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wave)와 파동(affect)⏤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와의 대화 (1부)

파도(wave)와 파동(affect)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와의 대화 (1부)

 

 

 

일시 : 2020. 09. 15.(화)

장소 : 부산 중앙동 좋은차

참석자 : 성송이(씨네소파 대표)

              최예지(씨네소파 이사)

              김대성(웹진 <젠더・어펙트> 편집위원 / 문학평론가)

 

 

항해가 끝나지 않는 건

 

 

소파섬(小波 ; SOFASUM)’이라는 배급 기록집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엄청 신나게 일 하고 있구나! 그리고 참으로 정성을 다해서 영화를 대하고 있구나!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가 출항한지 3년이 흘렀다. 2017년 초겨울과 2018년의 늦봄에 출간된 배급기록집에 대해 새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씨네소파는 빛나던 부산의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반복해온 소진사라짐의 연쇄 경로가 아닌 다른 항로를 만들며 여전히 항해 중이다. 그 항해가 때론 정박지를 찾지 못해 인근해에 표류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한편으론 오랫동안 운항할 수 있는 새로운 항해술을 발명해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넘실대며 떠들썩하던 에너지는 조금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씨네소파는 여전히 항해 중이며 매번 새로운 출항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씨네소파를 생각하면 일단 설렌다. 즐겁게 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영화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거는 일 : ‘필요(적절)함’의 감각

 

 

< 여름날 >( 오정석 , 2019/2020  개봉 )

 

김대성 : 8월 중순에 여섯 번째 배급 영화 <여름날>(오정석, 2019/2020 개봉)이 극장 개봉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개봉을 무기한 연기한 것에 반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강력한 장벽이 있음에도 극장에 영화를 걸었죠. 다섯 번째 배급 영화였던 <기억할 만한 지나침>(박영임, 2018/2019 개봉)은 유독 극장(및 상영회차) 수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본다면 씨네소파의 배급을 규모로만 환원할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어떤 일관성을 통해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단한 사명감 때문이거나 문화운동의 일환이라서가 아니라 필요(적절)한 시점에, 필요(적절)한 곳에 영화를 거는 일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씨네소파가 체득한 필요(적절)속에 영화를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년 겨울 한 포럼 자리에서 왜 우리 영화는 배급하지 않냐고, 씨네소파가 배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뭐냐라며 서운함과 힐난을 섞은 목소리로 묻던 한 독립영화 제작자의 질문을 기억합니다. 씨네소파가 영화를 선택하는 원칙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 항목은 빡빡하지 않고 꽤 유연할 거 같습니다. 다만 씨네소파 구성원들의 논의와 협의가 배급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지 않을까 하는데, ‘필요(적절)한 시점과 필요(적절)한 곳에 영화를 걸어온 씨네소파가 체득한 필요(적절)의 감각이 궁금합니다. 그간 배급했던 여섯 편의 영화마다, 또 씨네소파가 지나온 시기마다 그 필요(적절)제각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독립영화배급을 한다는 것이란 일관된 관점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생존가치를 동시에 고려하는 와중에 구축되는 것이지 아닐까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씨네소파 성송이 (이하 성송이) : 생각나는 대로 답하면서 이야길 해볼게요. 일단은 코로나 때문에 타격을 받았고, 관객이 절반 이하로 줄었어요. 관객은 영화 스크린 수에 비례하니까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잡을 수 있는 상영관은 잡은 편인데, 그렇게 되면 천 명은 일단 기본적으로 넘겨야 되는데 아직 천 명 못 넘고 있으니까... 사실 독립영화들이 편차가 굉장히 심해요. 왜냐면 일단은 영진위에서는 제작비가 10억 미만이면 저예산이라고 판단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가 배급한 영화 중에서 1천만 원, 2천만 원으로 찍은 영화도 있는데, 그 영화랑 제작비가 1억이나 10억 정도가 든 영화와는 규모 면에서부터 완전히 다르니까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배급 했던 영화들은 1억 미만의 영화들이죠. 그 영화들은 사실 늘 코로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안 그랬던 적은 없죠. 지금이 더 심하긴 하지만요.

그런 영화들도 누군가 보라고 만들었고 우리가 봤을 때 소개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영화들이었고, 그래서 그런 고민을 코로나 이전부터 어떻게 하면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극장이라는 플랫폼에서 소개되면 제일 좋지만 지금 자본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가 많아서 그런 고민들을 계속 하면서 앞서 말한 ‘소파섬’ 같은 것들도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거예요. <파란 입이 달린 얼굴>도 그때 펀딩을 해서 IP TV 이용권과 같이 팔았었거든요. 상영관 스무 개가 전국적으로 개봉한다고 해도 다 거점 지역이고, 서울에 열 개 정도가 들어가면 못 보는 지역이 많으니까 그런 분들한테 좀 닿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옛날부터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키트’까지 나오게 됐죠. <여름날>이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 못한 게 한 편으로 슬프긴 한데 저희가 10월초부터 영화키트 판매를 할 거거든요. 그것까지 잘 마무리를 할 생각이고. 그런 시도가 잘 먹히면 좋겠어서 완전 망했다, 느낌은 아직 전 아닌 것 같아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영화보기 [영화배달 서비스 소파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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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 키트로 영화 패키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례가 한국 독립영화계에 있었나요?

 

성송이 : 비교할 수 있는 건 DVD가 있을 거 같아요. 패키지 DVD 같은. 그런 것 정도인 것 같아요. 영화가 되게 잘 되면 나중에 DVD랑 각종 자료를 엮어서 만드는 거죠. 이거는 저희가 이런 방식으로 나중에는 개봉을 해보고 싶은 거니까. 개봉하거나 아니면 정식 배급의 어떤 대안 모델로 해보고 싶은 거니까 다른 거죠. 어쨌든 영화계도 고민이 많으시긴 한데, 뭔가 완전히 새로운 고민은 없나, 싶더라고요. 지금 있는 거에서 어떻게 할까, 돈을 더 많이 줘서 홍보를 얼마나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영진위 정책 방향도 조금, 그런 방향이고 예를 들면 지원 사업도 2000만원 주던 거를 4000만원이나 1억 준다든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크고 완전히 다른 모델로 하는 건 잘 없었던 것 같아요.

 

김대성 : <여름날>은 어떤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건가요? QR 코드 찍으면 뜨는 건가요?

 

성송이 : 비메오(vimeo)에 저희가 영상을 업로드해두고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김대성 : 상영관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잖아요. 어떻게 하면 상영관을 더 잡고, 상영 일수를 늘리고, 회차를 늘릴까를 고민하고 계시겠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실험적으로 만들어서 이렇게 해보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거죠? ‘온라인 상영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활로를 찾는 이유는 상영관 확보가 어렵기 때문인가요? 다른 이유가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떤가요?

 

씨네소파 최예지(이하 최예지) : 영화를 배급할 땐 만남의 감각으로 영화를 소개 하려고 하는데, ‘만남이라는 게 꼭 극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경우엔 만남이라는 목적을 생각했을 땐 극장 외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극장 이외의 장소까지 열어두고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성송이 : 비용도 극장에 거는 것을 전제로 하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서 문화예술행사를 오프라인으로 해도 규모가 크잖아요. 약 천만원정도가 드는데, 그걸 전국에서 다 하는 거니까 홍보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돈을 쓰면 쓸수록 홍보가 되는 형태여서마케팅은 어쨌든 돈이라서요.

 

최예지 : 저희가 셈을 해보면 말이 안 되는 셈인 거죠. 돈은 엄청 많이 드는데 그에 비해 아웃풋이 나오지 않은 구조, 그런데 대중영화 배급 구조가 영화 배급의 기본값이 되어 있어서 그 방식 그대로는 작은 독립영화를 배급할 수가 없는 거죠. 4,5000만원을 투자해야 독립영화 관객들이 인지할 정도로 홍보가 되는데, 그렇게 해도 관객은 1, 2천 명 정도 밖에 기대할 수 없어요. 그럴 때 수익 구조가 나올 수 없는 거죠.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하고 있는 많은 용역이나 사업들이 국가 세금으로 하는 부분이 많은데, 돈이 아깝더라고요.

지금은 독립 예술 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나 경기영상위원회에서 하는 배급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으면 아예 배급을 할 수가 없거든요.

 

성송이 : 2~3년 사이에 대안적인 배급 방식도 꽤 생겼는데, 예를 들면 단독 개봉. 서울에 있는 인디스페이스같은 경우는 비용 때문에 소개하기 힘든 영화를 감독님과 상의해서 단독 개봉의 방식으로 장기 상영하기도 했죠. <재꽃>(2016)을 만든 박영석 감독님이 만드신 <바람의 언덕>(2019)의 경우에는 감독님이 직접 순회 다니면서 본인이 배급하기도 했거든요. 방식은 꼭 영진위를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계는 있겠죠. 한 관에서 개봉을 한다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없을테고, 오프라인이 가지는 제약도 분명하겠구요. 전국에 영화를 배급하려면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이 있기 때문에 (영진위의) ‘간택을 받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개봉을 못하는 거죠. 계속 지원 사업을 넣되 개봉도 하면 좋죠.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작품들은 저희가 소파키트라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소개해야겠다 싶어요. 극장 개봉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향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어서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에 대한 힘도 알고 있고 다 같이 영화 보고 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에 대한 갈증이랄까, 그런 문화의 필요성도 알고 있거든요. 상황이 조금 안정화된다면 이런 부분들도 충족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개봉 못한 작품을 소파키트 형태로 들고 다니면서요. 영화와 사람을 모으는 것 또한 구상을 하고 있어요.

 

김대성 : 꼭 극장 개봉이라는 방식이 아니고 다양한 루트를 이리저리 실험해보고 싶은 거고 찾아보고 싶은 거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 될 수 있겠지만, 배급 작업이 영화 제작 주체들에게 이런 영화를 배급할 수 있다, 배급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있겠지만 독립적으로 제작된 작은 영화들도 관객들과 이어주고 싶다는 씨네소파의 바람도 있는 거잖아요. 그럴 때 그 관객은 누구인가라고 물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유형화하는 건 조금 위험해보이지만, 이를테면 씨네필이라던지, 독립영화를 응원하는 사람들, 그런 관객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해서요. 오늘의 관객들은 분명한 취향과 자신의 욕망과 욕구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어떤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 놀라운 기동성을 발휘해 운동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이전처럼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챙겨보는 문화는 많이 사그라들었잖아요. 이슈화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상 독립 영화를 보려고 하는 관객의 상당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씨네소파가 만나고 싶고, 찾아가고 싶은 관객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어요. 저는 영화의 관객이 상당히 편향되어 있어서 관객의 다양성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씨네소파가 어떤 관객을 상상하고 어떤 관객에 향해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김영조 , 2015/2017  배급 )

 

성송이 : 처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김영조, 2015/2017 배급)를 배급할 때는, 저희 스스로가 1차 관객이라고 생각을 했었구요. 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으로서 뭔가 했던 것 같아요. 이건 개인차가 있는 질문일 것 같은데요, 사업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도 특정해서 쓰거든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누구를 생각하는 편이고, 보편 관객을 생각하는 감각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희가 활동하다보면 저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들이 생기잖아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꽤 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생긴 관객들을 떠올리며 어떤 영화는 그 분이 보면 재밌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는 것 같아요.

 

최예지 : 불특정다수보다 특정소수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김대성 : 관객들이 대부분 부산 사람일 것 같은데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그 소수가 대표성을 가진다는 거잖아요? 보편적인 관객이 아니라 조금은 예외적인 사람들, 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숫자가 많진 않더라도 커뮤니티에 와 주었던 사람들. 그런 것으로 관객을 상정해둔다면 지역성으로 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특히 커뮤니티는 보편성보다는 지역성이 반영되는 것 같아서요.

 

성송이 : 여러 가지로 묶이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청년 세대로도 묶일 수 있고 찾으면 그 관객도 유형화가 되겠죠. 어쨌든 홍보할 때는 보편 타겟을 생각하고 합니다.

 

최예지 : 저는 좀 전에 관객을 향해있지 않다고 생각한 게, 저도 누가 봤으면 좋겠다고 관객을 특정한다기보다는 이런 영화도 있다, 사람들이 ‘영화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드라마틱하거나 사건이 있거나 이런 것들을 얘기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영화는 삶이랑 닮아 있거나 닿아 있는 것이라고 여기거든요. 답이 정해져있다거나 답의 층이 한정적인 영화들이 많은데 그런 영화와 다른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아요.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다기보다는 이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있는 것 같아요.

 

김대성 : 그건 영화에 대한 애정인가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애정인가요? 구분에 무리가 있겠지만요.

 

최예지 : 예술을 조금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는 거 같아요. 부모님의 영향, 특히 아빠도 사진 작업을 하셔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예술의 보편적인 가치 같은 것들을 알리고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브랜딩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김대성 : 송이 씨는 어떠신가요? 영화에 대한 애정에 가까운지, 영화는 거들 뿐 우리 삶의 다양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데 그것을 이 영화가 보여준다, 라는 것에 가까운지요.

 

성송이 : 저는 영화에 대한 애정은 크지 않구요. 삶에 대한 것에 가까울 것 같아요. 뭐든 책이든 간에 주목 못 받는데 주목해줬으면 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가 하는 영화, 이 영화가 지금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는 것 같아요. 원래 꼰대인데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고….

 

최예지 : 저는 약간 반항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반항심이 동기가 되기도 하고요. 독립 영화 시장도 ‘자본주의체제 내의 독립영화시장’이어서 자본이 원하는 방식과 자본이 좋아하는 영화들, 대중들이 좋아하는 입맛에 맞춰가려고 하거든요. 그럼 왜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붙이나, 이런 생각들도 있고. 좀 그런 반항심이 많은 것 같아요.

 

김대성 : 그 말씀에 저도 공감하는 게, 저는 영화산업에 대해서 아예 모르지만, 독립영화계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엄청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독립영화들끼리 뭔가가 서로가 응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게 있었다면. 지금은 마치 인디밴드들이 메이저에 진출하기 위해서 인디씬을 쇼케이스를 위해 활용하는 방식과 유사한 측면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물론 그렇게 삐딱하게만 볼 순 없겠지만요. 워낙 열악하니까요. 그런데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묶기 어려울정도의 영화들 사이의 낙차가 심하지 않나, 가령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과 서울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 사이에도 규모면에선 낙차가 분명해보이구요.

 

성송이 : 어쨌든 저희가 자체적으로 영화 배급 결정에 관해 서로 얘기하고, 하향기준 같은 것도 있긴 한데 씨네소파가 하나의 생물같이, 그 때 그 때 씨네소파의 상황에 맞춰서 영화가 들어오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기억할 만한 지나침> 같은 경우는 그 시기의 씨네소파에게 필요한 영화이기도 했고. 꼭 늘 관객한테 필요하다기보다 (씨네소파에게 필요했고) 저희도 생존을 위해서 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다가오는 거 같기도 해서 씨네소파가 꼭 사람 같아요. 그거에 맞춰서 돌아가는 것 같은.

 

김대성 :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주인공 ‘김’이 구했던 강아지 ‘몽돌이’처럼 오는 거네요. 그 영화에도 김이 몽돌이를 구했지만 몽돌이가 김을 살리기도 하잖아요.

 

성송이 : 영화는 운으로 만나는 측면도 큰 거 같고, 그 때 그 때 발자취를 남기는 것 같아요. 힘든 것도 있지만 좋은 발자취도 있구요.

 

김대성 : 뒤에 직장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겠지만, 방금 발언 속엔 매력적이고 대단한 역량이 들어 있는 거 같아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3년을 유지 해왔고, 또 이후 개봉 예정작이 여러 편 있잖아요. 씨네소파의 ‘과감한’ 행보가 오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잖아요? 욕심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정말 이런 방식으로 움직여도 생존과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이 가능한 것인지, 분투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아니면 씨네소파의 역량이 ‘어마무시’한 건지….

 

최예지 : 아니, 그렇게 (안해도) 분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김대성 : 아, 분투하시죠. 그런데 분투하고 있다는 어필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잖아요. 부산의 문화예술 활동 속엔 항상 징징거림의 정서가 있는 거 같아요. 아니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강하게 어필하죠. 그래서 엄청 화가 나 있기도 하고. 늘 울고 있거나, 화가 나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그런 기조 속에서 알음알음으로 사정하고 도움 받는 끼리끼리 문법이 너무 팽배해서 징징거리거나 화내야만 하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씨네소파는 이렇다 할 슬로건을 내세우지도 않는, 상당히 이례적인 태도로 작업하고 있잖아요.

 

성송이 : 필요할 땐 합니다. 요즘은! (웃음)

 

배급이라는 선물 : 여섯 편의 영화, 여섯 개의 선물

 

 

김대성 : 한국 영화 산업이 비대하게 커졌고 그 때문에 배급과 제작이 한 몸으로 붙어 있는 탓에 ‘독과점’이라는 유통방식과 ‘웰메이드’라는 영화의 만듦새가 분리되지 않는 형편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승자독식 구조가 기승을 부리는 영화판에서 독립영화를, 그것도 지역에서 배급한다는 것은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방식만으론 성립하지도, 지속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요. ‘충무로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비주류 영화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영화적 토양이 가파르게 파괴되어가고 있는데, 씨네소파가 해온 독립영화배급의 이력은 질식할 것 같은 오늘의 한국영화 생태계에 작은 숨구멍을 내는 작업처럼 보입니다. 그 여정이 ‘생존을 위한 분투’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을 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요. 씨네소파가 전하는 선물은 언제나 두 곳에 도착하는 거 같아요. 첫 번째 선물의 수취인은 영화의 관객이겠죠. 다섯 번째 배급 영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씨네소파가 올해를 마무리하며 관객에게 선물하는 영화”라는 메시지는 곧장 두 번째 선물과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요. “씨네소파의 꿈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도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선언에 가까운 메시지는 영화를 제작한 이들에게 선물처럼 전해지지 않을까 해요. 씨네소파는 영화 배급이란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일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영화를 찾고, 계약을 하고, 상영관을 잡고,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홍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련의 배급 과정은 독립영화의 유통망을 구축해나가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배급 작업 속에서 씨네소파가 선물을 발명해내는 여정이기도 하지 않을까 해요. 그러니까 씨네소파가 배급해온 여섯 편의 영화는 그들이 관객과 제작진에게 전하고자 했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그 목록들을 살펴본다면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까 싶은 거에요. 그동안 씨네소파가 전했던 선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성송이 : 말씀 하신 선물이라는 것이 특히 관객에게 전하는 선물이라는 것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줄 수 있는 체험이나 <여름날>이 줄 수 있는 체험과 연관해서 저 나름으로 설명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저희가 초반에도 선물을 건넨다는 마음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게 잘 표현 안 됐던 것 같은데, 가령, 홍보를 할 땐 영화의 관객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잡는 방식으론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 같아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걸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거나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으로 홍보의 포인트를 잡는 편인 것 같고, 다른 배급팀에서는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요. 배급이나 기획회의 하기 전에 감독님들 인터뷰를 하거든요. 그래서 영화 전반적으로도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어요. 영화에 관한 인터뷰를 토대로 하는 게 마케팅적으로는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런 식으로 해왔던 거 같아요. 그런 메시지가 선물이라면 선물일 수 있겠네요. 유명배우만을 내세우는 방식은 저희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는지, 예를 들어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경우엔 보고난 뒤 감정이 씻기는 걸 느낀다든지, <여름날>이 줄 수 있는 유배지에서 회복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관객에게 선물하고 싶단 마음을 가지곤 해요.

 

최예지 : 저도 비슷해요. 성송이 대표가 말한 것처럼,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고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맞게 좀 배급하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위로’에 가깝더라구요. 많은 독립영화들이 결국 하고 싶은 말이 위로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다소 상투적이어서 그런 상투어에서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되어서요. 많은 영화들이 ‘위로’의 메시지를 품고 있긴 하겠지만 어떤 부분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지, 이 영화의 가치를 더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조금 더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죠. 영화 안에서.

 

김대성 : 배급을 하는 관점과 태도가 배급 회차가 진행될수록 더 분명해진다는 말씀이시죠. 방향성 같은 것들이.

 

성송이 :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것 같아요.

 

김대성 : 특히 <여름날>이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홍보시 보다 선명한 관점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는 거죠?

 

성송이 : 네, 여러 가지 홍보 포인트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내세울 것과 같은 점에서요. 홍보라는 건 결국 모든 걸 다 하는 거긴 한데, 다섯 개의 포인트가 있으면 다섯 개를 다 해야 하는 거긴 하니까요. 그중에서도 어떤 걸 내세워서 관객에게 전달할 건지를 잡아야 하는 거죠. 저희가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하는데, 유명한 배우가 나오니까 보세요, 이런 방식은 안 되지 않는가 그래서 오래되진 않았지만‘배급 편지’라는 형식도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https://blog.naver.com/cinesopa/221739497439)

 

< 기억할 만한 지나침 >( 박영임 , 2018/2019  개봉 ), 배급편지

 

김대성 : 이후 질문지에 ‘영화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관객에게 이어준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과잉된 표현이 아니었군요. 마치 비평처럼 작품에 관여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자본이 많이 투입된 영화는 연출자나 배우, 그리고 제작사의 악력이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홍보 방향이 이미 좀 나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작은 영화의 경우엔 어떻게 배급하느냐에 따라서 관객이 첫인상이라든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배급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씨네소파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배급이 제작 이후에 남은 절차가 아니라 이미 제작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게 됩니다.

 

최예지 : 저는 홍보할 때 무섭다고 생각이 됐던 게, 지금까지 저희가 쓴 카피라든지, 저희가 홍보 방향성을 잡은 방향이 관객의 감상을 많이 좌우하는 거 같더라구요. 그걸 꼭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그게 참 무서운 일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담 B>(윤재호, 2016/2018 개봉)를 배급할 때 감독님과 소통해서 홍보의 전반적인 컨셉을 잡았었는데, 이후에 <마담 B>의 주인공 당사자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분의 삶엔 이 영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더라구요. 저희의 홍보 방식이 그 분의 단편적인 부분만 담은 채 진행되는 거 같아서, 특히 다큐멘터리는 더욱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진행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홍보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가 영화 감상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니까, <마담 B> 배급을 계기로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어요.

 

<마담 B>(윤재호, 2016/2018 개봉)

 

성송이 : 이전에 <기억할 만한 지나침> 예고편을 보여드렸잖아요. 그때 예고편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보다 작은 것 같다고 코멘트 하셨잖아요.

 

김대성 : 네, 그런 말을 했었죠.

 

성송이 :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영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영화를 끌어내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확 들어서….

 

김대성 : 제가 스트레스 받게 했네요.

 

성송이 : 이제 그런 게 겁이 나더라고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죠. 저란 사람을 갑자기 뛰어넘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부적으로 스터디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작업이 최소한의 몸부림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드라마틱한 깊이감을 가지기는 어렵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스터디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제작 주체들에게는 딱히 선물해주고 싶다, 이런 건 아니고… 배우나 감독에게 개봉이라는 선물을 드릴게요, 이런 식은 아니예요. 그래도 작은 영화들을 계속하려고, 쥐고서 뭔가를 계속 시도하니 그렇게 작은 영화들이 참 많이 들어와요. 어떤 감독님이 영화가 언제 개봉할지 기약이 없는데 계속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이런 말씀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지금 우리의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들긴 들었어요. 저희가 또 몇년동안 갖고 있었던 <밤빛>(김무영, 2018)이라는 작품도 참 개봉이 쉽지 않은데, 저희가 마음이 있으니까 계속 뭔가를 시도하잖아요. 그러다 결국엔 적은 돈이긴 하지만 최근에 지원금을 땄어요. 그래서 약간의 마음만 있다면 어쨌든 되긴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기억할 만한 지나침 >( 박영임 , 2018/2019  개봉 ), 예고편

 

김대성 : 인터뷰를 위한 질문 준비하고 여러 자료들 열람하고, 또 아주 깊게는 아니지만 곁에서 씨네소파를 보면서 지치진 않을까라는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물론 많이 지치시겠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안심이 되는 느낌입니다. 스텝을 밟아가고 계시는 느낌이 들어서요.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가는 전형적인 스텝이 아니라 휘둘리지 않고, 너무 불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원칙을 딱 정해서 가는 방식도 아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체처럼요. 이제는 외부적인 요인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스텝이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아서 안심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부에서 계속)

 

 

 

 


씨 네 소 파

 

2017년 설립된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는 부산 지역 유일의 독립영화 배급사이다. 영화<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시작으로 <파란입이 달린 얼굴>, <마담B>, <밤의 문이 열린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을 배급하였다. 좋은 콘텐츠이지만 상영 기회가 없던 지역 영화를 발굴하고 개봉하며, 지역형 영화배급인프라를 구축하고, 독립영화 관람시장을 확충하기 위한 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영화를 소개함으로서 고정관념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김 대 성

 

문학평론가. 젠더·어펙트연구소 특별연구원. 대학에서는 강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고, 때론 집필 노동자로, 부산의 문화예술 장에선 기획 노동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과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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