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역-대학교육]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대학 강의의 현단계와 딜레마 (3)

 

<3부>

 

김대성 : 공통 질문에 보면 온라인 강의, 변화된 강의 환경에 의해 느끼는 어떤 불만이나 불안이 있겠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수업을 함께 하고 있다”는 감각은 없을까, 혹시 그런 게 느껴졌다면 무엇이 있을까를 불만과 불안이라는 감정 속에서 같이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다는 질문이 하나 있었고, 다섯 번째 질문은 범위가 커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별도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은데, 강의라는 공통장에서 각자의 몸들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 이 몸들이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비유적이고, 직관적으로 안 와 닿을 수도 있는데, 이게 결국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일 테고, 아주 직접적으로 말해본다면 강의하는 사람의 몸 상태, 듣는 사람의 몸 상태를 말합니다. 시간에 맞춰서 강의를 하는 곳에 여기 와야 하는데 지금은 눈 뜨자마자 강의를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강의를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상당히 간소화 되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녹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한 측면 또한 있다는 점입니다. 녹화 버튼을 눌렀으면 온전히 교수자가 홀로 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진 거 같습니다. 강의 현장에 가면 학생들과 교류를 하면서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고, 에너지가 꺾일 수도 있지만 강의실 현장에서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함께 하고 있다는 감각’을 상상이라도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에 반해서 온라인 강의에선 그런 관계성이 차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오로지 말과 시청각 자료를 통해서 수업을 ‘증명’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 오는 과부화가 실로 클 것이고 또, 일타강사가 아니기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강의가 어떻게 들릴까라는 의문과, 또 자기 영상 찍힌 걸 보면 심란하거든요. 그리고 학생들이 또 지금 이걸 잘 듣고 있을까? 그런 판단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준비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준비를 한다고 해서 또 이게 쑥쑥 안 나온단 말이에요. 이것을 구현하는 인터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이 툴도 익혀야 하고, 예를 들어 PPT만 하더라도 어떤 바탕화면에 어떤 배치와, 어느 정도의 분량을 썼을 때 시청하는 데 쾌적함을 느끼는지, 혹은 숨 막히는지, 그런데 그것은 어떤 콘텐츠가 적혀있는지 만큼이나 그 배치가 중요한 거잖아요. 이런 연습이 되어있지 않고, 또 우리 모두가 유튜버는 아니지만 유튜브는 보잖아요. 그러니까 아주 단순한 것도 전달하는 방식들, 그리고 수준이 또 올라와 있어요. 그런 수준 속에서 내 강의하는 모습을 보면 심란해지는데,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이런 몸의 변화, 관계성, 서로를 감각하는 방식, 혹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태도가 어떤 방식으로 달라지고 있는지도 같이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권두현 : 불만과 불안과 더불어 어떤 연대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대략 이런 질문을 같이 던져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연대’라는 글자를 본 순간,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못지않게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프라인 강의도 그렇고, 온라인 강의도 그렇고 연대의 감각을 딱히 느껴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들 강의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대부분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강의실에 들어가고 나올 때, 선후배나 동료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게 연대일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렇게 잠깐 지나치고 나면 훨씬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라인 강의가 되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 진 것 같은 게, 우리가 이제 온라인 강의, 오프라인 강의라고 구분하고 있지만 오늘 나온 얘기만 보더라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방식이 선생님들마다 모두 다르잖아요. 온라인 강의라고 부르는 것에도 여러 가지 다른 방식들이 있고, 그 각각의 방식들을 체득하고 그 방식에 맞춰서 강의를 제작해내느라 예전에 비해 강사들이, 선생님들이 훨씬 더 자폐적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프라인 강의 때는 “너 강의 왜 하냐”라고 물으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생존을 위한 강의였다고 한다면, 지금 온라인 강의에서는 ‘on-air’ 라는 감각을 24시간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강의가 시작되고 끝났다고 해서 제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 쪽지와 메일에 응대해야 하고, 그러면서 공지하고, 공지를 수정하고, 저는 항상 ‘온’이라는 상태로 ‘라인’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이제는 ‘생존을 위한 강의’가 아니라 ‘강의를 위한 생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강의와 생존의 감각이 뒤바뀐 것 같고, 강의를 위한 생존이라는 형식이 강사로서 저에게는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이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강의를 위한 생존에는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투여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의 스킬이나 노하우, 강의 제작의 툴과 매뉴얼, 이런 것들을 철저히 혼자서 체득해 가는 과정이 너무 외롭고, 제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정보들도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또 강사들끼리의 연대일까. 그것도 아닌 거 같아서, 저는 이 ‘연대’라는 말이 계속해서 걸리는 거 같아요. 어쨌거나 강사는 지금 가르침과 동시에 익혀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가르치면서 그것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위해 별도의 기술을 익히느라 바쁘다는 것, 덕분에 예전보다 더 쉴 수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엄청난 부담인 것 같고, 그래서 온몸으로 이 상황을 때우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몸’ 이야기를 해볼 수밖에 없겠는데요,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절차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에서는 그 절차가 너무 간단하게 생략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강의 전날부터 내일 강의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야 되겠다고 복기하면서 잠자리에 들고, 그러면서도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잘 못 이루고,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갖춰 입고, 시간을 계산해서 집을 나가고, 걷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강의실 문을 열고, 강단까지 걸어 들어가고, 걸어 들어가는 동안에도 수강생들의 눈빛을 은근히 신경 쓰고, 그리고 수강생들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성이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눈 뜨자마자 모니터 앞에 앉으면 강의가 시작되죠. 저는 ZOOM으로 강의를 하고 있진 않지만, 노트북 카메라 렌즈가 반짝거리면 곧바로 강의가 시작되고, PPT 녹화라고 하더라도 3, 2, 1, 하면 강의가 시작되니까, 이런 식으로 ‘전자신호’는 저를 순식간에 신호 체계 안으로 초대하고, 이에 따라 제 몸가짐과 마음가짐은 그 ‘가짐’의 준비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변환을 겪는 거죠.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강의를 하게 되면, 대면 강의일 경우에는 계속해서 뭔가 에너지가 환류되는 느낌들을 받는데, 상대와 나 사이에서 에너지가 환류되는 것이 아니라, 강의하고 있는 내가 나를 떠올리게 되는 이런 재귀적인 상황이 되게 괴이하게 느껴지고, 그런 부분들이 좀 힘들다고 생각해요. 이번 학기 강의가 지금 9주차까지 진행됐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나의 자아가 온라인상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온라인 상태에 있는 가상적인 자아가 나를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가상적인 자아는 이렇다 할 습득을 모르는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저는 1주차 온라인 강의 때 겪었던 당혹스러움, 어려움을 아직까지도 매주 반복해서 겪고 있습니다. 지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제가 온라인 강의 환경에 적응을 했다기보다는 사실상 적응을 포기했기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친숙하지도 않았던 마이크나 동영상 제작 기술과의 관계 이외에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니까, 이 관계 안에서 무엇을 더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혼자 더 침을 튀기고, 땀을 흘리고 이러면서 강의가 끝나고 나면 왜 더 이끌어내지 못 했는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소진되는 현상을 겪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관계의 가능성 자체가 없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형식도 제공되지 않으니까, 정반대의 의미에서 제가 또 소진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는 온몸을 써서 강의를 진행했다고 하면, 지금은 입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 입만 제외하면 나머지 몸은 소외받는 느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떠들고 있을 뿐이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 감각.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전제하고, 청자의 리액션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그런 의미일 텐데, 그런 관계 자체가 저는 지금 그려지지 않습니다. 앞에 있는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그 얼굴은 늘상 비어있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강의를 진행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입을 움직이는 내내 조바심은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김대성 : 왜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말씀에 비유하면 대면 강의는 하얗게 불태우는 건데, 온라인 강좌는 ‘지금도 불타고 있어’ 같은, 계속 그것을 끌 수가 없는, 불 위를 계속 아등바등 거리는, 불은 꺼지지 않고 또 그 불타는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연대라는 말은 그런 환경에서는 가당치 않네요. 신민희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학교가 내려주는 지침만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사실은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뭔가 해결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까지도.

 

신민희 : 저는 이번에 처음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겪은 감각일 수도 있을 텐데요. 학교의 학사 시스템도 아직 모르겠는 상황에서, 화상 강의를 바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다른 선배들, 강사로 이미 일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예를 들어 같은 교양과목이면 교양과목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 시스템이 이런데 이렇게도 해 봤냐, 저렇게도 해 봤냐 서로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또 교양대학 사람들은 단체 카톡방이 있대요. 그래서 뭐 불안하니까 계속 학교를 찾아가고, 혹시나 가서 다른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해서. 학교에서 매뉴얼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고, 실행하면서 생기는 작은 오류들은 사실은 동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게 되더라구요. 불안해서 학교를 계속 어슬렁거리면서 너무 외롭다, 나도 단톡방에 들어가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 좀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수업을 함께 한다는 것의 감각을 저는 이 ‘동료 없음’을 통해 감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앞서 권두현 선생님께서 대면강의에서 동료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니까 궁금한 거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학교가 내려주는 지침만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사실은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뭔가 해결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까지도. 그런 것들에 관해 궁금한 게 더 많았죠.

 

이형진 : 저 같은 경우에는 협업이 대면 강의에서 많았던 것 같아요. 수업 전체를 10으로 수치화하면, 그 중 4는 학생들에게 맡기거든요. 저는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이 대답하면, 대답에 대해서 해설하고, 그런 구조 속에서 호흡이 생기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가 75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한다는 것은 힘든 것이기에, 학생들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잠깐의 공백 동안 ‘다음에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 수업에서는 ‘3, 2, 1’ 카운트다운이 되는 순간 자기 호흡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온라인 수업에서의 정적, 1초라는 정적이 너무 긴 거예요. 대면 수업에서 수업을 하다가 진행 순서를 잊으면, 학생들이 알려주면서 다시 수업을 진행하는 협업이 형성되죠. 또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몇몇 학생들은 ‘괜찮아’라는 눈빛으로 위로해주는, 그런 암묵적인 협업도 생기고요. 온라인 수업 동영상을 촬영할 때, 내 목소리가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나가야 한다는 점이 너무 버거운 거예요. 수업을 촬영하면서 호흡이 틀어지고, 대면강의의 협업 구조가 없으니까 1초도 쉬지 않고 수업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수업 동영상을 촬영하다보니 목 쉼 현상도 자주 나타나더라고요.

그리고 수업이라는 것이 교강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거지만, 실은 교강사가 수업을 하면서 배우는 게 있죠. 내 머릿속에서 수업 개요를 짜고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의 지식들이 구조화되고 체계화되는 부분이 있는데, 온라인 수업에서는 제가 내레이션이 된 느낌이에요. 수업 교재나 자료도 직접 만들지만 수업을 통해 뭔가 배워간다는 느낌이 없는 거예요. 수업을 하고 나서, 제가 무슨 말을 전달했는지 무엇을 가르쳤는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학생들이 ‘수업에서 이러이러한 부분을 말씀하셨는데…’라고 문의할 때, ‘내가 이런 부분을 말을 했었나?’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번에 강의한 내용들은 정말 안 남는다, 말 그대로 강의만 했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시간관념도 변했는데요. ‘오늘은 월요일, 화요일…’이 아니라 ‘오늘은 이 과목 영상 촬영하는 날, 다음 날은 저 과목 찍는 날’로 시간을 인식합니다. 강의 영상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시계를 봐서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아는 게 아니라 이 교과목 영상을 촬영했기 때문에 곧 주말이 온다는 식의 시간 감각.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벌써 9주차, 10주차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여태 접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과목들을 가르치니까, 지식이 없음에도 수업 자료를 만드는 거죠. 이제는 강의 자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발췌’한다, 만들고 나면 이 내용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읊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정말 아나운서나 내레이션이 된 기분이에요.

뿐만 아니라 몸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감기 걸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저는 학원에서도 일을 하는데요. 너무 불안했던 게,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어제는 반팔티를 입고 커피 마시고 출근했는데 머리가 너무 어지러운 거예요. 그래서 노파심에 열을 재니까 37도가 나온 거예요. 코로나 사태 발생 후에 어떤 생각을 하냐면, ‘이 시국에 코로나 걸리면 내 인생은 끝이겠구나.’ 사실 저희(강사)는 아파서 일을 쉬면 언제든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직장인이 아니잖아요. 코로나에 감염되면 언제든지 다른 강사로 대체될 수 있으니까요. 학기 중에도 강사가 대체되는 사례가 있기에, ‘여기서 내가 몸 관리를 못하면 끝이구나.’하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 비타민 등 각종 약을 챙겨 먹고 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과로해서라는 결론을 내렸죠. 과로해서 피로가 축적되면 쉬어야 하는데, 약으로 버텨야하고, 이젠 혹시 모를 상황에 때문에 몸 관리를 과도하게 해야 한다는 점. 그렇다고 아픈 티를 낼 수 없고 피곤해도 피곤한 티를 낼 수 없는, 좀비 상태. 진짜 좀비인 것 같아요. 수업하는 동안에도 뇌는 안 움직이는데, 몸은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앞서 말씀하셨다시피, 비대면 수업은 수업에 들어가기 위한 의례 과정이 없는 거잖아요. 강의 노동을 위해 강의실에 가야하는 시간이 절약되니까, 오히려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몸이 그런 상태에 적응해버리는 거예요. 시간상으로는 노동량이 적어졌는데 더 이상 동력을 낼 수가 없는 그런 신체. 딱 주어진 시간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이를 단지 게을러졌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게, 단지 제 입장에서는 뭔가 더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이런 게 게을러진 건가? 아니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건가?’ 이런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성 : 전면적으로 온라인 강좌로 변하면서 학교도 학교 나름대로 서버를 증축하고, 학생들도 달래야 하고, 형식적인 절차도 갖춰야 하고 있겠지만, 학생들도 원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 하고, 또 온라인 수업에서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안 될 때 그때그때 질문을 할 수 없고,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나가는 것 같고, 그런 불만들이 쌓이는 것 같고, 교강사들은, 특히 강사들은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만 하나 말하기 어렵고,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그래서 온라인 강좌로 해결해야 하는 상당히 많은 문제를 결국 해당 교과목을 진행하는 사람이 결정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그런 식으로 몰아가고 있을 때, 그걸 다 감수하고 감내해야 하는데, 온라인 강좌 진행에 필요한 툴 사용이라든지, 온라인 강좌를 진행할 때,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나는 못 하지만 그래도 잘 해냈어’처럼 보람을 느끼며 땀 닦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참 어려웠지만,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이런 툴 사용도 너무 어렵고, 이 정도 콘텐츠를 내가 올려도 될지 노심초사 하곤 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강좌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남긴 걸 봤는데, 뇌에 충격이 간대요. 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 한 분이 온라인 강좌를 하면서 과호흡을 느꼈다고 하거든요. 그건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이잖아요. 그 글을 쓰신 분은 뉴미디어나 테크놀로지에 대해 잘 알고 적응도 빠르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온라인 강좌를 진행하면서 과호흡을 느꼈다고 하고, 그 글에 또 다른 강사분이 자신은 뇌에 충격이 가는 걸 느꼈다고 적어서 저는 이게 다소 농담 섞인 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 실제로 제가 뇌에 충격이 가는 걸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증상에 대한 고통을 인지하기에 앞서서 온라인 강좌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능력부족이나 혼자 못 쫓아가고 있다는 그런 불안감이 앞서 있다 보니 몸을 보살피기보단 몸을 상하게 하고 있고, 내가 지금 정신적으로 타격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질 못하는 거예요. 고통을 느껴야 그걸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건데, 말하자면 온라인 강좌를 하며 겪는 고통은 통용되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다들 잘 하고 있으니까, 다들 잘 하고 있고, 한편에선 학생들의 불만은 쌓여있고, 그래서 내가 어떤 식으로든 강의를 통해서 그걸 해소시켜줘야 한다는 내몰린 상태가 되어 버리니까, 그런 하중을 엄청 받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한 2주 정도는 진짜 집에서 누워서 지냈어요. 강의도 못 올리고. 왜냐하면 제작한 강의가 성에 차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당장 답은 없고, 바깥에 활동은 못 하겠고, 그래서 누워서 고민하고 잠도 못 자고 있다가 매번 밤을 새워서 강의를 제작하고 겨우 업로드를 하는 형편이었는데, 강사 중에 누군가가 온라인 강좌를 하면서 받는 고통에 관한 글을 써줘야 ‘아, 나도 아프구나’ 이런 걸 느끼는데, 뭐랄까 너무 어리석다고 할까요, 바보 같음 때문에 또 화가 나더라구요. 왜 나는 이렇게 아픈데, 이 아픔을 진단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니까 그제서야 나도 아프다는 걸 인지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미련한 걸까, 무엇에 이렇게 쫓기는 것일까, 혼자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박지원(교수자) : 저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 다 공감이 됩니다. 오늘 수업 내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는데, 연대라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정치적 연대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잖아요. 그 전에도 정치적으로 강사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지금 제가 가장 불만이 있는 부분은 학교가 이 수업의 문제를 결정하는데 제가 전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부분이거든요. 사실 수업은 이 사태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여기면 할 만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주체가 될 수 없고, 의견을 낼 수 없고, 항상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는 점이 가장 불만이고 답답하거든요. 이제 코로나19 체제가 일종의 전시 동원 체제처럼 모든 사람이 다 협조해야 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잖아요. 그러니까 강사 같은 경우에는 이런 불만을 이야기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무슨 불만이 생겨서 학교에 전화를 하면 겨우 전화할 수 있는 게 조교 선생님인데, 조교 선생님들 더 힘들잖아요. 그러면 “아 죄송해요 선생님, 고생 많으세요.”이러고 끊어요. “선생님 힘내세요.” 이런 말 밖에 못해요. 우리의 힘듦을 말할 수 없는 전시 동원 체제라는 상황적 특수성들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선생님들께서 다 말씀해주셨지만, 문자 그대로 몸이 아프잖아요. 하루 종일 앉아있으니까 어깨도 아프고 잠도 잘 못 자고, 마음도 항상 우울하고. 이게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의미의 산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 새롭게 등장한 소위 정동적인 노동들이 노동의 범주에서 논의되지 않던 부분들인데, 우리가 이미 그걸 노동으로 본다면 과잉 노동을 하고 있는 거죠. 초과 노동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정동적인 초과 노동에 대해서 정치화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가 없고, 그동안 그걸 논의해오지 않았고, 이제 논의해야 하겠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몸에 변화라고 하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요. 강의실이라는 공간이 공적인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강의실로 들어가면, 개인이 지닌 사적인 것들을 어느 정도 감추고 공적인 공간에 입문해서 기계적으로나마 평등을 경험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실시간 화상강의를 하면 제 사적인 공간과 함께 거기에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책상 위치를 바꿨어요. 원래 책상이 있던 위치에서 제가 사는 공간이 너무 보이는 거예요. 좁고 궁색해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창문 쪽으로 위치를 바꿨어요. 실제로 학생에게 자기는 자기 집 배경을 보여주기가 싫으니 비디오를 꺼도 되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온라인 수업이 주는 쾌적함도 계급적으로 분배가 되는 거더라고요. 이 온라인 수업이 과연 쾌적한가. 누군가에게는 쾌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학교에 나가는 게 더 쾌적할 수 있거든요. 나의 일상적인 삶들, 사적인 삶들을 모두 끌어안고 공적인 곳에 들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몸이 힘들기도 하네요.

 

김대성 :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또 어떤 부분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박준훈 : 이건 약간 앞서 이야기 하신 부분들에 대해서는 죄송한 이야기기도 하고, 반대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제 주변 학생들이 예체능 계열 빼고는 한두 명씩 다 있는 것 같은데, 꼭 동아대가 아니더라도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겉으로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되게 불만, 불평, 불안한 것들을 이야기 하는데, 사적으로는 사실 좋고 편하다, 누워서 볼 수 있다, 졸면서 봐도 안 걸린다 이런 이야기까지 막 나옵니다. 그러니까 학생, 듣는 사람들과 강의하시는 분들 이 두 관계가 더 벌어지게 된 것 같고, 듣는데 필요한 노력이라든가, 듣기 위해서 집중해야 하는 부분들도 줄었고, 또 대부분 대학이 절대평가로 넘어가게 되면서 그 부담감도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래서 물론 주제 ‘아픈 몸’과 관련해서는 아픈 상태에서 들을 수 있다거나, 아플 때는 다음 기회에 듣는다거나 어떤 불편한 상태의 신체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학생들이 등록금을 인하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연대’에는 분명 근거는 있지만 또 일부는 약간 도구적으로 이런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의 편한 심리와 그래도 일단은 권리를 뺏겼다는 이중적인 심리가 같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지원(학습자) : 제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학생들 문의 전화가 초반에도 엄청 많이 왔고 아직까지도 많이 온대요. 우리 학교가 강의 (재생) 배속이 안 되는데, 배속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유가 많아요. 교수님 말이 느려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강의 한 번 더 들었으니까 나중에 한 번 복기한다고 쓴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안 좋게 사용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죠.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프로그램 때문에 오류로 로그인 인정이 안돼서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수업의 질이 떨어졌다는 게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교수님의 강의 스킬을 좀 더 관전하듯이 바라본다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는데, 수업을 듣는 내가, 나의 수업 태도의 질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거죠. 내가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는데 수업의 질이 어떻게 좋아지느냐,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수업의 질이 계속 떨어진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는 오히려 학교 수업을 더 안 듣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 무슨 인터넷 강의를 했다고 질이 떨어지는가? 그래서 저는 사실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는 게 아닌가?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게 매체가 바뀌고 교수님이 대충 수업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어떤 학생들은 대면 수업 때보다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사실 학생들이 ZOOM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 강의를 하는 동안 앞에 앉아있어야 하니까 너무 싫다, 배속 돌리면 40분이면 들을 수 있는데, 1시간 10분이나 듣는 게 너무 싫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 저는 질이 떨어지는 이유에 학생들의 태도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초반에도 말씀 드렸듯이, 뭐 제가 더 게을러졌고, 그게 너무 명확하게 다가오는 거죠. 개강을 하면 그 힘든 등굣길을 거쳐서 학교에 와서 수업을 여러 개 듣고, 과제도 하고 성적으로 내가 한 학기 열심히 했지. 이런 걸 알 수 있는데 요새는 내가 공부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과제 낼 때쯤 돼서 급하게 해서 내고, ‘그러면 내가 뭘 하지?’ 이러면서 계속 찾아보는 거예요. 원래는 토익이나 이런 취업 준비들을 휴학하고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개강을 하고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고, 분명히 등교 시간은 빠지지만 수업시간에는 공부를 하고, 강의를 분명히 듣고 있는데 공부를 안 하는 느낌이 들고, 뭔가 따로 자격증을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운전면허라도 따야할 것 같고, 뭔가 다른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아니면 진짜 분명히 대학생인데 백수인 것 같고.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그런데서 오는 불안감, 분명 강의를 듣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저는 그런 데서 오는 불안이나 우울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원래는 방학 때만 그런데, 학기 중에 이런 마음이 드니까, 심지어 여행도 갈 수도 없지, 뭐 알바도 안 구해지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감기라도 걸리면 안 돼요. 제가 원래 기관지가 안 좋아서 꼭 겨울만 되면 감기가 걸리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감기가 안 걸렸거든요. 그런데 살짝 열이라도 오를 것 같으면 너무 불안한 거예요. 이게 너무 불안하고, 그리고 저는 직업이 없지만, 그래서 이제 집에서 수업을 들으면 되지만 부모님은 내가 걸리면, 부모님도 2주 격리가 되고, 그러면 이제는 그런 불안감,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물론 아프고 싶은 적은 없지만 아프면 죄가 되는 약간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든 거죠.

 

박지원(교수자) : 저는 지원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ZOOM 강의를 배속을 해서 넘기는 학생이라면 대면 강의를 해도 멍을 때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수업을 하든 잘 듣는 학생이 있고, 안 듣는 학생이 있고, 뭐 잘 듣다가 딴 짓 하기도 하고, 그런 건 어딜 가든 발생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강의 때문에 수업의 질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이게 약간 기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업의 질은 일종의 느낌의 영역이었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효율성이 가시화되어 버린 거죠. 사실 강의실에 앉아있으면 다 듣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 자리에 있어도 딴 생각을 하면 끝인 거고, 그게 인간의 당연한 속성이잖아요. 수업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이게 수치화가 되니까 내가 뭔가를 안 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자꾸 성과주의, 실력주의 이런 것들이 내면화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지원(학습자) : 사실 수업 시간으로만 따지면 제일 알찬 것 같아요. 아무 사담 없이 시간을 다 수업으로 채우시니까, 평소에는 10분, 20분 좀 빨리 마칠까 하시는 교수님들도 강의 동영상 출석 인정이 안 되니까, 그 어느 때보다 수업양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서 진짜 자기 느낌인 것 같아요.

 

이형진 : 질문이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지금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대학생들이 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평가가 이루어질 건데, 학생들 생각에는 강의를 잘 하는 사람이 분명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은 비판하는 맥락들도 있을 건데요, 그런 걸 평가하는 기준은 뭔가요? 왜냐하면 이건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우리는 힘들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국 평가를 할 것이고, 결과에 따라서, 그래서 그 온라인 수업을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한테는 아주 형언할 수 없는 욕을 먹는 강의도 있을 건데, 그 지금 대학생의 감각에서 그걸 판별하는 기준이 좀 궁금합니다.

 

박지원(학습자) : 제가 생각하는 제일 쉬운 기준은 제가 듣는 다른 선생님들, 다른 교수님들의 강의, 뭐 ‘다른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강의를 진행해주시던데, 왜 교수님을 이건 안 하지?’, 예를 들면 다른 교수님은 아까 말한 것처럼 화면도 안 띄우고, 집중이 더 안 된다, 피피티(PPT)를 왜 그런 식으로 만드시냐, 다른 교수님들은 더 정성들여 만드시는데, 그러니까 내가 듣는 다른 교수님들이 제일 비교 대상이 쉽고, 내 친구가 듣는 강의가 사실 비교가 제일 쉽긴 하죠.

 

김연우 : 아무래도 화면이 보이냐 안 보이느냐의 그 기준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얼굴이 보이냐 안 보이냐. 제가 듣는 수업 중에 그냥 PPT를 띄워서 수업을 하시는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얼굴 녹화 자체를 하셔서 영상을 올리시는 교수님이 계신데, 그 교수님은 집에서 움직이는 화이트보드 이런 걸로 이제 수업을 직접 다 하시는 분인데, 그 교수님에 대한 평가는 욕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 똑같은 수업 내용을 하는데 다른 분반의 교수님은 목소리만 나오고, 화면이 아예 안 보이고 그냥 한글 파일로만 수업을 하시는데, 이제 그 교수님은 수업에 집중이 안 돼서 좀 더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 얼굴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좀 더 비판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박지원 : 아, 이것도 진짜 문제인 게, 교수와 강사가 활용할 수 있는 교구의 수준이 다르거든요. 교수님들은 강의를 찍을 때 강의실을 독점할 수 있고 조교 선생님 도움도 받을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학교가 멀기도 하지만 제가 가진 자원 내에서 활용을 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PPT에다 얼굴을 작게 띄우는 방법도 시도해 봤는데 그러니까 제 노트북이 성능이 안 좋아서 터질 것 같더라고요. 성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내가 가진 자원 내에서 할 수 있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면에서 교육의 질이라는 것도 교수가 가지고 있는 자본과 강사가 가지고 있는 자본이 다르니까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권두현 : 주어진 자본은 달라도 역할은 같죠. 그러니까 강사들한테 지금 돌봄 의무는 엄청나게 가중되고 있는데, 강사들 역시도 돌봄의 대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전혀 고려도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강사들이 아프다? 강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아픈 몸은 고려 대상이 아니죠. 강의는 어떻게든 굴러가야죠. 아픈 몸에 대한 돌봄을 떠나서 오프라인 강의 때부터도, 보드마카 한 자루를 구하기 위해서도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행정지원실에 들어가면 ‘이름 적고 가져가세요’라고 말하는 조교를 마주치게 되죠. 이름 적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뭔가를 훔쳐가고 있다, 축내고 있다는 감각을 아주 강렬하게 심어주는, ‘우리의 자원을 네가 소모하고 있어’라는 감각을 각인시켜주는, ‘애초에 너를 위해 제공되는 자원은 아니지만, 쓰게는 해줄게’ 이런 식인 건데, 지원이나 자원 이런 것들이 다소 제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무한, 아주 기형적인 상황입니다.

 

김대성 :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 대학의 수업이 전면적으로 온라인 강좌화되면서 더 선명해지는 게 있고요, 더 빠른 속도로 몰락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선명해지는 게 몰락의 속도일 수도 있고, 또 오늘 의견 나왔지만 우리가 그동안에 당연시해 왔던 대면 강의에서 좀 놓치고 있던 것, 간과하고 있던 것, 혹은 소중했지만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또 보완해야 하는 것들, 이런 여러 문턱을 넘어가면서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또 이야기 나온 것들을 정리해보면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길 것 같은데, 마지막 질문으로, 다소 천편일률적이기는 하지만 각자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오늘 온라인 강좌의 문제, 그동안의 강의 해왔던 것에 대한 차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었잖아요. 그것들을 종합해서 각자가 희망하는 대학 강의, 이런 게 있다면 바라는 방향이나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 해결했으면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그런 논평을 듣고 오늘 좌담을 정리하면 어떨까 싶어요.

 

 

 

저는 일단 교수님들이 모르시는 학교 시스템 같은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전달을 제대로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좀 뭔가 소통이 돼서 말이 좀 일률적으로 나오는 그런 강의나 제도가 뒷받침되면 좋겠습니다.

 

김연우 : 저는 일단 교수님들이 모르시는 학교 시스템 같은 게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전달을 제대로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좀 뭔가 소통이 돼서 말이 좀 일률적으로 나오는 그런 강의나 제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휴강 문제 같은 것도 그렇고, 작년에 처음 저희가 노동자의 날에 수업을 아예 안 하는 걸로 들었는데, 그게 전날까지도 정확한 공지가 안 올라와서 수업을 하신 교수님들도 있고, 안 하신 교수님들도 있고 이런 식으로 좀 말이 다 다르기도 했고, 그래서 저는 제도적으로 이런 게 좀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온라인 시스템 같은 것만 해도 아시는 분들도 있고, 모르시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좀 대면 강의가 실시되고 나서도 고쳐져야 할 점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박지원(학습자) :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진짜 학교가 학교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교수님들이 매일 들어오시면 이 많은 인원을 다 어떡할 거냐, 다 못 받아준다고 얘기하시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수업할 사람이 없나?’ 생각했는데 수업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강의실이 없나?’ 그런데 폐과가 많아지고 그러니까 강의실이 더 넘쳐날 텐데, 학교에서는 매년 수강신청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민원을 고쳐주지 않나 생각해요. 학생들이 듣고 싶은 수업, 적어도 들어야하는 수업은 편하게 신청해서 들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강의실 대비 인원 수, 기자재 등도 조금 더 쾌적한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이게 뭐 너무 유토피아적인 발상일지 모르겠는데 학교가 그렇게 바뀌어 갔으면 좋겠어요.

 

신민희 : 코로나로 강의를 어떻게 할 건지 이런 이야기들이 막 돌았을 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입장이 떠오릅니다. ‘우리학교는 어떻게 하지? 다른 학교는 이렇게 한다고 하든데.’ 이런 것들을 리서치 하면서 불안감들을 계속 느끼고 있었고, 결국 경성대는 ZOOM을 한다더라. 그랬는데 또 ZOOM으로 강의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또 계속 물어봐야했던 과정들. 앞서 박지원 선생님(교수자)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지? 왜 이 시스템에 대해서’와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ZOOM으로 한다고 통보를 받고 곧바로 강의를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제가 강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경험한 것이 바로 이 과정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대면 수업을 하더라도 강사를 이런 식으로 상상하겠구나, 학교에서 명령을 내리면 그냥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도. 강사가 분명히 학교에 필요한 노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외래교수실을 강사들이 머무르지 못하는 구조로 바꾸는 일도 있는 듯합니다. 일부러 강사들 사이의 연대를 없애고, 강사들 사이에서의 말들, 군소리가 나오지 않는 구조를 만들려는 것과 무관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와는 별개로 오늘 좌담회를 통해 느낀 것인데요. 저는 정해진 날에 학교에 가서, ZOOM으로 강의를 하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앞서 말씀하신 ‘입사의 루트’를 거쳐 온 거예요. 저는 늘 화요일마다 학교를 가고, 학교에서 정해준 강의실에서, 준비된 촬영도구를 사용해서 ZOOM으로 촬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온라인 강의라고 통칭해서 얘기하지만 그 안에서 ZOOM이라는 형식의 차이도 있고, 학교에서 강의실과 도구를 제공하는 입장은 차이가 많구나. 그래서 온라인 강의라고 하더라도 ‘감각이 좀 달랐구나’라는 생각을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습니다.

 

이형진 : 저는 강사의 강의 연속성을 보장했으면 합니다. 강사라는 존재 자체가 교수 혹은 학교에서 배분하는 강의를 하는데요. 이런 배분은 강의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수업 돌려막기’ 식으로 이루어지죠. 이에 따라 강사는 특정 교과목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이 돼버리는 거죠. 앞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전임 교원은 강의를 못해도 재임용이나 계약에 있어서 큰 상관이 없잖아요. 반면 강사들의 신체는 배분 받은 강의에 따라 조정되고, 전공자인 것처럼 그 영역을 다 아는 것처럼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오늘 좌담에서 모두 무의식적으로 시간강사라고 말씀하시는데,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우리의 위치는 시간강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방증하는 겁니다. 사실 저는 강사법 이후에 강사가 맡는 강의에 대한 권한이 어느 정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아니더라고요.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학교에서 배분하는 강의를 군말 없이 해야 하는 거죠. 학교에서는 초과학점으로 강의를 몇 개 더 하라고 요구하지만, 강사 입장에서는 본인의 능력과 무관한 과목을 맡기 싫어하고. 이런 관행(돌려막기)이 여전하니까 자꾸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수업을 통한 강사의 자기 계발은 안 되고요. 분명 교‧강사도 교육을 하면서 배워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이 점점 사라지고요. 이 와중에 대학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에 대한 지원도 안 해주고요.

 

등록금에 강의료가 포함돼 있다고 하지만, 알아보니 등록금 중 상당수가 시설비로 책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금 학교에 아무도 안 오는데, 등록금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과연 강사가 사비를 들여 마이크, 화상 캠 등 수업 기자재를 구입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대학은 비대면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지원을 안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강사법 시행 이후 강의료가 삭감되었습니다. 2주치 수업 준비 급여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걸로 아는데, 왜 강의료를 삭감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강의 노동에 대한 임금 산출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이 봤을 때, 시간당 5만원에서 10만원을 받으니 고임금 노동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강의료도 국립과 사립, 학교마다 격차가 크잖아요. 동일한 노동력을 투여하는 건데요. 이런 문제는 대학에서 해결할 수 없는 거고, 정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 강사의 최저임금 개념을 도입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지금 강의료는 강사의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임금이라고 여겨지고요. 강사 같은 특수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또 다른 최저임금 개념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죠.

 

박준훈 : 저는 듣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좀 솔직하게 좋은 건 좋은 거고,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고, 학교가 됐건 학생이 됐건 아니면 어떤 집에 있는 사람이 됐던 좀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익명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자리는 필요할 것 같고, 학교는 아까 지원 학생이 말씀해주신 부분이 거의 제 생각과 다 비슷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온라인 강의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좀 더 지식전달 보다는 정보를 학생이 바꿀 수 있는 노하우 같은 내용들이 전달이 됐으면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서로를 좀 가엾게 여기게 된 측면이 있어요. ‘저 사람도, 저 학생도 얼마나 힘들겠나.’ 그 과정에서 경제 원리가 아무리 대학을 지배를 해도,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욕망이 있다는 걸 우리가 확인을 했다고 생각해요.

 

박지원(교수자) : 이렇게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해주셔서 좀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는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저 강의실에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싶었어요. 아까 선생님들도 강사로서의 삶을,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저도 당장 다음 학기에 제가 거기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진 않거든요, 1차적으로 좋은 강의실은 제가 있는 강의실인 거 같아요.

 

약간 규범적으로 이야기 하면 경제 논리보다는 교육의 원리로 운영되는 학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업이 잘 안 되면 학생은 강사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하고, 강사는 요즘 학생들이 열심히 안한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가 서로를 좀 가엾게 여기게 된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아 저 사람도, 저 학생도 얼마나 힘들겠나.’ 그 과정에서 경제 원리가 아무리 대학을 지배해도,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욕망이 있다는 걸 우리가 확인을 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대학이 이런 욕망으로 굴러갔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는 고용 안정이라든지 말씀하신 그런 것들이 포함되겠죠. 조금 추가하면 정치적인 주체성, 강사의 주체성도 그렇지만 학생들도 수업에서 주체성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사는 학교로부터 소외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 동안 권력자의 위치에서 교실 내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안 들었다는 사실도 확인을 했잖아요. 학생들도 주체가 돼야 하고, 우리들도 주체가 돼야 하고, 그런 총체적인 정치적인 과정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대성 :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격적인 이야기를 못 했지만 원래 또 섭외하려고 했던 분이 강사 노조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사실 강사 노조, 학생회의 정상화, 이런 것들이 지금 너무 필요하다는 걸 모두 알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강사법이 개정되고 나서 강사 노조가 좀 생길 것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는 보이지 않고, 물론 강원대나 몇몇 대학에선 강사법 시행 이후에 강사 노조가 생긴 대학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선 강사 노조가 만들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지금 이런 사태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각자도생의 형태가 더 가열화 되어 있는 것 같고, 또 학생회도 오래 전부터 학교 측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제대로 된 자치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학내 의견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학내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그런 의사를 통합할 수 있는 기구, 협상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게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우리가 오늘 그런 이야기들은 충분히 나누지 못한 거 같네요.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해선 별도의 자리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대학 강의실이라는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모으는데 집중하고 있다, 협의 기구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자치권, 노조 문제와 같은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니라는 언급을 해두고 싶습니다.

 

권두현 : 저는 이런 이야기가 별도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정치가 그 어떤 대의의 구조를 전제한 채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다분히 회의적입니다. 강의실 바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제도가 강의실이라는 현장의 문제에 와 닿고, 섞이기를 기다릴 틈이 강사에게는 없습니다. 저는 당장 내일의 강의를, 다음 주의 강의를 온몸으로 때워야 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생각하다보면 저는 강사의 처우를 둘러싼 정치라고 하는 게 반드시 제도적 접근을 통한 시장 관계의 조정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랑시에르적인 것인지는 감히 확신하기 어렵지만, 정치의 의미를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의실이라는 현장에서 맺어지는 학생과 강사의 관계와 윤리의 형식을 변화시키는 게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 듯합니다. 지금 학생들이 강사들을 나에게 완결된 콘텐츠를 전달해주는 NPC, ‘누가 더 세련된, 완결된 콘텐츠를 전달해주느냐’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강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상호 간의 연대일 수도 있고, 노조활동일 수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의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들이 제공받는 서비스를 평가하는 방식, 시장 관계에 입각한 사고방식들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강의의 주제나 형식들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강의실이라는 현장에서 펼쳐 보이는 게 강의 제도를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것 못지않게 저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은 관습적인 제도인 건데, 쉽게 말하면 강의계획서를 올리고, 그 강의계획서를 보면서 클릭해서 수강신청을 하고, 이런 것들부터 재고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강의계획서를 올릴 때마다 이 강의계획서를 올리기까지 넘어야했던 장애물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저는 강의계획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선택되기 이전에, 반드시 학교의 전임교원들에게 선택돼야 해요. 그들의 시혜로 강의가 주어지는 거죠. 이제는 시혜가 아니라 나름의 전형을 거쳐 경쟁을 유도하지만, 이게 과연 타당한 절차인가를 생각해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득이 될 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주어져있는 강의계획서에 내 이름을 새겨 넣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강의계획서를 학생들과 함께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원탁에 둘러 앉아 ‘나는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우리 수업을 앞으로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한 번 물어보는 거죠. 사실 대학원 수업은 종종 그렇게 이루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학부 수업도 공동 기획해 볼 수는 없을까요. 학생들이 듣고 싶은 강의 주제를 제안하고, 그에 맞게 커리큘럼을 구성하거나요. 느슨한 강의 주제 같은 걸 공유하면서 수강생들과 함께 강의계획서를 만들기 위해 서로 관심사를 놓고 부대껴보는 거죠. 커리큘럼을 같이 만들면 사실 그 강의는 팔짱을 끼고 관전하기 어려운 강의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를 통한 관계도 훨씬 더 강도 높고 밀도 있게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의 강의계획서는 사실 강의도 전담하지도 않는 책임교수들이 다 내놓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강의기획에 참여했는데도, 비전임인 제 이름으로 낼 수 없으니까 전임교원들의 이름을 빌려서 냈지만, 전임교원들이 강의를 하지 않으니까 그 강의는 번번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저는 역적이 되는 거죠. ‘땜빵’ 강사만 강의를 해서 폐강이 된 거니까요. 사실 그 강의는 제가 참여해서 만들었는데, 이건 너무 불합리한 구조죠. 그래서 전임교원이 강제하는 교과목을 강사가 그냥 따라가고, 학생이 따라가는 이런 구조 말고, 듣고 싶은 강의, 하고 싶은 강의를 같이 기획해서 만드는, 저는 그런 강의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서로가 좀 더 긴밀해지고, 이런 식으로 얽히는 것이 강사법, 강의료, 이런 것을 논의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장 관계의 조정 못지않게 강의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서로 간의 돌봄, 돌봄의 관계에 대한 그런 조정, 이런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정치의 문제일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두의 영점을 함께 한 번 맞춰보는 거죠. 이게 수업계획서 함께 쓰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두의 포커스를 맞춰서 강의라는 카메라로 뭔가를 찍는 거예요. 우리가 함께 강의실이라는 곳에서 공통으로 영점, 포커스를 맞춰서 찍은 장면을 다시 반추하는 것, 이게 제가 바라는 강의인데, 잘 안 되겠죠?

 

김대성 : 저도 권두현 선생님 말씀이랑 좀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아까 강의가 퍼포먼스이고, 일종의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는 거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강의에 대한 본질적인 감각은 ‘원테이크’라는 거에요. 이게 영화로 치면 70분짜리를 컷 없이,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찍는 것인데, 예를 들어 7분짜리, 8분짜리 원테이크나 단편 영화들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카메라 워킹의 현란함이 아니라, 별 것도 아닌데 원테이크이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게 있어요. 저는 이게 집중의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강의실에서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집중을 요구하는 것에 외려 불편함을 표하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모두 각자의 스케줄이 있고, 자기 감각이 있고, 자기 정서가 있는데, 집중하라고 요구할 때 이게 전해지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내가 앉아서 내 할 일을 조용히 하겠다는데 왜 그걸 방해하느냐’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수업이라는 것은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집중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알리는 역할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면 이런 거죠. 왜 ‘영점을 맞춘다’고 하잖아요,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강의가 그런 것 같아요. 모두의 영점을 함께 한 번 맞춰보는 거죠. 이게 수업계획서 쓰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두의 포커스를 맞춰서 이 강의에서 카메라로 뭔가를 찍는 거예요. 그렇게 찍은 것이 굉장히 사소할 수도 있어요. 과제를 하든, 질문에 답을 하든, 수업을 통해서 찍은 걸 집에 가서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함께 강의실이라는 곳에서 공통으로 영점, 포커스를 맞춰서 찍은 장면을 집에서 내가 다시 한 번 반추하는 것, 저는 그게 기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강의, 바라는 강의인데, 잘 안 되겠죠? 이번 학기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제가 어떤 것들을 느꼈냐면, 한 번 더 비유적으로 설명해보면, 강의실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않고, 관계성 또한 만들어지지 않지만, 나는 이 방망이만큼은 깎아야겠다, 누군가는 지금 방망이를 깎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면서 “여러분도 여러분의 방망이를 찾아서 깎으세요”라는 이야기를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건 냉소 같은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잖아요. 저는 각자의 방망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먼저 방망이를 깎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강의실에서 집중한다는 것에 대한 낙차를 느끼면서도 방망이 깎는 걸 못 놓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걸 놓아버리면 내가 강의실에 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저는 내몰아왔던 거죠. 그러니까 학생들과의 소통도 자꾸 어긋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지금 방망이를 깎고 있는 중이니까, 집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 이 방망이를 함께 깎을 수 없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망이를 깎으시라, 이런 요청이 전달되지 않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온라인 강의하면서 그동안 외려 강의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강의의 의미와 가치에 말이죠. 강의는 학생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건데, 저 깊숙한 곳에서는 함께 포커스를 맞춰서 무언가를 함께 포착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가치를 좇으면서도, 그런데 이게 제 지위에서, 제 능력에서는 쉽지 않다는 걸 인지하게 되면서 방망이를 깎는 데 집중해왔던 건 아닐까 싶은 거죠. 그러니까 학생들과의 거리가 더 생겨버리는 거예요. 강의실에서 방망이를 깎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싫었을 거 같아요. 집중을 강조하고 요구하는 게 싫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면서 제가 강의라는 형식에, 어떤 이상적으로 설정했던 형식에 기대고 있었구나를 알게 된다고 할까요. 온라인 강좌에선 방망이를 깎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게 구현이 될 수가 없어요. 이 인터페이스 안에서는. 그러니까 지금 이 강의실이라는 곳에서 계속 강의 가치에 기대고 있었다는 걸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느꼈는데요,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과 타협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첫 번째 과제로 받은 과제물이 200개 정도 되는데, 이번에 과제 모두를 읽고 모든 과제에 대해서 코멘트를 해서 보내줬어요. 이런 건 처음 해봐요.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로 인해 양질의 교육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거 같아서 ‘피드백이라도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이 피드백 하면서 어떤 것들을 생각했냐면 어쩌면 이 학생들에게는 뭔가 원테이크의 중요성이나 집중할 때만 볼 수 있는 게 있다는 식의 강조보단 열심히 썼든, 대충 썼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쓴 내용을 언급하면서 피드백한 내용이 훨씬 중요하게 와 닿구나. 그러니까 대충 쓴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코멘트보단 ‘이렇게 쓰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긍정적인 방식의 피드백을 했는데, 그런 학생 중에 답장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당연히 짧은 답장이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쩌면 강의의 질이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이런 것들을 원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런 감각을 좀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된 거죠.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실감하게 되었는데, 학생들에게는 이런 작은 피드백이 되게 중요했구나 라는 것을요. 그리고 저도 학생들의 과제를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다 보니까 느껴지는 게 있는 거예요. 이번 학기가 뼈가 으스러져도 과제에 대한 피드백만큼은 하자라는 목표가 생겼는데, 이제 방망이 깎는 건 안 하는 거죠. 대신 학생들이 쓴 과제에 대해서 코멘트를 다 달아보자, 그게 어떤 의미가 있고 효과가 있을지 한 번 느껴보자. 그래서 온라인 강좌를 진행 하면서 강의에서 그간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에 기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고 느끼면서 사소해보일지라도 학생들 과제에 대한 작은 응답이라도 잘 해보자, 그게 어떤 의미일지를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자, 이 정도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쉽지 않은 주제를 열심히 집중해서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 이후에 녹음 파일을 풀어서 모두가 열람하고 손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거고요, 결과물이 좀 좋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책자로도 제작을 해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론적이거나 정제된 방식으로 구현되지 않는 입장들과 생각들도 있잖아요. 그런 목소리의 표현과 기록을 이런 좌담회 형식으로 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웹진 <젠더·어펙트>에서 연속 좌담들을 잘 꾸려나갈 수 있게 첫 좌담의 시작이 좋은 거 같습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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