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문학의 공간 (문은영)
- 기획
- 2025. 8. 5.
문학관이 작가를 재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운영주체에 따라, 혹은 학예사에 따라 다르게 기획되는 전시들은 문학관마다 작가를 해석하고 해설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문학관의 위치, 작가의 생애, 관련 업적 등이 문학관을 구성하는데 주요한 영향력을 끼친다. 기록관적, 박물관적 기능이 문학관의 주요한 역할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문학관이 온전히 제 역량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문학관을 운영하는 데 있어 전시 및 관광 유치를 부차적인 역할이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문학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없으면 문학관이 유지될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국제문학관은 꽤나 전략적인 계획을 통해 성공적으로 대학 내 문학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와세다대학 국제문학관(통칭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은 현존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설립한 문학관이다. 자신의 원고와 자료들이 소실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의 의지와 하루키 작품의 팬인 많은 이들이 뜻을 모아 하루키 문학관 설립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하루키가 와세다 대학에 재학하던 때 자주 방문했던 쓰보우치 박사 기념 연극박물관 바로 옆, 정치경제학부가 사용하던 건물을 하루키의 친구이자 팬인 건축가 켄고 쿠마가 리노베이션하여 2021년 9월에 국제 문학관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된 것이다.



국제문학관은 4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 1층에는 하루키가 사랑하는 고양이 피터의 종으로 알려진 오렌지 캣을 본 따 만든 카페 오렌지 캣이 있다. 오렌지 캣은 문학관의 일부로서 피터캣에서 사용하던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연극에 사용되었던 『해변의 카프카』 소품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국제문학관의 또 다른 이름이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인 것처럼 작가의 원고나 자료를 보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학생뿐만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공간을 개방하여 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문학관에 활기를 띄게 만들었다. 와세다 대학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국제문학관은 작가의 원고와 자료를 보관하고(Archive) 이를 전시하며(Museum) 동시에 도서관으로서 공용공간으로(Library) 자리매김하며 복합문화공간이자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카페를 방문하며 문학관을 관람하기 위한 목적뿐만이 아니더라도 공부나 작업, 휴식 등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렌지 캣의 중앙에는 국제문학관을 상징하는 ‘터널’이 위치하고 있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구조물인 ‘터널’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양쪽 책장들 위로 아치형 목재구조물이 연속적으로 놓여 있는 모습이다. 이를 디자인한 쿠마 켄고의 말에 따르면 이 터널을 지나는 것이 하루키의 작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이자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즉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는 새로운 사람이 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터널’의 양쪽 책장에 꽂힌 책들은 단순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뿐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다. 목재 책장 사이를 지나 터널을 따라 위층으로 향하면 하루키가 출간한 다양한 판본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등장한다. 이처럼 ‘터널’은 쿠마 켄고의 건축 의도와 같이 하루키 문학에 접속하고 있다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일깨워준다.



터널을 따라 올라간 지상 1층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하루키가 출간한 다양한 판본과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하루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의 공간이다. 일부 도서는 벽면의 유리 진열장안에 전시되어 있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서들은 자유롭게 가져가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마치 도서관에 온 것처럼 지상 1층의 대부분의 공간은 책장과 함께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들로 구성된 것 같았다. 이러한 독서 공간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하루키가 피터캣을 운영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목재 테이블과 의자가 울타리나 유리 진열장도 없이 전시되어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국제문학관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는 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이라는 3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라키비움이라는 점과 이 세 가지 기능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고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학관에 따라 특정 기능에 더 집중하거나 치우치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으나 국제문학관의 경우는 프로젝트 설계 당시부터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문학관을 떠올려보았을 때는 흔히 박물관과 같은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유리진열장 안에 전시된 작가들의 원고나 유품, 자료 등이 그러한 예시이다. 그러나 국제문학관은 하루키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함과 동시에 이를 ‘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관이 생활공간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고심했던 노력이 국제문학관 곳곳에서 드러난다.
기획전시실인 지상 2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상설전시관에 해당하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다 둘러보다보고 난 뒤에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어째서 국제문학관에는 하루키에 대한 정보가 적은 것일까? 이는 국제문학관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나카무라 미노루는 문학관 내의 상설전은 예산과 구조 등의 문제로 전시교체가 어려워 관람객들의 재방문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나 상설전의 비중이 커질수록 문학관의 새로운 전시나 기획전을 구상하는데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과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



지하 1층(카페 오렌지 캣)과 지상 1층이 상설전시관에 해당하는데, 하루키가 쓴 짧은 글과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하루키저작연보를 제외하고는 하루키라는 작가의 생애 혹은 작품에 대한 문학관의 해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의 생애나 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도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관람객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상설전시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흔히 문학관하면 떠올리는 풍경은 지상 2층으로 올라가게 되어서야 기획전시관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국제문학관이 상설전의 공간을 공용공간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하루키에 대한 해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선택한 까닭으로는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 ‘국제성’이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후술할 ‘국제성’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키라는 작가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포지셔닝하는지에 대한 전략이라면 효율적인 공간 활용은 문학관을 구성하는 공간 전략에 대한 이야기다. 지상 3층에는 하루키의 작품 및 관련 문헌을 보관한 연구 서가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이들만 이용할 수 있다. 문학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역할인 자료 보관 및 수집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이를 제공하는 기록관(Archive)으로서의 기능 또한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외의 공간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상설전시관이며 지상 2층은 기획전시관으로 하루키 문학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 상설전시관이자 공용공간으로 활용되는 두 개의 층과 연구서가를 제외한 나머지 한 층 전체를 기획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상설전시관에 하루키에 대한 해설이 많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문학관에서 상설전에 비해 기획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상설전시관이 공용공간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매 방문마다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설전의 재방문율을 높였고⏤꼭 문학관 관람만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카페 방문이나 작업, 휴식 등을 위해서⏤이를 통해 기획전의 비율을 늘리는 것이 가능해지며 새로운 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하여 재방문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제문학관이라는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성’을 강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도쿄에 위치한 국제문학관의 운영주체는 지자체가 아닌 대학이다. 그렇다는 것은 국제문학관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학관보다도 ‘지역성’이라는 주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움과 동시에 하루키와 관련된 수많은 키워드 중 ‘국제성’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2운영계획에서부터 이미 대학의 문화교류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을 시작으로 하여 전 세계의 문학 연구자와 애호가들이 반드시 방문해야할 연구 거점을 목표”3로 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러한 목표를 위해 심포지움을 개최하거나 학술지를 간행해 국제문학관을 문화교류 및 연구의 장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활동들에는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가 국제적인 작가임을 전제하고 있으며 모두가 하루키를 알고 있을 거라는 전제 또한 포함하고 있다. 국제문학관이 ‘국제성’을 내세우는 것은 하루키의 문학이 국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관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관람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략은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설전시관의 해설을 과감하게 축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관람객들이 ‘국제적인 작가’ 하루키를 ‘이미’ 알고 있다고 설정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기획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방문했을 당시에는 <오하시 아유미 판화전: “무라카미 라디오”>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국제문학관은 하루키의 문학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오하시 아유미 판화전: “무라카미 라디오”>는 하루키가 여성 잡지 ⟪anan⟫에서 연재했을 당시 맞춰 제작한 드라이포인트 동판화 시리즈뿐만 아니라 패션 브랜드 ‘핑크 하우스’ 등의 작업물 또한 함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기획전시관 입구에는 오하시 아유미에 대해 하루키가 작성한 패널이 붙어있다. 그리고 기획전시관의 한쪽에서는 작품 낭독과 작가와의 만남을 짧게 요약한 다이제스트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문학관들이 작가 사후에 설립된다는 점에서 국제문학관은 현존하는 작가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을 잘 활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입구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서게 되면 수많은 판화들이 벽면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귀여운 그림체의 판화는 재치 있는 제목이 작품의 매력을 한층 더 살려준다. 앙케이트에 참여하면 현재 진행 중인 <오하시 아유미 판화전: “무라카미 라디오”>의 그림이 담긴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매 시기 달라지는 기획전시의 작품을 이용하여 앙케이트의 상품으로 제공하는 것 또한 사소하지만 관람객들의 재방문을 높일 수 있는 디테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적인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학관 본래의 역할인 자료 수집 및 보관을 충실히 하되 이를 활용하여 작가와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하고 적합한 기획전시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예사의 역량뿐만 아니라 건축 단계부터 문화행사에 대한 지역민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문학관을 오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의 전시가 준비되어야 한다 항상 똑같은 모습의 문학관이라면, 재방문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국제문학관은 기존의 문학관이 지니고 있던 정적인 특성을 새롭게 풀어내 많은 관람객들이 발걸음하게 만들었다. 복합문화공간인 라키비움의 세 가지 기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하루키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조차도 쉽게 문턱을 넘을 수 있게 하였으며 기획전시의 비율을 늘리고 매 시기 새로운 주제의 전시를 기획하며 하루키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공간도 함께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운영방식은 하루키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국제문학관을 모두가 편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반드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만 그 흥미가 높아진다는 기존의 연구와 달리 사전지식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문학관을 즐길 수 있는 기획이 성립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이자 열린 공간으로서 라키비움인 국제문학관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드나들며 마치 살아 숨 쉬듯 매순간 변화한다. ‘박제’되어 영원불변의 공간이 되어서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다. 상설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획이 계속해서 생기고 사라지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이러한 호흡의 반복 속에서 문학관과의 상생이 가능해진다. 문학관은 더 이상 원고와 자료, 유품 등을 보관하기만 하는 장소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문학에 접속하는 공간이자 현실과 문학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관람객은 더 이상 잠시 스쳐지나가는 존재가 아닌 문학관을 구성하는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은영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석사과정.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보조원. 여성과 지역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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