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된 소비자, 남성 중심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정동 (박준훈)

오버워치의 캐릭터 자리야(왼쪽)  오버워치의 캐릭터 토르비욘(오른쪽)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사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여 출시한 하이퍼FPS 게임 “오버워치”시리즈에는 다종다양한 몸들이 등장합니다. 단련된 근육으로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여성, 왜소증을 지닌 노년의 남성, 과거 높은 전공을 올렸던 노년의 군인들, 신체의 대부분을 보철물로 대체한 사이보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 신체에 이르기까지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연령,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런 몸들은 한국시장을 겨냥한 한국의 게임사 작품들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23년 11월 23일, 젠더스피어 8회차 콜로키움에서는 김수아 선생님을 모시고 <동시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의 젠더 인식>이란 주제로 강연을 청해 들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엄혜진 선생님의 토론 내용에 더하여 한국 게임사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초점을 맞춘 재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를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와 관련하여 살펴보고, 그에 대한 논점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표면화된 사건에 관한 것일 뿐, 아래의 비판이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 전체의 정동이라고 일반화 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과 ‘진정한 게이머’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서는 게임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이 거셉니다. 다른 문화콘텐츠들과는 달리, 게임의 경우 정치적 올바름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고 재미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지목되곤 합니다. 게다가 게임의 경우 가상의 캐릭터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실제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화된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면서 국내 게임사들은 대체로 이런 관점을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도입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해외의 초대형 게임사들이나 가능한 시도일 뿐, 국내 시장에서는 즉각 유저-고객 감소와 매출 감소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국내 게임 시장의 구조를 언급하며, ‘큰손’ 즉 구매력이 높은 유저-고객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인습적인 재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이해합니다.


여기에 게임 전문 매체들 역시 이러한 주장을 확산시킵니다. 정치적 올바름에 개발의 초점을 맞추게 되면, 글로벌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당연하게도 게임산업의 수익 창출 구조가 ‘큰손’들 위주기 때문이란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들은 게임 산업에 실제 상황을 모르는 외부인들이 개입해서 산업을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주로 내세웁니다. 이때 ‘큰손’들은 당연히 남성으로 전제되면서, “진정한 게이머는 남성”이라는 인식과 순환을 일으킵니다.

 

“진정한 게이머는 남성”이라는 주장은 게임에 대한 제도적 개입에 대한 반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 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시행되었을 때, 셧다운제에 대한 비판은 주로 여성가족부를 향해 쏟아졌습니다. 이 정책은 분명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한 가족 정책이었지만, 그 비판은 여성(가족)부를 향했습니다. 청소년 남성 게이머를 제한하는 여성 정책이라는 엉뚱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현재까지도 여성부 폐지의 근거로 종종 소환되고 있습니다.

 

좌측 아이콘 제작자: Freepik- Fla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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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진정한 게이머는 남성”이란 인식은 게임에 시간과 돈을 많이 소비하는 것이 남성인 만큼 남성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남성들의 눈치를 보다보면 정치적 올바름을 후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정당화합니다. 게다가 게임산업과 관련된 이슈에 더 민감한 주체로 남성들을 상정합니다. 그 결과 이런 게임에 더 몰입하고, 더 소비하게 되는 것은 남성이 됩니다. 게임 산업, 게임 전문 매체, 게임 정책을 오가며 게임을 남성 주류의 문화로 각인시키고, 여성 게이머를 게임 개발과 운영에서 후순위 고려대상으로 밀려나게 만듭니다.

 

 

게임 안팎의 감시와 검열, 사후적 승인

“진정한 게이머는 남성”으로 여겨질 때, 문제는 게임 내부의 재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유명한 여성 운동가나 저널리스트를 상대로 가해지는 집단화된 온라인상의 공격, 즉 사이버 불링이 현실의 게임 산업 노동자들을 향해서도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모습을 더욱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개인의 SNS를 검열하는 방식으로 게임 산업계와 노동자들을 단속합니다. SNS에 “남성 혐오”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글이나 일러스트를 올린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게임 산업 노동자인지 추적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나 일러스트를 활용하는 게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사적 검열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행태는, 추적에 성공한 ‘의인’ 구성원을 영웅시하는 커뮤니티 내부의 정동에 의해 더욱 가열됩니다.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는 이로부터 사적 감시에 대해 승인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결과적으로 “페미”, “남성 혐오” 추적에만 성공한다면 그 결과가 공공선에 가까우니, 사적 감시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승인됨에 따라, ‘의인’은 영웅시되고, 집단적으로 게임 바깥의 SNS와 같은 사생활까지 감시에 착수합니다.


심지어는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 이용자끼리 서로 견제하기 위해 타 게임에 “남성 혐오” 또는 “페미”라는 이미지를 입히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페미”라는 단어가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서 여성우월주의로 오해됨에 따라, 일단 “페미”라고 지시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기피해야 할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이용해 자신이 즐기는 게임의 경쟁작으로 다른 유저들이 가지 못하게 유도하려 것입니다. 반면 사적 검열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혀지더라도 최초의 게시자를 비판하거나 자숙하는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적 검열이 일종의 ‘소비자 운동’으로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위상을 취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소비하는 상품인 게임에 “남성 혐오”가 섞여들었으니, 이를 제거해달라는 주장으로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런 주장은 상품에 이물질이 섞였으니, 환불을 요청하고 이후 불매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소비자 운동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SNS 활동에서 보인 성향이 게임에 기입되어 있는 것인지, 그것이 소비자로서 게임 유저⎻고객의 이용을 방해할 정도인지, 이를 근거로 노동자 개인을 계약으로부터 배제해달라는 요청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 운동’이란 자격으로 이 모든 고민들을 중단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집단적 문제제기가 소비자 운동으로 이해되는 또 다른 이유는, 게임사 측에서 이러한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체로 수용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유저-고객의 요구를 게임사가 수용한다는 사실은 곧 요구에 정당성이 있었기 때문에 수용한다고 비추어집니다. 일단 요구가 수용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사적 검열은 보다 많은 사람에 의해, 보다 엄격하게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소비자’로서 게임사가 수용할만한 정당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니,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단순히 게임 내부의 수정 정도를 넘어서 개인의 SNS에 대한 사적 감시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게이머’, ‘큰손’이 남성으로 전제됨에 따라, 게임 산업 역시 남성들 위주의 시장이 됩니다. 게임산업 종사자 중에는 여성도 다수 있지만, 게임사는 남성 유저-고객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논리로 이들의 발화를 가로막거나 자유를 침해하기도 합니다. 유저-고객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오고 있으니,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로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는 성우나 일러스트레이터가 계약 해지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미래의 게임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면접장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듣고 답변이 오가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법적으로 이들과 거래를 중단하는 행위는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해고가 아니라, 기업과 개인 사이 납품을 중단하는 정당한 계약해지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게임사와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인 성우나 일러스트레이터 사이의 권력 관계에 대한 숙고가 더 필요합니다. 개인의 과거 SNS 활동까지 추적하는 사적 감시의 결과로 게임 산업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은 노동자가 더는 게임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불이익이 가시화됨에 따라, 사적 감시는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자기 검열로 이어집니다. 2016~2018년 즈음에는 혜화역 시위와 미투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충돌이 극심해졌습니다. 이 시기 적극적으로 의사표명을 했던 게임산업 종사자들은 이후, 일부가 계약해지와 같은 방식으로 잃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일상적으로 자기 감시를 거쳐 위축된 상태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간 잘 활동하던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SNS 계정이 비활성화되거나 삭제되는 이유 대부분은 자기 검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이버 불링’처럼 개인의 활동을 위축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언론을 비롯해 연구자, 활동가들은 지속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그러나 게임 산업 관계자들과 게임 전문 언론들은 게임산업 내부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또다시 진정한 게이머는 남성이라는 전제가 소환되고,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남성 유저⎻고객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게임 산업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여기는 것입니다.

 

한국의 남성 중심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바로 게임하는 남성들이 서구에 비해 긱geek 남성 또는 인셀Incel 남성으로 한정되거나 이미지화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과열된 입시 경쟁과 그 환경에서 놀 거리가 게임 뿐이란 사실이 게임에 더 대중적인 인기를 부여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게임이 더 대중적인 만큼, 게임을 즐기는 남성에 대한 비하나 조롱도 덜합니다. 물론 셧다운제와 같은 정책적인 탄압이나 ‘게임 과몰입’과 같은 부정적 시선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시선이 있다고 해서 게임 유저-고객이 항상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023년 11월 23일, 젠더스피어 8회차 콜로키움이 끝난 주말,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이 게임 내외에 삽입되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논란을 다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2023년 젠더·어펙트연구소 연속 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색하다>의 여덟 번째 강연(김수아, <동시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의 젠더 의식>, 2023년 11월 23일)에 대한 리뷰입니다. <젠더스피어> 하반기 프로그램 및 일정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genderaffect.net/15/?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253052&t=board

 

2023년 젠더·어펙트연구소 연속 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

젠더·어펙트연구소의 2023년 연속콜로키움 <젠더스피어: 젠더적 정동장으로서의 온라인 문화를 탐색하다>의 하반기 프로그램을 2023년 9월 21일부터 매달 한차례씩 진행합니다.기술 발전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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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훈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젠더·어펙트 연구소> 연구보조원.

한국 현대문학과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자의 정동과 대안적 글쓰기, 리터러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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