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장의 실종 소식은 사흘 후였다. 강대표와 사이가 소원해졌으니 오지 않는 것뿐이라 짐작했는데, 성애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식당 주차장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경찰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따금 파출소 사람들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르곤 했으니 밥 손님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함께 온 둘은 테이블에 앉고 장경사가 강대표를 찾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가정사까지 모두 꿰고 있는 토박이였다. 이틀째 조 사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낚시 가게에서 오후에만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용태가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했다. 조 사장 동생 번호를 물었지만, 강대표는 퉁명스러운 입매로 고개만 비틀었다. “조 사장 동생 번호? 아마 가도 번호를 새로 바깠을 낀데… 그 병원 사건 땜시 그란다지 ..
기둥 없는 네모난 집 속에, 모든 것들은 정지했다. 맥스팬도,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던 모니터도, 머리 위에 켜진 불빛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성애는 네모난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웠다. 누웠나 쓰러졌나 좀 전의 기억마저 흐릿해지고 나니,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서러웠다. 이대로 세상에 없는 구멍 속으로 사라졌으면. 마침내 여기 내 몸 아래 그 구멍이 뚫려, 내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던 행운이 한 번에 벼락처럼 몰아쳐 그 구멍 속으로 이 몸뚱이가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렸으면. 사르락삭삭 사르락삭삭 벽 너머에서 다시 집을 쓰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만지는 소리였다. 바람이 지묘 씨를 일으켜, 지묘 씨가 바람을 일으켜 벽을 쓰다듬는 소리. 어떤 몸도 어떤 형체도 가질 필요 없는 존재가 제일 부드러운 목..
1. 박복한 자들의 얼어붙은 서사 ‘박복(薄福)하다’는 말이 있다. 이때 ‘복이 없다’는 ‘팔자가 사납다’는 의미로 드러나기도 한다. 팔자가 사납다는 말. 한 평생에 걸쳐, 끈덕지게 들러붙는 이 불운은 족쇄에 가깝다. 그저 복이 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삶 전체를 불행한 것으로, 그 불행을 운명이자 숙명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말이다. ‘팔자가 사납다’는 말은 주술처럼 말해지고, 옮겨지고, 들러붙어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 된다. “정면이 아니라 바닥을 보며 걷고”, “둥글고 작아지는 절망의 자세”를 가졌으며,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 생겨도 미리 관계의 끝을 상정하는 작은 마음”은 ‘팔자 사납다’라는 말이 힘을 가져 만든 몸들이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그늘져 보인다는 것은, 박복한 팔자가 왠지 모르게,..
1. 마주침과 연결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들 누구든지, 어디에나 꼭 맞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매일같이 오가는 일터나 학교에서, 우리가 친숙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자주 만나는 친한 사람들과 가족에게서, 그리고 우리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의 신체로부터 종종 낯설고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타자로서의 자기를 발견한다. 이러한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 온전히 인정받거나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은 우리에게 누구와도, 무엇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근원적인 소외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누군가와, 무언가와 연결되려 한다. 타자에 대한 이해, 글쓰기를 자신의 소설세계로 정립해온 작가 조해진에게 이러한 ‘연결’의 문제는 이야기의 요체가 될 수밖에 없다. 대표작 『로..
1. ‘누빔점’을 만드는 문학의 수행성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브뤼쎌에 와서 로의 자술서와 일기를 읽고 그가 머물거나 스쳐갔던 곳을 찾아다니는 동안, 로기완은 이미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 『로기완을 만났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2011)에서 ‘탈북인’ 로기완의 행적을 좇는 화자 ‘나’는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 삶을 배워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일찍이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는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에게 배우라”하고, “배운다는 것은 사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화자가 로기완의 삶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온몸이 바쳐진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화자가 자신의 신체와 로기완의 신체..
* 무작정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웃을 어떻게 처리 하더라? 허락도 없이 사람을 불러대는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더라? 성애는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누군가 책의 일부를 옮겨 적은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우리는 누가 나를 ‘처리’해버리면 화를 낼 거면서, 남들은 쉽게 ‘처리’한다.’ 성애는 굳은 손끝만 까딱거리다가 주머니 안에 휴대폰을 쑤셔 넣었다. 그런가, 내 잘못인가? 좋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인가? “아이씨… 아줌마!” 등 뒤에 앉은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쏟아진 국그릇 앞에 그는 손을 털고 있었다. 사람이 꽉 찬 점심시간에는 각별히 조심했어야 했는데, 모든 방향으로부터 달려들 수 있는 불안이란 놈의 생리를 미리 알아 차렸어야 했는데. 성애는..
파도(wave)와 파동(affect) ⏤영화배급협동조합 와의 대화 (2부) 일시 : 2020. 09. 15.(화) 장소 : 부산 중앙동 ‘좋은차’ 참석자 : 성송이(씨네소파 대표) 최예지(씨네소파 이사) 김대성(웹진 편집위원 / 문학평론가) ‘운동’이 아니라 ‘직장’입니다 김대성 : 독립영화배급이라는 좁고 험난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동력을 씨네소파의 ‘마음’에서만이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만 요구한다면 금세 소진되고 고갈될 것이 뻔하겠죠. 씨네소파는 ‘청년’이라는 세대성을 부각하거나 ‘운동’이라는 대의를 내세운 적이 없는데요,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을 문제 삼아 슬로건으로 삼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청년과 지역이라는 프레임으로 씨네소파를 ..
2장 * 낯선 사람이 꼭 낯선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아닌데, 성애의 발걸음은 급해졌다. 가게에 비워 놓은 이동변기 카트리지와 즉석밥 상자까지 카트 속에 실으니 한 손은 밀고, 한 손은 물건들을 움켜쥐어야 간신히 바퀴가 움직였다. 카트를 미는 와중에도, 조 사장이 무심하게 얹은 젤리 봉지 세 개가 자꾸 카트 밖으로 미끄러졌다. 도무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거기에 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원을 지나, 성애는 집 쪽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섰다.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해 이 물건들을 부려 놓고 싶었다. 이럴 거면 아예 트럭을 몰고서 모두산 뒤쪽 국도를 돌아 내려올 걸, 후회막심이었다. 계획했던 물건들만 샀고, 예상했던 부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 저 놈의 젤리. 성애가 노려보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파도(wave)와 파동(affect) ⏤영화배급협동조합 와의 대화 (1부) 일시 : 2020. 09. 15.(화) 장소 : 부산 중앙동 ‘좋은차’ 참석자 : 성송이(씨네소파 대표) 최예지(씨네소파 이사) 김대성(웹진 편집위원 / 문학평론가) 항해가 끝나지 않는 건 ‘소파섬(小波 ; SOFA・SUM)’이라는 배급 기록집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엄청 신나게 일 하고 있구나! 그리고 참으로 정성을 다해서 영화를 대하고 있구나!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가 출항한지 3년이 흘렀다. 2017년 초겨울과 2018년의 늦봄에 출간된 배급기록집에 대해 새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씨네소파는 빛나던 부산의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반복해온 ‘소진’과 ‘사라짐’의 연쇄 경로가 아닌 다른 항로를 만들며 여전히 항해 중..
먼저 밝혀 드리자면, 자립음악생산조합(이하 ‘자립’)은 현재로서는 활동이 중단되었어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이 지면에서 설명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해체 혹은 와해된 자립의 주요 분자(이하 ‘자립분자’)들의 행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홍대 앞에서 조합을 결성하여 자본의 침공을 막도록. 자립분자인 필자는 2015년에 홍대 앞을 떠났지만(만리동으로 이주) 그 직전에 홍대 앞에서 우주를 끄집어냈습니다. 필자가 홍대 앞을 물리적으로 떠난 후에는 또 다른 자립분자 ‘d’가 홍우주로 들어갔고, 현재는 홍우주의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며, 최근 마포구와 홍대 앞 거리 상가 상인회 주축으로 재추진(2016년 홍대 앞 관광특구 추진을 막아냄)되고 있는 홍대 앞 관광특구 지정을 막아내려 합니다..
1장 애도 * 무덤의 곁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한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낙서처럼 밤하늘에 그어진 늙은 갈대의 그림자. 흉터 같은 그림자 너머로 사람의 형체가 보이면, 사람들은 비명 지른다. 보았어, 들었어, 죽었어! 나는 그들을 믿지 않고,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성애는 바람에 휘청대는 갈대를 가만히 보고 섰다. 잠시 숨을 골랐다. 재빠르게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른 글자들을 새겨 넣었다. 모두봉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11월의 냉기가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었다. 회색빛의 적막 속에 성애의 숨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부쩍 호흡이 거칠어진 걸 알고 있었다. 몸무게가 세 자리를 넘어서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브래지어를 꽉 채우는 가슴을 잃기 싫어 살이 찌는 게 좋..
웹진 가 창간호에 이어, 제2호를 열고자 합니다. 오늘은 김비 작가님의 소설 (2020)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김비 작가님을 붙드는 이름들로, 소설가, 번역가, 에세이스트 등 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설가’라는 이름이 눈길을 오래 붙잡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문학이라는 돌 하나로 무얼 할 수 있을지 잘 모른다. 돈도 안 되는 걸 왜 그리 오래 붙잡고 있냐고, 어서 내다 버리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번 생은 그 돌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살게 될 것 같다. 돈이 안 되고 걸작을 남기진 못하더라도, 울고 싶은 이들의 쪼그린 발 아래 집어 던질 수 있는 돌 하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김비, 「문학을 주웠습니다」, , 2020) 소설가라는 이름이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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