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트리밍을 젠더링하기 (박준훈)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스트리밍 산업에서는 스트리머들에게 ‘공정’해보이는 조건을 내걸어 다양한 보상을 제안하곤 합니다. 스트리밍 시간 기준은 물론이고 높은 수준의 영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조회수, 구독자수, 댓글수, 시청자수 같은 수치는 일견 공정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해야 하는 개인이 처한 환경과 위치는 각기 다르며, 그에 따라 같은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스트리밍도 달라집니다. 공정해보이는 수치 경쟁은 한편에서는 과잉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이면에서는 불공정한 평가의 기준과 출발점의 차이를 지워버립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역시 “개인의 자발성과 노력에 따른 성취”라는 수식은 능력주의의 수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성취에 따른 보상은 막대합니다. 예컨대 화질 선택, VOD보관 기간, 생방송 유지 시간 등 스트리밍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술적 혜택들이 보상 중 하나입니다. 또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후원, 스트리밍 회사의 제휴 스트리머 시스템, 기업으로부터 들어오는 광고는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공공기관에서부터 스트리밍 업체, 민간까지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이나 스트리머들의 TV방송 출연 기회 등은 사회문화적 관심과 지위를 약속하는 보상이 됩니다.

  이동후 선생님의 강연은 이런 조건들로 둘러싸인 여성 스트리머들의 정동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질문은 젠더와 무관해 보이는 조건들이 사실은 남성 중심적인 스트리밍 산업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동후 선생님의 강연을 따라 주요 스트리밍의 내용으로서 게임과 게임 산업 전반에 관해, 그리고 여성 스트리머 개인의 경험에 관해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1. 게임 산업 안팎의 남성중심주의

  스트리밍의 주요 콘텐츠인 게임계에서 남성 중심 문화는 견고합니다. 여성 게이머는 결코 남성 게이머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PC게임에서는 아직도 남성 유저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프로게이머 역시 절대 다수가 남성입니다. 온라인에서 게임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를 만나면, ‘당연히’ 화면 뒤에는 남성이 있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실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플레이어를 비하하는 말로 여성형 이름(“혜지”)을 붙이는 표현도 쉽게 접하곤 합니다. 여성의 게임 실력에 대한 평가가 이미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여성 스트리머들에게도 게임을 잘하는 것이 기대되지 않습니다.

  게임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여성 혐오나 성애화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상대적으로 복잡한 기계와 조작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PC게임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서든어택2〉의 경우만 하더라도, 여성의 성애화보다 게임 자체의 재미와 과금 체계가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게임이 재미 없고, 과금 체계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의 과잉 성애화가 더욱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습니다. 만약 게임이 흥행하고, 재밌었다면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성애화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훨씬 덜 적었으리라는 암울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최소한 다른 게임의 여성 캐릭터에게는 이런 비판이 훨씬 적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혜지”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여러 게임 커뮤니티는 여성 캐릭터의 성애화를 묵인하거나, 재생산해왔습니다.

  게임 산업계 내부에서도 여성 혐오에 대한 고민은 반복됩니다. 특정 게임이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연관될 때, 여러 형식의 반동적 발화들이 이어지곤 합니다. 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관련된 직원을 해고하라는 요구, 관련된 콘텐츠나 일러스트, 배경 음악 등을 수정·삭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곤 합니다. 이에 대응하고 책임지는 것은 개인 또는 게임 운영·제작에 관련된 회사로 제한됩니다. ‘소비자’ 다수의 요구는 내용의 정당성이 아닌, 수익성의 논리에 따라 수용되어버립니다.

  심지어는 게임 산업계 내부에서 성폭력 문제가 제기될 때조차도, 이는 특정 회사 내부의 문제로 일축되곤 합니다. 이어지는 회사의 반응 역시 노동자의 계약 해지, 운영 책임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게임 내적인 수정이나 삭제에서 그칩니다. 게임사 내부에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는 게임 업계 전반에 대한 재고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런 구조에서 게임 문화 전반에 대한 쇄신은 요원해집니다.

 

2. 여성 스트리머들의 경험과 경쟁

  여성 스트리머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친밀한 가족으로부터 게임을 접하게 되고, 좋아하는 게임을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스트리밍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트리밍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점차 시청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더 많은 시청자를 보유한 스트리머들을 참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이 스트리밍을 시작한 요인 중에는 취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임 안팎을 구성하는 여성 혐오와 초성애화 외에도 여성 스트리머에게는 방해물이 있었습니다. 신입 스트리머가 더 많은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유명 스트리머와 합동 방송을 하거나, 호스팅을 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유명인들로부터 언급이라도 된다면 주목을 받기가 훨씬 더 용이했습니다. 스트리머들 사이의 위계를 의식하게 되었고, 사회적 관계 맺기에 더 세밀하게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적인 인간 관계를 비롯해 사생활이 여러 형태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혼자 진행하는 스트리밍 과정에서는 주로 남성인 예상 시청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습니다. 특히 ‘여성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일 것, 시청자들의 참여에 순하고 귀여운 태도로 반응할 것, 외모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부적절한 요구지만, 여성 스트리머에게는 더 엄격하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요구되었습니다. 물론 여성 스트리머들은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갖추려는 노력을 병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스트리머들은 여성성을 연기할 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갈등하곤 합니다.

 

3. 이어서 다시 설계하기

  이동후 선생님은 이런 조건들이 항상 동일하거나, 매번 같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는 특정 수행performance을 유도하는 조건들일 뿐,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예가 Twitch사의 정책입니다. 게임 전문 스트리밍을 내세운 Twitch는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전부터, 타 업체들에 비해 높은 강도로 스트리머들의 신체 노출을 제한해왔습니다. Twitch사가 국내에서도 이런 정책을 적용함에 따라 여성 스트리머에 대한 인식은 조금이나마 변화한 듯 합니다. 최소한 여성 스트리머 방송을 보는 남성이 모두 부적절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인식에 조금은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런 정책이 도입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스트리머와 기술, 시청자와 인터넷 방송사를 매개하는 여러 조건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성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하는 1차적인 목표가 이런 남성 중심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남성 중심의 스트리밍 시장에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여성 스트리머들의 노력이 개인적 노력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남성 중심의 스트리밍 산업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는 여성 스트리머들 각각의 노력이 모여서, 새로운 조건들이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여성 스트리머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중단해버린다면, 결국 스트리밍은 오직 남성들의 영역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2023년 젠더·어펙트연구소 연속 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색하다>의 두번째 강연(이동후, 게임 스트리밍 공간의 여성 스트리머 경험 연구_2023년 5월 25일)에 대한 리뷰입니다. <젠더스피어> 상반기 프로그램 및 일정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genderaffect.net/15/?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4692528&t=board 

 


박 준 훈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보조원.

한국 현대문학과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자의 정동과 대안적 글쓰기, 리터러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