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고 접속하고 주장하며 변하는, ‘팬덤’이라는 몸들 (김대성)

‘팬덤’은 움직인다. 주장하고 개입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미디어-네트워크를 따라 어느 곳에서라도 나타나 연결되고 접속하며 흐름을 만들어 다른 것이 되어 간다. 어떻게 나타나 무엇을 요구하고 행동할 지 예측이 어렵고 모습을 달리해 출현하는 팬덤에 대해 이지행은 <팬덤 커뮤니티의 실천과 젠더화된 정동>(연속콜로키엄 ‘젠더스피어’ 4회)에서 “문화적 유대로 형성된 팬덤 공동체를 인터넷 담론 공중이자 정치적 시민으로 간주하고, 문화정치를 포함해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폭넓은 형태의 팬덤 실천을 ‘팬 행동주의(fan activism)’로 정의”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케이팝 팬덤이 ‘행동주의’, ‘능동적 소비자’, ‘정치적 시민’, ‘시민성을 지닌 대중’이라는 자장을 형성해나가는 양상을 살피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기에 그들의 참여문화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 내부의 정동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팬덤의 주무대인 온라인 공간은 지식을 둘러싼 담론의 경합장이자 세계 정치의 공간으로 변한다. 

 

이들을 단순히 능동적인 소비자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둘러 정치적 시민이라 말하는 것도 조금 망설여진다. 팬덤은 움직이고, 결속하고, 주장하고, 개입하며, 변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과거처럼 그저 익명의 다수라고 부를 수 없는 건 글로벌화된 팬덤은(특히 케이팝 팬덤) 계층·인종·젠더·국적을 비롯해 집단적 속성을 갖기보다 개별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참여’의 형태로만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팬덤의 규모와 범주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식별되지 않는다. 이지행은 이들이 케이팝 팬이라는 점 말고는 정치적 정체성을 특정할 수 없고 그리고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다시 말해 ‘식별 불능’이라는 조건이 효과적인 정치적 저항기술로 배치를 달리하기에 당파성에 근거해 판단을 결정하는 기존 정치세력과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강연에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이에 대항한 팬덤의 집합 행위(팀 아미 프로젝트)를 주목하며 국가권력에 대한 대항 실천이자 반정치적 정동으로부터 부상한 것임을 강조한다. BTS 공연 장소 변경을 요청하는 팬들의 집단행동과 언론에 대한 제보에도 불구하고 이 의견이 반영되지 않자 팀 아미 프로젝트(Team ARMY Project)가 구성해 그들 스스로가 ‘역에서 공연장소까지 입장과 퇴장을 관리할 안전요원, 현장안내요원, 통역봉사단, 의료봉사단 참여를 위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대규모 행사 진행 유경험자와 소방방재 유경험자를 모집하는 공고’까지 낸다. 이 같은 안전에 대한 자구책 마련과 공연 장소의 결정과정과 합리적 사유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연장소를 안전한 곳으로 변경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연 당일에도 외국어가 가능한 안내 요원 배치와 질서 유지를 위한 활동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팀 아미의 팬 실천은 팬덤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가부장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는데, 이 행사에서 국가조직의 행정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착취당하거나 들러리로 세워지는 팬덤 스스로의 위상에 대한 자각, 공감을 바탕으로 한 서로에 대한 돌봄과 배려, 그리고 가부장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적 인식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젠더화된 정동이 촉발시킨 정치적 실천의 한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이지행, <팬덤 커뮤니티의 실천과 젠더화된 정동> 강연 원고 중

 

이 같은 팬덤의 가시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케이팝 팬덤이 대체로 어린 여성이며 케이팝이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열정으로 굴러가는 산업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집단적인 행위에 대한 인식의 근거가 젠더가 주요한 표지가 된다는 걸 가리킨다. 이지행은 케이팝 뿐만 아니라 스포츠 팬덤 내부에서조차 자신이 ‘얼빠’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암묵적인 문턱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는데, 이는 ‘오빠부대’라 통칭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남성성으로 과잉 대표되어 왔던 역사 산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케이팝 팬덤을 신자유주의 체제가 양산한 또 다른 주체의 모습이라 보게 되는 의문(윤지영_토론)이 제기되는 건 자연스럽다. 팬덤에게 능동적인 소비자 이상의 역량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문제제기라기보단 이들이 가진 비가시적인 역량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는 의지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지행은 특정 팬덤을 숭배하는 주체로 볼 것인지 향유하는 주체로 볼 것인지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이때 젠더가 주요한 표지가 되는 점을 강조했는데, 팬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고 따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이 익명의 힘들이 움직인 궤적을 뒤쫓을 때 무엇과 마주하게 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성애적인 정상성에 따라 스타와 팬덤을 남녀로 나누어온 엔터산업이 젠더적 할당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이러한 엔터 산업이 변화되면서 팬덤 또한 변화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케이팝 팬덤의 흐름 속엔 기존의 이성애 구조가 아닌 퀴어화된 양태가 도드라질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트랜스내셔널한 변동을 추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 인종화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권명아). 이때 케이팝 팬덤은 인종 교차적인 대항 정동(counter affect) 실천과 그 현장으로서 동시대성을 가진다. 

 

 


 

 

이 글은 2023년 젠더·어펙트연구소 연속 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색하다>의 네 번째 강연(이지행, <팬덤 커뮤니티의 실천과 젠더화된 정동>, 2023년 7월 20일)에 대한 리뷰입니다. <젠더스피어> 상반기 프로그램 및 일정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genderaffect.net/15/?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4692528&t=board

 

2023년 젠더·어펙트연구소 연속 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젠더·어펙트연구소의 2023년 연속 콜로키움"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색하다"는온라인에서의 정동을 젠더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담론과 콘텐츠 사례분석을 통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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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 특별연구원.

비상상태 속에서 나타나는 예외적인 힘을 추적하고 있다. 1950년대 '피난문단'과 1970-80년대 한국 노동자 글쓰기가 남긴 궤적을 이으며 지역-제도-글쓰기의 역사적 얽힘과 부대낌을 탐색하고 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매달 <문학의 곳간>이라는 모임을 열고 있으며 2022년부터 1인 출판사 <곳간>을 열어 책을 펴내고 있다. 저서로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과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가 있다. 

https://trans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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