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어펙트 연구와 그 너머(박준훈)

 

 

 

 『アフェクトゥス 아펙투스-생명의 바깥을 만나다』(西井 涼子 니시이 료코 외, >(교토대학학술출판협회, 2020)는 일본에서의 정동 연구 지형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필진은 9명의 인류학자와 미술, 영장류학, 인지심리학, 철학, 생명이론 등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젠더・어펙트 세미나'의 한 축은 비서구 정동 연구 동향을 점검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선 『アフェクトゥス』의 11장 <回想の表情/姿勢とその揺らぎ―供述聴取のテクノロジーをめぐって 회상의 표정/ 자세와 그 동요공술 청취의 테크놀로지>과 종장 <アフェクトゥスとは何か? 어펙투스란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들뢰즈와 스피노자 읽기로부터 출발한 정동연구는 여러 논자들을 통해, 각기 다른 분과에서 제안되었다. 다윈의 감정표현에 관한 연구에서부터[각주:1] 실번 톰킨스와 마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자들이 감정과 정동에 대해 고심해왔다. 톰킨스가 심리학적 자극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를 적극적으로 참고한 이브 세지윅은 생리학적 반응과 실증 가능성 대신 정동이 충동보다 자유도가 높다는 설명에 주목한다.[각주:2]반면 마수미는 비의미·비의식 작용으로서 정동에 초점을 맞춘다. 톰킨스가 심리학적 자극에 대한 보편적 역량으로서 정동 논의에 이르렀다면 마수미는 현실정치의 문제에 주목했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책의 종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같은 계보보다도 앞서 “불가량 부분”을 먼저 소개해준다는 것이다. 셈해질 수 없는 부분이란 뜻에서 불가량 부분은, “사람들의 사회 문화적인 규칙,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은 항상 '광경'속에 있다.” 따라서 인류학자는 현장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지 않는 이상, ‘객관적’으로 관찰되어 기록된 데이터를 유의미한 형태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이런 맥락 아래에서 “정동” 개념을 수용한다. 아직 내용을 모두 읽어보진 못했지만, 종장에서 각 장의 내용을 대체로 문화권에 따른 미세한 변화와 그를 감지하려는 노력으로 정리하는 이유는 이 때문인 듯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11장의 내용은 특히 이런 미세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高木光太郎(다카키 고타로)의 논의는 증언, 특히 법정 증언이 갖는 특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증언자가 보이는 미세한 변화와 반응들에 주목하는 이유를 역설한 그는, 마침내 정동 연구가 법정 증언 연구와 실효성 판단에 유효할 것이라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모호하고 해석불가능하다는 정동의 속성을 다시금 측정하고, 해석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증언의 정동을 읽어내는 도구의 개발을 요구하며, 현재 주로 쓰이는 프로토콜의 한계로 글을 끝맺는다.

 

 “증언에 대한 외면할 수 없는 ‘의심’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 의심이 출발했고 또 겨냥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를 대답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송혜림의 지적을 고려한다면[각주:3], 다카키 고타로의 주장은 법적 증언에 대한 ‘의심’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 의아하다. 오히려 ‘보다 정확한 측정 도구 개발’을 내세워 의심 당하는 증언과 그렇지 않은 증언 사이의 배경을 은폐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긴다. 최소한 그가 요구하는 도구들은 보편적 역량으로 정동을 간주한 채, 인종과 젠더, 계급과 식민주의 같은 위계들을 소거하려는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이 글은 격주로 진행하는 '젠더어펙트 세미나'(2023년 5월 3일) 후기로 작성되었으며 본문 내용은 세미나 구성원인 이지현(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11장), 김지석(훗카이도 대학/종장) 선생님께서 번역해주신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박준훈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박사 과정,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보조원
한국 현대문학과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자의 정동과 대안적 글쓰기, 리터러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 “다윈은 1872년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발간했다. 다양한 인간 집단의 얼굴 사진 수백 장을 수집하여 분석한 다윈은 “감정 표현”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경로로 발생하는지 설명했다. (…) 다윈의 정의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감정이 특정한 목적에 봉사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다윈은 감정 표현 양식이 장기간의 습관과 유전에 의해 고정된다고 주장한다.(김학이. (2014). 감정사 연구의 지평 – 우테 프레베르트를 안내자로 하여 -. 독일연구 - 역사·사회·문화, 28, 221-222.) [본문으로]
  2. 허성원. (2019). 페미니즘의 퀴어정동정치를 향하여: 독해실천으로서의 퀴어정동이론. 한국여성학, 35(2), 87-88쪽. [본문으로]
  3. 송혜림. (2022). 위증과 무고, 증언의 지형도 그리기. 사이間SAI, 33, 10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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