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 제3회 (김비)

 

 

 

 

*

 

 

  무작정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웃을 어떻게 처리 하더라? 허락도 없이 사람을 불러대는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더라? 성애는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러다가 누군가 책의 일부를 옮겨 적은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우리는 누가 나를 ‘처리’해버리면 화를 낼 거면서, 남들은 쉽게 ‘처리’한다.’[각주:1] 성애는 굳은 손끝만 까딱거리다가 주머니 안에 휴대폰을 쑤셔 넣었다. 그런가, 내 잘못인가? 좋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인가? 

  “아이씨… 아줌마!” 

  등 뒤에 앉은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쏟아진 국그릇 앞에 그는 손을 털고 있었다. 사람이 꽉 찬 점심시간에는 각별히 조심했어야 했는데, 모든 방향으로부터 달려들 수 있는 불안이란 놈의 생리를 미리 알아 차렸어야 했는데. 성애는 황급히 주방 쪽으로 몸을 빼냈다.   

  “죄… 죄송합니다.” 

  “어… 뭐야, 아줌마야, 아저씨야? 아줌씨, 나 봐요, 나 봐 봐요!” 

  순간 식당 안을 꽉 채운 두 개의 눈들이 일제히 성애의 얼굴로 쏟아졌다. 단발머리 안쪽으로 숨겨놓은 턱 밑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성애는 짧은 목덜미를 더 깊이 꺾었다. 손에 들었던 쟁반으로 얼굴을 가렸다. 쟁반 너머에서 키득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트랜스?’ 이리저리 튕겨지는 뾰족한 말들이 한꺼번에 성애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 싸람들이! 아,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뭔 뻘 소린교? 내도 살 좀 찌면 남자라 카겠네? 쩌기 저 아저씨 가심 좀 바라, 그럼 저 아저씨도 여자가? 쩌기 저 아지매는 영락없는 상고머리니 그럼 남자가? 뭔 밥 처먹는데 남자 여자 따지고… 뻘 소리 말고 지덜 밥그릇에나 신경 쓰쇼! 밥 모자라면 달라 카고, 밥그릇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아이고 고맙습니데이, 감사 인사부터 하고!” 

  싸늘했던 식당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데워졌다. 점순 씨는 샛눈을 뜨는 사람들을 일일이 손가락질하며, 장난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내도 남자다, 어디 한 번 웃장 까고 같이 등목이나 해보까이!’ 점순 씨가 먼저 기세 좋게 목소리를 높이니, 다들 껄껄 웃고 말았다. ‘쏘리, 아가씨!’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을 때, 점순 씨는 다시 소리쳤다. ‘아가씨, 아줌씨도 다 필요 없다! 그냥 선생님, 캐라! 선생님 소리 싫으면 점원 양반이라 캐고! 사내고 기집이고 뭘 일일이 다 갖다 부치며 사노! 그기 벼슬이가! 씨잘데기 읎는 소리 말고 밥이나 처무라!’ 

  성애는 추가 공깃밥을 청하는 손을 향해 그릇을 날랐고, 성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눈이 빙긋 웃었다. 주방 안에서 강대표가 뭔 일인가 내다보다가, 허물어지듯 웃고는 찌개 냄비를 날랐고, 점순 씨는 계산하는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눈썹 문신에 화장을 두텁게 한 점순 씨의 가면 얼굴이 손님들을 향해 찢겨지듯 웃고 있었다. 

  모두산 너머에 리조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손님은 갑자기 많아졌다. 평일이면 날마다 오전 늦은 시간부터 이른 오후까지 사람으로 미어터졌고, 반대로 저녁에는 훨씬 한가했다. 읍내 고깃집과 술집들이 시끄러울 차례였다. 

  늦은 점심을 뜨는 둥 마는 둥 늘어놓은 채, 강대표와 점순 씨는 옛날이야기에 한참이었다. 점순 씨는 강대표에게 옛날 옛적 모두리에 관해 시시콜콜 이야기했고, 강대표는 점순 씨에게 여기가 고향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속속들이 아느냐고, 말도 안 된다고 손을 휘저었다. 점순 씨는 자신이 그동안 정보통으로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하며 눈을 부라렸고, 두고 보라고 그 리조트 분명히 망해 나간다고 장담했다.   

  성애는 빈 수제비 그릇을 계속 긁으며 두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알고 있나? 강대표가 말했나? 말했다면 어디까지 말했을까? 그 말을 들은 점순 씨의 반응은 어땠을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숨 가쁘게 성애는 오늘도 다시 똑같은 불안의 골짜기를 혼자만 뛰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을 흉내 냈지만, 다짐만으로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의 일과를 모두 끝내고 어둠이 내려앉은 봉분 앞에 도착하니, ‘참말로, 참말로’ 묻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자꾸 경직되는 몸을 움직여, 성애는 아무 일 없는 듯 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 포록포록 끓어오르는 커피포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마셨다. 원래도 설탕을 듬뿍 타서 마시던 커피를, 오늘은 꿀까지 짜 넣어 마시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커피를 몇 잔 마시든 카페인이 얼마나 들었든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잠에 빠지고 말았는데, 오늘은 새카만 집 속 밤이 조금씩 환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둠 속이, 검은 낮같았다. 힘주어 눈을 감았는데, 눈꺼풀 너머에서 누군가 검은 불빛을 비추는 것만 같았다.

  불안을 해결하는 법을 찾아 생명 없는 글자들을 모으며 가상의 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일도 그만 하고 싶었다. 내 불안을 해결하고 싶다고 남의 불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성애는 눈을 감은 것도 모자라 이불을 둘러썼다. 어서 빨리 밤이 지나갔으면 싶은데, 이불 속 밤마저 자꾸 환해졌다. 식당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눈들이 이불 속 실밥 자국을 따라 일렬로 늘어섰다.  

  슥슥스슥 슥슥스슥 

  밤 속에, 그 속 밤 속에, 다시 또 그 속에 밤에서, 풀숲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있는 것이 풀숲을 스치며 걷는 소리였다. 풀숲 속에 오래 살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사람이나 동물의 기척에 스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두 다리가 풀숲을 지나 걸어오는 소리였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텅, 순간 무언가 네모난 집의 벽을 쳤다. 안에서 듣는 소리는 천둥처럼 컸지만, 성애는 입을 꽉 다문 채 이불 밖으로 눈만 내밀었다. 탕탕, 톡톡톡. 손바닥으로 치다가, 손가락을 세워 치는 소리. 안에 사람이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두드리는 무심한 소리. 

  성애는 불안과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양쪽으로 나눠 쥐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이불 속에서 팔만 내밀어 관처럼 생긴 선반 위에 모니터를 켰다. 후방카메라와 연결된 흑백의 모니터 속에 두 사람이 보였다. 몸집이 큰 사람과, 훨씬 작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트럭 주위를 천천히 돌며, 무심히 트럭을 두드리고, 쓰다듬고, 기대고 있었다. 벽에 기대는 사람의 무게로 네모난 집이 기우뚱 흔들렸다. 살짝 기울어진 벽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여기 차를 세워놨지?”   

  “자기가 일꾼들한테 연락해서, 그 사람들이 일하려고 세워 논 거 아냐?” 

  “연락은 무슨… 해야지 그러고만 있었는데.” 

  “아직 일꾼들한테 연락을 안 했다고? 안 하면 어떡해? 다음 주에 그 친척 분들 오신다면서? 그랬다가 자기 산소 관리 안 한 거 들통 나면 어쩌려고?” 

  “안 와, 말만 그렇지. 그 냥반들이 여길 어떻게 올라 오냐? 다 늙어서 기어서 올라 오냐?” 

  “어쨌든 여기 땅, 자기 꺼라도 그 사람들이 유언장 근거로 소송 걸 수도 있는 거라며?” 

  “아냐, 못해.” 

  “못하긴 뭘 못해, 못한다면서 여긴 왜 와보자고 그러냐? 오빠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거잖아?” 

  “자식이 부모 산소 와보는 게 뭐… 그게 뭐?” 

  “그래서 오빠는, 돌아가시고 한 번도 안 와봤냐? 그게 벌써 얼마냐? 십년도 넘어가지 않아?”

  “팔 년.” 

  “맞아, 팔 년?” 

  “아닌가, 구 년… 십 년인가? 아닌데… 그렇게 오래 안 됐는데… 이 트럭은 왜 여기다가 세운 거야?” 

  발길질을 했는지, 트럭이 한 번 더 기우뚱 흔들렸다. 모니터 속으로 자동차의 번호판을 휴대폰으로 찍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추운지 몸을 잔뜩 웅크린 여자가 굽은 남자의 허리를 꼬집었다. 

  “가자, 나 무서워. 내일 아침에 오자니까.” 

  “내일 시간이 어디 있냐, 일출 보러 가야지. 일출 보면서 땅 값 더 쑥쑥 오르게 해달라고 빌어야지.” 

  “조상한테 안 빌고, 해한테 비는 게 말이 되냐?” 

  “왜 말이 안 돼? 조상이 그래도 자손 귀한 줄 아는 조상이라면, 해한테 빌든 자주 안 오고 집에서 마음속으로 빌든 들어줘야지. 그게 조상의 의무지. 부모라는 작자들은 죽어서도 자식한테는 을인 거야, 알아?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는 거고.” 

  “헐! 대박!” 

  “맞지? 내 말이 틀리냐?” 

  “오빠, 논리가 졸라 살아 있는데? 대박! 인정!” 

  “그치, 맞지?” 

  모니터 화면 속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남자가 보였고, 여자는 그의 팔짱을 끼며 두 발을 종종거렸다. 남자는 봉분을 향해 다시 또 카메라를 들었고, 벼락처럼 번쩍이는 플래시 불빛이 환기 구멍 밖으로 터졌다가 사라졌다. 

 

 

  “가자, 졸라 춥네.” 

  “오빠, 절이라도 한 번 하고 가야하는 거 아냐?” 

  “됐어, 호텔방 가서 하지 뭐.” 

  “호텔 가서? 풋… 누구한테? 나한테?” 

  “응, 너한테. 발가벗고.” 

  까르르 웃는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갔다. 어깨를 잔뜩 세운 호탕한 웃음소리가 고요한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성애는 모니터 구석에 솟아 있는 잡초 가득한 봉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솨아아 몰려드는 산바람에 풀들이 흔들렸다. 완만한 곡선으로 둥그렇게 웃고 있던 봉분의 얼굴이 찌그러지는 것 같았다. 찌그러져 우는 것 같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벽을 두드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나? 울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나? 

  성애는 몽롱한 몸을 움직여 맥스팬 너머로 드리우는 사각의 아침을 올려 보았다. 후드득 날개 터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 한 마리가 맥스팬의 반투명 뚜껑 위로 날아와 앉는 게 보였다. 잠에서 깬 첫 걸음인 듯 새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자유롭게 사각의 집 지붕 위와, 맥스팬 뚜껑 위를 오르내렸다. 또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다시 또 다른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지금 맥스팬을 열어 켜면 새들은 어떻게 될까? 열리는 뚜껑에 다리를 다치거나, 돌아가는 팬에 몸이 빨려 들어가게 될까? 성애는 새들의 불운과 불안을 자신이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불안에 휩싸여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불안을 거머쥐고 있는 가해자인 나. 

  어차피 누구든 불안을 움켜쥐게 되는 일이라면, 내가 내 불안을 움켜쥘 수는 없는 일일까? 성애는 만지작거리던 맥스팬 리모컨을 다시 벽에 붙이고서 몸을 일으켰다. 언제까지 이렇게 벌벌 떨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아서서, 도망치는 등만 보여주지 말고 돌아서서, 불안의 얼굴을 마주해야했다. 바로 지금. 

  접이식 공간 박스에 넣어 놨던 옷들을 성애는 모두 끄집어냈다. 어떤 옷이 가장 어울릴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고 멋진 여성의 모습은 어떤 걸까? 

  성애는 겨울 점퍼와 코트를 압축 팩에 넣어 놨던 맨 아래 박스까지 끄집어냈다. 치마보다는 바지, 원피스보다는 재킷, 하지만 성애에게는 공식적인 자리에 입을만한 제대로 된 옷이 없었다. 앞에 나설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라는 것이 없었으니, 없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살이 찌면서 더더욱 맞는 옷을 찾을 수 없었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 번에 편안하게 입는 실내복 일자 원피스들과 그 위에 걸쳐 입을 점퍼나 카디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세트로 묶인 걸 한꺼번에 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활용 의류점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제일 큰 옷을 샀을 뿐이었다. 

  손님의 차림새와 치수를 눈짓 몇 번 만으로도 가늠하는 일반 여성복 매장에는 아예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정말 치마와 바지가 당당함과 상관있는 걸까? 성애는 매트리스 위에 어지럽게 늘어진 옷들을 내려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깟 옷 쪼가리로 만들어진 당당함이 정말 당당함일까,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성애는 다시 옷들을 뭉텅이로 끌어 공간박스 안에 밀어 넣었다. 

  옷을 갈아입는 대신, 성애는 문에 달아놓은 작은 원형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에 비비크림을 얼굴 위에 얇게 펴 발랐고, 길지 않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내렸다. 두 눈을 조금 더 또렷하고 크게 떴고, 힘을 주어 목덜미를 좌우로 움직여 풀었다. 체릿빛 립밤으로 입술에 생기를 더하고서, 성애는 세탁해 놓은 평소 입던 원피스에 제일 깨끗한 겨자색 카디건 하나만 걸쳐 입었다. 뒤꿈치가 제일 멀쩡한 검정색 플랫 슈즈를 신고서 성애는 집을 나섰다. 냉장고에 담아놓았던, 반쪽 남은 미역국 덩어리도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웃을 만나러가는 사람으로는 충분한 차림새였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허허허!” 

  비닐봉지에 코를 대더니 남자는 반색했다. 세수라도 했는지 헝클어진 머리칼은 젖었고, 지난여름 탄 자국인지 양 볼에 거뭇거뭇한 기미가 가득했다. 크기만 커다랗지 납작하게 깔린 것 같은 그의 집은, 다 드러난 나무 기둥마저 기울어 간신히 지붕만 떠받치고 있었다. 언제 만들어진 흙벽인지 끄트머리 창고 쪽은 거의 무너진 채였다. 텃밭에 방풍용으로 사용하는 망사 천을 담장이라고 집 주위에 빙 두르고서, 대문 하나 만큼은 꽤 굵은 나무 둥치 기둥 두 개를 세워 그 허리춤까지 오는 나무판자 하나가 달려 있었다. 기둥에는 상자에서 뜯은 종이가 네모나게 오려 붙어있었고, 그 위에 글자 네 개가 적혀 있었다. 이름 석 자가 아니라, ‘가리일보’라는 네 글자였다. 

  “온통 다 거짓말 하는 새끼들뿐이야. 남들 말에 속고, 제 말에 제가 속고, 속은 말을 진실이라고 떠벌리며 딴 놈을 속이고, 뽕 맞은 놈 마냥 기분에 취해 다시 제 몸이 속고, 제 머리가 속고… 온통 거짓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지금 이 세상이!” 

  이미 방구들 한 쪽이 무너졌는지 움푹 팼고, 그 위에는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사방 벽에는 너무 얇은 종이 위에 그린 그림들과, 찢어 붙인 신문 조각들이 가득했다.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붙인 건지, 벽지 대신 붙인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방 벽에 빼곡했다. 천장에 물구나무서듯 걸려있는 사진 액자 속 사람들은, 남자의 가족인지 집 주인이라는 황 씨의 가족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되어 눈코입만 흐릿하게 보였고, 사람의 형체 몇 개가 엉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듣지 말어! 다 외계인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다 외계인 아닌가? 이제 인간들은 말야, 사고의 폭을 넓힐 중차대한 순간에 와 있다 이 말이야. 당장 내일이라도 우주로 달려가겠다고 해마다 최첨단이라고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면서, 머릿속은 고려장 다니던 반편이 자식새끼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에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 

  11월마저도 중순이 넘어가는 이때, 지금 입기에는 너무 얇은 면바지와 늘어진 면셔츠를 걸쳐 입고서, 남자는 성애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부터 했다. 성애가 왜 왔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안심이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어쩌면 그날 그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성애는 며칠 동안 온 몸을 짓눌렀던 바위 아래에서 비로소 벗어난 기분이었다. 들켰다는 불안은 자신만의 것이었을 뿐, 이미 그는 지우고 잊어버렸을 것 같았다. 지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너무 멀리 사라져버린 어느 한 낮의 외계 먼지 같은 것.  

 

 

 

  “옥문대 알어? 거기 아가씨 사는 그 옆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일곡폭포 가는 길에, 거 소나무밭 있는데, 돌로 만들어진 넓적하게 평상처럼 생긴 근사한 데가 있거든? 거기 한 번 가봐. 맨날 가는 데만 가지 말고, 거기 한 번 올라가 보라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 놀다 가는지, 이따금 누가 먹을 것도 놓고 가고… 좋아, 아주 좋아! 그러니까 맨날 똑같은 데만 보지 말고, 시선을 넓혀, 넓혀보라고!” 

  그러나 성애의 생각은 오직 ‘아가씨’라는 그 한 마디에 붙들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갈색 액체가 든 종이컵을 들어 올리다가,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로 만든 잔이 살짝 찌그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자는 ‘아가씨’라는 말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보였고, 두 팔을 머리 위로 뿔을 그리듯 뻗으며 넓히라는 말만 계속했다. 

  성애는 들었던 종이컵의 액체를 입술 끝에 살짝 적셨다. 쌉싸래한 얕은 맛이 혀끝에 돌다가 사라졌다. 남자의 말로는 산삼을 캐다 달였다는데, 약간 더덕 향이 났다. 

  “여름에 팬티만 입고 거기 누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어. 진보고 보수고 개 씹이나… 기껏해야 제 몫 지키겠다고, 국민을 갖다 붙이고, 정의를 갖다 붙이고, 미래니 후세니 개 씹이나… 다 지랄들을 해봐야, 다 삼시 세끼 밥 처먹고, 똥 싸는 일이야. 어떻게 해야 똥을 잘 싸나, 그거나 논의들 해보라고 그래, 그거나.” 

  벽에 붙인 어지러운 신문 조각들을 읽는지, 신문 조각에 읽었던 기사를 기억하는지,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이어가며 몸을 들썩였다. 갑자기 흥분을 해 목소리를 높였다가, 바위 위에 몸을 눕힌 사람처럼 고즈넉한 표정이 되기도 했다. 

  성애는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를 둘러싼 것과, 그의 얼굴 표정을 가만히 보았다.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 조차 어쩌면 상관없는지도 모르겠구나. 성애는 불안의 한 가운데라고 믿었던 존재 앞에서, 전에 없던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섭지는 않으세요?” 

  자신도 모르게 쏟아진 말 앞에 성애는 살짝 몸이 굳었다. 자신에게 하려던 말이었던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산이 지켜줘.” 

  불쑥 내밀어진 말 앞에, 성애는 숨이 턱 막혔다.   

  “이 산이 나를 지켜 준다고. 헌데 무서울 게 뭐 있어? 이게 다 내 세상인데… 뭐가 무서워?” 

  아주 잠깐, 흐르던 모든 것들이 멈춘 것만 같았다. 시간과 공간 모두가 찰나의 순간 얼어붙었다가 이내 느리게 꿈틀댔다. 제 갈 길이라는 듯 다시 원래대로 흘렀다. 성애는 귓속에 삐익 이명 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잠깐 멈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열린 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냉기도, 콧속을 비집고 들어와 온 혈관 구석구석까지 배어버린 쿰쿰한 악취마저 몸 속 어딘가에 멈췄다가 다시 흐르고 있었다.  

  남자가 뒤이어 몇 마디 더 했고 다시 또 엉뚱하게 일본과 중국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성애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산이 지켜주고 있다는 그 한 마디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공전시키며 성애의 몸 속 한 가운데 둥실 떠 있었다.  

  괜찮다고 만류하는데도, 남자는 성애의 손에 황갈색 액체가 든 소주병을 들려주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도 아니고 더덕향기가 나는 산삼을 달인 물이라니 성애는 거듭 사양했지만, 남자는 끝내 성애의 품에 초록 병을 안겨주었다. 맨 눈으로 보기에도 물속에 썩은 것 같은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데, 각별히 아껴 놓은 놈이라며 그거 먹으면 산 사람 되는 거라고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어디서 머리를 박고 쓰러졌던 적이 있는지 부러진 채 누렇게 썩어 들어가는 윗니가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너무 남루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꼴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초록 병을 들고서 성애는 한참을 봉분 옆에 앉아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말없이 박쥐 남자처럼 쪼그려 앉아서 봉분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어떤 말도 쓸모가 없었다.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날 밤, 성애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온 것처럼 피로했는데, 그래서 더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새벽녘에 반쯤 깨어 고요한 맥스팬 너머의 밤을 슬쩍 올려보고 다시 눈을 감았을 때, 아주 기괴하고 무서운 꿈속에 빠져들었다. 너무 충격적이고 끔찍해, 성애는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관처럼 생긴 수납함 위에 올라 앉아 얼굴에 땀을 훔쳤다. 허우적거리며 불을 켜고 눈부신 새벽의 적막이 네모난 집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성애는 헉헉거리며 울었다. 잠시 잠깐 꾼 꿈이 너무도 무서워 서럽게 울었다.  

  네 개의 기둥이 위태롭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던 바로 그 집에, 있으나마나 한 기둥의 집에 쪼그려 앉아 있던 사람은, 박쥐 남자가 아니라 성애 자신이었다. 살찐 성애가 새치가 듬성듬성 자란 짧은 머리에 목이 깊이 늘어진 셔츠를 입고서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막아서지 못할 허약한 담장을 집 주위에 빙 둘러 놓고서, 대문 하나만 유난히 굵은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박아 그 안쪽에서 문 밖을 노려보았다.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세상 것들 모두 다 거짓말이고 내 말만 옳다고, 나만 진실을 보았고, 나만 진실을 알고 있으며, 네깟 것들 다 헛소리라고, 성애는 초록 병을 움켜쥔 팔을 휘두르며 소리치고 있었다. 

  썩은 치아 사이에서 침이 튀었고 부유물이 둥둥 뜬 초록 병을 들이켜는 팔뚝이 출렁거렸다. 대문 위에 네모나게 잘려 붙었던 종이 간판 위에 글자들은, 어느새 자리를 서로 바꾸어 뒤집혀 있었다. 보, 일, 리, 가. 

  “아냐… 아냐, 아냐!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아니야. 아냐, 괜찮아.” 

  성애는 쏟아지는 울음을 삼키면서, 그 말만 계속했다. 별일 아니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저 꿈을 꾸었고, 아주 나쁜 꿈을 꾸었을 뿐이라고. 변한 것은 또 하루치의 불안일 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성애는 관 뚜껑 위에 올라앉은 것 같은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두드리고 매만졌다. 

  이동식 변기 위에 올라가 배꼽 위까지 올라오는 복대 겸용 팬티를 끌어 내리고 앉아 몸속에 고였던 뜨거운 오물을 쏟아냈다. 피스톤처럼 생긴 이동식 변기 레버를 다급하게 여러 번 눌러 물을 내리고서,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속옷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쪼그려 앉아서 다시 또 눈물을 긁어냈다.  

  결국 다를 건 뭔가? 어제 벽을 두드렸던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의 눈에, 나는 그 남자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 아무리 애를 써도 고작 그 뿐이지 않을까?  

  성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서 주먹으로 변기를 내리쳤다. 변기를 끌어안고 있는 힘을 다해 아악아악 울었다. 누구든 들어달라고, 제발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안에 든 것이 넘치는지, 변기 속에서 오물냄새가 풍겨왔다. 땀에 눈물에 온 얼굴에 번들거리는 액체와 뒤섞여, 성애의 온 몸은 시큼하고 고약한 냄새로 뒤덮여 있었다. 덫 속에, 그 속에 덫에, 그 속 또 다른 덫에 갇혀버린 몸이었다. 

 

 

  주우우사 맞자, 주우우우사, 주우우우우사. 성애는 퉁퉁 부운 얼굴로 억지 노래를 부르며, 네모난 집 제일 깊은 곳에 숨겨놓은 작은 상자를 꺼냈다. 

  유난히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뜯어 열면, 기다란 플라스틱 껍질에 몸통을 감춘 바늘은 흉기처럼 거기에 누워 있다. 끄트머리가 사선으로 잘려나간 속이 텅 빈 얇고 기다란 강철의 관은,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날을 세워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제 몸을 자랑한다. 어서 넣어달라고, 겹겹이 둘러싸인 껍질을 뚫고 어서 넣어달라고. 나는 희망이니, 나를 넣으라고. 

  성애는 앰플의 모가지를 분질러 그 안에 바늘을 깊숙이 집어넣고서 침방울 같은 황갈색의 액체를 빨아들였다. 끝까지 밀어 넣었던 플라스틱 밀대를 끌어당기다가, 끅끅끅 딸려 올라오는 황갈색의 액체를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또 눈앞이 흐려졌다.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음음, 음음! 성애는 주사기를 붙든 채, 가쁜 숨을 내 쉬었다. 콧볼을 크게 만들어, 짧지만 단단한 소리를 뱉었다. 발을 구르고, 휘파람을 불고, 환호하고, 함성을 외치는 그 모든 소리의 총합, 1인용 환호. 음음, 음음!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은 자꾸 흘러 세수도 하지 않은 접힌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주사기를 움켜쥔 성애의 손이 떨려왔다. 

  “음음! 음음… 음음이라고! 음음… 음음… 음음이라고, 이 병신아!” 

 

 

 

  주사기를 꽂으려고 걷어 올렸던 치맛자락이 흘러내렸다. 주사바늘 자국이 꽃처럼 피어있던 살덩이가 출렁거렸다. 성애는 황급히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밀어 넣었다. 늘어진 살을 끌어 모아 손바닥 아래 만져지는 멍울을 확인했다. 아무 일도 없어,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아무 것도 아니야. 

  성애는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밀어내듯 오직 한 마디 문장만 머릿속에 돌리고 또 돌렸다. 머리 위에 맥스팬을 돌리듯 계속 돌렸다.  

  주사기를 움켜쥔 채, 가부좌를 틀고서 주문이라도 외듯 매트리스 위에 몸을 들썩이는 성애의 머리 위에서, 힘 있게 돌아가던 맥스팬은 조금씩 느려졌다.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드륵드륵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잠깐 더 돌다가, 이내 힘없이 멈춰버렸다. 

 

 

 


 

김 비

 

소설가,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통해 등단, 그늘지거나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애쓰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플라스틱 여인>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없음>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신랑과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가 있다.

 


  1.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가나출판사, 201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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