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 – 제4회 (김비)

 

 

 기둥 없는 네모난 집 속에, 모든 것들은 정지했다. 맥스팬도,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던 모니터도, 머리 위에 켜진 불빛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성애는 네모난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웠다. 누웠나 쓰러졌나 좀 전의 기억마저 흐릿해지고 나니,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서러웠다. 이대로 세상에 없는 구멍 속으로 사라졌으면. 마침내 여기 내 몸 아래 그 구멍이 뚫려, 내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던 행운이 한 번에 벼락처럼 몰아쳐 그 구멍 속으로 이 몸뚱이가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렸으면.

 

 사르락삭삭 사르락삭삭

 

 벽 너머에서 다시 집을 쓰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만지는 소리였다. 바람이 지묘 씨를 일으켜, 지묘 씨가 바람을 일으켜 벽을 쓰다듬는 소리. 어떤 몸도 어떤 형체도 가질 필요 없는 존재가 제일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벽을 매만지는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텅 빈 머릿속을 텅 빈 채 들어 올려 바닥을 짚겠다는 다짐 하나만 생각했다. 굽혔던 팔꿈치를 펴면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문 쪽이었다. 사르락사르락.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몸 없는 것들의 소리를 향해 귀를 활짝 열었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이자, 고함이자, 구호를 뱉으며, 성애는 몸을 끌어올렸다. 늪처럼 매트리스 위에 발이 푹푹 빠졌다. 빠지거나 말거나 발끝에 힘을 실어 벽 쪽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기둥 없는 집이 통째로 흔들리도록, 쿵 소리가 나도록 온 몸을 던져 벽을 밀어 열었다. 무너지듯 열린 벽 너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공기, 호흡, 숨.

 성애는 입을 크게 벌려 하악하악 눈앞에 모든 것을 들이마셨다. 두 팔을 활짝 벌려 매달리듯 아침을 끌어안았다. 사라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어제와 똑같이 나를 기다리던, 형체 없는 그 품에 와락 뛰어들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고,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일찍 오려고 해서 일찍 온 것이 아니라, 일찍 오게 되어 일찍이었다. 닫힌 식당 문을 열지 않고 가방만 문 앞에 내려놓고서, 조 사장의 가게 쪽으로 걸었다. 배터리 충전은 휴일에 하고 일단 파워뱅크를 빌려 퇴근길에 가지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파워뱅크를 빌리고, 식당 문 앞에 놓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아무리 창피하고 흉한 몰골이라도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돌고, 돌아와 어제 사다 놓은 콩나물을 풀어, 씻고, 다듬고, 다시 또 숨이 막힐 것 같으면, 문 밖으로 나가 주차장을 열 바퀴 돌고, 다시 돌아가 나물의 몸통을 하나하나 씻고, 잘라내고, 다듬고, 씻고.

 궁지에 몰릴 때마다 성애는 일상의 순서를 차곡차곡 쌓았다. 하나씩 새빨갛게 그어가며 주어진 일들을 꾸역꾸역 해냈다. 그러고 나면 손톱만큼 살아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랄 것도 아니었다. 악다구니였다. 퉁퉁 부은 얼굴로 생이란 놈의 발목을 물어뜯은 뒤에 비로소 얻게 되는 피딱지 미소.

 가게로 들어서는 몽롱한 성애의 얼굴에서 무얼 봤는지, 한쪽에 가벽을 세워 그 너머에서 먹고 자는 조 사장은 피식거리며 성애를 맞이했다. 파워뱅크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자신이 지금 가서 직접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괜찮다면 김밥에 사발면을 사가지고 ‘코리언 브런치’를 같이 먹고 내려오자고 했는데, 성애가 아니라고 손을 흔들기도 전에 조 사장은 길 건너 분식집 쪽으로 뛰었다. 검은 봉지에 든 물컹한 것들을 성애에게 내밀고서, 그는 낡은 외제 차에 가방처럼 생긴 묵직한 파워뱅크와 전선을 실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성애는 운전석 유리창 너머에서 손짓하는 조 사장을 따라 차에 올랐다. 그래 별일 아니야.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이것도 일상이야. 빨간 줄로 그어버리면 되는 일상이야. 따스하고 물컹한 것을 품에 안고서, 성애는 조수석에 앉아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인산철도 갈 때가 된 모양인디… 중국산은 쪼까 그렇지요? 방전도 좀 빨리 되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는 수납함에 설치된 인산철 배터리까지 풀어 들여다보았다. 밖에다 놓고 선만 연결하면 되는데, 수납함 안에 있던 인산철 배터리팩을 꺼내고서 그 자리에 파워뱅크를 넣어 연결했다. 괜찮아, 일상이야. 살아내는 일이야. 성애는 입을 꽉 다문 채 괜한 일에 땀을 흘리는 그를 보고 있었다.

 “거 뭐냐… 주행 충전기도 달렸던데… 그게 달려있으니 한나절 차를 좀 끌고 다니면 될 것 같은데, 차 끌고 자주 돌아다니시는 분도 아이고… 차를 가게 앞에 대 놓는 건 어떻겄소? 우리 가게 앞에 대 놔도 괜찮은데…”

 조 사장은 웃는 얼굴을 뒤집어 쓴 채 가져온 의자에 엉덩이를 끼워 넣었다. 트렁크에서 파워뱅크와 함께 다른 걸 끌어내려 뭔가 봤더니, 접힌 캠핑용 의자 두 개였다. 파워뱅크를 꺼내기도 전에 마을 쪽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의자 두 개를 펼쳐 놓더니, 선물이라고 했다. 자신도 언젠가 캠핑카를 구입해 전국으로 떠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게 꿈이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온 의자들은 접고 펴는 데나 편리하지 성애에게는 너무 작아 쓸모도 없었다.

 “아따… 그나저나 여기가 명당이네이? 경치도 직이고… 자리를 잘 잡으셨네… 자동차로 이리 오르내리는 길이 있어야? 배추 농사 짓는 양반들이 일하느라 만든 길인갑네. 이리 좋은 자리를 우찌 찾으셨소, 그래?”

 조 사장은 답이 필요 없는 질문들을 쏟아 놓고서, 플라스틱 상자 위에 놓인 컵라면을 끌어당겼다. 싸가지고 온 김밥을 투박하게 집어 입에 욱여넣고서, 후룩후룩 사발면 국물을 들이켰다. 정말 캠핑이라도 온 사람처럼 너무 작은 의자에 앉아 등을 폈지만, 성애는 주방기구들이 담긴 캠핑용 플라스틱 상자에 걸터 앉았을 뿐이었다.

 “마, 이리 산속에 사는 기 좋을 수도 있제. 세상만사 인간들 더러븐 꼴 안 보고, 죄 많은 지난 일들 다 털어버리고… 내가 선택한 나로, 주체적으로 살면서… 안 그래요? 복작복작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기 뭐가 좋노, 이리 멀찌감치 떨어져 좋은 공기 마셔가메 자유롭게 사는 기, 그기 와따지. 안 그래요?”

 조 사장은 면발을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며, 눈꺼풀만 끌어올려 앉아있는 성애를 올려 보았다. 그 눈빛이 어쩐지 징그러워 성애도 테이블 위에 놓였던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한 번에 목구멍 속에 털어 넣고서 어서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내… 그리 나쁜 사람 아니니까네 걱정 마소. 거 머시냐, 편견 같은 거 있는 사람 아니야, 내가. 그니까 안심 붙들어 매소. 나야 언제든 성애 씨를 돕고 싶은 사람이니까… 성애 씨도 이리 외딴 동네 와 살믄서 내같은 오빠 하나 있음 든든하지 않겄소? 기댈 데도 있고…”

 물이 덜 데워졌는지, 성애의 입 속에 구겨진 면발이 씹혔다.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고 언제든 도와주겠다는 그 마음이 고맙기는 한데, 어쩐지 그의 말끝이 미끄덩거렸다.

 “성애 씨 같은 타입, 나는 좋아. 내한테는 거 뭐시냐, 호감형… 마따 호감형이니까네, 걱정할 일 읎다꼬. 그라고 내 보기에 성애 씨 정도면 충분히 멋진 여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해요, 내가. 사람이 조용하고, 고분고분하고, 여성스럽고…”

 성애의 젓가락 끝이 굳었다. 성애는 미적지근한 스티로폼 용기만 붙들고 있었다. 맹물이나 다름없는 국물 때문인지 속이 메슥거렸다.

 “성애 씨 보믄 거 뭐시냐…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진짜 여자인 게 느껴진다니까네? 여자라는 기… 마… 남자도 그렇지만서도…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존재 아인교? 맞죠, 내 말이 맞죠? 그니까 성애 씨도 언젠가 좋은 남자 만나면, 더 완벽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그 말 아니겄소? 내 물심양면으로다가 도와 드릴테니께…”

 “네?”

 속이 거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심장이 방망이질했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성애는 싸우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왜냐고 묻고 있었다.

 “왜…요?”

 조 사장이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성애를 올려봤다. 저렇게 예쁜 눈이 징그러울 수도 있다니, 성애의 두 눈 사이가 저절로 찌그러졌다.

 “마, 도와준다꼬요, 성애 씨 편이 되어준다 그 말 아인교? 그니까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거들랑 기탄없이 말하소. 배터리는 거 안에 아예 넣어서 연결했으니까네 천천히 갖다 줘도 되고…”

 아닌가, 호의인가? 내가 너무 그를 쉽사리 ‘처리’하려는 건가?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사람을?

 목이 탔다. 다시 똑같은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서, 성애는 기둥 없는 집으로 뛰어올랐다. 조 사장이 열어놓은 기다란 수납함을 닫았다. ‘코리언 브런치’를 먹고 있는 그를 향해 열려있던 벽도 닫아 잠갔다. ‘그건 나중에 하입시다, 나랑 같이 하입시다!’ 다시 또 김밥을 여러 개 입에 문 채 그가 소리쳤지만, 성애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려도, 힘이 들어도, 혼자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와 따로 내려갈 핑계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화장실에라도 들렀다 가겠다고 할까 싶었지만, 그가 이동식 변기 위에 올라앉은 자신을 상상할까 소름이 돋아 그럴 수 없었다. 친절하게 외제 차 조수석 문을 열어 반달 눈웃음을 보이고 있는 그를 향해 성애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바람이 떠민 것 같았고, 그럴 리가 없는데 누군가 괜찮다는 말을 해준 것 같았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거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호통 치는 소리라도 들은 것 같아, 성애는 얼굴이 빨개져 자동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성애가 앉은 조수석 등받이에 팔을 올려 차를 후진하며, 그는 어깨를 크게 부풀렸다. 그와 얼굴이 가까워지는 게 싫어 성애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어깨와 닿지 않도록 안전벨트의 목덜미를 꽉 붙들고서 놓지 않았다.

 ‘불편한가?’ 라고 혼잣말처럼 묻는 그에게 ‘아뇨,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는데, 그 말을 무슨 의미로 이해했는지 그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 사장은 동생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시보드 한 복판에 달린 뽀얗게 보정된 남자 사진을 가리키며, 얼마나 유명한 수재였는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얼마나 특별한 아이였는지, 아버지 없는 가계에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끝도 없이 쏟아냈다. 우월한 유전자 몰빵 어쩌고 동생 칭찬에만 몰두했지만, 성애가 듣기에는 자기 자랑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그런 핏줄이고, 내 안에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뭐 그런.

 그러다가 갑자기 특별한 사람으로 산다는 일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그는 푹 한숨을 쏟았다. 잘난 사람 주위에는 꼭 시기하는 사람들이 꼬이게 마련인데, 머리가 너무 좋고 게다가 생긴 것도 연예인처럼 생겨놓으니 다른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고 했다. 동네 여자 아이 하나하고 문제가 생겼는데, 그 일로 동생 앞날을 막을 수 없어 자신이 대신 ‘커버’해줬다며 조 사장은 쓰읍 입맛을 다셨다. 간단히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고서 잠시 머뭇거렸는데, 그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짧은 순간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지금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한 일들도 다 그런 거라고, 애가 잘 나가니까 돈푼이나 뜯으려고 성추행이니 성폭행이니 막 가져다 붙이는데, 내 동생 건드는 것들 가만두지 않을 거라며 그는 아주 잠깐 눈을 번뜩였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털끝만큼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커버’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성애는 잠시 얼어붙고 말았는데, 그는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내 인생도 차암 불쌍타, 그죠?”

 드르륵 대시보드 위에 휴대전화가 울린 건 그 때였다. 그는 빨갛게 변한 신호 앞에 차를 세우고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콘솔박스에서 꺼내 귀에 끼웠다. 호랑이 제 말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사진 속 동생인 모양이었다.

 성애는 액자 속에 무표정한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날렵한 턱 선에, 곧은 콧날에, 또렷하고 큰 눈이 프레임 바깥을 보고 있었다. 조 사장은 날카롭게 보일 수도 있는 인상이 눈빛 하나로 선해졌다면, 그의 동생이란 사람은 그 반대였다. 누구에게든 귀엽고 잘생겼다고 사람들의 칭찬 깨나 들었을 단정한 얼굴인데, 눈빛이 조금 달라보였다. 선명하고 또렷한 눈동자를 품은 그의 두 눈에선 어떤 의지나 마음도 읽히지 않았다. 사진 한 장인데 그림 한 장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 사장은 성애 쪽을 돌아보며 휴대폰 너머를 향해 대화를 이어갔다.

 “오야… 그래,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니도 좋아할끼다. 응, 그래… 알았다! 짜슥… 그래, 온나! 와서 보제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조 사장은 성애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노마도 성애 씨가 보고 싶다카네예?”

 “네? 저… 저를… 왜…”

 “아… 아하, 우리 성애 씨 아까도 그러시더니… 쪼까 예민하신 쪽인 갑다, 그죠? 이 노마도 편견 같은 거 읎는 놈이니까네, 걱정 꽉 붙들어 메소. 다 좋게 좋게 지내면 되는 기지, 안 그렇소?”

 조 사장은 마을 쪽을 향해 거칠게 핸들을 틀었다. 이번에는 묻지도 않은 강대표 만난 이야기를 했는데, 조 사장은 자신이 강대표를 지켜 줬다고 했다.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귀찮게 하는 것들 허다했는데, 돈 번다고 구미까지 갔다가 돌아와 큰 일 당할 뻔한 걸 자신이 지켜줬다고. 지켜주고 나니 자신이 달리 보였는지 눈빛이 ‘몰랑몰랑해지길래자기가 좀 거칠게 끌어당겼다고 했다.

 “가 어매가 남겨준 그 하꼬방 집 고쳐주고, 잠잘 때 그냥 확…허허허!”

 한 팔로 허공을 움켜쥐며 그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성애는 너무 놀라 그의 눈동자만 보고 있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휘어지는 반달 눈 속에 눈동자를 감추고서, 조 사장은 사내들이 그렇게 좀 거친 면이 있어야 여자들은 좋아한다고 했다. 요즘 사내들 사내도 아니라고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성애는 황급히 머리 위에 손잡이를 붙들었다. 목덜미가 너무 뜨거워 현기증이 몰려왔다. 스프링 위에 달려있던 사진 액자가 통통 튀었다. 순간 아무것도 읽을 수 없던 사진 속 그의 두 눈이 겁에 질린 성애를 흘끔 본 것 같았다.

 

 하루 일과를 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성애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조 사장은 거칠게 차를 몰아 식당 앞에 세웠고 성애는 도망치듯 자동차에서 빠져나왔다. 어서 빨리 식당 안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점순 씨가 성애 앞을 가로막았다. 늦었다고 타박을 하려나 싶었는데, 점순 씨는 대뜸 ‘니가 와 거서 내리노?’ 다그쳤다. 강대표의 애인 차에 왜 함부로 탔느냐는 다그침인 줄 알았는데, 점순 씨는 성애의 귓가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썅 년이 돼야 살아남는 기다, 아나?’ 갑작스레 쏟아진 욕설에 성애는 얼떨떨했는데, 칭찬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식당 안 강대표에게 다가가는 조 사장을 점순 씨는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러다가 다시 성애를 향해 두 눈을 번뜩이고는 식당 뒤쪽으로 돌아섰다.

 점순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호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로의 기분이나 마음은 자연스럽게 읽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닌 모양이었다. 점순 씨가 달라졌나 세상이 달라졌나, 오늘 왜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달라진 것만 같은지.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강대표는 들었던 밥주걱을 성애에게 넘기고서 주방으로 넘어갔다. 팬을 올려놓았던 건지 따각따각 나무 주걱이 프라이팬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 사장은 테이블 한 쪽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봤고, 주방과 연결된 뒷문에서 점순 씨는 양파 망을 들고 들어와 양재기에 쏟았다. ‘이거부터 빨리 까래이.’ 밥을 퍼 담고 있던 성애에게 점순 씨는 그렇게 말해 놓고서 바쁘게 뒷문 밖으로 나섰다. 어쩐지 좀 전과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변함없이 점심 손님은 넘쳐났고, 성애는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인스턴트 커피 잔을 들고서 의자에 앉았다. 점순 씨는 좀 눕겠다고 방석 하나를 구겨들고 뒷마당에 펼쳐진 평상으로 나갔고, 성애는 강대표와 서로 다른 테이블 의자에 앉아 커피를 후룩거렸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다보니 아침까지 이어지던 피로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당장 죽고 싶을 만큼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마음도 결국 몸의 일부라니, 성애는 종이컵의 말린 끄트머리를 손톱으로 꾹꾹 눌렀다. 올가미를 그리듯 빙 둘러가며 눌렀다.

 “조 사장, 느그 집 갔었나?”

 “네?”

 “오늘 아침에 말이다.”

 “아, 네… 오늘 아침에요. 배터리 때문에… 배터리 연결해 주시러 오셨어요. 제가 혼자 연결할 줄 몰라서…”

 올가미 모양으로 손톱자국이 난 종이컵 속에 성애는 얼굴을 묻었다. 기껏해야 인중뿐이었지만, 어디에든 얼굴을 감춰야할 것 같았다. 어떻게 말해야하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거지? 아무 일도 없었고, 정말 배터리를 연결해주고 돌아온 것뿐인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성애는 오금이 저려왔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 내가 느낀 불안과 불쾌감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가?

 “다른 얘긴 안 하드나?”

 마지막 손님이 가게 앞 낡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일어서는 모습을 넘겨보며, 강대표는 담담하게 물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성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올가미같은 종이컵 속에 자꾸 얼굴만 들이밀었다. 피로감으로 몽롱한 성애의 귓가에 시간을 건너 뛴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은 낮고 거칠어진 강대표의 목소리 너머로 오래 전에 지워진 어떤 절규가.

 성애는 이전처럼 담담하게 말을 건네는 그녀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올가미 자국이 난 컵 속에 자꾸 얼굴을 묻었다.

 “동생 얘기… 동생 얘기 많이 하셨어요. 정말 우애가 좋으신가 보더라고요. 동생 자랑 엄청 하시고… 거기 자동차에 동생 사진… 그것도 보여주시고… 뭐…동생 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 성애는 머릿속 징검다리를 바삐 오갔다.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되는 이야기일수록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지만, 하지 말아야겠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헌데 강대표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가… 좋은 놈 아이다.”

 “네?”

“명근이… 가 좋은 놈 아이라꼬. 세상에 처음부터 좋은 놈이 어딨노? 다 노력하고 애를 써야 좋은 놈 되는 기지. 원래 그렇고… 저절로 그렇고…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좋은 놈 같은 건 읎다.”

 더욱 어려워져버린 강대표의 뜻 모를 이야기에 어떤 대답이 좋은 걸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는 다시 예상치 못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난중에라도… 명근이는 조심하그레이.”

 종이컵을 움켜쥔 채 새빨간 앞치마 아래 벌레 물린 자국을 긁으면서, 강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조심을 당부하는 모습이라고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강대표의 마지막 말은 어쩐지 선뜩했다.

 알겠다고 말해야할지, 왜냐고 다시 물어야할지 성애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성애를 알겠는지, 강대표는 벌레 물린 자국에 침을 바르고는 일어섰다. 길게 하품을 하고서, ‘점순이 자빠져 자는 모양인갑다, 가 깨워라.’ 손짓했다. 성애는 강대표를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차마 그녀의 뒤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붙들렸나 붙들었나, 올가미를 닮은 자국이 새겨진 종이컵만 꽉 쥐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어차피 남아 버릴 반찬들을 비닐 팩에 담고 있는데, 뒷마당 쪽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고함이라고 해야 하나,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성애는 지워져 버린 시간 속 사라진 풍경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선반 아래 환기용으로 뚫린 널빤지 창으로 눈을 내밀어보니, 평상에 앉은 조 사장을 향해 강대표는 온 몸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뚝뚝 끊겨 들려오는 말소리, 찢기듯 갈라지는 목소리. 무슨 이야기인지 명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강대표가 그토록 흥분한 모습을 성애는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담대하고 침착하던 사람이었는데, 꿈쩍하지 않고 모든 걸 떠받치며 지탱해줄 수 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었는데.

 강대표와는 달리 조 사장은 화목난로 옆 평상에 앉아 등산화발만 까딱거렸다. 손에 쥔 전자담배 연기 때문에 표정이 잘 보이진 않았는데, 그의 등 뒤에서 절규하며 소리치는 강대표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누군가의 비명 앞에 그렇게 덤덤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조 사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기 시작하는 강대표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등산화 발끝조차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똑같은 속도로 까딱거리면서, 다시 전자 담배를 들어 입에 물었다. 자욱한 흰 연기가 그의 두 눈을 감췄고, 동시에 어둠 속에 반쪽짜리 얼굴이 그림자로 드러났다. 담배를 내뿜는 입 꼬리인줄 알았는데, 그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서럽고 서러운 강대표의 울음소리에 맞춰, 조금씩 치켜 올라갔다. 웃는 입이었다.

 

 잠이 드나 싶다가도 성애는 다시 눈이 떠졌다. 벽 너머에서 조금이라도 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온 몸이 곤두섰다. 숲에서 자거나, 천변 주차장에서 자거나 기둥 없는 네모난 집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 온 몸을 짓누르는 어둠의 무게가 오늘은 너무도 달랐다. 사람의 형상을 한 어둠 아래 깔린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흑백 모니터를 켰다. 바람에 출렁이는 가지와 수풀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지묘 씨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발 하나가 생각났다. 수풀 속에 쑤욱 내밀어지는 등산화. 성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꾸 땀이 났다.

 별일 아니야, 어제와 똑같은 밤이야. 다시 또 새빨갛게 줄을 그어야 하는 밤이야. 줄을 긋고 잊으면 되는 밤이야. 몸을 굴려 성애는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이불을 끌어 움켜쥐었다. 눈은 감지 못했다. 서서히 온 몸을 짓누르는 어둠이 무서워 눈을 감았다가, 눈을 감아도 눈꺼풀 속에 또 다른 어둠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시 눈을 떴다가, 다시 또 겁에 질려 눈을 감았다. 감았다 뜨고, 떴다가 다시 감고, 다시 감았다가 뜨고. 흐리멍덩하고 나약한 인간이 견뎌야하는 길고 긴 밤이었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성애는 파워뱅크가 달린 수납함에서 쇠막대부터 꺼냈다. 필요한 때가 오리란 단발머리 공장 직원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다시 쇠막대가 생각났다. 그거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할 것 같았다.

 

 

 박쥐 남자는 산이 지켜준다고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할까. 이토록 아름답고 거대한 산은 왜 모두를 지키지 않는 걸까, 누군가는 왜 이 산을 믿지 못한 채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떨게 되어버린 걸까.

 성애는 쇠막대로 산을 쿡쿡 찍으며 마을로 향했다. 왜 너는 공정하지 않은가, 왜 너는 게으른가, 왜 너는 키를 키우고 자라게 하는 일에만 성실한가. 왜 너는 모두를 위한 산이 아닌가, 그러고도 너는 왜 산인가? 추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성애는 발아래 흙을 쿡쿡 찍으며 걸었다. 온 힘을 다해 발자국마다 쇠막대를 찍어 넣었다.

 산을 내려와 마침내 식당 간판이 보이자 성애는 움켜쥐었던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란 느릴 뿐 혹시 가장 서둘러 도착한 게 아닐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무기력은 제 자리가 아니라 여러 걸음 물러서고 만 일 아닐까. 뒷걸음질로 도망치고서 꼼짝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형편없는 짓.

 들었던 쇠막대를 성애는 머리 위까지 높이 치켜 들었다. 막대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서, 아스팔트와 이어진 흙바닥의 경계를 있는 힘껏 내리 찍었다. 시커멓게 뒤덮인 아스팔트는 그깟 쇠막대 하나로 패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 성애는 다시 한 번 팔을 높이 들었다. 쇠막대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아스팔트 위를 노려봤다. 우리에겐 어떤 몸이 필요한가, 도대체 어떤 몸이…?

 

 

 쾅! 순간 머리 위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터졌다. 좀 전에 지나 왔던 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스팔트를 찍으려던 쇠막대를 손에 움켜쥔 채, 성애는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봤다. 마을 한 가운데 솟구치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 건물들 속에서 주민들이 도로로 뛰쳐나왔다. 황급히 어딘가에 전화를 넣는 사람들과, 탄식을 쏟는 사람들이 뒤섞였다.

 사이렌 소리가 아침을 찢고 비명이 연거푸 이어지는 풍경 앞에서, 성애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으로 휘적휘적 몇 걸음 더 다가서다가 멈칫했다. 손에 들었던 쇠막대를 놓쳐버렸다.

 

 지역 케이블 방송국의 뉴스 속보는 삼십 분 넘게 모두리 천변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 현장을 보여주었다. 검은 연기가 쏟아지고 불길에 휩싸이는 작은 상가 건물 꼭대기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두 사람이 창문 밖으로 허우적거리는 장면은 급박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머리가 벗겨진 한 사람은 이미 정신을 잃었고, 그를 들춰 멘 작은 몸집의 남자가 소방관들을 향해 건물 아래를 가리키며 무언가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소방관들이 매트를 깔았고, 남자는 메고 있던 사람을 매트 위로 떨구었다. 소방관이 그를 끌어내자 남자 역시 창가 난간에 걸터앉았다가 훈련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두 다리를 나란히 뻗은 채 매트 위로 점프했다.

 다부진 몸에 왜소하지만 단단한 그의 몸짓은, 아주 간결하고 깔끔했다. 구경하던 주민들이 박수치며 환호했고,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등산화를 바닥에 탁탁 털며 매트 위를 빠져나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성애는 그의 등산화만 보고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의 비명과 절규 앞에는 까딱거리며 웃던 등산화를.

 현장 감식이 이루어져야겠지만 낡은 가스관이 파손되어 일어난 화재로 예상된다며 리포터는 간단히 사고를 설명했고, 집주인인 양 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했다. 영웅적인 행동으로 한 생명을 구한 조 사장의 인터뷰는 박수치는 주민들 앞에서 진행되었고, 그는 해병대의 의무를 말했고, 주민으로서의 책임을 말했으며, 망설이지 않았다고 거듭 확신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천변에 세워졌던 자동차 블랙박스에서 사고 당시 영상이 발견되었다. 막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건물 속으로 뛰어 올라가는 조 사장의 망설임 없는 몸짓은 풀에이치디 영상으로 녹화되었고, 속보는 그가 뛰어 올라가는 장면과, 전 이장이던 양 씨를 구해 매트로 내던지는 그를 계속 연결해 보여주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던 영웅의 모습 다시 한 번 보시죠.’ 속보가 끝나갈 때까지 똑같은 화면은 계속 리플레이 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조 사장의 건실한 행실을 증언하는 댓글들이 쏟아졌고, 마을을 위해 평생 혼신의 힘을 다한 청년의 일대기는 낱낱이 활자화되었다. 모두리 ‘윈터 솔저’와 찍은 사진들이 해시태그로 이어져 연달아 SNS에 업로드 되었고, 그와 찍은 사진들이 끝도없이 쏟아지며 공유되었다.

 저녁 손님으로 식당을 찾은 누군가 강대표에게 뜬금없이 축하한다고 말했는데, 강대표는 말없이 맥 빠진 웃음을 짓고는 그만이었다. 누군가 조 사장한테 안 가보느냐고 물었지만, 강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스름돈을 건네주고 다 먹은 밥그릇을 차곡차곡 포개며, 안녕히 가시라는 말도 없이 그릇 쟁반을 들고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어쩐지 오늘은 점순 씨도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었다.

 다음 날 하루 일과를 모두 정리하고 간판 불을 내릴 즈음, 마침내 조 사장이 나타났다. 자신감에 찬 얼굴과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얼굴은 똑같이 생긴 모양이구나, 성애는 어깨를 잔뜩 끌어 올린 채 웃는 조 사장의 두 눈을 애써 외면했다.

 점순 씨는 남은 반찬들을 새 용기에 담아 냉장고 안에 쌓다가 돌아봤고, 강대표는 카운터에서 돈을 세다가 흘끔 열린 문 쪽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세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얼굴이 굳었는데, 조 사장은 기세등등한 낯빛으로 거만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이발소에라도 다녀왔는지 짧아진 머리카락 끝이 번들거렸고, 턱 밑에 수염 자국도 매끈했다. 대꾸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는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빙글빙글 웃었다. 어떤 말을 기다리는지, 유리문 너머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쳐다봐주기를 기다리는지, 목을 길게 빼고 어깨를 주무르며 기합 같은 한숨을 연거푸 내 쉬고 있었다.

 “봤나?”

 금고를 잠그고 주방 쪽으로 돌아서는 강대표를 향해 그가 거만한 말투로 물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냥반, 내 예전에 신세를 쫌 졌거든. 뭐 그기 아이더라도 사람으로서 도리 아이가. 마을 주민으로서… 마 남자가 그 상황에서 뛰어들지 않으면 그기 또 남자가 아이고…”

 성애는 혹시나 만만한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할까 더 소리 나게 설거지 그릇들을 뚱땅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웅얼거리고 좋아하고 으쓱하는 그에게 모두들 등지고 서서, 제 할 일만 했다.

 “마, 오늘 근사한 데서 술 한 잔 하까? 내 한 잔 사께. 모두리에서 제일 큰 안다미로에서 내 근사하게 술 한 잔 사지 뭐. 거 무대 올라가 노래도 부리고… 느그들 쪼매 귀찮을끼다… 아따 마, 사진 찍자는 양반들이 우찌나 많은지… 쪼매 그라더라도 니들이 이해하고… 가자, 다들 가자.”

 조 사장은 당장이라도 모두를 호위하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팔을 뻗었다. 그러나 대답 대신 환했던 홀 안에 불이 딸깍 꺼졌다.

 마지막 밥그릇을 건조대에 쌓다가 성애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조 사장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황급히 등을 돌려 잘 쌓여있던 반찬 그릇들을 다시 쌓고 있는데,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소한 몸집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크게 어깨를 부풀리고 큰 걸음으로 걷는 그는 이따금 오히려 더 작아보였는데, 오늘은 활짝 편 그 등이 찢긴 종이 한 장 같았다.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실내등에 잠깐 비춘 그의 작은 얼굴엔 더 이상 휘어진 눈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뭐 하노, 집에 안 갈 끼가?”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강대표가 멀뚱히 섰는 성애를 다그쳤다. 점순 씨는 앞치마를 벗어 팽개치고는 가방을 들었다. 성애도 앞치마를 벗어 놓고서 남은 반찬들을 집어 들었다. 유리문을 나섰다. 대충 손을 들고서 집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강대표의 뒷모습을 성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그 시간을 넘어서기 위해 그녀는 무얼 움켜쥐어야 했을까, 무얼 찔러야 했을까? 설마, 산이나 길 같은 게 아니라… 몸?

 식당 문을 잠그고서 점순 씨는 성애 곁을 지나쳤다. 손도 들지 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갔다. 길을 향해 걷는 점순 씨의 등을 향해 성애는 혼잣말하듯 웅얼댔다.

 “우린…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몇 발짝 더 앞으로 걷던 점순 씨가, 다시 성큼성큼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성애의 얼굴에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도끼를 마련해야제.”

 “네…?”

 생각지도 않은 점순 씨의 대답에 성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순 씨는 두텁게 문신한 눈꺼풀과 꽉 다문 새빨간 입술을 성애 앞에 보여주고 섰다가, 다시 뒤를 돌아 인적이 끊긴 도로 위로 올라섰다.

 도… 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글자인 것처럼 성애는 두 글자를 입 안에 굴렸다. 깜깜한 길 위로 올라서는 점순 씨를 바라보았다. 방금 길 위로 사라졌던 강대표와 꼭 닮은 걸음걸이로 점순 씨 역시 밤 속을 걷고 있었다. 인도도 없이 편도의 국도는 어둡기도 하고 또한 넓었는데, 점순 씨는 도로를 통째로 지배한 사람처럼 길 한 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었다. 남자들을 홀리려고 엉덩이를 흔들고 눈웃음을 흘리던 가벼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도로의 한 가운데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녀의 몸짓은 세상을 지배한 듯 육중했다. 등 뒤에서 어떤 차가 나타나 경적을 울리더라도, 양쪽 도로를 가득 채우며 큰 차가 나타나 밀어버릴 듯이 위협하더라도, 순순히 비켜줄 것 같지 않은 그런 몸이었다.

 그런 몸을, 성애는 알고 있었다. 살아남으려는 몸이었다.

 

 


김비

 

소설가,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을 통해 등단, 그늘지거나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애쓰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플라스틱 여인> <빠쓰정류장> <붉은 등, 닫힌 문, 출구없음>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신랑과 같이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가 있다.



 

이어가는 말 : 젠더·어펙트 코멘터리

 

 

권두현 : 김비 작가가 전해오는 연재소설을 찬찬히 읽고 있으면 종종 ‘부사구’ 앞에 멈춰 서게 된다. 그 부사구들은 모습과 소리를 형언하기도 하고, 미처 형언되지 않는 침묵이나 머뭇거림, 때로는 조급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부사구들은 소설을 장식하는 단순한 수식어구가 아니라, 주체가 세계에 접속하기 위한 준비 자세를 명시한다는 점에서, 독자가 멈춰 서야 할 만한 지점들에 꽤나 정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 부사구들은 성애의 취약한 몸과 그 몸을 감싸며 소용돌이치는 정동의 격류를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퀴어 소설’뿐만 아니라, 재현체계 전반을 새롭게 감지하기 위한 다른 식의 독법을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김비가 신중하게 묘파하는 이 세계는 그저 뛰어들거나 쉽게 돌아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부대끼지 않으면 안 될 거인의 몸처럼 주어져 있다. 김비가 그리는 삶터는 곧 흉터다.

 

권영빈 : 성애가 거처하는 금속성의 집은 새벽에 내려앉는 이슬에도 공포가 느껴질 만큼 불안한 곳이다. 〈강철과 이슬의 집〉은 그 자체로 ‘비명이자, 고함이자, 구호’인 성애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공간이다.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4화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갈등과 위기를 몰고 온 조사장 옆에 그간 성애에게도, 독자에게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강대표와 점순씨가 부상하고, 성애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도끼’를 몸에 새긴 이들이 여럿임을 (재)발견한다. 이들을 만든 ‘강철’과 ‘이슬’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의 문제가 〈강철과 이슬의 집〉의 남은 여정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바로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다.

 

 김대성 : 성애가 살고 있는 집은 견고하지만 감옥처럼 숨막힐 때가 많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바퀴는 정박해 있을 때면 쓸모를 잃은 채 버려진 것만 같다. 성애는 초식동물처럼 주변의 작은 기미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의 무신경한 표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읽어내려고 한다. 그런 성애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그이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조건과 환경(정동)을 거쳐야 한다. 그건 불안과 공포만은 아니다. 뭔가가 터질 것 같은 불안과 공포의 진동으로 가득한 이번 회차를 읽으며 ‘몸 둘 바’를 몰라 마치 없는 존재처럼 운신하려는 성애가, 무엇을 하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노출되는 성애가, 이 세상이라는 집에 살기엔 너무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애라는 거인. 성애가 머물기엔 이 세상이라는 집은 너무 비좁다. “기둥 없는 네모난 집”엔 거인이 산다. 그러니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다.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어느 거인이 발신한 메시지가 성애에게도 도착했으면 한다. “집이 없는 건 아냐. 거주지가 없는 거지 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노마드랜드 Nomadland> 클로이 자오, 2020)

 

 신민희 : 커버는 무언가를 가리고, 덮고, 보호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안전함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편견 없음을 스스로 확언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해 ‘커버’라는 말은 오히려 은폐하고 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소설의 ‘모두리’라는 장소는 모두라는 말로 커버쳐온, 폭력성의 바운더리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커버’에 친 따옴표만큼이나, 파워뱅크, 코리언 브런치 등의 명사를 들여오는 지점이 눈에 띈다. 이는 성애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일상의 순서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길어낸 명사이자, 폭력적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려는 몸짓으로 보인다. 그것은 커버되지 않는 비유를 생성시키려는 글쓰기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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