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장르문학에서 어렵지 않게, 카르밀라나 드라큘라 같은 흡혈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나 지킬 박사와 같은 사이보그 등 이질적인 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19세기 초중반 영미문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공포스럽거나 역겹고, 정상성이나 젠더 규범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이들의 퀴어한 모습은 대중적인 미디어에서 뿐만 아니라 ‘본격 문학’ 장르에서도 반복적으로 재활성화되거나 변용되곤 합니다. 이들의 신체는 정상 범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증오와 같은 정동을 촉발시키고 감정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문화정치』에서 이질적인 몸들을 둘러싼 이 같은 감정의 인과관계를 전치하여 설명합니다. 문학 속 괴물들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소수자들의 인상을 두고 ..
순환하며 강화되고 축적되는 감정 『감정의 문화정치』는 감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감정이 무엇을 하는지의 문제를 치밀하게 붙잡는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의 정동경제를 논한다. 사라 아메드는 감정이 개인의 내면에 실존하는 것으로 여겨온 통념과 반대로 감정의 '밖에서 안으로' 작동하는 방향성을 주장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학적 감정 모델과 유사해보이지만, 감정을 개인 외부에 실존하고 동시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본 전제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메드는 감정이 개인의 안 또는 밖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녀에게 보다 의미 있는 작업은 감정이 애초에 '안과 밖'을 결정짓던 표면과 경계를 형성하는 역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감정은 대상과의 접촉의 간극과 강도, 형태..
1. ‘정동’의 번역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의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2023)는 젠더 연구에 정동 이론을 접목시키려고 시도로, 서론과 13편의 연구를 묶었다. 이 글은 4부에 실린 세 편에 관한 서평이다. 2000년대 유럽 인문사회에서 기존의 비판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본격화되었는데, 정동 연구는 이러한 시도 가운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동’(affect)이라는 용어는 이항대립적인 인식론에 기반한 추상적이고 고정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결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연구하기 위한 개념적이자 방법론적인 도구로 진화하였다. 지난 이 십년 동안 ‘정동’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학술 용어이자 연구 분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나라에서 채택 및 번역되어왔다. ..
정동 개념 정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동을 배제하고는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일상에서 ‘느껴질’ 정도의 입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동은 이념과 정치적인 면을 건너 자기 자신도 넘어서게 한다. 이 구체적인 예시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산지니,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동의 자장 안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및 사회 현상 나아가 정동의 유동적인 특성을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3부 에는 미디어에 나타난 변화된 정동 양상과 아이돌, 예능 등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대에 필요한, 시대가 요구한 몸과 시선을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
이화진과 소현숙은 장애를 중심으로, 김이진은 해외입양인의 표상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러한 담론들 안에서 어떤 균열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귀, 눈, 피는 모두 신체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담론과 표상 안에서 신체의 전체, 혹은 한 인간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고 대표하게 된다. 이 세 편의 글이 그러한 담론과 표상의 작동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귀는 어떻게 전체이기를 멈추고 하나의 부분으로 (뜻밖에) 돌아오는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눈은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역이용하여 저항하는가? 당사자는 자신의 피에 관한 해석을 통해 어떻게 주류적인 표상에 도전하는가? 이 글은 세 글의 문제의식을 분석하고, 논의해 볼..
“그런데, ‘정동’이 무슨 말이야?” 얼마 전 귀한 발표 자리에서 정동에 대해 짧게 언급할 자리가 있었다. 이후 화장실에 들렸을 때 청중 두 분이 손을 씻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앞의 질문을 상대방에게 던졌다. 순간 시간이 부족했음을 아쉬워했지만, 정동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어렵다. 어펙트(affect)에 대한 번역어에서부터 다양한 해석(정동, 감응 등)이 있지 않던가. 그런 와중 가장 반가웠던 한국말은 바로 ‘부대낌’이었다(권명아 2012). 이 표현만큼 어펙트라는 개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마주침’과 ‘되기’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없었다. ‘부대낌’이란 표현 속에는 인간이란 다른 존재와의 끊임없는 마주침 속에 살아가는 “연결신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동아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