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쓰기(bodily:writing)의 정동(1회)_장옥진

0. 몸:차림(此, 次)

 

이 글은 ‘대안’의 몸이 되어야 했던 자기 경험을 분석 대상으로 삼기에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이자 대학의 안팎에서 자생한 대안 연구모임 아프콤(aff-com)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몸:쓰기(bodily:writing)에 대한 비평이다. 이때의 몸은 지금, 여기 있음의 몸이자 몸과 몸이 계속해서 부대끼고 ‘접속’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몸이다.

 

대학에 입학한 2012년 무용학과가 폐지되고 졸업할 무렵인 2016년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통폐합되었다. 지역에서 예술과 문학을 한다는 것은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살려주세요.’, ‘짓밟힌 꿈’이 적힌 전단지를 받는 일이었다.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꿈의 자리가 위협 받고 안심할 수 없는 마음이 대학 내내 이어졌다. 국어국문학과 학생인 탓, 문학하는 탓이었다. 예술과 문학에 대한 눈 뜨고 코 베어갈 세상의 인심에 한편으로는 다른 마음과 몸이 움트기 시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살아남기 위한 다른 판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이 글은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우리를 내쫓으려 하던 ‘기존’의 제도에 맞서서 스스로 벌인 한 상의 대안적 몸:차림이라 불러도 좋겠다. 먼저, 기존의 언어로는 소통 되지 않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무대에 올린 몸:극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아프콤, 2013)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몸-부림에 대한 관심은 ‘폐과’, ‘구조조정’의 경험과 떨어질 수 없기에 글은 경험에 대한 자기기술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서 학살 생존자들의 ‘언어’가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 혹은 몸-부림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또 다른 몸:극 <Your Body>(극단 노뜰, 2022)에 대한 나름의 비평을 시도해보려 한다.

 

이 자기기술과 비평은 ‘대안이 대안일까’ 혹은 ‘대안이 정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고민 속에서 지금까지는 없던 장르를 발명한 공동체들의 시도를 살펴보려는 데서 나온 글쓰기 방식이기도 하다. 몸-부림의 경험을 살피고 비평하는 일은 몸 자체가 하나의 언어라는 것에서 나아가 ‘언어’와 ‘몸-부림’이 서로를 “전적으로” “구하는” 일이라는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흐름들을 <나는 미치지 않았다>(바문사, 2022), <우물가 살인 사건-그곳엔 사람이 산다>(경희댄스시어터, 2022) 통해 대안이 전염되는 여러 집합적 양상을 보고자 한다. 


  차린 것은 없지만 몸과 몸이 ‘몸-껏’ 정동되기를 기대한다. 

 

 

0. 몸:풀기

 

몸을 쓴다. 어떤 정지된 포즈를 취하고 한두 동작을 연결하기도 하며, 무언가를 몸에 담기도 비우기도 하면서 몸으로 나타낸다. 호흡과 소리에 몸을 얹고 이성과 정서, 신체와 정동의 유기적 협응 속에서 몸을 감각한다. 매일 신체훈련과 공연언어를 습득하면서 몸을 쓴다. 몸을 잘 쓰는 것이 요구되는 작업(직업) 환경 속에서 ‘몸’과 ‘몸’이 만난다.

 

몸을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몸을 잘 쓰기 위해서는 몸을 잘 풀고 달래야 한다. 몸을 쓰기 위해, 유연하고 올바르게 작동할 몸을 위해 공을 들여 ‘애’써야 하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작고하기 전 다음 작품은 언제쯤 쓸 계획이냐는 물음에 “글쎄요. 이젠 소설을 쓰려면 내 몸에게 먼저 물어봐야 해요. 내 몸이 견딜만하면, 그래도 된다고 허락하면 그때는 아마도 쓸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몸에게 내가 하는(할) 일의 가능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반대로 몸이 담은(지나온) 역사와 시간이 있기에 몸이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몸’에게 묻고 ‘몸’이 답하는 것에서 몸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다. 지금 당신의 몸에게 묻는다.

 

 

1. 당신의 몸은 무엇입니까

 

여기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2013), 몸:극이 있다. <젠더·어펙트연구소>의 전신(前身)이었던 대안 연구모임이었던 <아프콤(aff-com)>의 다양한 시도 중 하나로, 배수아의 작품 중 「밤이 염세적이다」를 각색하여 연극 형태로 상연하였다. 그것은 연극인 동시에 ‘말’을 최소화한 몸:극이었으며 당신의 ‘말’에 대한 연극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흑백의 천이 검은 무대에 깔려 있다. 위로부터 늘어뜨린 천 뒤로 두 몸이 갈라져 나온다. “벽 속의 벽, 벽 속의 벽, 나는 오직 말을 갖지 않은 물고기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를 말하며 물을 잃은 물고기처럼 몸부림치며 천 밑을 기고 있다.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두 몸에게 외부의 목소리는 말한다. “(실례지만) 당신의 국적은 무엇입니까.” 난입한 목소리에 두 몸이 움직임을 멈추고 반응하지만, 무대 내부의 두 몸과 외부의 목소리는 전혀 소통되지 않는다. 물고기인지 사람인지 모를 무대 밖 몸들(관객)만이 무대 내부의 두 몸을 쳐다보고 있다. 도무지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포스터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초대권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 흑백의 천, 밤의 몸, 오랫동안 밤에 산 몸,흰 밤의 몸, 검은 밤의 몸

 

몸의 개입이 절대적인 행위나 위와 같은 몸:극이 난해한 이유는 정체(이름) 모를 대상의 출현과 ‘몸으로 말해요’식의 표현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두 몸 그 자체이다.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이 없을지라도 두 몸은 다르게 인식되며, 다른 몸짓, 다른 이야기, 다른 존재감으로 받아들인다. 두 몸은 몸 1, 몸 2 / 배우 1, 배우 2 / 여자 1, 여자 2 정도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로 하나의 몸’이라는 시점을 통해서만 두 몸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지그재그로 엇갈리듯 교차하는 몸짓, 괴기스러운 두 몸으로 얽힌 나무의 형상, 흑백의 천으로 몸을 감싸고 숨어버린 두 몸만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존재를 구원하는 것은 말이 아닌 몸이란 듯이.

 

존재를 구원하고 존재를 있는 힘껏, 있는 몸-껏 존재하게 하는 것은 온 마음(말)을 다한 몸이다. 아프콤은 그러한 몸을 써writing 왔다.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은 몸:극이라는 지금까지 없던 장르를 발명하고, 몸을 부단히 움직여 직접 획득한 언어(몸), 사람(몸), 만남(몸)을 새로이 발명하고 있다. 아프콤의 몸은 ‘움직이는 몸’이다. <인문장치를 발명하자!>는 아프콤의 ‘움직이는 몸’이야말로 발명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아프콤 발명품, DVD <아프꼼과 별자리들> 제작 표지

 

여기 또 다른 몸:극 극단 노뜰의 <Your Body>(2022)가 있다. (연출/구성 원영오, 출연 양승한, 이은아, 주동하, 홍한별, 송정현, 호슈에 코헬로, 무대감독 민경욱, 기획 차나영, 기술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ALL, 스테이지팩토리, 주최/주관 극단 노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극단 노뜰은 원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으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적인 활동을 작품 생산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지속하고 있다. 전쟁연작은 제주의 간드락(대표 오순희, 소극장)과 협업한 작품이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국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과 창의적인 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그간 20여개 나라 50여개 도시와 마을과 거리에서 워크숍, 리서치, 공연을 해왔다. 2001년 이후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에서 폐교를 개조한 창작공간을 거점으로 ‘후용공연예술센터’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며,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대중에게 평가 받는다. 2019년 전쟁연작Ⅰ <국가>를 시작으로 전쟁연작Ⅱ <침묵>, 전쟁연작Ⅲ <Your Body>까지 ‘전쟁연작 시리즈’를 제작해왔고 전쟁연작 시리즈는 전쟁이라는 커다란 세계관을 중심으로 전쟁의 형태와 특징을 다양한 시점으로 녹여낸 극단 노뜰만의 레퍼토리 시리즈이다. 

 

극단 노뜰의 활발한 예술 활동과 앞서 말한 아프콤의 ‘움직이는 몸’이 연결된다. 극단 노뜰의 ‘전쟁’을 키워드로 한 연속적인 몸:극의 발명은 제주라는 지역의 소극장과의 공동 발명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 또한 아프콤과 극단 새벽(대표 이성민, 부산)의 협작이다. 이는 ‘움직이는 몸’과 ‘움직이는 몸’의 접속이며, 지역을 넘어선 ‘움직이는 몸’의 새로운 출현과 만남이라는 구조의 발명이다. 이 몸들을 탐색하는 것은 ‘움직이는 몸’을 얻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주고받는 일이다. 

 

씨어터필름 [Your Body] 학살 생존자1 바닥에 나뒹굴다 땅을 딛고 선 몸

 

<Your Body>는 당신의 ‘몸’에 대한 연극적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몸’을 통해 바라본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전쟁은 몸의 지배로부터 시작된다는 연구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당신과 나의 몸에 대해 치열하게 묻는다. “당신의 몸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작품 해설에서 <Your Body>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본능이고 권리임에도 전쟁에서 몸의 권리를 빼앗겼을 때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몸’이라는 본연의 존재가 가진 성질과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 기억들을 발견해내고 파헤친다고 평가한다. 몸의 기억, 몸의 폭력, 몸의 위로, 몸의 자의성과 강제성 등 ‘몸’이 지닌 다양한 성격들을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펼쳐낸다.

[Your Body] 학살 생존자의 <몸>과 <몸>이 들러붙어 된 나무의 형상 /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 얽힌 채 죽어 있는 두 그루 나무를 연상케 한다

<Your Body>에서 학살 생존자들의 몸은 어딘가 온전치 못하다. 몸의 이상(異常)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언어는 기껏해야 “비명의 대체물”이 된 말이다. 이들이 “비명을 삼켜내며” 어떤 몸이 되었는지 그 몸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해석하는 일은 함께 몸:쓰기 위함이다. ‘몸’과 ‘몸’이 서로 유관한 몸이 되는 것에 대한 ‘동의’이자 우리의 몸을 더욱 굳건하게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계속)

 


 

이 글은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가 주최한 2023년 한일 국제 컨퍼런스 <현장의 정동, 실천의 자리-젠더적 사유와 체현적 리터러시>(일본 히토츠바시 대학 사노서원, 2023년 1월9일)에서 발표한 원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총 3회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장옥진

동아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대안 연구모임 <아프콤(aff-com)>에서 활동하였다.

현재 <젠더・어펙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본업은 폴댄스 강사다.

글쓰기와 몸쓰기를 좋아하고 몸을 잘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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