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장의 실종 소식은 사흘 후였다. 강대표와 사이가 소원해졌으니 오지 않는 것뿐이라 짐작했는데, 성애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식당 주차장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경찰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따금 파출소 사람들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르곤 했으니 밥 손님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함께 온 둘은 테이블에 앉고 장경사가 강대표를 찾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가정사까지 모두 꿰고 있는 토박이였다. 이틀째 조 사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낚시 가게에서 오후에만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용태가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했다. 조 사장 동생 번호를 물었지만, 강대표는 퉁명스러운 입매로 고개만 비틀었다. “조 사장 동생 번호? 아마 가도 번호를 새로 바깠을 낀데… 그 병원 사건 땜시 그란다지 ..
2장 * 낯선 사람이 꼭 낯선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아닌데, 성애의 발걸음은 급해졌다. 가게에 비워 놓은 이동변기 카트리지와 즉석밥 상자까지 카트 속에 실으니 한 손은 밀고, 한 손은 물건들을 움켜쥐어야 간신히 바퀴가 움직였다. 카트를 미는 와중에도, 조 사장이 무심하게 얹은 젤리 봉지 세 개가 자꾸 카트 밖으로 미끄러졌다. 도무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거기에 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원을 지나, 성애는 집 쪽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섰다.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해 이 물건들을 부려 놓고 싶었다. 이럴 거면 아예 트럭을 몰고서 모두산 뒤쪽 국도를 돌아 내려올 걸, 후회막심이었다. 계획했던 물건들만 샀고, 예상했던 부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 저 놈의 젤리. 성애가 노려보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이상한(queer) 생태 ⏤퀴어, 자립, 독립 1 2013년 8월의 어느 저녁, 부산 남구 대연동 재개발지구에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백무산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에서 몇 편의 시를 추려 그날의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건넸고 시를 건네 받은 이들은 오래된 선풍기 곁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천천히 낭독했다. 시 낭독과 함께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에 관한 것은 아니었고 조금은 엉뚱하고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백수들의 유쾌한 실험실’이라 자신을 명명했던 이상하고 특이했던 모임, 은 2013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도시재개발로 인해 퇴거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재(능)계발’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변주해 하고 싶은 작당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한달간 주변 사..
1장 애도 * 무덤의 곁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한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낙서처럼 밤하늘에 그어진 늙은 갈대의 그림자. 흉터 같은 그림자 너머로 사람의 형체가 보이면, 사람들은 비명 지른다. 보았어, 들었어, 죽었어! 나는 그들을 믿지 않고,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성애는 바람에 휘청대는 갈대를 가만히 보고 섰다. 잠시 숨을 골랐다. 재빠르게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른 글자들을 새겨 넣었다. 모두봉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11월의 냉기가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었다. 회색빛의 적막 속에 성애의 숨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부쩍 호흡이 거칠어진 걸 알고 있었다. 몸무게가 세 자리를 넘어서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브래지어를 꽉 채우는 가슴을 잃기 싫어 살이 찌는 게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