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 제2회 (김비)

 

 

  2장

 

 

 

 

*

 

 

  낯선 사람이 꼭 낯선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아닌데, 성애의 발걸음은 급해졌다. 가게에 비워 놓은 이동변기 카트리지와 즉석밥 상자까지 카트 속에 실으니 한 손은 밀고, 한 손은 물건들을 움켜쥐어야 간신히 바퀴가 움직였다. 카트를 미는 와중에도, 조 사장이 무심하게 얹은 젤리 봉지 세 개가 자꾸 카트 밖으로 미끄러졌다.

도무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거기에 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원을 지나, 성애는 집 쪽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섰다.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해 이 물건들을 부려 놓고 싶었다. 이럴 거면 아예 트럭을 몰고서 모두산 뒤쪽 국도를 돌아 내려올 걸, 후회막심이었다. 계획했던 물건들만 샀고, 예상했던 부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 저 놈의 젤리.

  성애가 노려보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혀를 내민 아이 얼굴의 라면 상자를 딛고 있던 젤리 봉지가 흐느적 미끄러졌다.

        “어?”

  젤리 봉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카트 손잡이에 등을 대고 있던 대용량 세제가 기우뚱 흔들렸다. 떨어지는 물건들을 향해 팔을 뻗자, 카트가 통째로 기울었고, 성애의 몸도 기울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왼쪽 발에 힘을 주었는데, 무얼 밟았는지 미끄덩 발목이 뒤틀렸다. 어느새 성애의 몸은 수풀더미 위로 주저앉아 계곡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아아…!”

  통이 넓은 남색 원피스 자락이 말려 올라갔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레깅스 입은 허벅지 안쪽을 마구 긁었다. 앞구르기를 하는 물건들과 같이 계곡 옆 진흙 구덩이에 나뒹굴고 나니, 찢긴 허벅지가 더욱 심하게 아려왔다.

성애는 두 다리를 벌리고서 고개만 빼 허벅지를 들여다봤다. 왼쪽 허벅지 안쪽 레깅스가 찢겨 나갔고, 불룩한 속살이 보였다. 시뻘겋게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뱄다. 진흙더미 위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두 다리 사이에 남자 성기가 혹처럼 불룩했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아야야…”

  성애는 상처를 닦아낼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이없게도 물티슈가 든 카트는 굴러 내리지도 않고 놀리듯 언덕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성애는 눈앞에 세차게 흐르는 계곡 쪽을 바라보았다. 계곡 물에라도 씻으려고 몸을 일으켰다. 질겅 젤리 봉지가 밟혔지만, 그 따위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성애는 원피스 치마를 허리까지 끌어 올려 두르고, 물가로 다가갔다. 투명하게 흐르는 힘찬 물속에 진흙과 피가 엉긴 손을 집어넣었다. 일단 먼저 두 손을 물속에 흔들어 씻고서, 깨끗한 손으로 물을 움켜쥐어 찢긴 허벅지 안쪽을 씻어냈다. 긁힌 자리에 물이 닿자 찌르르 통증이 밀려왔다. 상처를 자세히 보려고 레깅스를 조금 더 찢어내고서, 계곡 앞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한 쪽 다리를 다른 바위 위에 올려놓고 물을 끌어 계속 상처 위에 적셨다.

        “아하, 아하…”

  쓰리고 아픈 통증에 성애는 좀 더 크게 신음을 뱉었다. 고양이 같은 신음을 토하며 고개를 들다가 눈을 떴는데, 계곡 건너편에 무언가 있었다. 사람이었다.

  화들짝 놀라 성애는 치마를 내렸다. 다리 사이를 감췄다. 깎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한 검은 등산복을 입은 남자는 건너 편 물가에 박쥐처럼 쪼그려 앉은 채였다. 지팡이를 쥔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서 성애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덕에서 굴러 내리는 성애를, 상처를 들여다보는 성애를, 두 다리 사이를.

  성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언덕을 기어올랐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했다. 더 이상 그를 마주해서 좋을 일이 없었다. 구경거리가 될 뿐이었다. 구경거리는, 어떤 말을 해도, 어떤 비명을 질러도,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해가 지고 한밤중이었지만, 성애는 불도 켜지 않았다. 환기 구멍을 통해 들려오는 바깥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등산객인가? 모두봉의 등산로는 공원 반대쪽에 있는데, 잡초만 가득한 공원 너머 이쪽은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는 곳인데.

  두 눈을 굴리며 쪼그린 채 앉아있던 남자의 모습이, 성애는 도무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등산객이라고 하기엔 차림이 너무 허름했고, 가방도 없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티브이에서나 가끔 보았던,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혼자 사는 ‘자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차림일까? 성애는 온통 까만 옷을 입은 그 사람이, 박쥐같다고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산에 나 말고 또 다른 산 속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보았을까, 어디까지 보았을까? 무슨 생각으로 가만히 보고만 있던 걸까, 뭘 보냐고 소리라도 치고 돌아와야 했을까? 한꺼번에 떠오르는 질문의 끄트머리를 찾으려고 성애는 안간힘이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 허벅지 안쪽이 쓰라렸지만, 오금이 저려오는 건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설마 여기까지 나를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나를 여자로 봤을까, 여자 옷을 입은 남자로 봤을까? 여자인 내가 더 위험한 걸까, 변태로 몰린 내가 더 위험한 걸까? 성애는 누군가 바깥에서 보고 있을까 최대한 느리게 움직였고, 혹시나 차가 기우뚱거릴까 바닥에 납작하게 몸을 붙인 채 옆으로 누웠다.

 

 

  부유하는 집에 사는 이상 언젠가 한 번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리라 예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최소한 변명이라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것은 감출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까발려지고 말다니, 최악도 이런 최악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아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무기… 그래, 무기가 필요하다. 진짜 최악을 대비하는 것만이 두려움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인 것.

  성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오수통과 청수통, 인산철 배터리가 나란히 일자로 들어있는 기다란 수납함을 열었다. 구석에 박혀 있던 긴 쇠막대를 꺼냈다. 캠핑카 공장의 단발머리 여자 직원은 타박을 하고, 충고를 하고,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짜증을 내다가, 아무렇게나 쌓인 자재 더미 속에서 기다란 쇠막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끄트머리에 물음표처럼 생긴 갈고리가 달린 막대에, 캠핑카 공장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이거라도 가지고 가 집 지키는데 쓰라고 했을 때, 어이가 없어 여직원도 웃었고 성애도 웃었다. 두고 보라고, 어딘가에 분명 쓸모가 있을 거라고 그녀가 장담했을 때, 성애는 쇠막대를 받아가지고 나오며 이걸 뭐에 쓰나 싶었다.

  나중에 다른 공장에서 인산철 배터리를 추가로 달던 직원이, 어닝도 없으면서 이건 뭐 하러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고, 바로 그 막대가 캠핑카 꼭대기에 달린 그늘 막 어닝을 펴고 접는데 쓰는 걸 알게 되었다. 차마 호신용이라고 말할 수 없어 뱀이라도 잡을 거라고 했고, 다시 또 남자 직원도 웃었고, 성애도 웃었다.

  성애는 꺾였다가 다시 뻗은 쇠막대의 끄트머리를 손으로 움켜쥔 채,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언제라도 최악의 상황이 오면 뽑아 들 것이다. 아무리 사소하고 무기력한 것이라도 뽑아 들어, 나를 위협하는 것을 향해 휘둘러 줄 것이다.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성애는 돌지 않고 멈춰있는 천장의 맥스팬을 올려 보았다. 한 번도 세어 보지 않았던 팬의 날개를 셌다. 어디에서 시작했더라? 첫 번째로 세던 날개의 위치를 놓쳤다가, 빙글빙글 돌며 한 몸으로 붙은 날개의 숫자를 끝도 없이 계속 세고 또 셌다. 불안을 세는 밤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문을 여는 대신 성애는 후방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서리가 내렸는지 화면 구석에 얼음부스러기가 보였다. 환기 구멍에 눈을 내밀었고, 통째로 열리는 뒷문을 여는 대신 구멍 옆에 문을 조심히 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봉분 위에 내린 하얀 얼음 조각이 아침 햇살에 부딪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집을 옮겨야하는 건 아닐까? 성애는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와, 봉분 옆에 쪼그려 앉았다. 선잠이 묻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제 보았던 박쥐 남자와 똑같은 자세라고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려 두 무릎을 움켜쥐었다. 고민의 어디까지가 현명함일까? 고민을 쌓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낭떠러지는 어떻게 피하는 걸까? 가지 않아서? 뛰어넘어서?

  음음! 성애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자신만 아는 환호를 소리 내어 뱉었다. 잠 때문에 가라앉은 굵고 탁한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음음, 음음! 조금 더 크게, 누가 들어도 상관없을 만큼 크게 뱉었지만, 어깨는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무릎 사이로 고개만 처박고 말았다.

 

 

        “누구? 남자? 아… 배추밭 아래 사는 김 씨 말 인갑네.”

        “김씨? 아, 그림쟁이 김 씨? 그 냥반 화가다, 화가.”

        “화가? 기자 아이고?”

        “기자는 무신… 술병 걸려 이혼 당하고 쫓겨나 도 닦는 사람 마냥 그 산 구석에 들어 앉아 주야장창 그림만 그려댄다 안하요? 니는 그 양반 그림 본 적 읎제?”

        “근데, 그 양반 몹쓸 짓 하고 그럴 양반 아닐 낀데…”

  성애는 가게에 출근하자마자 강 대표에게 박쥐남자에 관해 말했다. 언제나 혼자 몫이어야 했던 고민이 치달은 끝을 알기에, 이번에는 꼭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사람이라면, 당장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도 끝내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법. 도움이 필요한 절박함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성애는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언제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일단 도움을 청하고 볼 일이었다.

        “니는 몸이 무기 아니었나? 당한다고만 생각 말고, 한 번 들이 받아뿌라. 궁지에 몰린 몸뚱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제? 그냥, 콱!”

  밥공기에 밥을 퍼 담다가, 점순 씨는 정말 뿔이라도 달린 사람처럼 티브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받는 시늉을 했다. 화난 짐승 흉내를 내느라 새빨갛게 칠한 입술을 질끈 무는 바람에, 빨간 자국이 치아 끝에 찍혔다. 이제 점순 씨의 웬만한 이야기는 무심히 흘려들을 수 있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 어쩌고, 여권 신장 어쩌고, 점순 씨는 주걱 질을 하며 계속 듣지 않는 말을 쏟아냈지만, 성애는 밥그릇을 온장고에 넣는 강 대표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걱정 없을 끼다. 그 냥반 황씨네가 버리고 간 그 집에 산지 일 년도 넘었지, 아마? 헌데 아무 문제 읎었어. 동네잔치에도 몇 번 얼굴 비춘 적 있고... 그때도 음식 좀 싸줬더니 공으로 얻어먹는 놈은 아니라고, 그날 장작을 무더기로 패 놓고 갔어야. 떠돌이들 마을에 들이면 개차반인 것들 허다한디, 정말 뭘 좀 배운 냥반인지, 그래 그런지 그이는 좀 다른 갑다 싶더라.”

  밥그릇을 차곡차곡 쌓던 강대표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온장고 문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성애에게 물었다.

        “와, 벌써 뭔 일이… 있었던 건 아니제?”

  어느새 점순 씨도 주걱을 들고서 가만히 성애의 입술만 보고 있었다. 어디까지 말해야할까,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애의 머릿속에서 다시 또 혼자만 아는 가늠자가 바쁘게 오르내렸다.

        “여기도 어떤 놈이 장난질을 친 모양인가비네? 작정 하고 손댔다, 이거슨.”

  조 사장은 도와줄까? 내가 도와 달라고 말하면 그는 기꺼이 나서줄까? 드라이버를 들고서 조 사장은 씩씩대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가게 앞 주차장을 비추는 보안 cctv가 고장이라고 강대표가 아침 일찍 그를 불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가게도 고장이 나 이상한 일이라며 그는 사다리를 들고 문 밖으로 나섰던 참이었다.

        “누가 그랬다고? 김씨?”

        “그거 아이다… 자기는 신경 쓰지 마쇼. 그래서 못 고친다꼬?”

        “지금은 몬 한다. 부품 하나 있는 거 우리 집 거 고치는데 써 버려서… 사람 부르는 수밖에 읎지 뭐. 아따 요즘 김 소장이랑 술 한 잔 먹을 일 엄청 생기는구만? 그 냥반 바빠서 다음 주 주말에나 될래나… 도대체 어떤 잡놈의 새끼가 동네 카메라란 카메라는 모두 박살을 내뿌고… 요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이!”

        “알았소, 씻기나 합시다. 점심이나 한 숟갈 뜨고 가쇼.”

  강 대표는 영업용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화구에 불을 붙였다. 소분해놓았던 찌개 냄비 하나를 올리고, 돼지고기 몇 점을 더 집어넣었다. 주걱 질을 하던 점순 씨가 쌓인 밥그릇과 온장고를 번갈아 가리켰고, 성애는 몸을 움직여 밥그릇을 온장고 안에 집어넣었다. 밥그릇을 쌓다 말고 손을 펴 온장고 바닥을 슬쩍 만져보았다. 아직 열기가 남은 밥공기의 바닥은 데워진 공간 속에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성애는 밥그릇을 내려놓을 때마다, 온장고 바닥을 어루만졌다. 뜨거운 온기가 성애의 손바닥에 철썩 들러붙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혼자에게만 엄청난 그런 일들이 있었다. 별 일 아니라고, 그런 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다고 어른들은 말했는데, 어린 성애는 그때 바지를 붙들고서 온 힘을 다해 울었다. 한 번도 그렇게 울어본 적 없어, 울고 있으면서 우는 자신이 더 놀라웠던 그런 기억이었다. 남자끼리 고추 좀 보자고 할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머리 위에 누군가 말했을 때, 열두 살 성애는 눈물 너머 흐린 그림자를 향해 더 크게 울었다.

 

 

  엄마가 뒤통수를 쳤는데, 열두 살 성애는 바닥에 엎어지고서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성애는 잠을 자다 오줌을 쌌고, 혼자 한밤중에 일어나 이유도 없이 울었다. 새벽에 가게 일을 나가야하는 엄마와 아빠는 자꾸 울면 팬티만 입혀 밖에 세워 둔다고 했고, 그 말이 무서워 열두 살 성애는 이불을 겹겹이 뒤집어쓰고 눈만 감았다. 울음을 삼켰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별 일 아니었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성애에게 그날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공포가 새겨진 날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어땠어요? 남자 놈들이 가만히 뒀겄어? 아, 금마들… 사내새끼들이 다 그르치. 그런 일들 어서 빨리 잊어버리는 기 신상에 좋은 일 아니겄소? 드쇼.”

  성애는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조 사장의 사람 좋은 눈웃음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한 번 맥주잔을 들어 올렸을 때, 성애도 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혔다. 저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나는 안전할 수 있을까? 불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서, 내 삶을 지켜갈 수 있게 될까?

        “그럼 어렸을 때 자기도 그랬나?”

        “허허… 개였제, 개망나니. 허허허.”

        “사내들은 왜 그카는지 몰라? 가시나들 치마 들추고, 재밌다고 킬킬대고… 명근 씨처럼 일등 모범생도 그랬나?”

        “흐흐흐… 마 걔나 나나 거서 거다. 이 몸띵이 가진 것들은 다 그리 생겨 묵읐다. 원래 그렇다.”

        “뭔 그런 소리가 다 있노? 핑계 아이가? 원래 그런 몸이 어딨노?”

        “원래 그런 몸띵이가 있을 수 있지, 그럼! 사람 몸띵이라는 게 다 다르다 아이가? 다 똑같아 보여도 똑같을 수는 없는 기다.”

        “내는 모리겠는데? 내는 내 몸띵이 가지고 느그들처럼 개차반으로 살지 않아 모리겠는데?”

        “니 그리 말하는 것도 폭력 아이가? 니가 모르겠다고 남의 사정도 모리겠다고 말하는 그기, 그기 폭력이라 안 하나! 말 쫌 조심해라!”

  서로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아주 잠깐 성애의 눈치를 살폈다. 털털하게 웃어넘겨야하는 때라는 걸 알지만, 성애는 그럴 수 없었다.

  테이블 위에 놓았던 조 사장의 휴대폰이 드르륵 울렸고, 그는 휴대폰을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강 대표는 오늘은 가게에서 자는 게 어떠냐고 말했고, 성애는 여전히 망설여졌다. 어떤 것이 나를 지키고, 나의 집을 지키는 일일까? 유리문 바깥에서 전화를 받던 조 사장은 흘끗 안을 보더니 휴대폰을 든 채 다시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래, 그래… 바까주까? 지금 옆에 있다. 응, 응. 전화? 무슨 전화? 아닌데, 난 전화한 적 없는데? 니, 명근이한테 전화 했노?”

        “내가? 아인데?”

        “응, 그래, 그래… 거, 낚시터 옆에 선착장 하나 만들라꼬. 오리배도 띄우고, 바나나 보트도 띄우고… 그래, 니가 내려와 도와주면 좋제. 그래, 혼자 처박혀 있음 모하겠노? 와라. 의사 동생 도움 쫌 받아보자. 허허허… 똑똑한 놈이라 못 하나를 박아도 다르겄제. 응, 응. 니 지금 술 먹나? 위치가 강남으로 나오데? 술 좀 줄여라이. 그래. 곧 보자, 드가라이.”

        “명근씨 내려온데?”

        “응, 온다네. 짜식… 지 형 하나는 끔찍이도 생각허제.”

  착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성애는 조 사장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 것 같았다.

        “우리 형제가 좀 각별해서… 어릴 때 아부지 돌아가시고, 어매하고 아주 쌩 고생을 하고 살았거든요. 아들 둘이 어매 고생 엄청시리 시켰지… 그래도 둘째가 좀 특출 나서 이 동네서 어매가 어깨 좀 펴고 살았으요. 오래 살아서 명근이 놈이 호강 좀 시켜드릴라 카니까 그리 되시고…”

  눈가가 흐려지는지 조 사장이 작은 눈을 연신 깜빡였다.

        “인자 우리 둘 뿐이지. 이거, 이것도 작년 전 생일에 동생 놈이 선물로 보내온 거 아이가? 위치 추적기라나 뭐라나… 그 노마가 저 차 사는데 돈 보태고, 혹시 시골구석에서 차사고 나면 큰일 난다꼬 해주드라. 나도 그 노마한테 똑같은 거 선물해주고… 이제 우리 형제한테 사생활은 읎어. 다 까놓고 사는 거지, 몽땅 싹 다! 가족이 그래야 하는 거 아인교?”

  그는 올려놓은 지포 라이터를 뒤집어 들러붙어있던 새까맣고 네모난 것을 가리켰다. 성애는 오래된 삐삐를 붙이고 다니나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강 대표는 위치 추적은 휴대폰 어플로도 가능하다고 퉁명스럽게 말했고, 조 사장은 그거랑은 차원이 다른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사내놈들끼리 앵꼬바서 못 봐주겠다며 강 대표는 술잔을 들었고, 조 사장은 그럼 ‘니도 하나 해주까?’ 되물었다. 강 대표는 다시 사생활 어쩌고 손을 절레절레 저었고, 가게 앞 산자락의 어둠이 내려앉은 국도에 택시가 한 대 도착했다. 택시 안에서 어느새 말끔하게 화장을 새로 한 점순 씨가 부산스럽게 손 인사를 하며 내렸다. 조 사장의 생일이라고 강 대표가 귀띔이라도 했는지, 퇴근을 했다가 다시 나타나는 그녀의 한 손에는 새파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강 대표는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가게에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성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여기에 있다고 불안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의 집은 산 속에 있고, 지켜야 할 집이 거기에 있다면 돌아가야 할 일이니, 그렇다면 그 불안에 지고 싶지 않았다. 성애에게 하룻밤의 대피는 오늘의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생을 지키는 일은 아니었다.

  조 사장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김 씨 그 노마가 그렇게 막되어먹은 놈은 아니라고, 걱정할 만 한 일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점순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계속 술잔을 들이켜더니, 성애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이!’ 그 말만 계속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이 받아버리라고, 그러면 된다고, 그런 독한 마음을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서둘러 모두산으로 향하는 성애의 손에, 강 대표는 냉동실에 얼려놓았던 미역국 한 덩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주었다. 조 사장을 위해 끓인 국이란 걸 알지만, 손에든 것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늘따라 더 새카매진 것 같았다. 성애는 발걸음이 급해지지 않도록 평소의 속도를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몸을 움직였다. 수풀과 나무 사이에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속이 울렁거렸지만, 성애는 자신의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불안을 들키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는 걸, 성애는 잘 알고 있었다. 겁에 질린 놈에게 제일 먼저 달려드는 건 짐승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었다.

  혹시나 내 집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딘가에 숨어서 내 치마가 다시 들춰지기를,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감추고 싶었던 것이 드러나 보이기를 바라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건 아닐까? 떠오르는 불안을 차곡차곡 접으며 걸으니, 어느새 익숙한 봉분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밤이 왔고, 아침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성애는 주춤거리는 몸짓 없이, 평소처럼 측면 출구의 자물쇠를 먼저 열었고, 불을 켜기 전에 뒤쪽 벽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으며, 음악을 틀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음악에 맞추어 소리를 내어 흥얼거렸고, 원피스를 벗기 전에 오천 원짜리 고무줄 바지로 먼저 갈아입었다. 엎드려 바닥을 쓸어냈고, 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 활짝 열린 벽이던 문을 끌어당기다가, 나무들의 마천루 너머에 두부 같은 달이 보였다. ‘아, 예쁘다.’고 말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얹힌 게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조금 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성애는 조용히 문을 닫았고 맥스 팬 옆에 등을 껐다.

 

 

  눈을 뜨니 맥스 팬 뚜껑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이 보였다. 아무 꿈도 꾸지 않았고, 어릴 때처럼 잠자리에 실례를 하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편안히 잤고, 인사처럼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아침, 산책, 조식, 브렉퍼스트, 빵 냄새, 죽 냄새, 국 냄새. 아, 미역국! 성애는 몸을 일으켜 어제 냄비에 담아두었던 반쪽짜리 미역국 덩어리를 열어보았다. 꽁꽁 얼었던 한 덩이는 어느새 향기로운 국 한 그릇이 되어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서, 반을 덜어 데운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먹었다. 즉석 밥을 두 개나 데워 말아 먹었다. 내려앉은 차가운 공기로 반짝이는 숲을 바라보며 먹는 아침은 그 어떤 호텔 조식 부럽지 않았다. 창이 아니라 벽이 통째로 열려 볼 수 있는 아침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성애는 밥을 먹다 말고 주방용품을 넣은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작은 그릇을 꺼내 미역국을 옮겨 담았다. 잘 풀린 밥알도 담고, 강 대표가 조 사장을 위해 골랐을 큼직한 고깃덩이도 골라 담았다. 자신처럼 맛있게 아침을 먹을 또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니, 성애는 참 좋았다. 불안을 이겨낸 아침은 이토록 달콤하구나, 성애는 여러 겹으로 부풀어 오른 뱃살을 자랑하듯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두들겼다.

  봉분 앞에 국그릇을 내려놓고서 성애는 그 주인을 기다렸다. 곧 바람에 떠밀린 털 뭉치 하나가 둥실둥실 봉분 너머에서 나타날 것이다. 신비를 기다리는 동안 성애는 지묘 씨에게 며칠 동안 자신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들에 관해 털어놓았다.

  불안이란 ‘참말’ 힘이 없다고, 겁에 질린다는 건 ‘참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아니 그러고 보면 불안해지고 겁에 질린다는 건 ‘참말’ 고마운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불안을 벗어버리고 나면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운 걸 알게 되니 ‘참말’ 소중한 것이 아니냐고, 그러고 보면 그 사람도 이웃인데 두려워하기만 한 내가 ‘참말’ 부끄럽다고, 그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그를 한쪽 눈으로만 바라본 셈이니 그 사람에게 ‘참말’ 미안하다고, 이런 나를 깨우치게 했으니 불안은 ‘참말’ 필요한 일이 아니었느냐고, 그나저나 ‘참말’이란 말 참말 예쁘지 않느냐고.

        “어, 신비야!”

  둥실둥실 봉분 너머에 나타난 신비를 향해 성애는 소리치듯 이름을 불렀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서 구름처럼 나타난 신비의 몸짓은 정말 꿈결 같았다.

        “신비야, 어서와 밥…”

  헌데, 둥실둥실 떠오는 신비 너머에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좁고 굽어진 어깨는 당장이라도 숨겨놓은 날개를 펼 것 같았다. 날개를 펼쳐 환한 아침 햇살을 모두 가려버릴 것만 같았다. 아침을 저녁으로 바꾸고, 낮을 밤으로 바꾸어버리는 뒤집힌 날개. 그 남자였다. 박쥐 남자.

 

 

        “그거… 내 얘기요?”

        “예?”

  열심히 국그릇에 얼굴을 박은 신비만 보고 있다가 성애는 고개를 들었다. 네모난 집 안으로 도망을 칠 수도 없었고, 왜 남의 영역에 침입해 들어왔느냐고, 저리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성애에게 허락된 집이란 네모난 것일 뿐, 아니 네모난 것조차 엄밀히 말하면 성애 자신의 침입일 뿐, 강 대표의 말에 따르면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산 속에 머무는 그 남자의 침입은 아니었다. 성애는 바짝 붙인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리고서, 열심히 밥을 먹는 신비 쪽으로 조금 더 돌아앉았다.

  남자가 우리 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게 당신이냐고 말했을 때, 성애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가 뒤뚱거리며 국그릇으로 다가가는 신비 쪽을 턱으로 가리 켰을 때, 성애는 짧은 꼬리가 바짝 선 동물의 엉덩이만 보고 있었다. 아닌데, 강아지인데, 고양이는 저렇게 발톱이 나와 있을 수도 없고, 저렇게 뒤뚱거리며 걸을 리도 없는데. 음식에 저렇게 얼굴을 박고 게걸스럽게 먹는 건 분명 강아지인데, 고양이는 조금 더 조용히 낮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먹는데.

       ‘고양이… 아닌데…’

  들릴 듯 말듯 말해 놓고서 성애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려 밥그릇 쪽으로 돌아앉았다. 이대로 내버려두고 차 안으로 도망쳐야하나, 차 안에 숨어들어 문을 잠가야하나?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도망쳤던 그때를 떠올리게 할까, 두 다리 사이를 기억나게 할까,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여기에 사는 나를 알았으니 어떤 핑계든 이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타난다면, 나는 다시 또 불안의 한 가운데인 것을. 봤을까, 그때 봤던 걸 기억할까? 성애는 치마를 입은 것도 아닌데,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 바지를 꽉 움켜쥐었다.

  무슨 소리냐고, 자신이 고양이 소리를 들었다고 남자가 말했을 때, 밥을 먹던 신비마저 고개를 들어 소리치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끼니때마다 밥을 달라고 냐옹냐옹 울면서 우리 집으로 온다고 말했을 때, 성애는 그렇게 우는 신비를 상상할 수 없어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머리가 아픈 건가,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그런가, 성애는 자꾸 목이 말랐다.

  남자는 그러고도 자신이 생각하는, 신비가 분명히 고양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늘어놓았는데, 그러나 그가 말한 것들은 전부 강아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고양이만의 것이 아니었다. 생선을 맛있게 먹었다거나, 가르랑가르랑 소리를 냈다거나, 팔을 베고 누워 잤다거나, 강아지였어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성애에게 그렇게 물었다. 좀 전에 무덤의 봉분에 대고 하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였느냐고.

        “아뇨, 아닌데요.”

  성애는 자신의 말이 조금 더 단호하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를 등지고서 조금 더 돌아앉았다.

        “아님 말고.”

  뒷짐을 진 남자는 봉분에 엉덩이를 대고 걸터앉으며 그렇게 말을 잘랐다. 그러더니 두 팔로 봉분을 짚어 가벼운 몸을 자랑이라도 하듯 훌쩍 뛰어올라 봉분의 꼭대기에 아예 엉덩이를 비비며 올라앉았다. 그러고는 성애에게 이렇게 물었다.

        “참말로, 참말로, 참말로, 아니요? 참말로 내가 아닌 거요?”

  성애는 신비의 머리가 박혔던 밥그릇을 낚아채 사각의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신발을 안쪽으로 벗어 던지고서, 철컥 벽의 문을 잠갔다. 환기 구멍도 막았고, 측면의 문도 닫아걸었다. 요동치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성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명히 아침이었는데, 사방이 밤보다 더 어두웠다. 덫에 갇힌 것처럼, 온통 밤이었다.

 

 


김 비

 

 

소설가,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통해 등단, 그늘지거나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애쓰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플라스틱 여인>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없음>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신랑과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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