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 제1회 (김비)

 

 

   1장

 

   애도

 

 

 

 

 

*

 

 

  무덤의 곁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한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낙서처럼 밤하늘에 그어진 늙은 갈대의 그림자. 흉터 같은 그림자 너머로 사람의 형체가 보이면, 사람들은 비명 지른다. 보았어, 들었어, 죽었어! 나는 그들을 믿지 않고,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성애는 바람에 휘청대는 갈대를 가만히 보고 섰다. 잠시 숨을 골랐다. 재빠르게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른 글자들을 새겨 넣었다. 모두봉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11월의 냉기가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었다. 회색빛의 적막 속에 성애의 숨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부쩍 호흡이 거칠어진 걸 알고 있었다. 몸무게가 세 자리를 넘어서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브래지어를 꽉 채우는 가슴을 잃기 싫어 살이 찌는 게 좋았는데, 자꾸 허리가 굽어졌다. 커진 가슴보다 배 둘레가 더 커졌다는 걸 알았지만, 손을 겨드랑이 아래로 밀어 넣어 가슴을 쓸어 모아 거울 앞에 서면 저절로 어깨가 펴졌다. 내가 여기 있구나. 고작 이것뿐이지만 내가 있구나. 성애는 다시 두 개의 엄지를 움직여 떠오른 마지막 문장을 새겨 넣었다.

       ‘내가 여기에 있다.’

  ‘아이고, 살 좀 어떻게 해라이. 보는 사람이 다 깝깝하다!’ 하지만 점순 씨는 성애를 본 첫날부터 트집이었다. 처음 출근한 날 저녁부터 말을 트기 시작하더니, 다음 날 장사를 준비하느라 얼갈이배추 앞에 앉자마자 대놓고 짜증이었다. 성애의 태생을 감춰주고 일자리까지 허락한 맘씨 좋은 강 대표가 말을 가로막긴 했지만,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점순 씨는 모든 걸 문제 삼았다. 행동이 굼뜨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 ‘쎈쓰’가 없다, 두껍게 문신한 눈꺼풀을 게슴츠레 뜨고서 고개만 까딱까딱 저었다. 아무리 설거지나 할 애라지만 어디서 저런 걸 뽑았느냐고, 강 대표 보지 못하게 눈을 흘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애는 자신에 대한 비난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자신을 감싸준 사람에 대한 비난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 성애는 점순 씨가 강 대표 욕을 할 때면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어디서 눈을 부릅뜨느냐고, 요즘 것들 예의도 모른다며 가면 같은 분가루 얼굴을 씰룩이는 그녀를 보면서도, 성애는 지지 않았다. 너무 많은 걸 잃었지만, 그래서 더욱 지켜야 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

        “음음!”

  성애는 콧볼을 크게 만들어 코로만 짧은 숨을 뱉었다. 음음! 자신만 아는 구호였다. 나약해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혼자만 알고 있는 1인용 환호. 휘파람을 불고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고 발을 쾅쾅 굴러주는 그 모든 소리의 총합, 음음!

  연거푸 숨을 몰아쉬면서, 성애는 손바닥을 겨드랑이로 밀어 넣어 가슴 쪽으로 당겼다. 낙서 같은 그림자로 가득한 초겨울 밤의 숲속으로 다시 발을 내밀었다. 무거운 몸을 밀어 올렸다. 와삭와삭 바람에 휩쓸려 울고 있는 수풀 너머에, 익숙한 무덤의 봉분이 보였다. 집이었다.

 

 

  아침에 성애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문을 여는 것이었다. 창문이기도 하고 현관이기도 하고 벽이기도 한 철판을 밀어 열면, 온 집 안이 세상을 향해 열렸다. 흙냄새와 나무 냄새, 아침의 물 냄새가 한꺼번에 방 안에 밀려들었다. 와락 달려오는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를 끌어 덮으며, 성애는 조금 더 이불 속에 누워 있곤 했다. 하늘이 보이도록 매트리스 위에 몸을 직직 끌어 열린 벽 쪽으로 다가가 누우면, 그날의 날씨가 보였다. 휴대폰 속에 고개를 처박을 필요 없이,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었다.

  성애는 매트리스 위에 몸을 옆으로 굴렸다. 매트리스 바닥에 곰팡이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받친 나무판자들이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벨크로로 벽에 붙여 놓은 리모컨을 뜯어, 맥스팬을 열었다. 네모난 구석에 새카만 꼬투리가 돌아가고 문이 열리면, 그제야 서로 몸이 붙은 날개들이 돌기 시작했다. 지상파 안테나와 연결된 24인치 티브이 겸용 모니터에도 전원을 켰다. 휴대전화를 연결해 유튜브 채널을 틀었다. 비가 내리진 않지만, 오늘은 비 올 때 듣는 음악을 듣고 싶었다. 비 오지 않는 날 듣는, 비 오는 날 감성 피아노 연주곡.

  채널의 볼륨을 최대로 키우고서 성애는 집 밖으로 신발을 내던졌다. 신발을 꿰어 신고서, 무덤의 봉분 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잘 주무셨습니까? 어젯밤엔 벽을 두드리지 않으신 덕분에, 저도 편안히 잘 잤습니다. 땡큐, 지묘 씨.”

  성애는 봉분 앞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무덤의 주인이 누굴까, 할아버지일까 할머니일까 궁금했지만, 과연 죽음 이후에도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옳은 걸까 의문이 들었다. 찰나에 지나지 않는 출생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그것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면, 사망 이후에까지 연장되는 출생의 기준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태어나면 끝, 그렇다면 죽음도 끝. 그래서 성애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봉분 속 주인을 ‘지묘 씨’라고 불렀다. 구구절절 세상의 이름을 떠받치고 있는 뒤엉킨 글자들은 모두 지우고, 가장 보편타당한 이름인 지묘 씨.

  얼음 묻은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서, 성애는 트럭 벽에 붙은 오수통 게이지를 확인했다. 이동식 변기의 카트리지도 흔들어보았다. 하루 이틀쯤은 여유가 있었다. 이동식 변기는 카트에 실어 가게로 가지고 가 비울 수 있지만, 오수통은 차를 움직여 비워야 했다. 어차피 청수를 채우며 같이 비워내면 되는 일.

  성애는 모두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봉 정상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 뛸 생각은 없었다. 살을 빼야지 그런 생각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기분 좋은 일이 걷는 일이었으니, 걷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몸에 해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선물을 주는 일 같아 참 좋았다.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중턱에서 여러 번 오르내려도 좋고, 네모난 집 주위를 뱅뱅 돌기만 하는 것도 좋았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1톤짜리 슈퍼캡 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희미해지면, 몸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어제 식당에서 싸 온 꽈리고추볶음이랑 미역줄기무침이랑 멸치조림이면, 즉석 밥 두 그릇은 문제없었다.

  음음! 성애는 다시 자신만 아는 구호를 몇 번 더 외치고, 오를 생각이 없는 정상 쪽으로 향했다.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이었다.

 

 

  기둥 없는 집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더 이상 까먹을 보증금도 얼마 남지 않은 월세방에서 이사를 나와야 했을 때, 성애는 이삿짐이랄 것도 없는 짐들을 실은 1톤 탑차 안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가족이 있지만 나를 위한 가족이 아니었고, 집이 있지만 나를 위한 집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 그래도 어딘가 나 하나를 위한 삶은 있지 않을까 애기똥풀 같은 희망이 있었다. 삶은 내 거니까, 포기하지 않으면 삶이니까, 포기하지 않는 건 쉬우니까, 매일 눈을 뜨고 감겠다는 약속을 지켜 가면 되는 일이니까,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니까, 혼자 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성애는 아침저녁으로 다니던 알량한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면서, 여기에서까지 밀려나는 건가 생각했다. 언제나 떠나기만 했지, 어디로도 돌아간 기억은 없었다. 그리워야 돌아갈 텐데, 그러고 보니 그리움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애기똥풀 진액처럼 찔끔 솟아나곤 그만이었다.

  설득할 필요도 없이 다정할 수 있고, 배려를 기대할 필요도 없이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 가든 닮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부러워만 하고 있기 싫어 집을 나왔고, 아르바이트도 빡빡하게 잡아 쉴 새 없이 움직였는데,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서 이상하게도 살은 더 쪘고 몸은 무거워졌다. 애쓰면 지켜지는 삶이라는 게 처음부터 따로 있었던 거 아닐까, 그때 날마다 무거워지던 것이 꼭 몸만은 아니었다.

  이삿짐을 다 실은 화물기사는 목적지를 말해달라고 다그쳤지만, 성애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 몇 개 되지 않는 상자들과 짐들은 트럭의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버려야 할 것이 저것들인가 나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탑차 벽에 세워놓았던 매트리스가 지익 미끄러져 바닥에 펼쳐졌다.

  ‘아저씨, 여기 짐칸에 누워서 가도 돼요? 머리가 좀 아파서요.’ 성애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웅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고 그랬다간 큰일 난다고 기사는 말했지만, 휘청거리는 몸으로 이미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눕힌 성애에게 그는 더 이상 채근하지 못했다. 포곡이었나 남사였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을 이름을 아무거나 말해 놓고서 성애는 부탁드린다고, 요금을 조금 더 쳐 드릴 테니 가는 동안만 누워 있겠다고 사정했다. 가뜩이나 좁은 앞자리에 큰 덩치 땀범벅인 사람과 함께 앉는 것이 싫었는지, 아니면 정말 성애가 안쓰러웠는지 기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문을 닫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 흔들리는 세상 속에, 바닥에 늘어놓은 상자들을 끌어안고서, 성애는 눈을 감았다. 국도를 달려 도착한 시골의 하나로 마트에 트럭을 세워 놓고서, 기사는 트럭 문을 열어놓은 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병이 들었는지 한쪽이 갈색으로 죽은 산등성이가 보였다. 그토록 단잠을 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성애는 매트리스에 누워 한참을 산등성이만 보고 있었다.

  기사가 돌아오자, 성애는 그에게 이 트럭이 얼마냐고 물었고, 사람이 살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캠핑카로 개조해서 사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충고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월세방 하나를 구하라고 했다. 집은 땅에 붙어있어야 집이라고.

  기사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는지, 성애는 조금 발끈해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남은 보증금과 수술을 위해 따로 모으던 돈까지 모두 다 합쳐 택배용으로 사용되던 15만 킬로가 넘은 중고 트럭을 샀다. 근사하게 개조된 캠핑카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성애가 살던 세상처럼 캠핑카 세상에도 등급이 있었고,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꿈조차 꿀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성애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중고 탑차에 인산철 배터리와 전기장치, 그리고 청수통, 오수통을 같이 넣을 수 있는 기다란 선반 하나를, 아무리 봐도 관 짝처럼 생긴 선반 하나를 벽에 붙여 개수대와 같이 설치하는 정도였다. 제일 작은 포타포티 이동식 변기가 너무 비싸서, 차라리 요강을 넣고 다닐까 한참 고민했고, 중고매장에서 티브이 겸용 모니터 하나를 사다가 달았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으니 상시주시용 후방카메라도 뒤쪽 문 꼭대기에 달아 모니터에 연결했다. 창문이 없으니 트럭 지붕 위에 맥스팬을 단 것이, 성애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치였다.

  캠핑카를 제작하는 공장의 키가 작은 단발머리 여자 직원은, 이따금 놀러 가는 거라면 몰라도 여기서 생활을 하려면 아예 통으로 캠핑카 제작을 의뢰하는 게 맞다고 거듭 충고했다. 돈을 절약하고 싶어도 최소한 사방 벽에 단열 설비는 해야 하는 거라며, 틀림없이 나중에 다시 와 이중으로 돈 들이는 바보짓을 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협박을 하는지 조언을 하는지 계속 잔소리를 해대는 그녀를 뒤로하고 성애는 차를 몰고 나왔다. 그날 밤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며, 생각보다 맥스팬 소음이 심하다는 것과, 벼락소리만큼 빗소리가 크다는 것과, 생각 외로 차를 두드리거나 부딪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고매장에서 전자레인지를 하나 샀고, 다른 캠핑카 공장에서 240와트 인산철 배터리를 하나 더 연결했으며, 온수 매트도 달았다. 여름에는 정말 사람이 살 수 없겠구나 싶긴 했지만, 그래서 올해 여름에는 돈이 들어도 두 달은 시골 모텔의 달방을 빌려 생활했지만, 그 나머지 계절은 견딜 만했다. 겨울이면 남쪽으로 내려가고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성애는 낯선 자유를 느꼈다. 그걸 자유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지만, 자유라는 것이 원래 그런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훨씬 더 몸이 가벼워졌다.

  성애는 이 마을에서 한 달, 저 마을에서 몇 달,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농사일도 하고, 공사장에서 허드렛일도 하면서, 한 계절, 한 계절 버텼다. 벌써 2년째였고, 이 마을에 들어와 버려진 무덤 옆에 자리를 잡은 건 이번 가을 일이었다.

 

 

        “아이고, 니 차에서 산다는 기 사실이가?”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점순 씨는 끝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말하지 않으면 사람 무시한다고 트집이고,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하면 말길을 못 알아듣는다고 트집이었다.

        “사람이 집에서 살아야지, 차에서 자면 쓰나? 그러니까 몸이 그 모양 아이가? 사람 꼴이 되려면, 집에 살고, 사람들 속에 썪여 살고, 말을 주고받는 사람 옆에 살고… 안 그래요, 강 대표?”

        “그만해, 그만. 자긴 왜 그렇게 쟤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아 내가 잡아먹기는 누굴 잡아먹어? 다 지한테 도움 되라고 그라지. 저 아는 잘 사나, 궁금하고 걱정되고 그러니까 눈에 보여도 보이는 거지, 난 마 모르겠다 관심도 없으면 뵈지도 않지.”

        “니는 사생활 모리나, 사생활? 내도 저 아 듣는 데서 점순 씨 니 사생활 시시콜콜 다 물어보까? 그 잘난 집에 어떤 놈들이 몇이나 드나드는지 물어봐?”

잘린 오이 더미 위에 소금을 뿌리던 점순 씨가 소금을 움켜쥔 채 발끈했다.

        “옴마야… 강 대표, 무신 그런 소리를 해요? 내가 격 없이 그네들하고 주고받는 것도 다 생각이 있어 그러는 게지, 수십 놈을 만나든 수백 놈을 만나든 내 아무나하고 그러지 않는다. 강 대표, 나랑 그렇게 오래 일을 해놓고 아직도 내를 모리나?”

        “그러니까 좀 작작 캐라고. 아 주눅 들어 어디 제대로 일이나 하겠나 말이다! 만날 팀워크 타령만 하더니, 이기 니가 말하던 팀워크가?”

        “아이고, 팀워크도 개뿔 뭐를 알아야 해 먹지, 그래 내 자꾸 묻는 거 아니요? 팀이든 워크든 우야둔둥 잘 해볼라꼬, 이라는 기 아니겄소? 그러면 강 대표도 내가 아무한테나 조 사장하고 연애하는 이야기, 거 누구냐… 거 조 사장 동생 병원 사고 난 이야기… 그딴 거 불쑥 꺼내면 좋겄어요?”

        “마 됐다! 가 젓갈이나 좀 더 가 온나!”

  강 대표의 목소리가 서늘해지자, 점순 씨는 입술만 쀼루퉁 내밀고는 일어섰다. 손에 들었던 소금을 성애가 앉은 쪽으로 털고는, 부엌 쪽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마 니가 죄송할끼 읎다. 어디 가나 다 그런 아들 있기 마련이다. 괜히 이깐 일로 주눅 들지 마라.”

잘라 놓은 오이에 십자로 칼집을 내 자르며 강 대표는 말했다.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고, 이래저래 혼자서 골머리 앓을 필요 읎는 일이다. 니는 니 할 일만 하믄 된다.”

  강 대표의 빠른 손놀림을 따라가기 위해 성애는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정말 집은 필요 읎나?”

  성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점순 씨가 말한 그런 집을 가져본 적 없어,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내 함 알아봐 주까? 여 시골에는 빈집 많다. 세도 거저나 다름없을 끼고. 점순이 말마따나 차보다는 낫지 않겠나?”

  나을까, 못할까? 사람들에게 좋은 집이, 나에게도 좋은 집이 맞는 걸까? 오이를 십자로 잘라내던 성애의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니… 난중에… 수술도 하나?”

        “……”

        “수술 그거… 힘들지 않나?”

        “……”

        “어쩌자고 그리 힘든 길을 갈라고 그러노?”

  성애는 더 이상 오이 한가운데 칼을 밀어 넣지 못했다. 물컹해진 잘린 단면만 자꾸 매만졌다.

        “아이고… 내 지금 뭔 짓이고… 아이다, 답이 없어도 된다. 인생에 답이 있다고 하는 것들, 그기 다 거짓부렁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 또 나도 모르게 그런 헛소리 씨불이거들랑 내한테 소금 뿌리고, 알겠나?”

  물러진 오이처럼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성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성애의 손에 칼을 빼앗아 내려놓고 그녀는 소금 바가지를 쥐어 주었다. 잘라진 오이 위에 소금을 뿌리면서도, 성애는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강 대표에게 소금을 뿌리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라는 말이, 성애는 참 어려웠다. 친구는 집 있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집이든 부모 집이든 전세든 월세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고, 문을 여는 사람이 있는 집을 가진 사람에게만 친구는 허락된 것 같았다.

  노력했던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첫 번째 계단에 올라야 하는데, 성애는 그 처음 계단을 누구와도 같이 오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과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가 싶었지만, 풀지 않고 깔고 앉은 실타래 위에 혼자 앉은 느낌이었다. 혼자만 엉덩이를 들썩이고, 집에까지 끌고 가 결국 혼자 풀어야 하는 생각의 타래들.

  결국 피로해지고 말 관계라는 걸 알게 되고 나니, 성애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하고만 싶었다. 어떤 말이나 마음도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누구도 그런 구덩이에 빠져 본적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낚시 바늘에 혼자만 걸린 기분이었다. 머리 위에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면서도, 끌려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텨야 하고, 그러면서도 웃어야 하고, 반가워해야 하고, 구멍 밖에 누군가를 향해 다정해야 하고.

  그래도 이 동네에 들어와선 훨씬 나았다. 친구 같은 게 생긴 건 아니지만, 먼저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고, 의례적인 인사치레겠지만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따금 탑차의 벽을 두드리는 지묘 씨도 있고, 바람에 굴러온 털 뭉치 같은 신비도 있었다.

        “이리 와, 신비.”

  성애는 봉분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털 뭉치를 향해 밥그릇을 흔들었다.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그것은 영락없이 털 뭉치였다. 갈색과 흙빛이 뒤엉킨 짧은 꼬리를 가진 동물이었다. 귀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찢긴 건지 원래 그런 모양인지 털 뭉치 속 귀도 잘 보이지 않고 납작했다. 한 번은 개 사료를, 한 번은 고양이 사료를 가져다 놓았는데, 둘 다 허겁지겁 먹었고 밥을 다 먹고 나면 다시 또 뒤뚱거리며 봉분 너머로 사라졌다.

강아지는 고양이처럼 발톱을 감출 수 없다는데, 그래서 성애는 고양이 보다는 강아지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지저분한 네 발끝에 발톱은 언제나 불쑥 솟아 있었다. 강아지일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존재이니 ‘신비’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먹고 살기 위한 몸짓만 하고 산다면, 인간의 정체는 어떻게 구별될까? 사람의 성별은 어떻게 구별했을까? 코를 들이밀고 서로의 다리 사이를 킁킁댔을까? 그 따위 다리 사이에 관심도 없고 냄새 맡기도 귀찮은 존재라도,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걸까, 괜찮은 걸까? 성애는 뒤뚱거리며 멀어지는 털 뭉치를 향해 조용히 ‘신비롭다’고 웅얼거렸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 뭐가 다른가 싶었다. 성애는 인사하듯 ‘신비롭다’는 말만 자꾸 되뇌었다.

 

 

  2800에 1600짜리 사각형 집에 살다 보면, 생활은 무조건 간단해진다. 끼니도 하나의 접시 위에 밥과 반찬을 올리고 깨끗하게 긁어먹었다. 음식을 아끼는 일도 중요하지만 물을 아끼는 일이 더 중요하며, 몸을 데우는 일보다 공기를 데우는 일이 더 중요하단 걸 알게 된다.

  성애는 측면 통로 옆에 뚫어 놓은 환기 구멍이 너무 작지 않나 매번 고민이었다. 뒤쪽에 구멍을 하나 더 뚫을까, 있던 구멍을 더 크게 늘릴까, 여전히 망설여졌다. 땅에 박힌 집도 그렇겠지만, 바퀴에 몸을 실은 집 역시 끊임없이 돌보고 살펴야 했다. 한 번 잘못 손대면, 영원히 그 상태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으니 결정도 쉽지 않았다. 캠핑카 업체의 단발머리 여직원의 말처럼 창문이라도 뚫을까 싶지만, 여전히 쉽게 결론지을 수는 없었다. 환기나 개방감을 위해서라면 창문이 필요한 건 당연했지만, 성애는 자꾸 생각이 많아졌다. 밖을 볼 수 있다면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다는 뜻이며, 크게 뚫린 구멍만큼 신경도 더 많이 쓰이게 될 것 같았다. 아무데나 차를 세워놓고 짐차처럼 보였으면 싶은데, 창문을 달게 되면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집과 성애가 원하는 집은, 여전히 꽤나 거리가 있었다.

  성애는 이동식 변기에서 오물이 담긴 카트리지를 빼 휴대용 카트에 실었다. 가격이 비싼 정품 용변 분해제 대신 욕실 세정제 원액을 사용하는데, 오늘 마을로 내려간 김에 대용량을 하나 더 구매할 계획이었다. 즉석 밥은 가게 주소로 배달 시켜 놓았으니 그것도 같이 가지고 올라올 생각이었다.

  앞뒤로 문을 꼼꼼히 잠그고, 성애는 숲길을 따라 내려갔다. 곧 눈이 내리면 이 길의 풍경도 달라지겠지. 지난겨울에는 완도 끝에 내려가 지냈던 탓에 눈 구경조차 하지 못했는데, 올겨울에는 눈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제 오물이 담겨 썩고 있을 용변 통을 끌고 숲길을 내려가며, 성애는 어쩐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콧속에 스미는 모든 것들이 향기로웠다.

  오늘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백반집의 휴일이었다. 어느새 성애는 휴일을 보내는 시간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집 가진 사람이 잔디를 깎듯이, 무너지고 헐거워진 곳을 손보듯이, 성애는 휴일에는 집을 돌보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 휴일에는 옷가지를 가게로 가지고 내려가 빨래를 하고 네모난 집의 정비해야할 곳을 살폈고, 두 번째 휴일에는 오수청수 관리를 했다.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용변처리와 오수 처리를 해야 했지만, 매일 출근을 하면서 가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고 끼니까지 대부분 가게에서 때우고 나니 관리할 일도 대폭 줄었다.

  산다는 것이 익숙해질 수도 있는 일이겠구나, 성애는 처음으로 삶이란 것의 진액을 손으로 만진 기분이었다. 미끄덩거리고 흉측해 쳐다볼 수조차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 가만히 그것의 모양을 살피고, 냄새를 맡고, 닮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애는 다른 사람들처럼 여기 이곳에 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어딘가에 머물고 싶은 마음, 오래도록 그 속에 있고 싶은 마음.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성애는 항상 물건이 쌓인 매대 쪽으로 한 발 더 다가가 섰다. 시골의 소형 마트에서는 더 그랬다. 자연스럽게 서있는 몸이 누군가의 길을 막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짜증 섞인 눈빛의 목표물이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성애는 차라리 가판대에 짓눌리고 물건들의 뾰족한 끄트머리에 살이 찔리는 쪽을 택했다. 자신은 아프고 그들은 고작 불편하다는 게 억울하게도 느껴졌지만,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더 큰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하필 오늘 대용량 욕실 세정제는 선반 맨 아래에 상자째 박혀 있었다. 사장님을 부르고 싶었지만, 평소 안면이 있는 여자 사장님만 계산대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을 뿐, 남자 사장님은 오늘따라 보이지도 않았다.

  성애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세일 기간 막바지에 다다른 정육 코너에만 사람들이 몰렸고, 성애 주변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성애는 끌고 있던 카트를 장막 치듯 뒤로 밀쳐놓고서, 허리를 굽혔다. 상자에 손이 닿았지만, 손끝에 힘을 주자니 앞으로 몸이 쏠려 쓰러질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통로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성애는 다리를 벌려 주저앉았다. 어느새 또 식은땀이 온 얼굴에 범벅이었다. 상자 째 구입하는 사람 밖에 없었던 건지 상자 속 대용량 용기는 서로에게 들러붙어 빠져나오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요지부동이었다.

        “도와줘요?”

  자신도 모르게 끌려올라간 일자 원피스 자락을 성애는 화들짝 모아 쥐고 일어섰다. 세워두었던 카트는 밀쳐 졌고, 매대에 쌓였던 치약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빠른 운동신경을 자랑하듯 그는 두 팔을 허우적거려 치약 상자 몇 개를 받아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상자들과 땀범벅이 된 성애를 번갈아 보면서, 그는 사람 좋은 반달 눈 웃음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조 사장이었다.

 

 

  괜찮다고 하는데, 그는 성애의 대용량 세제까지 같이 계산했다. 계산대 옆에 있던 색색의 젤리 봉지도 몇 개 집어 들었고, 대용량 세제 위에 같이 올려 성애에게 건넸다. 가게에서 몇 번 눈으로만 인사를 했고, 식사 자리에서 한 번 강 대표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밖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낚시용품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조 사장은 누가보아도 단박에 호감을 주는 얼굴이었다. 선이 굵고 잘생긴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정감 가는 얼굴이었고, 웃을 때면 휘어지는 눈꼬리가 근육질의 조금은 왜소한 몸과 대비되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강 대표는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그에게 이야기 했을까? 성애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노는 날인데, 성애 씨는 어디 안 가요?”

        “네? 네… 저는 뭐…”

        “우리랑 갈래요? 저수지 근처로 드라이브 갈 건데.”

  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짙은 녹색의 낡은 스웨덴산 SUV 속에서 강대표가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성애를 보았는지, 더 환하게 웃으며 그녀는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젤리 봉지들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 대용량 세제 통을 끌어안은 채, 성애는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저는… 할 일이 있어서… 고맙습니다.”

        “왜요, 노는 날은 놀아요. 놀라고 있는 날이 노는 날인데…”

  성애는 가만히 조 사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림처럼 휘어져 좋은 인상을 주는 그의 두 눈은, 그 모양 때문에 오히려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너그럽게 휘어진 채 사람 좋은 얼굴을 만드는 두 눈이, 그의 눈동자를 감추고 있었다. 진심인 걸까? 성애는 아주 잠깐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녀오세요. 저는 할 일이… 고맙습니다.”

  성애는 황급히 조 사장에게서 카트를 넘겨받아 들고 돌아섰다. 품에 안은 대용량 세제 통 위에서 젤리 봉지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카트를 세우고 젤리 봉지들을 카트 속 짐 꾸러미 위에 올려놓는데, 자꾸 밖으로 흘러내렸다. 물휴지와 컵라면 박스 사이에 구겨 넣으니 반쪽으로 나뉘어 벌레처럼 긴 색색의 젤리 더미가 무지개 색 비눗방울처럼 불룩 솟아올랐다.

  부릉 거친 시동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성애는 고개를 들었다. 유난히 바퀴가 크고 휠이 번쩍거리는 늘씬한 자동차는 마트 주차장을 나가 가볍게 국도로 올라섰다. 석근, 조석근. 성애는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그의 이름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눈을 보았다는 건 착각이었구나. 성애는 그동안 한 번도 그의 눈동자를 본 적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김  비

 

 

소설가,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통해 등단, 그늘지거나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애쓰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플라스틱 여인>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없음>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신랑과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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