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역-문화예술] 재난에서 미래를 찾는다 : 감염병의 역설이 보여준 가능성을 붙잡고 (유미희)

#프롤로그 : 풍경1 - 코로나19

아침 8시. 은행 앞. ‘음소거’된 동영상처럼 적막한 풍경.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KF94-‘하얀’ 마스크에 지워진 얼굴들 위로 ‘검은’ 눈동자들만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절박한 듯하지만 공허하고, 불안한 듯하면서도 담담한 서른 개의 눈빛. 순간, 재난 영화에서 본 디스토피아처럼 기괴하다. 누군가 침묵을 깨고 뛰어 들어오며 소리 내어 질문한다. ‘여기서...’ 순간, 그의 일상적인 ‘발성’ 행위는 ‘상황 파악’ 못하는 ‘몰상식’이 되어 다양한 몸짓으로 비난의 피드백을 받는다. 대면과 소통에 대한 상식이 달라졌다. 이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롭게 부상하는 상식)’로 고착될까?

 

아침 9시. 은행 문이 열리자, 말 없는 몸짓들이 다급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들어간다. 침묵 속에서 차례대로 번호표를 받는다. 9번. 나의 ‘코로나19 재난 지원 소상공인 대출’ 상담 순서 번호표다. 지루한 기다림. 번호표를 만지작거리다가 ‘암담함’을 만난다. 저기 저 마스크 속 얼굴들도 나처럼, 감염병으로 갑자기 멈춰버린 노동과 ‘수입 제로(0원)’의 현실에서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다급하게 달려와 줄을 서고, 번호표를 뽑고, 지금, ‘암담함’ 앞에 서 있을까?

 

 

#1.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를 가르는 또 하나의 획이 되다

최근, 문화 비평가들은 BC(Before Covid19)와 AC(After Covid19)로 나누어 시대를 말한다. ‘Covid 19(코로나19)’는 세계사의 대사건이 됐고, 시대를 가르는 또 하나의 ‘획’이 되었다. 산업혁명, 1·2차 세계대전, 68혁명, 87년 6월 항쟁, IMF, 세월호 등, 시대를 가르는 사건들은 희망과 절망의 역동으로 세상의 변화를 촉진했다. 그런데,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은 근대 사회 이후 부침을 거듭하며 진화해온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체제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 아니,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체제의 위기가 코로나 19로 드러났다는 것이 옳다.

 

기후위기로 대변되는 생태 위기에서 바이러스가 탄생했고,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폭력적으로 구축되었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바이러스를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인공 지능(AI)의 시대, 과학 기술이 미래 예측과 재난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신념은 바이러스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개인주의는 자유를 잃었고, 자유주의는 ‘격리’ 당했다.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의료’시스템은 ‘죽음’을 양산했고, 그로 인해 선진국의 정의가 달라질 판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도 하고,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고도 한다. 위기에서 다음 시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배우기 위해 기억한다. 시대를 가르는 획이 하나 그어질 때마다 버려지고 고통 받은 대상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의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존재들이, 어떤 핑계로 버려질까?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회복을 위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비대면 산업 집중 육성, 노후 SOC 등 국가기반 시설 스마트화 등을 골자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던 디지털 트랜스포머 혁명,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산업구조조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부상하는 <비대면(untact)-온 택트(on-tact)> 문화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고 있다. 디지털 소외 지구의 노동은 위축되거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나의 예술-연극-운동은 디지털 인프라가 담아낼 수 없는 강도 높은 대면 노동이다. AC,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나의 노동은 어떻게 될까? 나와 나의 동료들은 우리 노동의 의미를 지켜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폭력적인 사라짐, 또 얼마나 많은 노동권의 사각지대가 생겨날까?

 

 

#2. 언제나 위기였던 ‘예술-연극-지방’,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살아남는다?!

코로나 19는 나의 노동을 멈춰 세웠다. 공연장 운영, 공연, 연극 교육, 예술 치료, 평화 활동, 국제 연대 ... 멈춤을 통해 내 노동의 처지를 직면한다.

 

-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노동의 비애

코로나 19로 인한 ‘수입=0’는 순식간에 ‘잔고=0’를 불러 왔다. 자발적이긴 하지만 과로라 할 만큼 노동을 해도, 내 노동의 대가는 항상 중위소득의 50% 정도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저축이 있을 리 없었고, 수시로 ‘잔고=0’ 위협에 시달리는 궁핍한 살림이었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금액 자체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많다고 할 수 없는’ 정도로도 순식간에 삶을 멈추게 할,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이 되었다. 사실, ‘나의 노동=삶’은 그렇게 수시로 덮쳐오는 생존의 위협 속에서 궁핍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위협은 경제적 궁핍함이 아니라 내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 평가에 있다.

 

‘돈’이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교환되는 노동만이 가치로 인정받고, 더 많은 ‘돈’으로 교환되는 것이 ‘더 가치 높음’으로 여겨진다. 예술이 많은 ‘돈’과 교환되기 위해 ‘잘 팔릴 상품’이 되어야 하고, ‘잘 팔릴 상품’은 창작-유통의 과정에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인력과 장비와 홍보 매체를 확보할 ‘돈’. 그 ‘돈’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예술은 시장 밖으로 밀려난다. 시장 밖 예술은, 언젠가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 고생이 미덕이 되는 날을 상상하며 고군분투하거나, 예술이 가져야 할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예술은 ‘가치 없음’으로 평가되고, 그런 예술을 지속하는 예술가도 ‘잉여 인간’으로 분류된다. 마치,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인 가사와 돌봄 노동이 ‘무가치’로 취급받는 것처럼, ‘돈으로 교환되지 못한 노동’이라는 이유로, 예술-연극 노동의 사회적 역할도 ‘의미 없음’이 되었다. 내 노동이 서 있는 자리다. 암담하다. 그래서 비장하다.

 

- 비대면의 시대, 긴밀한 대면 소통의 장-소극장의 운명

나는 소극장 연극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소극장 연극 운동을 해왔고 소극장을 운영한다. 70석 객석. 만석이 되어도 적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예방적 거리두기’를 위해 객석 수의 3분의 1만 채워야 한다. 큰일이다. 최대 관객 25명. 시쳇말로, 견적이 안 나온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BC(Before Covid) 시대부터 있었다. 디지털 문화, 영상 매체, 대형 공연물, 여행, 외식 문화 등과의 경쟁에서 소극장 연극은 점점 설 자리는 잃어왔다. 예술에서 삶에 대한 통찰을 기대하는 관객은 드물다. 강도 높은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카타르시스가 절박할 뿐이다. 사람과 관계, 세상을 사유하자고 하는 예술은 점점 기피의 대상이 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강조되는 시대에 대면 매체에 대한 거부감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고, 소극장 연극의 위기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소극장 연극의 위기는 관계성에 기반한 사회 자체의 위기다. ‘초연결사회’라 불릴 만큼 촘촘하게 엮인 ‘온-택트(on-tact)’의 세계. 그러나, 익명성으로 유지되는 가상의 ‘연결’은 현실 세계의 고립을 막지 못하고, 수시로 폭력의 장이 된다. 관계 역량을 잃은 인간의 사회는 그야말로 디스토피아다. IT 강국 한국, 이미 풍부한 디지털 인프라 환경에서 진화한 사이버 폭력-N번방 사건 등-이 보여주는 ‘엽기’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진 사회를 ‘미리보기’ 한다. 신체를 가진 인간은 몸을 통해 대상을 감각 하고, 인지하고, 관계 맺는다. 관계의 역량은 ‘타자와 함께 산출한 세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역량이다. 예술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연극의 관객은 공연 현장에서 깨어있는 몸으로 ‘주고-받기’를 통해 같이 연극을 완성한다. 결코, ‘비대면-온 택트(on-tact) 컨텐츠’가 해결할 수 없는 ‘대면’의 힘이다. 소극장은 관계의 역량을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긴밀한 소통의 장소이며, 포기할 수 없는 ‘대면’의 힘이 내재된 장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지털 시대에 더욱더 절절하게 필요한 장소다. 그런 소극장의 운명이 위태롭다.

 

- ‘지방’, ‘중앙’ 예술의 소비시장 확대

지역 예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만든 작품은 되도록 전국적으로 널리 공유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지역이 ‘지방’으로 불리는 동안,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철저하게 소비시장이 되어왔다. 지역은 셀럽을 꿈꾸며 중앙 진출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일시적 거처이거나, 좌절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처럼 남루하다. 지방 자치 25년, 예술 자치는 없다. ‘여기’에 뿌리 내려 예술 노동으로 삶을 유지하고 예술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보람을 느끼며 창작을 이어갈 작가, 연출가, 배우, 기획자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창작-기획 인프라도 허약해, ‘중앙’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진다. 코로나 19 이후 활성화되고 있는 비대면 예술 콘텐츠 개발은 비대면 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디지털 인프라와 창작 인프라의 모든 면에서 물리력을 독점하고 있는, 중앙의, 실감 나는, 비대면 예술 콘텐츠들이 관객의 클릭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지방’도 비대면 창작물에 지원금을 쏟아붓겠지만 가치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3. AC 시대, 재난에서 가능성을 성찰하다

코로나 19는 위기의 세계를 증명했고, 또 위기를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세계로 전환하기 위한 사유를 촉발하고 있다.

- 가능성 하나 : ‘인간 활동 멈춤-지구의 회복’에서 ‘공존의 가치 확산’ 가능성

코로나 19로 인류가 멈추고 지구는 짧은 시간에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바이러스의 역설이다. 역설에서 전환의 가능성을 본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환. ‘돈’ 중심의 가치가 ‘생명 공존’의 가치로 전환된다면, ‘예술-연극’도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 가능성 둘 : ‘공공의료의 힘’을 통해 ‘공공재의 가치 보장’ 가능성

전 세계에서 비교적 공공의료 시스템이 안정적이었던 한국은 방역 모범국이 되었다. 한 사회의 근본이 되는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의료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며, 의료운동진영과 시민운동 진영이 의료민영화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 온 덕분이다. 예술-연극도 의료처럼 공공재다. 특히, 디지털 트랜스포머 혁명의 시대가 ‘인간다움’과 ‘사회다움’을 잃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기 위해 필수적인 공공재다. 그러니, 공공재-예술이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세대를 넘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병원과 같은 물리적 공간(창작과 소통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 문화예술 거점들에 대해 건립비용, 임대비용, 세금혜택, 건물주 혜택 등의 지원을 궁리해야 한다. 가능하다. 공동체의 과제로 인식한다면.

 

- 가능성 셋 : 재난지원금이 보여준 ‘기본소득’ 또는 ‘참여소득’ 의 가능성

IT, 디지털, AI 등 인간 노동의 많은 부분을 과학 기술이 대체한다면, 노동은 좀 더 느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느슨해진 노동 환경은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으로 한정된 기존 노동의 의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놀이, 예술, 돌봄, 봉사, 사회 운동, 그리고 존재함 그 자체로 ‘인간다움’과 ‘사회다움’에 기여 해온 ‘돈’으로 교환되지 않았던 노동이 가치를 부여받고 궁핍 상태를 벗어날 수있는 가능성을 본다. 재난지원금 논의에서 확산된 기본소득이나 참여소득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논의를 기대한다.

 

 

#에필로그 : 풍경2 - 포스트 코로나

동학 농민 혁명 기념일에, 정권 3주년을 맞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 회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이 발표되고 종일토록 자화자찬의 해설이 반복 재생된다. 기후위기, 공공 의료, 노동권과 삶의 사각지대에 몰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대책은 누락 되었다. 아니, 삭제되었나? 기시감-끔찍한 재난을 겪고도 성찰하지 못하는 인류 역사의 반복. 재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미-래-없음. 디스토피아. 인류 역사(호모사피엔스 기준)에서 1000분의 999의 시간 동안 노동은 예술, 사냥, 놀이, 휴식 등 삶 그 자체였다는데. 가능성 없는 오래된 유토피아일 뿐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한국판 뉴딜’은 나와 우리의 예술-연극-노동의 미래를 누락시켰다. 역시, 가능성은 스스로 현실화하지 않는구나. 동학 농민 혁명 기념일, 그때 백산이 된 사람들이 가슴에 박히는 날.

 

 

 


유  미  희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극단새벽 연극아카데미 수료.

여성문화기획 주관 : 여성주의 예술 워크샵-자아를 찾아가는 연극 여행/춤 여행 수료.

울산 사이코 드라마 학회 워크샵 수료.

극단새벽 단원.

웅진출판사 독서 교실 동화읽기 강사.

소극장 품 대표.

인디밴드 'ACT' 보컬.

 

대표작품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히바쿠샤> <두 개의 시선>

<하여도> <니르바나로 가는 길>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 <우리는 안드로메다에서 왔다> <새야매야>

<옥탑방 두여자> <인디밴드 액트 콘서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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