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면 이론은 늘 보편 이론이지만 이론이 단지 학술장에서의 글쓰기 도구임을 넘어서, (근대 이래) 사유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재배치하고 세계를 다시 조망할 수 있게 하는 매개여야함을 강력히 환기시킨 개념의 하나가 오늘날 어펙트일 것이다. 주지하듯,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스피노자-들뢰즈를 매개로 소개되기 시작한 어펙트 개념은 그 맥락상 일종의 열쇠 개념 역할을 기대받은 측면이 강했다. 2024년 현재는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도구로, 그리고 이론의 보편 지향 자체를 질문할 전제를 풍부히 품고 있는 개념으로 폭넓게 이해·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어펙트 이론’이라는 말보다 ‘어펙트의 개념, 문제의식’ 같은 말을 더 사용하는 편이기는 하다. 정합적이고 정통적인 계보가..
이 글은 젠더·어펙트연구소가 출간한 4번째 총서, 『연결신체학을 향하여』의 4부 ‘정동적 정의와 존재론적 전회’를 중심으로 책의 골자 및 그것이 제기하는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한국에서 정동 연구를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연구소의 꾸준한 작업을 지지하며, 전공·학제 간 교류와 협업의 결과를 접할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린다. 주로 질적 방법으로 경험 연구를 하는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인 필자에게 정동 논의가 제기하는 학술적 자극과 고민의 맥락을 함께 풀어내는 방식으로 리뷰를 시도한다. 1. 정동 논의와의 조우 먼저, 필자는 전문가적 식견에서 젠더 인식론과 정동 연구의 조우를 체계적으로 일별하거나 평가할 자격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2010년대부터 문학과 문화 연구, 인류학,..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여 출시한 하이퍼FPS 게임 “오버워치”시리즈에는 다종다양한 몸들이 등장합니다. 단련된 근육으로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여성, 왜소증을 지닌 노년의 남성, 과거 높은 전공을 올렸던 노년의 군인들, 신체의 대부분을 보철물로 대체한 사이보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 신체에 이르기까지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연령,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런 몸들은 한국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게임사 작품들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23년 11월 23일, 젠더스피어 8회차 콜로키움에서는 김수아 선생님을 모시고 이란 주제로 강연을 청해 들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엄혜진 선생님의 토론 내용에 더하여 한국 게임사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초점을 맞춘..
자오 펑 첸지의 발표 는 201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젠더와 권력의 렌즈에 초점을 맞춰 중국의 코로나 19 팬데믹을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몰두해 개인, 정부, 페미니스트 운동, 미디어의 온라인 담론과 상호작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자오는 페미니스트적 자아에 동기부여 되어 검열과 인식론적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인의 경험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가부장적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을 나란히 병치하여 놓고, 개인의 이야기를 면밀히 살피며 사회 주변부의 목소리를 함께 살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온라인 연구에 따르는 방법론적 윤리적 복잡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전통적인 학술교육에서는 거의 탐구되지 않..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던 길고양이 혐오 담론과 문화는 최근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인 형태로 퍼져 새로운 인터넷 놀이 문화의 하나가 되었고, 혐오는 어느새 인터넷상의 지배적 정동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물 혐오가 특정 집단에 국한된 문제적 정동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작동시키는 폭력적 문화로서 다수에게 확산되는 정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면에 존재하는 혐오 정동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동물 학대는 고양이 뿐 아니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에 대한 혐오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양이와 캣맘에게 물리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면서 캣맘을 향한 성적 조롱과 폭언, 폭행 등의 성차별적 행위로 혐오적 정동을 확산시켜 나갑니다. 강연자인..
2. 몸에도 번역이 필요하다 의 배우로 선 지 10년이 지나 그 무대를 기록된 영상으로 다시 보았을 때 재기억되고 재구성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당시에 아무리 말해도 내 안에서만 맴도는 말이란 것을 뱉고, 그럼에도 당신이 있기에 비명처럼 내지를 수 있는 말이란 것을 뱉었다. 대본에 쓰인 나의 말은 추후에 납득/변명/투쟁할 말, 나 이전에 독립된 말, 올바르게 틀려야 할 말, 당신/우리/세계의 말이었다. 무엇을 이해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투쟁하듯 대사를 뱉았을까. 극단 새벽의 연습실에서 어떤 몸을 표현하려고 밤새 연습했을까. 아기부터 노인의 몸, 몸의 시간성을 넘어 물고기의 몸을 상상하면서 내 몸에 입혔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발부터 머리까지 몸을 새로이 감각하면서 발, 다리, 엉덩이, 가슴, 머리에 따로 감..
여전히 화면보다 종이 위에 쓰인 글이 읽기 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날로그 세대다. 그런 나에게 웹소설은 너무 낯선 세계이지만, 댓글과 SNS, 커뮤니티에 남긴 짧은 글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개입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바꿔놓고 있다는 쌍방향적인 웹소설의 세계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의 시시콜콜한 비평이 즉각적으로 작가에게 전해지는 세계에서 웹소설은 단지 작가의 욕망만을 담지 않는다. 독자의 취향과 욕구, 수익을 창출하려는 플랫폼의 치밀한 계산과 인기 있는 서사의 구축을 통해 자기 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작가라는 세 주체가 만나는 장으로서 웹소설의 세계는 서로의 욕망이 만나 충돌하고 타협하는 정동적 공간이다. 이런 서로 다른 주체들의 마주침에 주목하면서 안상원 선생님은 웹소설의 ‘여성적 장르’로..
0. 몸:차림(此, 次) 이 글은 ‘대안’의 몸이 되어야 했던 자기 경험을 분석 대상으로 삼기에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이자 대학의 안팎에서 자생한 대안 연구모임 아프콤(aff-com)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몸:쓰기(bodily:writing)에 대한 비평이다. 이때의 몸은 지금, 여기 있음의 몸이자 몸과 몸이 계속해서 부대끼고 ‘접속’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몸이다. 대학에 입학한 2012년 무용학과가 폐지되고 졸업할 무렵인 2016년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통폐합되었다. 지역에서 예술과 문학을 한다는 것은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살려주세요.’, ‘짓밟힌 꿈’이 적힌 전단지를 받는 일이었다.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꿈의 자리가 위협 받고 안심할 수 없는 마음이 대학 내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스트리밍 산업에서는 스트리머들에게 ‘공정’해보이는 조건을 내걸어 다양한 보상을 제안하곤 합니다. 스트리밍 시간 기준은 물론이고 높은 수준의 영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조회수, 구독자수, 댓글수, 시청자수 같은 수치는 일견 공정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해야 하는 개인이 처한 환경과 위치는 각기 다르며, 그에 따라 같은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스트리밍도 달라집니다. 공정해보이는 수치 경쟁은 한편에서는 과잉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이면에서는 불공정한 평가의 기준과 출발점의 차이를 지워버립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역시 “개인의 자발성과 노력에 따른 성취”라는 수식은 능력주의의 수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성취에 따른 보상은 막대합니다. 예컨대 화질 선택, VOD보관 기..
『アフェクトゥス 아펙투스-생명의 바깥을 만나다』(西井 涼子 니시이 료코 외, >(교토대학학술출판협회, 2020)는 일본에서의 정동 연구 지형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필진은 9명의 인류학자와 미술, 영장류학, 인지심리학, 철학, 생명이론 등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젠더・어펙트 세미나'의 한 축은 비서구 정동 연구 동향을 점검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선 『アフェクトゥス』의 11장 과 종장 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읽기로부터 출발한 정동연구는 여러 논자들을 통해, 각기 다른 분과에서 제안되었다. 다윈의 감정표현에 관한 연구에서부터 실번 톰킨스와 마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자들이 감정과 정동에 대해 고심해왔다. 톰킨스가 심리학..
1. 게임의 혐오와 게임에 대한 혐오의 뒤얽힘 1편이 혐오스러운 세상에서 사랑을 찾는 과정이었다면, 2편은 반대로 사랑을 잃음으로써 혐오를 탐색하는 과정 시리즈에 대해 김성윤은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소 거친 대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편’과 ‘2편’의 연속과 단절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진술입니다. 인터랙티브 무비(interactive movie)로도 볼 수 있는 어드벤처 액션 게임 는 그 자체로도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지만, 게임 그 자체에 대한 평가도 드라마틱했습니다. 2013년에 발표된 ‘1편’의 호평과 흥행에 이어, 2020년에 발표된 ‘2편’에는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GOTY)’으로 상징되는 극찬과 동시에 ‘혐오’의 정동이 들러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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