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 제5회 (김비)

 

 조 사장의 실종 소식은 사흘 후였다. 강대표와 사이가 소원해졌으니 오지 않는 것뿐이라 짐작했는데, 성애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식당 주차장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경찰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따금 파출소 사람들이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르곤 했으니 밥 손님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함께 온 둘은 테이블에 앉고 장경사가 강대표를 찾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의 가정사까지 모두 꿰고 있는 토박이였다.

 이틀째 조 사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낚시 가게에서 오후에만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용태가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했다. 조 사장 동생 번호를 물었지만, 강대표는 퉁명스러운 입매로 고개만 비틀었다.

 “조 사장 동생 번호? 아마 가도 번호를 새로 바깠을 낀데… 그 병원 사건 땜시 그란다지 아마? 쓸데없는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꼬, 지금은 대포폰 쓴다고 조 사장이 그래쌌던 것 같은디….”

 강대표는 장 경사 너머에서 수저통을 뒤적거리는 경찰들을 향해 ‘뭐 주까?’ 물었다. 밥을 먹으러 올 생각이 아니었는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그들은 장 경사를 올려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 중에 키 큰 쪽이 보리밥을 시켰고 허리를 일자로 세운 신입 경찰도 고개만 까딱했다. ‘경사님은 김치찌개지요?’ 오 순경이 장 경사에게 물었는데, 그는 대답 대신 포스기를 찍는 강대표에게 바싹 다가섰다.

 “대포폰? 아따 민간인 양반이 영화 찍나… 어디 그런 것 써 버릇하고? 흠, 그 번호는 모리고?”

 “내 뭐 그까지 알아야 하나? 내 서방도 아이고….”

 강대표는 주방 턱을 넘어서며 냉장고를 가리켰다. 성애는 낯설고 무거운 공기를 등진 채 반찬들을 나누어 담았다.

 “가 이름이… 조 명근이지 아마? 학교 다닐 때, 천재 소리 듣던 가 맞제?”

 “천재요?”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한 사람은 젓가락을 빨던 오 순경이었다.

 “아따, 온 동네 사람들이 떠받치며 살았겄네, 그죠? 안 봐도 뻔하지. 플래카드 걸리고, 이장이고 읍장이고 동네 이름 날린다고 물고 빨고….”

 “아이다, 가는 좀 특이해서….”

 더는 강대표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지, 장 경사도 의자에 앉았다.

 “와예?”

 “가는 좀 유별났다 아이가. 동네 쥐새끼들 잡아다가 해부하고… 길에 다니는 개고 고양이고 잡아다가 꼬리 자르고, 다리 자르고….”

 “와따, 참말로예?”

 “싸패…?”

 등을 세우고 앉았던 신입 경찰도 나주막이 입을 벌렸다가 눈을 피했다.

 “엄청시리 특이했어. 가 어매가 가 땜시 고생 엄청 했지. 애비 없는 자식이라꼬… 예쁘장하니 기집애같은 놈 사내 만든다고 그 어매가 벨 짓을 다 했다 아이가. 조 사장도 고생 많았고…”

 어깨 너머로 고개를 반만 돌려 강대표를 보는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강대표는 무감한 얼굴로 찌개 냄비만 뒤적거렸다.

 “니는 모리나?”

 내려놓던 접시를 성애는 놓치고 말았다. 담았던 가지나물이 그릇 밖으로 튀었다. 장 경사는 느린 젓가락질로 테이블 위에 너부러진 가지 덩어리를 집어 올렸다. 입속에 밀어 넣었다.

 “뭐… 뭘요?”

 “조 사장 말이다. 요즘 뭐 특이한 일 없었나 말이다.”

 뽀득뽀득 가지나물을 씹는 장 경사를 성애는 가만히 내려 봤다. 입술에 침을 발랐다. 말해야 하나? 뭘, 어디까지? 순간 가게 문이 쏟아지듯 열렸다. 절인 배추 양재기를 들고서 점순 씨는 소리 나게 주방 쪽을 향했다. 개수대 앞에 양재기를 내려놓으며,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조 사장… 거 동생 만나러 서울 간다카던데?”

 “아, 그래요? 언제요?”

 “동생이 내려 온다캤는데, 몬 온다꼬… 그래서 금싸라기 같은 동생 보러 간다카데? 내 엊그제 가게 나오는데 택시 타고 가드만.”

 “참말인교?”

 “내 뭐 할라꼬 거짓부렁을 하노? 내 서방도 아이고….”

 점순 씨는 양재기 속 배추에 두 손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늘어진 배추 줄기를 죽 찢더니, 탈탈 털어 입 안에 넣고 씹었다. ‘근데 왜 연락이 안 되노?’ 다시 젓가락을 들며 장 경사는 투덜거렸다. 찌개 냄비를 버너 위에 내려놓는 강대표에게 그는 다시 ‘조 사장 서울 갔다는데 그것도 몰라요? 싸웠어요?’ 물었지만, 강대표는 말없이 돌아섰다.

 빈 그릇들을 쟁반 위에 포개며, 성애는 찌개 냄비에 얼굴을 묻는 그들을 넘겨보았다. 이게 끝인가,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건가? 성애는 자꾸 말라가는 입술에 침만 발랐다. 쟁반을 들고 주방에 들어서니, 점순 씨는 늘어진 배추 줄기 위에 새빨간 고춧가루를 들이붓고 있었다.

 

 설거지까지 모두 마치고 남은 반찬들 정리까지 끝내고서, 성애는 점순 씨와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유리문 바깥을 보았다. 저녁을 먹고 사라진 강대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도끼 이야기는 뭘까, 물어볼까? 밖을 보면서, 성애는 눈만 돌려 점순 씨를 흘끔댔다. 굵은 알반지를 손가락 위에 빙글빙글 돌리는 손을 봤다. 한 사람의 몸에 달린 손이었는데, 어쩐지 양손의 모양이 좀 달랐다.

 점순 씨가 몸을 일으켰을 때, 성애는 길 저편에 나타난 강대표를 보았다. 그러나 길을 건너 식당 쪽으로 넘어오는 그를 보고는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바닥을 질질 끌며 강대표가 손에 든 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도끼였다.

 “그… 그게… 뭐에요?”

 “와, 도끼 첨 보나?”

 “뭐… 하시려고요?”

 “도끼로 모하겠노?”

 “네?”

 도끼를 든 강대표의 두 볼이 핏기없이 파리했다. 흐린 형광등 불빛 때문인가, 며칠 마음고생을 한 탓인가? 성애는 도끼를 든 강대표와 눈을 맞춘 채 가만히 섰다. 필요한 말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성애는 이미 듣고 난 표정이었다.

 “퇴근해라이. 내일 보자.”

 자루가 굵은 도끼를 타일 바닥에 질질 끌며 강대표는 주방을 넘어섰다. 뒷마당 평상 모퉁이에 도끼를 세워두고서, 가방을 가지러 창고 쪽으로 사라졌다.

 “나, 가요!”

 아주 간단히 인사를 건네며 점순 씨가 스치며 나타났는데, 성애는 문을 열고 나서려는 점순 씨의 팔뚝을 붙잡았다.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그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서, 성애는 주방을 훌쩍 뛰어넘었다. 강대표가 세워 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금방이라도 그가 나타날까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도끼를 품에 안고서, 성애는 점순 씨를 끌고 도망치듯 유리문을 밀고 나섰다. 어떤 불안이 성애의 머릿속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그물처럼 성애를 옥죄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성애는 들었던 도끼를 점순 씨에게 내밀었다.

 “이… 이거… 좀… 맡길게요.”

 도끼를 받아 든 점순 씨가 감정 없는 눈으로 성애를 올려봤다. “제… 제가… 며칠 있다가 찾으러 갈게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좀 맡아주세요. 그, 그럼… 부탁드릴게요.”

 점순 씨에게 도끼를 떠넘기고서, 성애는 황급히 산 쪽으로 돌아섰다. 강대표가 불러 세우기 전에 어서 빨리 피해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어떤 최악으로부터 무슨 수를 쓰든 도망쳐야 했다.

 모두산을 향해 잰걸음으로 걷는 성애를, 점순 씨는 도끼를 든 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어서 빨리 가라고, 도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성애는 손짓만으로 점순 씨를 밀어냈다. 까맣게 흘러내린 밤과, 도끼를 들고 길 위에 선 한 여자를 향해 조급한 손짓만 계속했다.

 

 ‘그릴 리가 없어.’라는 확신의 그림자는 유독 크고 넓었다. 시시각각 거대해지는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고, 성애는 이불 속에 숨었다. 아냐, 아무 일도 없어. 별일 아니야, 다시 또 새빨갛게 그어 지워야 하는 일상이야. 새… 빨갛게?

 쏟아진 하늘처럼 출렁거리는 이불 속을 성애는 다시 끌어당겼다. 속지 않는다, 농락당하지 않는다. 이따위 흐릿한 짐작들, 망상들, 불안들.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파출소에 간다. 모두 말한다.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짐작으로 생각을 키우지 않고,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믿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알 것 같다고 앞서지 않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그대로의 사실만 말한다. 사실? 사실은 뭘까? 나는 사실을 보았나, 알고 있나? 나는 사실을 말할 수 있나?

 그만, 거기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파출소에 가는 일, 내가 본 것을 말하는 일.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더라도, 어떤 불운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말해야 하는 일, 받아들여야 하는 일.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 일. 이제라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서, 성애는 맥스팬 너머의 하늘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들이 날아와 앉고,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맥스팬을 열고, 환기를 하고, 억지 밥을 먹고, 출근 채비를 했다. 여느 날과 똑같은 순서로 준비를 하고, 기둥 없는 집의 문을 잠갔다. 뛰지도 않았고, 조급해하지도 않았고, 손에 쇠막대를 들지도 않았다.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만 세고, 서늘해진 공기를 호흡하며 겨울만 생각하고, 박쥐 남자를 처음 만났던 계곡을 지나 곧장 파출소로 향했다.

 듣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의 비명부터 말해야 하겠지, 사라졌다는 것이 곧 실종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고 덧붙여야 하겠지? ‘도끼를 뭐하는 데 쓰겠노?’ 되묻던 강대표의 두 눈에 관해서도 말해야 할까,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툰 원인이 혹시 나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마음까지 말해야 할까?

 그러나 파출소 앞에 도착했을 때, 성애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마중하듯 문 앞에 장경사가 나와 섰지만, 성애는 ‘산불 집중 단속 기간’ 플래카드 뒤로 몸을 숨겼다. 장 경사 곁에서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강대표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왜 두 사람이 만났는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모두 말한다’는 다짐으로부터 성애는 힘없이 떠밀리고 말았다. 원래 막역한 사이였던가, 마을 토박이인 두 사람이었으니 당연한가? 종이컵을 들고서 둘은 서로의 팔을 쓰다듬고 손짓을 주고받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식당에서 조 사장에 관해 묻고 답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성애는 품에 도끼라도 숨긴 사람처럼 펄럭이는 플래카드 천 뒤로 몸을 숨겼다. 해야 할 말은 해야지, 하지 말아야지, 해야 되는 건가, 할 수 있을까, 해봐야 소용 있을까,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돌리고, 제 자리를 맴돌다가, 끝내 돌아서고 말았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점순 씨는 보이지 않았다. 자꾸 부풀어가는 불안을 혼자만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게 전화기를 들어 점순 씨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지만, 신호만 갈 뿐 통화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날 왜 늦는 거지, 점순 아줌마 집이 어디였더라? 집배원이 식당으로 한꺼번에 가져와 쌓아 놓는 의료보험 영수증 위에 점순 씨의 집 주소가 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라는 확신은 이미 불안의 맨 아래 깔린 채 보이지 않았다. 강대표는 십 년도 훨씬 넘게 잘 지내다가 왜 이제야?

 딸랑, 유리문이 열렸다. 강대표였다. 성애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성애 역시 바쁘게 장사 준비에만 몰두하는 척했다. 어젯밤에 혹시 도끼를 보지 못했느냐고 강대표는 물었지만, 성애는 밥공기를 온장고에 쌓는 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면서 온장고를 향해 대답했다. ‘아뇨, 못 봤는데요?’

 고양이가 물어갔나 쥐새끼가 물어갔나, 헛웃음을 토하는 강대표에게 성애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점순 아줌마는요?’ 성애가 물었을 때, 강대표는 뚝배기에 재료들을 던져 넣으며 ‘오늘 제삿날이다.’ 대답했다. ‘제사요?’ 그렇게 되물었을 때, ‘딸내미 제삿날이제.’ 대답했다. 제삿날 이야기도, 점순 씨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해 멍청한 표정이었는데, 강대표는 주방에서 고개만 내밀어 이렇게 말했다.

 ‘아는 척 말그라. 사람은 누구나 지켜줘야 하는 비밀이라는 기 있는 기다. 어떤 목숨이든 마찬가진 기라. 그걸 지켜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기고. 니나 내나 마찬가지 아이가?’

 그때 강대표가 한쪽 눈을 찡긋했는데, 테이블을 닦던 성애의 손이 오그라들었다. 소름이 돋은 팔뚝을 감추려고 성애는 황급히 소매를 끌어내렸다.

 

 그날 하루의 시간은 평소와 다르게 흘렀다. 한 시간이 십분 같았고, 십 분은 다시 한 시간처럼 흘렀다. 조금 전에 들어왔던 손님과 똑같이 생긴 손님이 다시 들어왔고, 계산을 마치고 나간 손님을 쫓아 나갔다가, 손님이 내던진 영수증을 들고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님이 먹다 남긴 밥그릇을 온장고에 넣었다가 손님상에 가지고 나갔고, 시금치 반찬통에 남은 음식물을 쏟았다. 손님들의 아우성과 혼자서 땀을 흘리는 강대표의 고함을 엇갈려 들으면서도, 성애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그런 시간이 있다. 오직 한 사람의 눈에만 번쩍거리는 시간이 있다. 시간을 ‘흐른다’고 말했던 최초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요동치거나 소용돌이친다고 말하지 않고, ‘흐른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표정이었을까? 멀미라도 하는 사람처럼, 성애는 연신 침을 삼켰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생각의 모퉁이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퇴근하라는 강대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애는 점순 씨의 집으로 내달렸다. 어쩌면 일은 벌어진 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사라졌고, 도끼를 가져왔고… 그렇다면 도끼에 흔적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 도끼를 들고 모두리 파출소가 아닌 영주나 안동 경찰서로 직접 찾아가 전달하는 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모개천을 따라 뛰던 성애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아닌데, 난 강대표를 돕고 싶었던 건데? 저질렀을지도 모를 범행을 경찰에게 말하는 일이 그녀를 돕는 일이 맞나? 나는 돕기 위해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토록 불안하고 흔들리고 무서운 거라고 믿었는데.

 고개를 드니 이미 파랗게 질린 32번 주소 표지판 앞이었다. 생각보다 식당으로부터 멀지 않았지만, 마을로부터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대부분 가게나 집들은 모개천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는데, 점순 씨의 집은 산 아래 첫 집이었다. 마을 외곽 끄트머리에 자리한 집이었으니, 아무도 대문 앞을 지나칠 것 같지 않은 집이었다.

 기시감처럼 강대표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니 집 필요하지 않나? 시골집은 거저나 다름없다.’ 말하던 그 목소리. 언젠가 점순 씨에게도 강대표는 똑같은 질문을 건넸던 걸까? 마을로 들어온, 비밀을 감춘 누군가에게? 그래서 마련했던 것이 바로 이 집?

 “아… 아줌마?”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녹슨 철문으로 들어서니, 마당 한쪽에는 깨진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오래전 민박집이거나 달방으로 쓰였던 집이었는지, 비슷하게 생긴 낡은 나무 문들이 마당을 가운데로 빙 둘러 서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쌓인 것은, 옷장의 문짝이기도 하고, 벽의 일부이기도 하고, 책장이나 테이블의 일부이기도 했다. 버리기 위해 쌓은 건지, 부수고 보니 쌓여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줌마… 점순 아줌마?”

 까맣게 죽어있는 문 쪽을 향해 성애는 점순 씨를 불렀다. 사람이 살았던 집이 맞나, 산 사람이 살았던 집일까? 성애는 첫 번째 나무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물러났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죽은 냄새, 아니 살은 냄새. 사람 아닌 것들은 살고, 사람은 살지 못하는 그런 살은 냄새.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혹시 주소가 잘못되었나? 어디에도 사람의 온기가 없었다. 무수히 많은 것들이 살아있겠지만, 그 중에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무너진 쪽마루와 물때와 흙 때가 가득 낀 플라스틱 지붕을 지나 맨 안쪽의 나무 문 앞에 서니, 쪽마루 위에 신발 몇 켤레가 보였다. 그나마 가장 온전하게 생긴 갈색 나무 문이 성애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예요, 성애예요.”

 몇 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문은 너무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자 방안에서 축축한 시간의 냄새와 향냄새가 뒤섞여 밀려 나왔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켜니, 너무 큰 방 안에 남루한 형광등 하나가 반짝 켜졌다. 얼마나 오래된 등인지 램프 양쪽 끄트머리가 까맣게 멍들었고, 울퉁불퉁한 방바닥이 덧댄 장판 조각들을 뒤집어쓰고서 먼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깔린 이불은 이불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덧댄 조각 같았다. 그 너머 폭이 좁은 행거에 익숙한 옷가지들이 보였다. 유니폼처럼 몇 개의 옷걸이에 옷들은 나누어 걸려 있었다.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그 중에 하나를 들면 저절로 입혀지는 그런 차림새. 어떻게 보일까, 무엇으로 보일까, 고민할 필요 없는 옷가지들 위에, 꽃무늬는 조화처럼 잔뜩 매달려있었다. 그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애의 눈을 붙든 것은, 사방 벽에 들러붙은 숫자들이었다. 작은 창문 하나가 너무 높게 달린 네 면의 벽에는, 온통 숫자들로 가득했다. 달력을 찢어 붙인 모양이었다. 2018년부터 2020년 지금까지, 철물점 이름과, 농약사와, 전파사 이름들이 깔려있는 달력이, 벽지처럼 온 사방에 가득했다. 숫자마다 그 위에 사선으로 표시를 해 놓았는데, 어떤 날은 검은색 선이었고, 또 어떤 날은 빨간 선이었다. 이따금 마구 찢긴 숫자도 있었는데, 무엇으로 팠는지 벽까지 움푹 패어 있었다. 최근의 팬 숫자는 뾰족한 것으로 여러 번 찍혀 있었다. 17일이라면… 그날… 조 사장의 생일?

 “뭐꼬?”

 “네?”

 거칠고 낮은 음성이 어깨를 넘어왔다.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 정수리 위에 붙은,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다.

 “점순 아줌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요, 오늘 안 나오셔서…”

 “아하… 그 식당 양반이고마?”

 “아줌마, 어디 가셨나요?”

 “산에 제사 지내러 갔제. 매년 이맘때면 죽은 딸내미 제사 지낸다고 거… 옥운대로 올라가자네. 올해는 뭘 많이 싸 가는지, 커단 가방을 구루마에 싣고 올라가드만….”

 “구루마요?”

 “잉, 돼지 새끼라도 잡아 올라가는가… 낑낑거리며 잘도 올라가드라이.”

 까맣게 뒤덮였던 불안의 밤 한가운데, 번쩍 벼락이 쳤다. 그림자가 보였다. 도끼를 든 사람의 그림자를 따라가다가, 성애는 악 비명을 질렀다. 다른 빛깔의 밤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성애는 황급히 쪽마루에서 내려서 신발을 꿰어신었다. 신발들 옆에 무더기로 쌓인 동그란 것들이 그제야 보였다. 박스를 묶는 초록 테이프의 심지들이었다. 누군가를 묶느라 모두 다 써버린, 앙상한 종이의 뼈들이 찌그러진 채 비닐봉지에 가득했다. 그 한가운데 익숙한 것이 갈가리 찢긴 채 처박혀있었다. 유난히 밑창이 높은 등산화였다.

 대문 밖으로 뛰는 성애를, 향 연기 너머에 세워진 사진 한 장이 넘겨보고 있었다. 맨얼굴의 점순 씨였다. 열서너 살 남짓 딸아이와 볼을 맞대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한 여자였다.

 

 아닌데, 조 사장은 아니라고 했는데? 자신은 그저 ‘커버’해준 것뿐이라고 했는데. 성애는 있는 힘을 다해 박쥐 남자가 말했던 옥문대 쪽으로 뛰었다. 아닌데, 그는 분명 옥운대가 아닌 옥문대라고 했는데? 아닌데, 도끼를 건넸던 건 나였는데.

 등줄기가 금방 척척해졌다. 쪼그라든 심장이 두 다리와 함께 내달렸다. 시커먼 그림자로만 섰던 숲속이 와글와글 울었다. 누구의 비명이라도 듣고 있나, 소란스러웠다. 가팔라지는 계곡 끄트머리에 떨어진 별 같은 빛 하나가 반짝였다. 성애는 온 힘을 다해 추락한 빛 쪽으로 뛰었다.

 유난히 평평한 바위 위에, 도끼를 든 점순 씨가 보였다. 그 앞에 고치처럼 초록 테이프로 온몸을 동여맨 시커먼 덩어리가 있었다. 꿈틀거리며 기고 있는 덩어리였다. 사지가 지워지니, 무력한 몸뚱이였다.

 “기어라, 이 새끼야! 이 벌레만도 못한 호로 새끼야! 내 이날을 삼 년이나 기다렸다, 네 놈 새끼를 잡으려고 온 동네 사내놈들한테 몸 팔고 웃음 팔아 기어이 너를 여기 잡아 세웠다, 이 새끼야!”

 점순 씨는 손에든 도끼를 높이 들고서 고치처럼 동여맨 덩어리를 향해 휘둘렀다. 눈만 보이는 조 사장의 눈동자가 공포로 번뜩였다. 버둥거리며 몸을 굴려 그는 도끼를 피했다. 깡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힌 도끼날이 불꽃을 튕겼다.

 “오냐, 도망치라! 어디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라! 내 새끼 옷을 찢고, 몸을 찢고, 궁지에 몰아넣고 킬킬댔지, 이 새끼야! 그 맴이 어땠는지 어디 한 번 느껴바라, 이 새끼야! 도망치라, 도망치 바라!”

 점순 씨는 조 사장의 두 눈을 향해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깡깡 불꽃을 튕기며 바위 조각들이 쪼개져 나갔다.

성애는 온 힘을 다해 점순 씨의 몸을 끌어안았다. 도끼를 움켜쥐었다. 도끼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점순 씨의 팔과, 빼앗으려는 성애의 팔이 엇갈렸다. 시커먼 밤 속에도 횃불처럼 타오르는 점순 씨의 두 눈이 보였다. 그녀를 막아서기 위해 입을 벌렸는데, 말 같지도 않은 말들만 쏟아졌다. 외마디 비명보다 못한 말이었다, 어긋나고 뒤틀린 말이었다. 어떤 언어가 그의 죗값을 대신했을까, 모자라도 너무도 모자라 턱없이 황폐한 말이었다.

 “그 벌 받으라 케라! 생때같은 자식새끼 보낸 부모한테 받을 벌은 따로 있는 기라! 내한테 받을 벌은 따로 있어야 하는 기라아아아!”

 두터운 문신으로 감추었던 점순 씨의 두 눈이 그제야 보였다. 처음 보는 눈이었다. 매일 보았을 텐데, 처음인 것만 같았다. 예쁘라고 한 화장이 아니었구나, 얼굴을 지우는 화장이구나. 전쟁을 준비하는 가면이었구나.

 “그만요… 됐어요, 아줌마… 아줌마 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살 수 있는 거잖아요? 이제… 이제 용서하고….”

 “용서? 용서! 내가 이 새끼 죽이고 나서, 그때 용서하라 케라! 그래야 공평한 기다, 그래야 공평한 용서인 기라! 놔라, 놔!”

 점순 씨의 작은 몸이 안간힘을 썼다. 백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거대한 몸집의 성애가 점순 씨의 손짓에 맥없이 딸려갔다. 성애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도끼를 끌어 쥐었다.

 “제사만… 제사만 지내고 내려가요. 저 사람 무릎 꿇게 하고… 사죄하게 하고… 따님한테, 밥 한 끼 올리고… 우리 그러고 그냥… 내려가요. 내려가서… 살아요. 살아봐요, 우리.”

 도끼의 목을 틀어쥔 점순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가만히 성애의 목소리를 듣는 점순 씨의 얼굴이 밤과 함께 일그러졌다. ‘아이고, 살 좀 어떻게 해라이!’ 외치던 그 목소리, ‘들이받아뿌라!’ 했던 그 목소리. ‘썅년이 되어야 살아남는 기다!’ 속삭였던 그 목소리.

 “우리… 그냥 밥 한 끼… 올리고… 내려가요. 다 같이… 산 사람… 죽은 사람… 다 같이… 밥이나 먹어요.”

도끼의 모가지를 움켜쥔 점순 씨의 손이 허물어졌다. 통곡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벌레처럼 꼬물거리던 조 사장의 두 눈이, 공포에 질렸던 두 눈이 안도하며 풀어졌다. 성애는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서, 작은 점순 씨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토록 푹신하고 커다래진 몸이 너무도 다행스러웠다. 못 견디겠다는 듯 솟구치는 비명이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대답 없는 산을 다그치듯 울려 퍼졌다.

 서러운 아이를 달래듯 성애는 점순 씨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조용히 점순 씨의 몸을 달랬다. 울부짖는 그의 뜨거운 입김이 볼에 닿았다. 살아남은 누군가의 온기는 왜 이토록 뜨거울까? 더 힘을 주어 작은 몸을 끌어안다가, 끓어오르는 그 온기가 가여워 하늘을 보다가, 성애는 바람에 흔들리는 산 그림자를 올려 보았다.

 헌데, 눈앞에 기우뚱거리던 산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져 나왔다. 성큼성큼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환영인가, 악몽인가, 눈을 크게 떴는데, 새카만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내려놓은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림자의 팔이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의 팔이 안도의 숨을 내쉬던 조 사장의 목덜미를 단박에 내리쳤다.

 퍽! 똘똘 말렸던 고치의 목덜미가 덜렁 쪼개졌다. 질척하고 뜨거운 것이 끌어안은 성애와 점순 씨에게 쏟아졌다. 부르르 떨던 그의 몸이, 고치 안에 담긴 무기력한 몸이, 배터리 없는 인형처럼 끄덕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도끼를 움켜쥔 채 늘어지는 몸을 보고 선 검은 그림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뺨에 튄 피를 스윽 닦아내는 그 몸은, 강대표였다.

 

 언젠가 한 번 어떤 놈이든 죽이고 말게 되는 때가 오리라 믿었다고 강대표는 털어놓았다. 어릴 적 사촌 오빠라는 새끼가 여물지도 않은 젖가슴을 주물럭거릴 때부터, 방직 공장에서 일할 적에 월급봉투를 내밀 때마다 과장이란 놈이 엉덩이를 주물럭거릴 때부터, 언젠가 한 번 어떤 새끼든 죽여 버리고 마는 때가 오리라 희미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라믄 울지 말아야지… 내 그때는 등신처럼 울지 말아야지 그랬어. 뭐가 귀한 줄도 모르는 그 등신 새끼들… 그 하찮은 새끼들 죽인 값이니 울지 말아야지, 절대 울지 말아야지.”

 정말 강대표는 피가 묻은 볼을 쓰다듬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도끼를 들었던 손으로 풀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렸고, 서늘한 바람을 노래하듯 들이마셨다. 그리고 집 이야기를 했다.

 “내도… 우리 어매도… 바란 건 집 하나였제. 이 몸띵이 하나 편히 누울 수 있는 집 한 칸이었제. 방 두 개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에 손바닥만 한 마당 한 개뿐인 집이라캐도… 어매가 그 집 하나 지키려고 친척이란 인간들헌티 을매나 욕을 먹었는지 모린다. 그 집 탐나 서방 죽였다고… 서방 죽인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 끈덕지게 살아남은 저 지독한 년 보라고.”

 우는 듯 웃는 듯 강대표의 입매가 찌그러졌다.

 “어매가… 그 집 내한테 물려줄라꼬, 평생 을매나 고생했는지 아나? 개차반인 오래비라는 인간한테 그 집 안 넘기려고… 그 인간한테 평생 번 돈 쥐어주메… 저 집 하나는 내 이름으로 해 줄라꼬… 열 손가락이 부르터지도록 물일이며 배추밭일이며 가리지 않고 불려 다니며 일했어야. 살아남으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 기라고. 사내새끼들이 아니라… 집이 있어야 한다꼬. 살아남으려면… 집이 있어야 하는 기라꼬.”

 강대표의 목덜미가 잘려나간 듯 고꾸라졌다.

 “그란디… 그란디 말이다… 정작 우리 어매는 살아생전 당신 고향 집으로 돌아가 보지를 못했어야… 그 집에는 어매 자리가 없더라… 살아생전… 단 한 번도….”

 고개를 떨군 채 강대표는 피가 묻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주먹을 쥔 채 바위 위에 쓱쓱 문댔다. 피가 나도록 문지르며, 점순 씨가 그랬던 것처럼 끄억끄억 울었다. 산을 탓하듯 바닥을 치며 울었다.

 넋을 놓고 옥운대 바위 끝에 앉았던 점순 씨는, 다시 도끼를 들고서 조 사장의 목덜미를 마저 끊어냈다. 잘려나가 구르는 목덜미를 품에 안아 나무 아래로 가지고 갔다. 손으로 흙을 파내는 점순 씨를 물끄러미 보다가, 성애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같이 흙을 파냈다. 바위를 치며 울던 강대표도, 엉금엉금 기어와 같이 흙을 팠다.

 “송아, 송아… 니 이름이 소나무 송이라고 소나무에 목을 맸니? 송이 여기 있다꼬… 니 버리고 간 어매 보라고 소나무에 목을 맸니? 애비란 새끼는 술독에 빠져 자식 지킬 줄 모리고… 애미란 년은 지 살겠다고 도망치고… 혼자서 을매나 억울했노… 내 가엾은 새끼… 우리 이쁜 새끼!”

 차갑고 시린 흙을 움켜쥔 채, 점순 씨는 흙 속에 코를 묻고 울었다. 성애와 강대표는 열심히 흙만 팠다. 점순 씨 대신 더 열심히 더 크게 나무 아래 구덩이를 만들었다.

 주둥이까지 테이프로 둘둘 말린 피투성이 목덜미를 구덩이 안에 밀어 넣고서, 성애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올려봤다. 혹시나 소나무 가지들 속 어딘가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송이의 얼굴이 보일까, 밤처럼 꿈쩍 않던 산은 지금이라면 무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시커멓게 그어진 가지들 사이를 뚫어지게 봤다.

 까웅까웅 새가 울었는데, 성애는 산이 울고 있다고 믿었다. 쓰륵쓰륵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뒤엉켜 서로를 내리쳤는데, 마침내 자책하는 산이라고 믿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성애는 부릅뜬 눈으로 눈물만 뚝뚝 흘리며 산을 노려봤다. 산 하늘을 노려봤다.

 

 두 사람을 이끌고서, 성애는 기둥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외부 샤워기 인입구에 호스를 꽂아 물을 틀어 흙과 피가 엉긴 손들을 씻었다. 넋을 놓은 점순 씨의 몸과 손을 강대표와 성애가 씻겼고, 강대표의 얼굴과 손은 성애가 씼겼으며, 성애는 자신의 손을 혼자서 씻었다.

 세 사람은 네모난 집 속에, 기둥 없는 집 한가운데, 매트리스에 둘러앉았다. 성애는 벽에 달린 제일 작은 독서등 하나를 켰고, 매트리스 한가운데 밥상을 폈다. 이동식 냉장고 속에, 그동안 식당에서 싸가지고 왔던 반찬들을 모두 펼쳐 놓았다. 즉석 밥의 귀퉁이를 열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니, 이이잉이이잉 네모나고 작은 것이 세 사람을 위해 다시 또 울었다.

 강대표는 점순 씨를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그때 그 죽은 여자 아이의 엄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마을에 이사 온 외지인의 얼굴은 어디서든 도드라졌는데, 그 얼굴이 유독 슬펐다고 했다.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해도 그 슬픈 눈은 감추지 못하는 법이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드센 척을 해도 한이 서린 얼굴은 모를 수 없다고 했다.

 점순 씨는 성애에게도 자신 역시 처음부터 알아챘다고 했다. 우찌 저렇게 살아가려나 걱정이 들어 잔소리를 했지만, 도끼를 건네주고 도망치듯 모두 산으로 올라가는 성애의 뒷모습을 보니 우리 송이도 그리 산 쪽으로 뛰어올랐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밥 한 숟갈을 입에 물고서 끝내 울먹이는 점순 씨의 등을, 강대표가 어루만져주었다. 강대표는 인자 살 만큼 살았노라고 했다. 점순 씨에게 ‘집이나 좀 잘 지켜도.’ 말했을 때, 점순 씨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을 때, 강대표는 접시 위에 담긴 오이김치를 들어올렸다.

 “이 오이김치가 와 이라노? 시언하지 않고, 텁텁하다이?”

 “아따, 정말 그라네? 젓갈을 잘못 썼나?”

 눈물을 긁어내며 점순 씨가 그녀의 말을 건네받았다.

 “아이다, 오이 때문인갑다.”

 “그래요? 아인데? 똑같은 트럭 장수한테 산긴데… 하우스 오이라 그 모양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우적우적 오이를 씹던 점순 씨는 또 무얼 떠올리는지 오이를 물고서 서럽게 울었다. 질긴 부추 가락을 씹으며, 강대표도 끅끅 울었다.

 “내가… 할게요.”

 오이김치를 가운데 두고 울던 두 사람이 성애를 봤다.

 “저 몸이요… 시체요… 내가 가지고 가서 처리할게요. 그러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아무도 모를 거잖아요? 내가 아주 멀리… 아주 멀리… 갖다 버릴게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성애는 놀란 두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얘가 뭐라 카노?”

 “맞잖아요? 시체만 없으면, 우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아줌마랑 대표님 집도 지키고… 내가 그걸 싣고 여길 떠날게요. 어차피 난 여기에 없었던 사람이잖아요? 여기서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 없을 거잖아요? 여기… 여기 이 수납함에 넣으면 괜찮을 거예요. 내가 아주 멀리… 아주 먼데다가 버릴게요.”

 성애는 매트리스 옆에 관처럼 생긴 수납함을 열어보았다. 조 사장이 파워뱅크를 연결하면서 인산철 배터리를 꺼내 둔 덕분에 청수통과 오수 통만 꺼내면 목 없는 작은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가 누울 크기였다. 준비된 관이었다.

 “니가… 와?”

 점순 씨가 밥알을 튕기며 물었다.

 “왜요?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요?”

 기둥 없는 집의 모퉁이를 성애는 올려봤다.

 “나도… 대표님이랑… 점순 아줌마한테… 집을 지켜주고 싶어서요. 집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요.”

 “얘가 뭔 소리를 하노, 지금?”

 강대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점순 씨가 젓가락을 움켜쥔 채 고개를 꺾었다.

 “맞다… 그리고 두 분, 같이 살아요. 뭐 하러 따로 살아요? 점순 아줌마 집은 정말 집 꼴이 말이 아니더라. 사람이 되려면…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말을 주고받는 사람 옆에 살고… 들이받으면서 살고… 그래야 하는 거라면서요?”

 “하이고… 하이고!”

 늪같이 물렁거리는 바닥을 치며 점순 씨는 엎어졌다. 성애는 넓은 그의 등에 살며시 이마를 가져다 댔다. 쿵쿵 뛰는 점순 씨의 심장이, 웅웅 우는 몸의 소리가 이마를 통해 들려왔다. 등 뒤에서 강대표는 입안에 든 오이 덩어리를 씹어 넘기지 못한 채 물고만 있었다. 숟가락만 쥔 채 기둥 없는 집 모퉁이만 올려 보았다.

 

 그 몸은 언제나 거대해 보였다. 쇳덩이도 아닌데 쇳소리를 내고, 태산도 아닌데 종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 단단하고 무거운 그것에 의지하고 싶다가도, 그 무자비한 손아귀에 목숨 잡혀 끌려가면 살은 몸이었지만 죽은 생이었다. 어느 날 꽃처럼 몸속에서 칼이 피어났는데, 내가 쥔 건 언제나 칼날 쪽이었다. 안전한 쪽은 이미 그 몸 차지였다.

 휴대폰 불빛에 글자들을 찍어 내려가다가, 성애는 녹색 테이프로 둘둘 말린 미라 같은 몸을 보았다. 목이 없으니 사람 같지 않고 인형 같은 그 몸을 보다가, 엄지와 검지를 최대한 길게 늘여 몸에 가져다 댔다. 발끝에서부터 목 없는 목덜미까지 한 뼘을 포개가며 쟀다. 일곱에서 일곱 반. 힘껏 펼친 손이 허무할 만큼 몇 번 손을 움직이다가 그만뒀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몸인데, 테이프로 뚤뚤 감기면 마찬가지 꼼짝하지 못하는 허약한 몸뚱이에 불과한데.

 성애는 테이프로 감긴 두 다리 사이를 봤다. 잘못 감은 것처럼 툭 튀어나온 자리. 언제나 죽기를 바랐던 그 자리. 죽은 그 몸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으로만 무수히도 죽이고 또 죽였던 그 자리.

 피를 빼기 위해 발목을 끊어냈던 칼을 들어 성애는 두 다리 사이에 찍어 넣었다. 오그라든 자리를 뜯어냈다. 테이프를 뜯어내고 옷 조각들을 긁어내니, 너덜거리며 터럭과 뒤엉킨 살덩이가 드러났다. 언젠가 쇳덩이처럼 길었을 그 덩어리는, 죽고 나니 벌레 한 마리처럼 보잘것없었다.

 성애는 자신도 모르게 그 한가운데를 찔렀다. 오그라든 벌레의 몸통을 끊어냈다. 계속 그 자리를 파헤쳤다. 칼로 도려내고, 엉킨 살덩이를 끊어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눈앞이 흐려졌다. 칼끝이 몸속에 닿을 때마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살갗이 너덜거리며 끌려 나올 때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물컹거리는 몸이 갈가리 뜯겨질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왜 울고 있지? 나를 위한 걸까, 그를 위한 걸까?

 이해할 수 없이 쏟아지는 울음을 입에 문 채, 성애는 마침내 덜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뜯어냈다. 잘리고 찢겨나가면 아무 의미도 없는 살덩이. 산 것이 아니면 살도 아닌 뭉개진 핏덩이. 이따위에 매달려 살았고, 죽었고, 죽이고, 또 살아남는 목숨이라니.

 다시 또 성애는 팔을 들어 올렸다. 살덩이가 뜯긴 다리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뚝뚝 피가 흐르는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계속 긁어냈다.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아야 하는 사람처럼, 너덜너덜해진 다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대체 네까짓 게 뭐라고, 쇳덩이처럼 쇳소리를 내고, 태산처럼 깔아뭉개고.

 퉷!

 자신도 모르게, 성애는 두 다리 사이에 침을 뱉었다. 침을 뱉고서, 침과 피가 뒤엉킨 다리 사이를 물끄러미 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다짐하듯 성애는 다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잘려나간 살덩이 사이로 더 깊이, 더 깊숙이. 마침내 손가락 끝에 닿은 딱딱한 것, 쇳덩이같이 딱딱하고 뜨거운 것.

 붙어있거나 붙어있지 않거나, 부끄러운 뼈였다. 형편없는 것들을 벗어낸 비로소 알몸의 자리, 몸속에 숨은 몸의 자리. 누구든 다르지 않고, 쪼개진 자리. 평등한 자리, 비로소 안심의 자리. 몸의 집.

 피와 눈물이 뒤엉킨 얼굴을 쓸어내다가, 비로소 알몸이 보이는 다리 사이를 묵연히 보다가, 성애는 몸을 일으켰다. 피를 빼느라 나무에 걸어둔 몸에서 한발 물러나, 목도 없이 성별 없이 매달린 몸을 보았다. 그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흙 속에 잘 스며들도록 외부 샤워기를 틀어 물과 함께 피를 흘려보냈다. 그 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씻었다.

 나무야 나무야, 너 자라고 꽃 피우는 거름으로나 쓰거라. 꽃 피우면 여기에 살았던 나를 기억하거라. 성애는 샤워기의 끄트머리를 높이 들어 올려 초겨울 가뭄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의 온몸에도 물을 뿌려주었다. 목 없는 몸뚱이를 매단 채, 봄이 오면 가지 위에 어떤 꽃이 필까 다가올 봄을 그렸다. 꽃을 피우는 데 나도 함께 했구나, 그제야 성애는 웃고 있었다. 웃으며 온 산에 피를 흘려보냈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샀던 100리터 종량제 봉투 두 개를 연결해, 성애는 목 없는 몸을 단단히 감쌌다. 풍물시장에 들러 김장 비닐 몇 개를 더 구입해, 한 번 더 감싸 묶고 수납함에 담으면 냄새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성애는 울음으로 퉁퉁 부은 걱정스러운 두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불행 끝!”

 점순 씨는 다시 또 울음을 견디기 힘든지 고개를 돌렸다. 강대표는 점순 씨에게 등을 내주고서 성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온나. 다시 와서… 우리랑 같이 살제이. 인자 여그가 니 고향이다. 그니까네… 다 처리되믄… 이거나 저거나 모든 게 다 처리되거들랑… 아니다,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다시 온나. 우리가 기다리께.”

 웃었던 성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다린다’는 말 때문이었다. 내가 아닌 나 말고,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를, 나조차 믿지 못하는 나를… 기다린다는 그 말 때문에.

 “고오… 향? 고…향. 고, 향.”

 다디단 사탕 한 알을 굴리듯 성애는 그 한 마디를 입속에 오래 굴렸다. 마음 속 입을 동그랗게 모아 한 번도 그리워해 본 적 없는 그 말을 천천히 웅얼거렸다. 결코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지 못했던 그 한마디를, 이번 생에는 절대 자신의 것일 리 없다고 믿었던 그리움을, 두 사람이 마을로 내려간 후에도 혼자서 여러 번 되뇌었다.

 신비가 아침에 먹을 밥을 제일 큰 그릇에 담아 봉분 앞에 내려놓고, 지묘 씨의 봉분을 두 팔 활짝 벌려 끌어안은 채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도, 성애는 ‘고오향, 고오오오향.’ 끊임없이 그 한 마디를 웅얼댔다. 고향을 가진 사람은 원래 그런 걸까, 따끔거리는 마른 풀들에 볼을 문지르면서, 성애는 그동안 여기 이 마을에서 행복했던 일들을, 좋았던 일들을 자랑하듯 봉분 속 지묘 씨에게 말해주었다. 고마웠다고 말하고, 그리울 거라고, 보고 싶을 거라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고향을 가진 사람의 말들을 봉분 위에 마음껏 늘어놓았다. 한 번도 제대로 적지 못했던 그 언어를, 제일 깊은 곳 안전한 몸속에 새겼다.

 

 크고 단단했던 몸 하나가 살던 그곳에, 이제 집은 없고 네모난 그림자뿐이었다. 풀들이 누운 자리였다. 봉분 위에도 풀들이 찌그러졌다. 몸 하나가 엎드렸던 자리였다. 사람이 누운 자리였다.

 차가운 얼음 부스러기들이 이불처럼 세상을 뒤덮은 자리에, 손 하나가 나타났다. 정돈된 손톱과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은 춤을 추듯 봉분을 쓰다듬었다. 지저분한 걸 만진 듯 손가락을 털어내다가, 엄지로 손톱 아래를 긁어내다가, 그는 봉분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커다란 양재기에 담긴 미역국 그릇을 들여다보았다. 기름이 뜬 국 속에 미역 줄기에 뒤엉킨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그는 그릇 옆에 놓인 쪽지를 집어 올렸다.

 “기둥… 없는 하늘… 붉은 피가… 피운 꽃… 한낮은, 밤의 그림자. 어른 미역국 한 그릇… 나는, 침묵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살해하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침묵을 죽였고, 나의 삶은… 안전하다?”

 종이 위 글자들을 따라 읽던 명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미간을 찡그린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뭇가지처럼 그어진 도로 속에, 초록색 화살표는 벌레처럼 기고 있었다. 기어가던 화살표가 멈추자, 그 색깔은 검은빛으로 바뀌었다. 풍물시장 앞이었다.

 “어… 이 아가씨, 어데 갔지?”

 뒷짐을 지고 언덕을 넘어오는 박쥐 남자를 명근은 올려 보았다. 그의 곁에는 솜털 같은 신비의 몸통이 뒤뚱거렸다. 명근은 박쥐 남자도 신비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텅 빈 눈빛이었다. 뒤뚱거리며 미역국 그릇으로 다가오는 신비를 보다가, 명근은 고개만 기울여 신비의 다리를 내려 보았다. 헤 입을 벌려 웃었는데, 추억이라도 더듬는 표정이었다.

 “거… 여기 사는 아가씨… 거 뭐시냐… 트럭에 사는 아가씨, 못 봤소?”

 입가에 웃음이 묻은 채 명근은 허리를 폈다. 어떤 질문도 듣지 않은 사람처럼 박쥐 남자를 올려봤다.

 “그 아가씨… 이사 갔나? 내가 그 아가씨 줄려고 이거… 이거 가지고 왔는데 말이야.”

 자랑이라도 하듯 박쥐 남자는 흙이 묻은 더덕 뿌리를 내밀었다. 얕은 땅에 묻었던 건지 뿌리 끝이 말라 있었다. 맥락 없이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마른 뿌리 두 개를 내려 보다가 명근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 아가씨… 여자 아닌데… 남잔데…”

 박쥐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져 내밀었던 더덕 뿌리를 거둬들였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아가씨가 어떻게 남자야?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거…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거, 거… 쩌어기 뭐시냐… 저저… 물가에서, 흠흠… 내가… 우연으로다가… 흠흠… 그 아가씨 치마 속까지 봤는데 무슨…? 이 양반아, 사람 잘못 봤어!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씨부리고 다니는 거 아니야! 사람이 멀끔하게 생겨가지고… 주둥이 뚫리고 팔다리 달렸다고 다 사람이 아닌 거야, 이 사람아!”

침방울을 튀겨가며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는 박쥐 남자를, 명근은 텅 빈 눈으로 보기만 했다. 더덕 뿌리를 움켜쥔 채 박쥐 남자는 성애의 기둥 없는 집이 있던 자리 한 가운데 섰다.

 “이 아가씨, 얘기도 없이 그렇게 가버리네. 허 참… 이 더덕 맛을 봬줘야 하는데….”

 손에든 더덕을 들여다보다가, 발아래 누운 풀들을 쿡쿡 밟아보다가 그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라도 나는지 헛기침을 하고, 멍든 것처럼 시퍼렇게 흐려지는 아침 하늘을 올려 보았다. 더 이상 누구의 집도 아닌 자리에 서서, 박쥐 남자는 산길을 내려가는 명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분진 같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명근이 들여다보는 휴대폰 화면 속에서, 풍물 시장 앞에 머물렀던 새카만 화살표는 다시 초록빛이 되어 꿈틀거렸다. 너무 작았고 너무 느렸는데, 명근은 오랜만에 재미난 일이라도 찾은 것처럼 작은 얼굴 끝까지 입꼬리를 밀어 올려 웃었다. 분명히 웃는 얼굴이었는데, 조 사장과는 달랐다. 다른 얼굴이었고, 다른 몸이었다.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길게 뻗었다가, 그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 깊숙이까지 손을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 숨겼던 라이터를 딸깍 켰다. 제일 마른 잎사귀에 불을 붙였다. 사르락사르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뒤로하고서, 명근은 길게 하품을 했다. 타오르는 아침이 오고 있었다.

 

 

 

장편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1장 애도

끝.

 

 


 

김비

 

소설가,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통해 등단, 그늘지거나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애쓰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플라스틱 여인>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없음>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신랑과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가 있다.

 



이어가는 말 : 젠더·어펙트 코멘터리

 

 

권영빈 : <강철과 이슬의 집> 1장을 마무리하는 이번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한없이 침잠하기만 했던 성애의 외로운 비명이 강대표, 점순씨와 더불어 비로소 터뜨려진 대목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이러한 상황을 ‘예상 밖의 충격’으로 받아들인 나는, 그간 성애가 끌고 살아 온, 피로 엉긴 몸을 아무래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애는 (그리고 강대표와 점순씨는) ‘흐르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 살아온 자가 아닌, ‘끈적거리는’ 시간 속을 헤집으며 살아온 자이다. <강철과 이슬의 집>이 몸과 집을 애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내새끼들’이 아닌 ‘집’이 있어야 한다는 이 여성들의 분투는 새로운 추적자와 어떻게 마주치게 될까. 김비 작가의 여름은 더욱 뜨거울 듯하다.

 

신민희 :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위로가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내버려두면 괜찮아질 것이라 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 글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거나 소용돌이친다고 말하며 그 사이의 수많은 겹들을 보여준다. 성애가 말줄임표 속에서 삼켰던 말들, 모퉁이에 서 있던 자리, 매달려 있던 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성애가 “퉷!”하고 삼켜놓은 것들을 뱉어낼 때, 침과 피가 뒤엉킨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의 모습이 곁에 오래도록 남는다. 1장의 끝에 뒤엉킴에 대한 감각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그저 우연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 뒤엉킴이 행복한 결말도 불행한 결말도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지 않을까.

 

권두현 : ‘강철’과 ‘이슬’로 할당된 이질적인 물질들의 날카로운 분리로서 이 소설을 다분히 선험적으로 감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장의 마지막은 침과 피가 동시에 흐르는 살된 존재로서 세계의 몸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몸은 그저 자리한다기보다 마치 고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고여있음을 통해 결코 멈춰있는 것이 아님을, 흘러가기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존재 증명은 그저 소설적 기술에 따라 요청된 것이 아니라, 김비가 몸에 새긴 생명과 생존과 생활이 뒤엉킨 삶의 구체적 감각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애도’라는 두 글자가 고여있음의 자리에서 처절하게 진동하고 있음을 퍼뜩 감각한다.

 

김대성 : 연재 초기에 소설의 주인공인 ‘성애’에게도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기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디라도 갈 수 있는 ‘바퀴 달린 집’이 언제라도 떠나야 하는 이방인의 불안정한 표지처럼 보였기 때문인데, ‘취약함’이 상호의존의 조건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해도 손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이의 취약함에 대해선 자꾸만 뭔가를 ‘보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성애’는 작가가 품어온 또 하나의 자아라 생각하며 연재소설을 읽어왔던 까닭에 그이의 불안정한 상태에 정동되어 내내 조바심을 느꼈다. 5회차 연재분을 읽으며 기둥이 ‘없는’ 집이 아닌 바퀴가 ‘있는’ 집에 사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고향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취약한 이들의 결속이 없던 고향을 만드는 조건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조바심을 느낀다. 성애는 언제쯤 고된 운행을 멈추고 작은 마을의 주민(citizen)으로 살 수 있을까. 언제쯤 죽음이 아닌 삶을 곁에 두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찢긴 몸’을 돌볼 수 있을까 여전히 염려가 된다. 그 시간이 너무 아득할 것만 같고, 아니 어쩌면 혹여라도 성애가 그 시간에 닿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이 내가 가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잠시 관심을 가질 뿐 영영 모르는 사람으로, 알 수 없는 세계로 분리된 곳에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의도 없이 쌓이는 장벽과 선의를 품은 악행과 모욕은 언제나, 어디에나 스미니 말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성애가 갖지 않은 기둥이 아니라 내게 없는 바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성애를 끝내 기다리는 미덕보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 성애의 바퀴와 얼마나 동행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퀴가 있는 집 덕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넓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도 느낌의 주인은 조바심과 초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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