각 속에서 적실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이후, 젠더・어펙트 총서는 하나로 쉽게 묶이지 않는 다양한 주제들 안에서도 팬데믹으로 인한 뉴노멀의 일상..
우리는 장르문학에서 어렵지 않게, 카르밀라나 드라큘라 같은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나 지킬 박사와 같은 사이보그 등 이질적인 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19세기 초중반 영미문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공포스럽거나 역겹고, 정상성이나 젠더 규범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이들의 퀴어한 모습은 대중적인 미디어에서 뿐만 아니라 ‘본격 문학’ 장르에서도 반복적으로 재활성화되거나 변용되곤 합니다. 이들의 신체는 정상 범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증오와 같은 정동을 촉발시키고 감정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이질적인 몸들을 둘러싼 이 같은 감정의 인과관계를 전치하여 설명합니다. 문학 속 괴물들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소수자들의 인상을 두고 ..
1. ‘직(職)’이라는 자리, ‘업(業)’이라는 행위 ‘4차 산업혁명’이 삶과 기술의 짜임관계를 바꾸어가고 있다. 그 관계 사이에서 촉발되는 것이 정동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동시대 정동 정치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고, 개입해야 하는 중요한 입각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국가의 ‘명운’과 ‘사활’을 좌우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면, 이는 생명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생활은 기술을 통해 매개되고, 그 기술은 생체매개를 통해 정동을 촉발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에 의해 보장되는 미래를 향한 정동 정치의 약속이 역사적 제 국면마다 그 유효함을 꾸준히 발휘해왔음을 상기한다면, 오늘날의 ‘혁명적’ 정동이 전례가 없는 현상만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이전에는 ..
전세계에서 할리우드 영화가 가장 고전하는 곳은 어디일까? 현대 대중문화의 문화적 보편이자 우세종인 할리우드 영화가 못 뚫고 들어가는 곳은 없다가 정답에 가깝겠지만, 그나마 가장 강력한 대안 영상문화를 보유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라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특히 인도는 매해 1천편 이상의 영화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로, 스크린 쿼터 없이도 자국영화 점유율 80%가 넘는 어마어마한 자국영화 충성도를 보여주는 ‘발리우드’의 본고장이다. 이러한 인도의 자국 문화 중심성과 인도내 영어권 문화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한류가 아시아 대륙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도, 인도는 좀처럼 한류 진입이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 인도에서 지난 팬데믹 이후 한류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분석이 ..
순환하며 강화되고 축적되는 감정 『감정의 문화정치』는 감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감정이 무엇을 하는지의 문제를 치밀하게 붙잡는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정동경제를 논한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이 개인의 내면에 실존하는 것으로 여겨온 통념과 반대로 감정의 '밖에서 안으로' 작동하는 방향성을 주장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학적 감정 모델과 유사해보이지만, 감정을 개인 외부에 실존하고 동시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본 전제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메드는 감정이 개인의 안 또는 밖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녀에게 보다 의미 있는 작업은 감정이 애초에 '안과 밖'을 결정짓던 표면과 경계를 형성하는 역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감정은 대상과의 접촉의 간극과 강도, 형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여 출시한 하이퍼FPS 게임 “오버워치”시리즈에는 다종다양한 몸들이 등장합니다. 단련된 근육으로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여성, 왜소증을 지닌 노년의 남성, 과거 높은 전공을 올렸던 노년의 군인들, 신체의 대부분을 보철물로 대체한 사이보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 신체에 이르기까지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연령,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런 몸들은 한국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게임사 작품들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23년 11월 23일, 젠더스피어 8회차 콜로키움에서는 김수아 선생님을 모시고 이란 주제로 강연을 청해 들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엄혜진 선생님의 토론 내용에 더하여 한국 게임사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초점을 맞춘..
자오 펑 첸지의 발표 는 201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젠더와 권력의 렌즈에 초점을 맞춰 중국의 코로나 19 팬데믹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몰두해 개인, 정부, 페미니스트 운동, 미디어의 온라인 담론과 상호작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자오는 페미니스트적 자아에 동기부여 되어 검열과 인식론적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인의 경험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가부장적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을 나란히 병치하여 놓고, 개인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피며 사회 주변부의 목소리를 함께 살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온라인 연구에 따르는 방법론적 윤리적 복잡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전통적인 학술교육에서는 거의 탐구되지 않..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던 길고양이 혐오 담론과 문화는 최근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인 형태로 퍼져 새로운 인터넷 놀이 문화의 하나가 되었고, 혐오는 어느새 인터넷상의 지배적 정동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물 혐오가 특정 집단에 국한된 문제적 정동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작동시키는 폭력적 문화로서 다수에게 확산되는 정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면에 존재하는 혐오 정동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동물 학대는 고양이 뿐 아니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에 대한 혐오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양이와 캣맘에게 물리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면서 캣맘을 향한 성적 조롱과 폭언, 폭행 등의 성차별적 행위로 혐오적 정동을 확산시켜 나갑니다. 강연자인..
젠더・어펙트 연구소에서 펴낸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를 다룬 언론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기사는 1부 서사의 역사와 아상블라주 : 마주침의 어펙트에 수록된 권명아 선생님의 논문 「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를 매개로 삼아 글로벌 자본과 OTT 환경에서의 득세하는 장르의 생산과 수용이 의미하는 바를 짚고 있습니다. 의 흥행에서 읽어야 하는 것이 K-컬쳐의 영향력만이 아니라 주류 장르가 교체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페미니즘에서 반페미니즘으로 기울어지는 초국가적 백래시”의 일환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논문의 주요 골자를 따라갑니다. 을 성차별적 텍스트로 분석하고 한국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메타포로 해석할 때 주류 장르로 급부상한 '도메스틱 누아르'가 K-컬쳐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
현대 사회에서 여러 매체를 통한 흥미롭고 또 자극적인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가운데, 나는 얼마나 진실과 오정보를 구별하고, 또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분별하고 있을까? 오정보 문제는 인류 역사상 꾸준히 있어왔던 문제이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여러 사회관계망이 출현하면서 오정보에 의한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만 있다. 정보의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래거시 미디어 대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같은 SNS 등이 정보 습득의 유용한 수단이 되었고, 때로 그 영향력은 래거시 미디어를 넘어서고 있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오정보로 인해서 분열, 갈등 전쟁 양극화 환경 문제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결과를 야기시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음을 모두가 목도하고 있다. 이진하 선생님은..
1. ‘정동’의 번역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의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2023)는 젠더 연구에 정동 이론을 접목시키려고 시도로, 서론과 13편의 연구를 묶었다. 이 글은 4부에 실린 세 편에 관한 서평이다. 2000년대 유럽 인문사회에서 기존의 비판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본격화되었는데, 정동 연구는 이러한 시도 가운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동’(affect)이라는 용어는 이항대립적인 인식론에 기반한 추상적이고 고정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결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연구하기 위한 개념적이자 방법론적인 도구로 진화하였다. 지난 이 십년 동안 ‘정동’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학술 용어이자 연구 분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나라에서 채택 및 번역되어왔다. ..
정동 개념 정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동을 배제하고는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일상에서 ‘느껴질’ 정도의 입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동은 이념과 정치적인 면을 건너 자기 자신도 넘어서게 한다. 이 구체적인 예시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산지니,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동의 자장 안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및 사회 현상 나아가 정동의 유동적인 특성을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3부 에는 미디어에 나타난 변화된 정동 양상과 아이돌, 예능 등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대에 필요한, 시대가 요구한 몸과 시선을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