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진과 소현숙은 장애를 중심으로, 김이진은 해외입양인의 표상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러한 담론들 안에서 어떤 균열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귀, 눈, 피는 모두 신체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담론과 표상 안에서 신체의 전체, 혹은 한 인간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고 대표하게 된다. 이 세 편의 글이 그러한 담론과 표상의 작동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귀는 어떻게 전체이기를 멈추고 하나의 부분으로 (뜻밖에) 돌아오는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눈은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역이용하여 저항하는가? 당사자는 자신의 피에 관한 해석을 통해 어떻게 주류적인 표상에 도전하는가? 이 글은 세 글의 문제의식을 분석하고, 논의해 볼..
“그런데, ‘정동’이 무슨 말이야?” 얼마 전 귀한 발표 자리에서 정동에 대해 짧게 언급할 자리가 있었다. 이후 화장실에 들렸을 때 청중 두 분이 손을 씻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앞의 질문을 상대방에게 던졌다. 순간 시간이 부족했음을 아쉬워했지만, 정동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어렵다. 어펙트(affect)에 대한 번역어에서부터 다양한 해석(정동, 감응 등)이 있지 않던가. 그런 와중 가장 반가웠던 한국말은 바로 ‘부대낌’이었다(권명아 2012). 이 표현만큼 어펙트라는 개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마주침’과 ‘되기’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없었다. ‘부대낌’이란 표현 속에는 인간이란 다른 존재와의 끊임없는 마주침 속에 살아가는 “연결신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동아대학..
여전히 화면보다 종이 위에 쓰인 글이 읽기 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날로그 세대다. 그런 나에게 웹소설은 너무 낯선 세계이지만, 댓글과 SNS, 커뮤니티에 남긴 짧은 글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개입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바꿔놓고 있다는 쌍방향적인 웹소설의 세계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의 시시콜콜한 비평이 즉각적으로 작가에게 전해지는 세계에서 웹소설은 단지 작가의 욕망만을 담지 않는다. 독자의 취향과 욕구, 수익을 창출하려는 플랫폼의 치밀한 계산과 인기 있는 서사의 구축을 통해 자기 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작가라는 세 주체가 만나는 장으로서 웹소설의 세계는 서로의 욕망이 만나 충돌하고 타협하는 정동적 공간이다. 이런 서로 다른 주체들의 마주침에 주목하면서 안상원 선생님은 웹소설의 ‘여성적 장르’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스트리밍 산업에서는 스트리머들에게 ‘공정’해보이는 조건을 내걸어 다양한 보상을 제안하곤 합니다. 스트리밍 시간 기준은 물론이고 높은 수준의 영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조회수, 구독자수, 댓글수, 시청자수 같은 수치는 일견 공정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해야 하는 개인이 처한 환경과 위치는 각기 다르며, 그에 따라 같은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스트리밍도 달라집니다. 공정해보이는 수치 경쟁은 한편에서는 과잉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이면에서는 불공정한 평가의 기준과 출발점의 차이를 지워버립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역시 “개인의 자발성과 노력에 따른 성취”라는 수식은 능력주의의 수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성취에 따른 보상은 막대합니다. 예컨대 화질 선택, VOD보관 기..
1. 게임의 혐오와 게임에 대한 혐오의 뒤얽힘 1편이 혐오스러운 세상에서 사랑을 찾는 과정이었다면, 2편은 반대로 사랑을 잃음으로써 혐오를 탐색하는 과정 시리즈에 대해 김성윤은 이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소 거친 대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편’과 ‘2편’의 연속과 단절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진술입니다. 인터랙티브 무비(interactive movie)로도 볼 수 있는 어드벤처 액션 게임 는 그 자체로도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지만, 게임 그 자체에 대한 평가도 드라마틱했습니다. 2013년에 발표된 ‘1편’의 호평과 흥행에 이어, 2020년에 발표된 ‘2편’에는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GOTY)’으로 상징되는 극찬과 동시에 ‘혐오’의 정동이 들러붙었습니다..
‘되기’의 실행: 괴물의 역량과 여성의 글쓰기에 관하여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I. 메리 셸리(Mary Shelley)는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서문에서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쓴다. 21세가 되던 1816년 여름, 셸리는 친구들과 제네바로 여행을 떠난다. 여름답지 않게 춥고 비가 많이 오던 그 시절, 그는 저녁마다 모닥불을 지피고 친구들과 독일 유령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셸리와 친구들은 “괴담을 나누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해 이야기를 한 편씩 쓰기로 한다. 날씨가 개자 친구들은 멋진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이야기 짓기를 그만두었지만 셸리..
※ 이 글은 BIBI(비비)의 Life is a BI...(인생은 나쁜X) MV와 함께 읽길 권장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n7AYYJKwwE 마지 피어시(Marge Piercy)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The Woman on the Edge of Time, 1976)는 여성 해방운동이 치열했던 1970년대에 출간된 페미니즘 유토피아 SF이다. 페미니즘 유토피아 SF 대표작으로는 샬롯 길먼(Charlotte Gilman)의 『허랜드(Herland)』(1915)를 꼽을 수 있다. 『허랜드』가 ‘여자들만의 세상’을 그린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면,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페미니즘 유토피아 SF의 지위를 갖는다. 주인공 코니는 그리스어로 부..
「로라」를 쓴 김초엽은 작가 소개에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거의 항상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로라」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실패한 느낌이 든다. 이 실패란 문제적인가? 「로라」는 문장 비유의 사이트 해시태그(#)가 알려주듯, #환상지와 #디스포리아를 다룬 SF소설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는 환상지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 with pain)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질환은 사고나 수술 등으로 절단해 상실한 신체부위가 여전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통증까지 동반된다. 실제로 신체를 상실한 환자의 약 78~85%가 환상통을 겪고, 대부분 48시간이 지나면 해소되지만, 1년 이상 환상통을 경험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1990년대, ‘몸의 철학’이 유행했다. 니체와 하이데거, 베르그송, 메를로-퐁티, 푸코, 들뢰즈 같은 근대 철학의 전복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권위가 무너진 자리를 메웠다. 나는 그 시기에 ‘몸 철학’의 세례를 받았다. 자연, 신체, 물질을 넘어서려 했던 형이상학(metaphysics)의 선험론에 맞선 자연·신체(physis)의 반론과 도전, 서양철학사에서 지워졌던 몸의 권리 주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사유의 기반이 어디인가? 감각과 감정의 장소로서 신체는 이성 판단의 장애물인가? 신체 없는 사유가 가능한가? 인간의 사유와 기계의 계산은 차이가 무엇인가? 그런 질문들이 쏟아졌고, 몸은 사유의 장소로 재탄생하는 듯이 보였다. 이 치열한 로고스와 파토스의 싸움이 이분법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올해 초,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에서 『약속과 예측』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드디어!’라고 외쳤다. 최근 국내외 퀴어/페미니즘 논문을 읽다 보면 정동 연구와 만나지 않는 경우가 드문 터라, 정동 연구의 구체적 성격과 이론적 가능성에 대한 확장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를 접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도 이미 정동이론에 관한 번역서가 적지 않게 소개돼 있고, 그에 대한 연구도 꽤 축적된 편이다. 다만, 국내에서 전개된 초기 정동 연구에 대한 논의가 ‘정동’의 개념 규정과 번역 문제, 그리고 ‘정동이냐 이데올로기냐’ 등의 논쟁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정동 연구의 다양한 관심사와 스펙트럼이 알려지는 데에는 다소 지체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렬하게..
책의 위치는 어디일까? 『약속과 예측』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의 흐름을 움켜쥔 시간에, 그리고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 공간에서 탄생했다. 특정한 시공간의 맥락이 이 책에게 부여한 의미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동과 젠더 정치의 맞물림이 책의 주된 문제설정으로서 출발지라면 파열된 시간에서 등장하는 주변성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이 책이 도달하려는 목적이다. 먼저, 현재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이 서평을 시작하려 한다. 지난 1년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개인적 분리와 고립감을 장기화시키면서 ‘코로나 블루’의 우울증을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사회 각층의 주변부와 타자들에게 쏟아붓는 정동적 집중을 만들어냈다...
열며: 정동의 책 읽기 다양한 저자들이 함께 쓴 책은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다. 우선 각자의 관심 영역에 따라 폭넓은 소재들이 다뤄지기에, 자유로운 모험을 하는 듯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외연의 확장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단일한 관심 영역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이해와 탐구 양식의 차이 때문에, 원래 하나로 동일하다고 간주되던 주제를 내적으로 심화하고 세분화한다. 이는 내적 심층화의 효과에 해당한다. 가장 흥미로운 특성은 세 번째 단계에서 발견된다. 이는 서로의 차이가 명백하거나 암묵적으로 드러나면서, 하나의 책이라 할지라도 다수의, 그리고 종종 서로 충돌적이고 모순적인 목소리들을 표출하는 단계다. 이 과정에서 책은 통일된 합일체가 되는 일에 의도적으로 실패한다. 이로써 들뢰즈가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