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지역-대학교육]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대학 강의의 현단계와 딜레마 (2)

 

<2부>

 

김대성 : 대학 강의실이 천차만별인 것 같고, 제가 놓여있는 환경과 다른 이상적인 강의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가치도 있는 강의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그런 강의실이 실재하는 지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기준점이나 공통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픈 카카오톡 방’의 핵심이 오픈이 아니고, 익명 그러니까 비실명인 거잖아요? 그리고 ‘에브리타임’이라는 사이트도 엄청 게시물이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유 게시판에 있는 사소한 질문들이나 외로움 속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체에 들어가서 감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면관계에서 반응이 없을 것이라 했는데, 비대면 관계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 본질이 ‘익명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될 때 표현을 더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은 대학 안의 문제로 축소시켜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기 어려운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전시나 매력 자본 전시에 늘 노출되어 있다가, 익명의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는 것이 랜선 자아처럼 다른 자아로 나타나는 것이라, 이런 반응들이 강의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익명과 비실명에서 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이를 강의에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대면강의에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이나, 말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드물게 있습니다만 ‘말했음’이라는 표식이 중요한 학생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강의실에 익명으로 있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질문하는 걸 엄청 싫어하고, 관심 가지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장치와 구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픈 카카오톡 방은 수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가욋 노동이라는 게 엄청난 것인데, 이를 실행한 선생님이 너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 고민이 됩니다. 한 편으로는 필요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익명성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이런 방향으로 가도 되나?’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것에 어떤 작은 해방감이나 표현할 수 있는 기회란 말을 들으니까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간섭하거나, 앞만 보아야 하는 것, 자유롭게 무언가 할 수 없는 분위기, 화장실 가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교실의 분위기가 강의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준훈 : 저는 강의실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강의실’과 ‘교실’ 구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습니다. 두 단어가 어떻게 다르거나 같은가 하며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느 한 점을 꼬집어 ‘딱 이거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속하거나 체험해본 곳은 다 환경이 유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중·고등학고 시기, 자신이 속해있던 교실에서의 강압적인 분위기 일 것 같습니다. 앞에서 간섭하거나, 앞만 보아야 하는 것, 자유롭게 무언가 할 수 없는 분위기, 화장실 가는 것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교실의 분위기가 강의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있는 관계가 강의실에서도 답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쌓여있던 무의식들이 강의실의 배치 속에서 다시 살아나서 대학 안에서 이게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김연우 : 제가 오늘 ZOOM으로 수업을 했던 내용 중의 하나가 자신의 성격의 장점이나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ZOOM 수업을 할 때 마이크는 끄고 화면만 보이게 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이 원래는 발표처럼 준비를 했어야하는 건데, 실시간으로 하면서 채팅으로 전부 다 참여할 수 있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발표를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나 먼저 나설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화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목소리나 특징이 덜 드러나서 그런 것인지 같이 듣는 학생들 모두가 장점이나 단점이나 자기가 바라는 성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발표를 나서서 한다는 것 자체에 부담감도 좀 있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건 교수님이 이야기를 하시고 제가 듣는 입장이다 보니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비해 아무래도 여기에는 차이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남습니다.

 

이형진 : 앞의 두 분 말씀은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심적인 자유를 느끼고 좀 더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건데, 제가 볼 땐 교육자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대학이 고등학교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의 교실처럼 대학 강의실의 구도도 교강사와 학생 간의 위계적인 관계를 만드는 텍스트입니다. 교강사가 연단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겐 심적 부담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가 이 구조를 바꿀 수 없으니 이 구조 안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유연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가 하는 기술 말입니다. 이러한 점이 실현되기 힘든 점은 교강사 입장에선 힘이 들기 때문이죠. 상호 대화를 하면 학생들 입장에선 좋지만, 이걸 감당해야 하는 강사 입장에선 힘든 과정이죠.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 방식에 비해 더 힘든 과업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상적인 대학 수업을 해보고 싶어서 4학년 공대 교양 수업에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당황스러운 사건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럼에도 상호 대화 방식의 수업의 실현 방법은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대학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이 제한적이므로, 이 안에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지 않을 줄로 생각했는데, 수업의 여러 환경들로 인해 참아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대면 수업이 재개될 텐데,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발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학생들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과 분위기가 잘 갖추어진다면 누구나 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김대성 : 저는 약 10년 정도 대학에서 강의를 해 왔는데, 그것과 온라인 강의를 한 9주차와 비교하기엔 데이터가 많지 않아서 쉽지는 않습니다만 한 학기가 끝나면 조금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저는 비대면 강의 수업에서도 소통이 많아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제의 질, 과제를 쓰는 태도에서는 조금 차이가 나긴 합니다. 비대면 강의 했을 때 쏟아지는 목소리, 학생들은 말을 안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는 것은 체감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문제인지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습니다만, 이 시점에 할 수 있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학기가 끝나고 ‘온라인 강좌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정교하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 시간적 거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3번 질문이 변화된 강의 환경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이기도 해서 말씀 안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두현 : 저는 학생들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말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사람의 스킬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게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가능한 얘기인 것 같습니다. 혹은 서른 명 안팎 정도요. 여든 명, 아흔 명까지 수강생 수가 많아지면 수강생들은 ‘군중’ 뒤에 자신을 반드시 숨기게 됩니다. 수강생이 스무 명쯤 될 때는 그만큼 시선의 교차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시선을 받은 수강생들은 뭐라도 이야기하려고 움찔거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강생이 90명쯤 되면 면대면의 상황이 그만큼 만들어지기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참여의 책임을 방기하고 대답하려 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강사 개인이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의 스킬을 갖추기에 앞서, 적어도 학교가 분반이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수강생의 규모가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되어야 수강생 개인에게 할당되는 책임감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비대면 강의에서 활발하게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익명성도 중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일대일’의 감각 또한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오디오와 비디오를 끈 채로 화면 뒤에 숨어 있다고 해서 질문이 활발해진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인터넷 포털 뉴스에 모두가 우루루 몰려가서 앞 다투어 댓글을 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비대면 강의라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내는 걸 보면, 선생님과 (학생인) 내가 일대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감각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강의실은 마치 극장처럼 만들어져있는 데 비해, 비대면 강의는 극장과는 전혀 다른 인터페이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대론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강사들 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가상적인 자아가 개인의 정체성에 선행하고, 가상적인 자아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세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멤버’라는 감각이 정체성의 결정적 성분으로 자리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는 그런 감각 속에서 소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원권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서 자기 지분을 확인하고, 드러내고, 그런 감각 같습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의 곤혹감과 감동에 대한 질문은 아무래도 좀 더 길게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별다른 감동은 없지만, 곤혹감은 분명합니다. 제가 이번 학기 초반에 3학점짜리 강의를 녹화하고 보니, 무려 4시간이 되어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듣게 될 수강생들에게도 너무 미안했어요. 변명이기는 하지만, 이런 ‘오버’는 강의가 끝날 때가 됐다는 수강생들의 눈빛 시그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눈빛들을 확인하려면 ‘실시간 화상 강의’의 형식도 가능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선은 쉽게 부딪히지 않고, 딱히 뒤얽히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ZOOM을 활용하여 강의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불공평하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의관을 정제하고 얼굴을 노출해야 하지만, 수강생은 얼굴이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제게는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불편한 것 같아요. ‘인터페이스’를 통해 얼굴을 마주할 수는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는 감각에 앞서 내가 그 어떤 시스템 창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선행합니다. 온라인의 인터페이스는 투명한 비매개가 아니죠. ‘탈물질화’라는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이 저에게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와 닿았던 적은 사실 이전까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도 실시간 화상 강의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고, 온라인이라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식은 역시 반복적으로 수강할 수 있고, 또 중단과 재개가 자유로운 녹화 형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녹화를 통해서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니, 면대면 상황이 주어지지 않고, 허공에 이야기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마이크를 장착한 채로, 손짓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야기하는, 이런 ‘생쇼’가 저는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수강생들이 없으니까, 그 대신에 혼자 ‘생쇼’를 하고 있는 저에게 집중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집중이라는 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저에 대한 감각일 뿐이지, ‘공유’의 감각은 전혀 아닙니다.

 

김대성 선생님께서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강의’의 줄(line)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는데, 온라인 강의가 싫지만, 그래도 간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낀 이유는 ‘오픈북’과 ‘커닝’이 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강의에도 매번 나름의 강의 자료들을 준비해가기는 했지만, 사실 준비한 강의 자료는 어느 순간 부차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온라인 강의는 제가 준비한 자료의 논리가 저의 개입을 배제하고 차단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좀 비유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온라인 강의의 줄은 ‘실선(實線)’인 것 같습니다. 강의 자료의 논리적 선형성을 따르는 거죠. 반면에, 오프라인 강의의 줄은 불규칙적인 ‘점선(點線)’인 것 같습니다. 그 점선들 사이의 공백은, 때로는 설명의 디테일로도 채워지고, 때로는 엉뚱한 농담으로도 채워집니다. 때로는 수강생들의 질문과 저의 답변으로도 채워지고, 더 빈번하게는 어색한 침묵 그 자체인 경우도 있습니다. 강의에 있어 강의하는 ‘나’를 붙들어주는 줄은 강의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의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강생들에게 표명되기 위한 명시적 지식으로 발화되기 이전의 암묵적 지식들. 암묵적 지식들 사이의 느슨한 관계들이 이루는 그 점선들을 겨우겨우 이어서 실선을 만들어보려고, 그 실선으로 나를 지탱해 보려고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되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줄은 실선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지지 못한 줄에 의탁해서 아슬아슬하게 강의가 진행되는 상황. 이 상황을 눈치 채는 예민한 수강생들과 그 수강생들이 던지는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가면서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나. 이러한 일련의 조건과 상황들이 계속해서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점선은 점차 실선이 되어가고, 실선은 점차 두꺼워지고, 그러면서 곡선처럼 드라마틱해지고 그러죠. 그런데 온라인 강의에서는 미리 준비한 줄을 풀어놓기만 하면 되고, 확실히 이러한 줄은 그것이 미리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 끊어진 줄을 함께 이어 붙이고, 그 줄을 양쪽에서 함께 잡아당긴다는 팽팽한 긴장감 없이, 준비되어 있는 줄을 러닝 타임에 따라 슬슬 풀어놓기만 하면 되니까 강의를 해도 딱히 특별한 인상이 남지는 않는 듯합니다. 온라인 강의를 하고 나면 오프라인 강의보다 훨씬 많은 걸 이야기한 것 같지만 딱히 보람은 없어요. 깔끔하게 마무리하고도 오히려 찝찝함이 남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언행에 대한 눈빛으로 응해주는 것이 온라인 강의 속에서 더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망설이거나 버벅거리거나 침을 튀기고 그러는 순간에 학생들이 보여주는 묘한 관용의 제스처나 웃음 같은 것들? 관계의 정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대성 : 강의가 워낙 어떤 연극성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어서, 저는 항상 오프라인 수업 때 ‘시합을 뛴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말처럼 패스를 하면서 에너지의 흐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여러 기분들이 활성화되고,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시합에 임하는 느낌 속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당일의 상황에 따라 강의가 다르게 와 닿는 것이 강의의 묘미이자 힘겨움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이에 대해 학생들이 ‘생쇼’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학생은 극장을 기대하고 왔는데, 교강사가 시합을 뛴다는 느낌이 들면 낙차도 그만큼 클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ZOOM으로 실시간 강의를 하자 했더니, 모두가 하지 말자고 해서 감히 건드리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ZOOM을 활용해서 일종의 녹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ZOOM이 학습 툴을 사용하기가 용이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수업을 한다는 느낌을 더 주기 좋을 것 같아서 ZOOM으로 강의를 녹화하고 있습니다. 시합의 느낌은 나지 않지만 강의를 하다가 과도한 집중력으로 뒷골이 당기는 느낌이 들면 잠깐 멈췄다가 다시 하곤 하는데, 중단 없고 완전한 라이브로 누군가 앞에서 NG 없는 긴장감의 힘을 믿었었는데,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시합을 뛰는 방식’이 잘못된 감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감도 듭니다.

 

 

 

 

대학교 친구와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방학 때는 연락 단절이었다가 수업 시간표 짤 때쯤에 다시 연락을 하고, 개강하면 이제 친구로 다시 돌아가는데 이번 학기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박지원(학습자) : 저는 개강을 했는데, 개강을 안 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저는 원래 선생님들이랑 수업시간에 상호작용을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눈 마주치면 편하게 질문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제 온라인 수업에서는 그런 상호작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계속 그냥 수업을 하고 있긴 한데, 개강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학교 친구와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방학 때는 연락 단절이었다가 수업 시간표 짤 때쯤에 다시 연락을 하고, 개강하면 이제 친구로 다시 돌아가는데 이번 학기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표 짤 때는 우리가 다 같이 만날 거라고 겹치게 짜고 연락을 해왔는데, 이제 다 무의미한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진짜 친한 한두 명만 카톡을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어쩔 수 없이 강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학구적인 이야기나 평가는 아니고, 수업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지만 온라인에서는 그조차 못하고 있더라구요. 동네친구밖에 못 만나고 있어요. 그 친구들과는 수업의 공감대가 하나도 없잖아요. 수업은 뭔가, ‘강의 틀어 놓고 끝’. 일상생활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네요.

 

게다가 학생들도 압니다. 강의평가가 교수님들한테보다 강사님한테 더 효과적인 방법이란 걸 알아요. 저는 ‘이 쌤 강의 평가 진짜 망쳐놓을 거다’ 하는 애들도 많이 봤고, 교수님을 상대로는 ‘백날 말해봐야 뭐하냐, 바뀌지도 않는데, 뭐하러 쓰겠냐, 선배들이라고 안 써봤겠냐.’ 같은 반응도 접했어요. 스킬 이야기하실 때 든 생각입니다만, ‘인강’을 할 때는 불만이 없었지만 웬만한 포털의 인강 강사는 탑이고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잘 가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저는 교수님 수업에 크게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고, 상호작용과 전문성이 있다 보니 신뢰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로 들으니까 진짜 한 분야만 연구한 전문가일 뿐, 수업, 교육법에 관해 연구를 안 하셨다는 게 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진짜 PPT만 줄줄 읽는 것은 너무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대면강의와 똑같은 수업을 하실 텐데 질이 낮다고 느끼는 이유는 익명성을 가지고 수업이 대면강의보다 관람하듯 이루어지다 보니 그런 질 낮음이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김대성 : 강의실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라고 했는데, 각자가 생각하는 강의가 다 다른 것 같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강의실에선 고개를 끄덕이던 게 왜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지… 이 낙차는, 우리가 강의라고 하는 걸 인지하고 느끼는 요소들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아닌가 싶어요. 지식이나 정보가 핵심적이겠지만 그것과 함께 무언가 만들어지고 교환되고 있는데, 온라인 강좌 형식에선 이런 것들이 차단되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마치 중요한 것처럼 오해되어서 강의가 형성된 경우도 있겠지요. 그런데 온라인 강좌를 통해 이게 명백해지는 걸 수도 있구요, 그 반대로 대학 강의를 성립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를 놓치고 있었을 수도 있구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온라인 강좌에서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했으니 잠깐 쉬었다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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