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역-문화예술] 코로나19 때문에! 아니 덕분에? (변현주)

 

 

 

 

 

코로나 19는 내게…

대한민국은 5월 6일부터 생활 속 방역으로 살짝 고삐를 늦추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밖 출입이 자제된 어린이의 소원은 씽씽이를 맘껏 타보는 것이 되었다. 이제 그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코로나19는 다시 일상의 긴장을 놓지 말기를 경고한다. 작품의 내용보다 안전을 앞세우며 공연을 기획하는 내게도 속상한 소식이다. 잠시 지난 2월 18일로 플레이백 해본다.

 

2월 18일 재택 1일차. 나의 일터인 극단은 일찍 재택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일상은 ‘우선 멈춤’이었다. 정지된 일상 속 불안과 위기가 예고되었지만 함께 견디는 것 말고는 없었다. 모두들 집에서 머물 요량으로 사재기를 했다. 그 며칠은 마트에서 두부 한 모 사기가 어려웠다. 생명을 지키는 마스크도 동이 나고. 마스크 공급에 따라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르락내리락 했다. 하루가 이틀이 사흘이 그렇게 여러 날들이 멈추어 흐르니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서서히 이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간 대한민국의 ‘배달 문화’, ‘온라인쇼핑 문화’ 덕에 사재기도 사그라들었다. 청도 대남병원 격리병동의 정신장애자들의 집단 감염과 사망소식은 내 명치끝을 따갑게 했다. 죽음이 찾아든 곳이 코로나19 감염자만이 아니었다.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높아졌고 그 과정에서 택배기사의 과로사 소식도, 집밖을 나오지 못해 홀로 음식을 챙겨 먹을 수 없어 돌아가신 독거노인, 자식들을 만날 길 없이 요양병원에서 먼 길을 떠난 노인들 등 안타까운 죽음들을 삼키며 그 시간들을 견디어야 했다. 6.25를 겪은 어느 노모는 ‘그때는 밖을 다닐 수 있었으니 지금이 전쟁보다 더 하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계절성 우울과 갱년기 우울이 겹친 나에게 정지된 3월을 멈추어 견디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치 않은 담금질(?)을 했다.

 

재택기간 동안, 빈 사무실을 찾아 들었다. 공연을 할 수도, 연극교육을 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후를 위한 준비를 멈출 수는 없었다. 봄이 오기 전 먼저 인사를 하던 큰길 모퉁이 목련꽃도, 사무실 건물을 싸고 자리한 동백꽃도 목을 떨구었다. 시간은 흐른다. 연산홍과 철쭉이 새침하게 앙다문 봉우리로 유혹할 때 벚꽃은 정지된 일상에 마법의 가루를 뿌리듯 휘날렸다.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사월은 잔인한 달…’처럼 정지된 장면에도 시간은 흘렀고 생명은 시간의 룰을 역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4월까지 코로나19를 처절하게 마주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덕분에!

노동자들이 일을 멈추었고, 공장이 멈추었다. 도로가 비었다. 그 덕분에 하늘이 맑아졌다. 그래서일까, 한반도의 8배 크기 오존구멍도 사라졌다고들 한다. ‘우선 멈춤’ 덕분에 인류는 잠시 삶, 생명, 자연, 지구, 시스템을 ‘거리 두고’ 보게 되었고, 77억 인류의 집인 지구는 ‘숨’을 고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기형적인 말[각주:1] 이 생겨났다. 이 말은 내게 엉뚱하게도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떠 올리게 한다. 그는 나치즘 선동에 공헌했던 리얼리즘 연극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연극을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지 않고 ‘거리두기’를 통한 이성적 각성을 강조했다. 기존 예술양식은 관객들을 인물과 상황에 몰입시켜 궁극적으로 ‘정화(카타르시스)작용’을 통해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세뇌시키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거리두기’는 ‘이성적 성찰’을 동반한다. 2020년, 우리는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인류라는 종에 대해, 관계와 존재에 대해, 자본의 세계화가 망쳐버린 숱한 것들에 대해 ‘이성적 성찰’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역습은 인류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이다. 그래서 인류는 피할 수 없는, 그래서 극복하고 해결해야할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코로나19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극장을 닫고, 관객을 만날 수 없었기에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열 수 없었기에 당장의 배고픔과 임대료를 수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에 대해, 예술노동자의 삶에 대해 궁리해 보기로 한다.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예술창작연금?

사실 코로나19를 만나기 전부터 하던 고민이기도 하다. 이미 관객과 프로그램 참여자의 연령층과 참여수를 이전과 비교해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2019년, 35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했던 극단은 문화예술, 특히 연극계의 생태계와 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면서 현실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부산은 초고령화 도시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고 청년인구가 줄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대부분 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은 지원금이 없으면 공연제작을 할 엄두를 못내는 현실이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 의존도가 높아졌고, 자생력 즉 자체 기획력을 통한 관객화는 점차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을 투여하여 작품성까지 담보한 공연물은 고가의 관람료라도 관객몰이[각주:2] 를 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연극과 이러한 상업주의 공연물의 토대는 다르다. 지역연극에는 ‘사람’은 있고, 상업주의 공연물에는 ‘돈’이 있다. 돈으로 작품과 사람을 사고 공연으로 돈을 번다. 이런 현실에 2020년 초입 코로나19가 덮쳤다. 부산공연계 3월 매출이 11만9천원[각주:3]이라 한다.

 

이제 ‘재택근무’도 할 만한 것으로, 온라인 수업도 대면수업과 함께라면 괜찮은 것으로 되고 있는 듯하다. 4월초 온라인 수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 허둥대던 시기를 넘어서자 교육자들도 다소 안정을 찾은 듯하다. 나 역시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성을 어떻게 원격수업으로 대체할 수 있으랴’라면서 현장수업이 될 날을 기다리다가 자신을 온라인 원격수업 시험대에 올렸다.[각주:4] ICT(정보통신기술)강국답게 짧은 기간 안에 원격 온라인 수업체제가 정비되고 체계화되고 있다. 만약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가는 단계별 빗장이 있다면 ‘비약적’으로 다가서게 하는 빗장을 열어젖힌 셈이다. 역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빠르다. 그래서 나는 무섭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사라질 직군들이 이미 예측되는데 코로나19에 대처한 삶의 방식들이 이를 앞당기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ICT와 AI(인공지능)시대가 훅훅 우리의 삶에 끼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은 호모루덴스(놀이적)이다. 놀이적 인간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일을 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못가고, 바깥 출입이 자제되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화시키는 환경이다. 이런 시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돋보이는 사례들이 있었다. 음악인들은 힘들어하는 지구인들을 위해 실시간 연주로 음악을 들려주고, 화가들은 온라인 전시를 하고, 공연예술도 비대면 시도들을 했다. 물리적 거리를 마음으로 이어가는 응원과 위로를 나누는 순간들이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거칠게 말하면 교육과 오락이다. ‘각성’과 ‘정화’의 기능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화’, 즉 ‘치유’의 기능을 한 셈이다. 그리고 예술이 공공재임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하겠다. 문제는 예술인의 생계다.

 

예술인실태조사[각주:5]에 따르면 예술인을 14개 분야 총 131,332명으로 보고 있다. 물론 실제 예술활동을 하는 예술인의 수는 그보다 많을 것이다. 여튼 대한민국 51,843,195명(2020년 4월 기준)의 0.25프로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의 1%로도 되지 않은 예술분야 종사자들 중 연봉 억대급의 극소수를 빼면 대부분 다른 일을 하거나 혹은 관련한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예술창작활동을 간헐적으로 혹은 주기적으로 이어가는 예술가군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2015년 가장 가난한 직업은 연극인, 2016년은 시인이었다. 창작만으로 밥을 먹을 수 없고, ‘가난’을 간판으로 살아가는 직종으로 오래토록 ‘존경(?)’받고 있다.

 

예술노동자들 중 이미 가난과 질병, 과로로 스러져간 숱한 목숨들 중, 2011년 1월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를 계기로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고 예술인복지재단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예술인들의 삶의 질은 그닥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가난을 증빙해서 등수 안에 들면’ 격년으로 1회 창작지원금 300만원[각주:6]을 받을 수 있고, 지금처럼 위기상황에 긴급융자를 저리에 빌릴 수 있고,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한 사회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술종사자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또한 예술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지닌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잊지 않기를.

 

올해 국방예산이 50조, 병장 봉급이 54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2020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가 1인 가구 527,158원이라고 한다. 예술인 13만 명에게 매월 50만원 정도 예술활동(창작)연금을 지급한다면. 연간 7,800억이다. 이러한 지원이 가능해 진다면 예술노동자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창작, 교육, 기획 등 사회적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예술재의 공공성은 확장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아니 이미 진입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류가 일과 놀이가 융합되는 시대에 예술인들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 억측(?)해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본다. ‘기본소득제’의 현실화다. 4. 15총선을 치르고서야 ‘긴급’ 재난지원금이 5월 11일부터 5부제로 지급될 예정이다. 재난상황이라 실현되는 것이지만 ‘기본소득 시대’가 가능할지 실제 체험해보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이것도 억측일까.

 

 

뭇 생명이 공존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푸른 별을 꿈꾸며

푸른 별은 인류만의 집이 아니다. 코로나19는 경고했다. 그 동안 푸른 별 안에서도 잘 사는 집이 못 사는 집을 제 멋대로 다루었고, 어쩔 수 없이 눈치보고 밀고 당기며 집안 살림을 꾸려가다가 역병이 돌자 집안 관리를 잘하는 집이 눈에 띄고 있다. 하지만 인류공동체는 유기적이어서 한 집이 안전하다고 안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력과 연대, 소통이 절실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 특히 연극. 오! 아날로그, 아날로그적 생산수단이여! AI시대가 도래해 인간과 AI가 공존한다면 그 또한 현실이고, 연극은 현실의 반영이기에 무대 위에 AI배우와 인간배우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AI배우가 무대를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류가 지구별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없다면 어찌 그것을 연극이라 부를 수 있을까. 5월 소극장 공연을 준비하면서 ‘안전’한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75석이 만석인 소극장에 25명만 제한해서 예약을 받기로 한다. 객석과 무대 사이를 조금 띄운다. “관객 여러분 발열체크합니다. 사전 예약으로 간단한 인적사항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꼭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안전한 관람문화 위해 함께 만들어요.” 갑자기 슬프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까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이다. 극단은 3월부터 [미리티켓]을 발행했다. 은행 융자도 내었지만 [미리티켓]으로 응원하고 후원해 준 관객과 후원인 덕분에 공연제작까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나눌 객석기부운동을 시작[각주:7] 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함께 만드는 [테마연극제][각주:8]도 준비에 들어간다.

 

코로나19를 경과하는 지금, 떠오른 과제들을 복기해본다. 자본주의 개발과 생산에 대한 재고, 대체에너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절약하기, 비인간적 격리시설 속 장애인들의 인권살리기, 혐오와 배재를 넘어서기, 한반도의 평화공존, 외롭게 살지 않기 위한 삶의 형태 재구성, 대안적 소비활동하기 등. 인류가 ‘이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이타적’이어야 함을, 조금은 ‘불편해야 함을’ 잊지 말기를. 5월, 이팝나무가 싱그럽게 피었다.

 

 


변  현  주

영문학 드라마 전공. 극단새벽 입단('96)하여 기획, 연기, 교육활동을 해 오고 있음. 연극예술강사로 활동 중이기도 함. 2013년 예술강사 처우문제를 해결하고자 노조 만드는데 함께 하다 현재 공공운수노조 예술강사지부 부울경지회장을 맡고 있음.

<제2회 아시아연극인페스티벌>('97), <메이데이문화제>('98~2007), <연리문화제>(2009~2015), 영화제>(2015~2017)기획 등 대안문화형성을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음. 배우로서 대표작 변현주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히로시마 메시지>, <신의 아그네스> 등


 

  1. 그냥 물리적 거리두기혹은 예방적 거리두기라고 하면 더 적절한 용어이지 않을까 한다. 공동체 지향적 언어인 사회적라는 형용구가 거리두기앞에 붙어서 혹시 왜곡되어 혐오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본문으로]
  2.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부산 공연(2019. 12 13~ 2020. 2. 9) 70회로 부산 대극장 뮤지컬 기준 역대 최다 공연 되었으며,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했다고 집계했다. [본문으로]
  3. 국제신문 331일자. 김민정 이동윤 기자 [본문으로]
  4. 현재 연극예술강사로 삼성여자고등학교에 파견. 51일 원격수업으로 첫 수업을 함. 온라인 수업이지만 학생들은 연극수업을 통해 친구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즐겁고 재미있다고 피드백했다. [본문으로]
  5. 예술인실태조사는 예술인복지 및 창작환경 등에 관한 변화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 19881회 실시. 1991년 통계작성 승인 후, 2015년에는 '예술인실태조사'로 명칭을 변경한 후 2017년까지 조사됨. [본문으로]
  6. 이 사업은 2013'예술프로그램 연계 창작지원(창작디딤돌)', 2014'예술인 긴급복지지원', 2015년 이후부터 '창작준비금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문으로]
  7.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 문화예술&청년과 어깨걸기 프로젝트제안으로 연극 <그 여자의 소설>10~30대 청년들 50명을 초대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8. 효로민락소극장의 주요프로그램으로 기획되는 시민사회와 함께 만드는 [테마연극제]’, 2020년이 시작이다. 올 해 테마는 <시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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