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연대의, 연대에 의한, 연대를 위한 (김민지)

정동 개념 정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동을 배제하고는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일상에서 ‘느껴질’ 정도의 입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동은 이념과 정치적인 면을 건너 자기 자신도 넘어서게 한다. 이 구체적인 예시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산지니,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동의 자장 안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및 사회 현상 나아가 정동의 유동적인 특성을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3부 <'싸우다'의 어펙트 : 전쟁, 냉전, 스포츠 속에서 부대끼는 여자들>에는 미디어에 나타난 변화된 정동 양상과 아이돌, 예능 등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대에 필요한, 시대가 요구한 몸과 시선을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이면의 이면 그리고 탈피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세이렌은 인간을 유혹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존재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목숨을 끊을 정도로 목소리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화에서 세이렌은 ‘죽음’과 고통을 주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선원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로 변질되어 공포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서 항상 세이렌의 목소리는 죽음과 남성의 욕망에 묻혀 아름다움을 부정당했다. 신화뿐 아니라 아름다움 뒤에는 항상 숨겨진 ‘무엇’이 있었기에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또한 아름다움은 남성이 지닌 욕망을 은폐하는 수단이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대상이 지닌 아름다움보다 아름다움의 이면에서 부조리를 찾으려 노력했고, 아름다움을 잠식하는 고통과 은폐된 욕망에 더욱 주목하고자 했다. 한때 아름다움을 요구했던 사람들도 아름다움 자체보다는 뒤에 오는 반전을 궁금해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만큼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은 엄격하면서 모호했기에 늘 불완전한 상태의 이미지로 남겨졌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역설은 몸으로 시작해서 몸으로 끝나야 한다.

 

 

2. 불균형적인 사랑 그리고 변화

 

  아름다움과 그 이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아이돌이 존재한다. 특히 여자 아이돌을 향한 대중의 끝없는 애정과 아름다움에 대한 불신, 이 양가적인 인식의 이면에는 다양한 욕망과 구설이 뒤따른다. 대중은 아이돌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도 그들 뒤에 모종의 것이 숨어 있으리라 상정하며 스스로의 욕망을 그 이면의 그림자에 투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목적 없는 압박감으로 아이돌은 자신의 주체성은 감춘 채 무대에서나 일상에서 여지없이 ‘완벽한’ 생활과 신체를 보여주면서 괴로움을 견뎌야 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모호한 상태로 점점 가혹해져 갔다. 여자 아이돌은 팬덤과 복잡하고 냉혹한 “불평등”[각주:1] 관계에 놓여, 모든 면에서 균형을 잃어갔다. 이러한 불균형적인 관계로 자연스럽게 여자 아이돌 몸의 기준은 기형적인 형태의 미(美)로 고착화되었다. 또한 여자 아이돌의 이미지는 남성이 추구하던 기존의 여성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체성은 배제한 채로 모든 것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척박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와 시선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앤소니 기든스는 남성이 성적인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은폐한다고 설명한다.[각주:2] 남성이 갖는 성적 불안감은 특히 여자 아이돌에게 아름다움의 본질을 망가뜨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는 일본 아이돌 팬덤을 그 예시로 든다. 여자 아이돌을 향한 남성 팬덤의 ‘성적 대상화’, ‘욕망’ 그리고 ‘성장 서사’까지 투영한 기형적인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남성 팬덤의 근저에 자리한 성적 불안감을 밝히고 있다. 여자 아이돌은 남성의 불안감을 치유하기 위해 관능적인 몸을 드러내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되는 강인함을 지닌 역설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는 타자화된 여자 아이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성적인 대상을 향한 남성의 초조함은 여자 아이돌에게 대리 역할을 강요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여자 아이돌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소위 팬덤 문화에서 아이돌의 역할은 신체의 심미적 만족감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 또한 충족시켜야 한다. 특히 여자 아이돌의 몸에 고정된 시선엔 남성 팬덤의 ‘대리욕구’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남성 팬덤은 ‘대리’ 욕망의 꺼림칙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학적인 노력을 감행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적 대상화 작업을 은폐하기 위해 욕망을 일시적으로 망각하고, 혐오적인 발언을 용인한다. 남성 팬덤은 여자 아이돌의 아름다움 뒤에 다른 은밀한 것을 요구하면서 그들을 향한 찬사에 욕망과 혐오의 정동을 숨겨놓는다. 이렇게 욕망을 은폐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은 아름다움에 숨겨진 불신과 고통 ‘그 자체’가 된다.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를 통해 일본 여자 아이돌의 서사와 마주하게 되면 문득 문명이 퇴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에게 향하는 불균형적인 사랑과 혐오의 정동은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하며 해결되지 않을 젠더화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 면을 보고 있는가? 우리의 판단에는 욕망과 혐오가 뒤섞여 있으며, 이 양가적 인식은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욕망은 정동이 어떻게 사회운동으로 이어지는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지 보여준다.[각주:3]

 

 

 

3. ‘나머지 여성들’ 그리고 전환

 

  여자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남성의 역설적인 욕망의 시초는 냉전 시대 여성상과 어머니 이미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냉전 시기의 어머니는 이미지는 ‘슈퍼 우먼’의 전형이었다. 여성은 권위를 상실한 상태로 남성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그들이 바라는 여성상은 “진보적이고 육아 및 가사노동 능력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젠더 역할도 수행”(380)하는 것이었다. 당대 어머니의 이미지가 주는 안정감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 이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은 여성들에게 과업처럼 부과되었다. 당시 여성은 자기 결정권이 없었기에 사회의 방패막이자 모든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수단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을 둘러싸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핑곗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이탈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신화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동은 변화한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다.

 

  남성 팬덤의 욕망에 대응하는 또 다른 욕망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여자 아이돌은 강요받았던 이미지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새로운 주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속사 측에서도 아이돌의 독보적인 색과 주체성을 원하는 다른 유형의 팬덤 분위기와 욕망을 읽고, 아이돌이 음악 콘셉트를 직접 프로듀싱하거나 구성하는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시킨다. 또한 줄곧 가사에 담았던 사랑 노래는 자신을 향한 애정과 목표를 향해 가는 주체의 역동적인 노래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사로 대중의 잘못된 시선과 요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하며(여자아이들-“Nxde”), 춤으로 나르시시즘과 ‘나’를 향한 애정(아이브-LOVE DIVE, I AM)을 표현하기도 한다. 노래가 향하는 목적지는 사랑과 연애가 아닌 오로지 주체와 몸이다. 

  실제로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본인들의 ‘유니버스’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디어에 그대로 반영되고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는 중이다. 이제 여성 주체는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다성의 몸’을 되찾고 주체성과 역할에 따른 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전환점을 형성해 가고 있다.

 

 

4. 미디어와 정동 그리고 연대

 

  미디어는 시대의 욕망과 니즈를 담는다. 그리고 미디어는 시대의 욕망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 이는 미디어에 출연하는 대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 방영된 <사이렌>, <피지컬:100> 을 보면 대중이 욕망하는 주파수가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우열을 가르는 경쟁이나 우승보다 몸으로부터 생성되는 아우라와 관계에 집중한다. 출연자들의 주체적인 힘은 경쟁에서 모든 편견을 깨버린다. <피지컬:100>에서 여성 몸에 대한 편견이 오히려 패배의 결과를 낳았듯, 이들의 대결은 젠더의 경쟁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자 ‘몸’의 대결이다. 잦은 팀전으로 인해 출연자는 승리의 욕망보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을, 힘보다는 직군에서 배웠던 다양한 전략과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관계하는 몸’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임에서 서로의 능력치가 다르듯 자신만의 능력과 자질을 감각적으로 발휘해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팀 연합 미션과 단순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상대의 능력치를 고려하여 팀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서바이벌은 출연자 간 그리고 출연자와 대중 간의 연대를 형성해 내었고, 이는 젠더적 편견이 일시적으로 무효화되는 순간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사이렌>에서도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스턴트 직업군이 군인과 운동 선수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가벼운 몸에서 나오는 기술과 계략 또한 뛰어났다. 그리고 팀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개인의 약점과 부족함은 오히려 팀의 인정과 생존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사이렌>은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동이 갖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된다. <사이렌>과 <피지컬:100>은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고 비주류 직업군에 일방적인 인식을 바꿔놓았다. 덕분에 대중의 시선은 우승자가 아닌 최선을 다한 도전자들의‘아쉬움’에 멈춰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출연자들의 아쉬움은 스크린을 넘어 대중과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또 다른 연대를 위한 다양한 반응들로 쏟아져 나왔다. 

  대중과 출연자들은 모두 몸과 정동으로 연대했다. 이렇듯 정동은 결코 우월성을 전제하지 않고 출연자들은 연대를 통해 인정욕구와 소속감, 책임감 등을 몸에 담았다. 오히려 정동의 가능성이 정상성에서 벗어나 ‘비로소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게 만들고 ‘너머의 유니버스’를 열어주었다. 항상 주인공에게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무대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제 미디어는 대중들의 욕망을 반영한 새로운 주파수를 감지하고, 또 다른 변화를 반영할 것이다. 

 

그래서 정동은 우연적이지 않다. 필연적이다. 

 

  미디어는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다. <사이렌>과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예시로 든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까닭은 대중이 이제껏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의 ‘육체적인 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물리적인 힘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고, 육체적이며 성차화된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각주:4] <사이렌>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느낌과 정동을 생산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이들의 싸움은 경쟁이 아니다. 물론 어떤 권력이나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이 지닌 고유한 힘과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들은 원래부터 이미 강인한 존재였으나, 다만 이제야 미디어에 노출된 것뿐이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여성 주체들은 하나둘씩 중심으로 편입됨에 따라 과거에는 부정당했을 몸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사이렌>은 여태껏 버틀러가 말해왔던 수행하는 성의 인식을 깨고 무조건적인 편견과 혐오를 넘어“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이렌>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승리를 향해 전진하는 ‘몸’과 ‘도전 자체’였고 대중들은 이에 열광했다. 이 점을 미루어 보아 ‘연대하는 몸’, 즉 함께하는 몸에 대한 아름다움이 대중들에게 거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사이렌’의 공명과 대중의 정동적 동요는 <골 때리는 그녀들>과 <사이렌>을 흥행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각주:5] 분명 정동은 전염되고, 사회는 미세하게 변하고 있다. 

 

 

5. 공명하는 연대의 물결 속에서 

 

  정동은 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몸은 연대를 강화한다. 그래서 정동은 어떤 방향으로든 사회를 변화할 큰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항상 변화의 물결은 일고 있었고, 정동의 물결 틈에는 연대가 존재했다.[각주:6] 나아가 우리는 물결 위에 올라타 위태로운 시도와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변화 속에서 우리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화의 세이렌이 가졌던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다면 세이렌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영원할 것이다. 

 

 


 

* 이 글은 젠더·어펙트 총서 03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 출간 기념 서평회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로>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 일시 : 2023년 8월 9일(수) 저녁 7-9시
◎ 장소 : 온라인 화상회의 줌

https://genderaffect.net/15/?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5922492&t=board 

 

젠더·어펙트 총서 03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 출간 기념 서평회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

8월 9일 수요일, 젠더·어펙트연구소의 세 번째 총서인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가 출간된 것을 기념하는 서평회,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로'가 진행됩니다.산지니

genderaffect.net

 


 

김민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동대학원에서 1920년대 정동 시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글쓰기 센터를 운영하며 취업, 자기소개서 및 문학치유 관련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정동을 중심으로 문학사, 매체 등의 폭넓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서평회 토론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녹취해서 소개합니다.

 

김민지 : 방금 김관욱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어떻게 보면 토론 해주신 박준훈 선생님이 질문했던 [정동의] 본질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본질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사실 저는 스피노자도 아니고 본질은 이겁니다라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정말 당연히 그 자체이자 그리고 저는 이 본질 안에는 가변성도 있고, 그리고 어떤 대상 혹은 관계에 있어서 균형감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정동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적어도 어떠 어떠한 정의 뒤에는 균형감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변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고요. 제가 발제한 부분에 대한 질문에서 연대와 몸에 대한 관계에 대해 다소 일방향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그렇게 이야기한 까닭은 3부에 수록된 김은진 선생님이 <골 때리는 그녀들>을 다루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그게 특별한 게 아니라 사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했던 걸 이제서야 보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너무 특별해, 이렇게 여성들이 축두도 한다라는 방식이 아니라 원래 여성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거고 다 잘할 수 있는 거라는 당위성을 주고 싶어서 말씀 드릴 거였습니다. <사이렌>의 여성들이 갖는 동기들, 가령 이기고 싶은 마음 같은 거요. 남성들이 보여줬던 연대감은 익숙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나 역사나 문학에서. 그런데 여성들의 연대가 드러나는 게 별로 없어서 비인기 종목에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골때녀'를 시작으로 '사이렌'까지 얘기를 해서 좀 편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여성 스스로에 대한 인정욕구 그리고 소속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엘리자베스 그로츠, 『뫼비우스 띠로서 몸』, 임옥희 역, 여성문화이론연구소, 71쪽. [본문으로]
  2. 앤소니 기든스, 『성, 사랑, 에로티시즘』, 황정미•배은경, 새물결, 2003, 185-187쪽. [본문으로]
  3. Prudence Chamberlain, The Feminist Fourth Wave, Palgrave Macmillan, 2017, p.83.“Passages imply the way affect facilitates movement: it creates a space in which social movements are possible.” [본문으로]
  4. 로지 브라이도티, 『변신』, 김은주 역, 꿈꾼문고, 2020, 51쪽. [본문으로]
  5. 마침, 이 글을 마무리하던 무렵 <사이렌>은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 수상했다. [본문으로]
  6. 프루던스 체임벌린, 『제4물결 페미니즘: 정동적 시간성』, 김은주 외, 에디투스, 2021, 66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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