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ective Societies - Affect (1회) (Jan Slaby, Rainer Mühlhoff / 은혜 옮김)

『Affective Societies: Key Concepts』

* 일러두기

- 대괄호는[ ]는 옮긴이가 부연 설명을 위해 임의로 추가한 부분이다.

-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홑따옴표(‘ ’)나 줄표(―)를 적용하였다.

- 에티카직접인용의 국역은 황태연본(피앤비, 2011)에서 가져온 후 [국역본]으로 서지사항을 표기했으며, [국역본] 표시가 없는 부분은 본문의 맥락에 맞춰 옮긴이가 직접 번역한 부분이다.

- 원문의 이탤릭체는 고딕체로 강조했다. 단, 외국어(라틴어나 불어)여서 이탤릭체로 표기한 것은 따로 강조하지 않았다.

 

 

 

어펙트(affect)

 

얀 슬라비(Jan Slaby), 라이너 뮐호프(Rainer Mühlhoff)

번역: 은혜

 

 

 이 책 정동적 사회의 주요 개념의 본문 첫 장에서는 우리가 분석적 관점으로 유익하다고 간주하는 어펙트 이해를 개괄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어펙트를 일반적 경향을 아우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환경 속에서 진화하는 신체들 사이의 관계적 동역학(dynamics)으로서의 어펙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어펙트를 내면의 상태, 느낌(feelings), 감정(emotions)으로 여기는 접근법과 대조를 이룬다.

 ‘어펙트’는 구체적으로 각각의 신체적 역량(capacities)이나 미시역능(micro-powers)의 변화―그것이 힘의 증대이든 감소이든―를 수반하는 신체들의 마주침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펙트는 역능에 대한 접근법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특정 분야에서는 신체들의 상호 효능 관계―그것이 인체이든 비인간 신체이든―로 이해된다. 이러한 접근은 평범한 사물이건 인간 행위자이건 개체(entities)를 미리 만들어진 안정적이며 고정된 무엇으로 상정하는 대신, 개체들의 역동적 형성(formation)과 뒤이은 변형―그것이 [생물학적] 개체발생(ontogenesis)이든 [철학적] 개체화(individuation)이든―에 대한 어펙트 중심의 관점을 보여준다.

 인간 행위자에게 어펙트는 물질적이면서 관념적인 관계, 간단히 말해 인간을 둘러싼 환경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행위자 및 개체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행위자적・실존적 역량을 증/감시키는 관계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정동적 관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체의 역량과 성향을 확립하고 조정해나가는 한―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한―정동적 관계는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관계적 어펙트는 주체 형성 과정의 핵심 요소이다. 나아가 관계적 어펙트는 보다 큰 신체 집합체의 형성 및 공고화, 즉 집단화 과정의 원동력이다.

 

 어펙트를 이러한 일반적인 용어로 서술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목적과 방법론적 지향으로 연구의 관점을 창안함에 있어 생산적이다. 우리는 방법론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정동적 현상을 개개인의 정신상태로 다루지도, 인간의 관행 속 범주화된 에피소드로 다루지도 않을 것이다(→ 감정emotion, 감정 개념emotion concept). 오히려 정동적 현상은 형성적(formative) 관계들의 뒤얽힘 속에서 진화하는 개체들 간의 강렬한 마주침을 구성한다(→ 정동적 배치affective arrangements).

 강조되어야 할 것은 발전의 과정, 변화무쌍한 역능의 관계, 변화와 변형이며, 개체발생과 주체화의 무대가 되는 형성적 환경이고, 보다 큰 집합체를 이루는 개체들의 자연발생적이고 강력한 연합이다(→ 정동적 공동체affective communities).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점은 자칫 연구자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펙트의 미묘한 동역학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인간 행위자와 그들의 특성, 정신상태, 상호작용, 사회 집단, 확립된 범주 체계, 감정 규칙(feeling rules)―은 여전히 이러한 정동적 마주침들이 빚어낸 순간적이지만 일시적으로 공고한 결과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어펙트 이해―주로 질 들뢰즈가 독해한 스피노자 철학의 요소들로부터 발전된―는 어펙트, 역능, 주체성의 연결을 조명하는 데 적합한 개념을 만들어낸다. 본 장을 비롯하여 이 책의 몇몇 챕터는 이러한 생각들과 그 개념적 배경을 구체화하고 현대 어펙트 연구의 함의를 강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토대: 어펙트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계적 접근법

 

 

스피노자와 나누는 어펙트 이야기

 

 

 현대 어펙트 연구의 핵심 줄기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은 어펙트 연구를 흥미로운 일이자 까다로운 일로 만든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형이상학 체계―역동적인 형태의 실체 일원론―를 제시하는데, 이는 데카르트에서 칸트를 거쳐 20세기의 여러 개체론적・유심론적 접근법에 이르는 서구 철학 사상의 핵심 노선들과 대립한다(cf. Andermann, 2016; Balibar, 1997; Gatens & Lloyd, 1999; Saar, 2013; Sharp, 2011).

 지난 30년간 있었던 ‘정동적 전회’를 둘러싼 논쟁의 배경에는 종종 간과되곤 하는 이러한 형이상학 체계들 간의 충돌이 존재하며, 이 충돌을 통해 어펙트 개념의 옹호자와 반대자 모두를 괴롭히는 몇몇 오해와 혼란을 설명할 수 있다(cf. Massumi, 1995; Leys, 2011; 보다 상세한 설명은 Gatens, 2014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이 절에서 스피노자의 종합적인 존재론적 접근법에 비추어 어펙트 이해를 다시 되짚어봄으로써, 스피노자(와 들뢰즈)에게서 영감을 얻은 어펙트 연구의 기본 관점과 그 기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의 설명은 현 시대의 문제들에 맞춰져 있으며, 철학적 재구성과 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관점의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이 챕터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어펙트 이해를 최신 어펙트 연구의 접근법에 접목시킬 것이다.

 

 스피노자의 주저 에티카(1677/1985)에서 어펙트는, 특히 들뢰즈식 열쇠로 풀이해보면 세 가지 주제 벡터(thematic vectors)를 따라 특징지을 수 있다. 바로 (1) 관계적 존재론, (2) 정동하고 정동되는 구성적 상호작용, (3) 역능에 대한 동역학적・다중심적 이해이다.

 

 이 세 가지 개념적 요소를 분석하기 전에, 스피노자(와 우리)의 용어법을 정리해보자. 스피노자는 어펙션(라틴어 아펙티오affectio, 아펙티오네스affectiones)과 어펙트(라틴어 아펙투스affectus)를 구분한다.[각주:1] 어펙션과 어펙트는 존재 그 자체의 수준에 적용되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각각은 실체 일원론이라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자리매김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모든 존재 및 존재의 모든 반영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있는 내재성의 장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한다.

 외부 관찰자의 지위도 실재의 포괄적 재현도 스피노자의 설명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며, 오직 실체 내부로부터의 절합만이 관련된다. 이 하나의 실체―‘자연’이나 ‘신’으로 불리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는 극적으로 분화하여 무한한 수의 유한한 양태(modes)가 된다. 이러한 양태들―문자 그대로 실체의 변용(modifications)―은 식별 가능한 다양한 개체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즉 라틴어 아펙티오의 의미에서 ‘어펙션’은 ‘양태’를 표현하는 다른 말이다. “양태란 실체의 변용[the affections of a substance], 즉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Spinoza, 1677/1985, I def. 5 [국역본 1부 정의5, 56쪽])”[각주:2]

 그러나 동시에 양태의 본성을 현재 진행 중인 실체의 역동적 변용으로 간주하면, ‘아펙티오로서의 어펙트’는 다양한 양태들 간의 관계, 즉 서로가 서로에게 행사하는 효력이자 영향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스피노자의 아펙티오는 역동적인 관계적 존재론 속에 있는 개체들의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그럼으로써―다른 양태와의 역동적인 마주침으로 인해 개체에 주어진 인상 또는 남겨진 흔적을 가리킨다(cf. Deleuze, 1981/1988a; Andermann, 2016).

 

 ‘아펙티오로서의 어펙트’가 하나의 실체 속 여러 개체(양태)들이 맺는 모든 관계인 반면, 스피노자는 실제로 해당 개체들의 역능―행위자의 역량 또는 포텐티아(potentia)―을 증/감시키는 어펙션을 지칭할 때 ‘어펙트’(라틴어 affectus)를 사용한다(Spinoza, 1677/1985, III def. 3). 중대한 영향(impacts)이 그러하듯, ‘아펙투스로서의 어펙트’는 하나의 존재 상태에서 또 다른 존재 상태로의 지속적 이행으로 간주될 수 있다. 들뢰즈(1981/1988a)가 제시하듯이, 감각을 지닌 피조물의 경우 이러한 중대한 이행이 하나의 느껴지는 지속(felt durée)으로, 달리 말해 하나의 느낌(feelings)으로 기입된다고 가정해도 무리가 아니다(cf. pp. 39ff., 48f., 62f.).

 이 각도에서 보면 ‘아펙투스로서의 어펙트’는 따로따로 개별화되어 명명될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용어법에서 감정(emotion)이라 불리는 것, 예컨대 행복, 슬픔, 두려움, 분노, 창피함 등으로 지칭되는 범주적 유형들에 근접할 것이다. 그러나 범주적 분류와 개체의 실연(實演, enactment) 그리고 그러한 공고해진 어펙트에 대한 의식적 느낌에 성급히 초점을 맞추면 스피노자의 핵심 요점으로부터, 즉 ‘아펙투스로서의 어펙트’가 인간 및 비인간 개체들 사이에서 그리고 형성적 환경(formative environments) 속에서 역동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개되는 관계적 현상이라는 관점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는 인간 개개인의 행동양식(comportments)도 아니요, ‘정신상태’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어펙트와 감정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감정을 다루는 챕터로 미뤄두겠다(→ 감정, 감정 개념).

 

 용어 사용에 있어 하나의 지향점으로서, 우리는 대략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방식으로 ‘어펙트’(아펙투스/아펙티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비(非)스피노자적 용어인 ‘정동성’(affectivity)은 확장된 범위의 정동적 현상들 전체(가령 감정, 느낌, 정취, 기분, 분위기 등)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말로 사용한다. 스피노자적 뉘앙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맥락일 때는 명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펙티오로서의 어펙트’와 ‘아펙투스로서의 어펙트’로 (또는 줄여서 아펙티오와 아펙투스로) 구분해 사용한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조망을 이론적으로 충실히 적용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정동적 현상에 대한 다른 이론적 관점들을 알릴 수 있는 것―윤색하거나 활기를 불어넣거나 생산적인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관건이다.

 

 

체계적인 어펙트 및 아펙티오 이해를 위하여

 

 

 이제 우리는 이어서 스피노자의 아펙티오/아펙투스 이해에 대한 일반적 해석(determination )에 함축되어있는 것을 풀어내보려고 한다. 현대 어펙트 이론과 관련 작업은 스피노자 사상의 이러한 측면을 채택함으로써, 또는 적어도 그것을 설명해냄으로써 큰 도움을 얻고 있다.

 

(1) 관계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 어펙트/아펙티오는 관계, 즉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유효한 상호 침범의 동역학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에게 개체들의 구성(constitution) 또는 형성(formation)이라는 문제, 다시 말해 개체발생 과정의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접근법을 제공한다. 스피노자에게 개체(‘유한한 양태’)란 어펙트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그 존재가 어떻게 발현되는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때문에 개체화는 예상되는 결과나 청사진을 따르지 않는, 열려있는 관계적 조율(modulation) 과정이 된다. 이리하여 개체화는 개체와 그 정동적 마주침에 대한 발본적으로 관계적이며 역동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이 접근법에서 개체는 포괄적인 관계적 동역학에서 일시적으로 안정된 결절이며, 따라서 다른 개체와 그리고 공유되는 형성적 환경과 구성의 차원에서 얽히게 된다.

 질베르 시몽동(1989/2005)의 초개체성(transindividuality) 개념은 개체에 대한 이러한 관계-동역학적(dynamic-relational) 이해를 포착하기에 적절하다. 초개체성은 구성되고 나면 개별적이고 고유한 개체들의 특성을, 그리고 개체화가 일어나는 형성적 관계 영역―전(前)개체적 환경―이 본질적으로 공유될 수밖에 없음을 모두 강조한다(Balibar, 1997; Sharp, 2011, pp. 34–42도 참조).

 

 스피노자의 존재론적 접근법의 또 다른 주요 핵심은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대립하는, 흔히 존재론적 “평행론”이라 불리는 원리이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의 어펙트란 서로 분리 불가능한 신체적 동역학이자 정신적 동역학이다. 동시에 아펙티오네스(affectiones), 즉 신체와 “어펙션이라는 관념” 사이의 관계이다(Spinoza, 1677/1985, def. 3). 스피노자(1677/1985)는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것이며, 그러한 것이 때로는 사유의 속성 아래에서, 때로는 연장의 속성 아래에서 파악된다”(prop. 2 schol. [국역본 3부 정리2 주석, 162쪽])고 말한다.

 연장(extension)과 사유(thought)는 “사물들의 질서나 연결”이 한 실체의 일부로 설명될 수 있는 두 가지 속성이며, “따라서 우리 신체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는, 본성상, 정신의 능동 및 수동의 질서와 동시적이다.(Spinoza, 1677/1985, III, prop. 2 schol. [국역본 3부 정리2 주석, 162쪽])” 이 평행론 원리는 어펙트를 사회적 미시동역학(micro-dynamics)으로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중요한 공리이다. 이는 정동적 동역학과 동시발생적 주체성의 연결이 사회적 상황과 관계들의 네트워크―여기서 어펙트는 신체 정신의 수준에서 상호성(reciprocity)이 기입된 것이다―속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2) 정동하기와 정동되기(Affecting and being affected). 스피노자의 어펙트/어펙션 개념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언제나 정동하기와 정동되기의 상관적 상호작용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정동적 관계는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게 미치는 일방향적인 영향이 아니다. 오히려, 주고받는 얽힘은 분리 불가능하다. 이는 정동적 동역학의 전개가 얽혀 있는 개체들 중 한 개체가 갖는 성질로 환원되지 않음을 함의한다. 어떤 상황에서 한 개체가 어펙트를 주고받는 방식은, 얽혀 있는 다른 모든 (인간 및 비인간) 개체들과 상호의존적이다.[각주:3]

 주어진 상황 속에서 누가 누구에게 정동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의 내재성 안에서 정동하고 정동되는 관계적 동역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라는 물음이 핵심으로 간주된다. 이는 연구의 기본적인 방향성, 즉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동적 동역학을 그것의 특수한 미시관계적 환경 속에 위치시키고 그리하여 어펙트를 복합적이고 다중심적이며 시・공간적으로 확장되는 정동적 배치의 일부로서 연구해야 함을 알려준다(→ 정동적 배치).

 

 어펙트를 정동하기와 정동되기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일방향 어펙션”(개체 A가 개체 B를 정동하고 그런 다음 B가 A에 다시 “대항적으로 정동(counter affection)”하는 것)을 상정하는 개념―이는 상호성을 집합체의 수준으로 축약해 버린다―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정동하기와 정동되기의 상호작용은 인과관계에 대한 묵시적 이해까지 변형시키는 강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과관계를 타동사적인(transitive) 것으로 바라보는 ‘당구공 모델’을 따르는 원형적인 근대적 관념은, 사물들 간의 내재적 인과관계를 유효화(effectuation)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맥락의 일부로 간주하는 ‘결합 진동자(coupled oscillators) 물리’의 사고방식으로 이동한다(→ 정동적 공명affective resonance).[각주:4] 이처럼 스피노자의 어펙트 개념의 기본 구조는 결합된 운동의 구조, 개체들의 운동이 상호적 조율 및 공명 속에서 지속적으로 결합되는 구조이다. 따라서 A가 B에 정동하는데 B는 A에 정동하지 않는 상황은 불가능하다.

 들뢰즈의 용어로 하면 어펙트 주고받기는 항상 하나의 열려있는 과정, 즉 되기(becoming)의 과정을 형성하고 있다(cf. Deleuze and Guattari, 1980/1987, ch. 10). 물론 이 관점은 개체들의 정동적・행위자적 기여를 골라내는 일을 배제하거나 특이하고 일방향적인 폭력 행위를 못 보거나 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 관점으로 행위자의 폭력이 정동적 역량에서의 구조적인 관계적 불평등을 통해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이 발현된 전체적인 상황적 동역학을 통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3) 역능(Power). 스피노자의 어펙트 개념은 역능에 대한 이해와 긴밀히 연결―심지어 일치―되어있다. 스피노자는 각 개체에 ‘미시역능’의 일종인 포텐티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포텐티아는 개체가 자신의 다른 특징 외에 갖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포텐티아는 정동하고 정동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개체의 역량, 간단히 말해 정동적 역량으로 가장 잘 번역될 수 있다(cf. Spinoza, 1677/1985, III, post. 1 and 2; Deleuze, 1981/1988a, pp. 49–50). 스피노자의 존재론에서 이는 정동적 역량이 곧 개체의 존재 능력 일반이라는 말―“존재할 수 있음은 곧 역능[포텐티아]이다”(“Posse existere potentia est”, Spinoza, 1677/1985, I, prop. 11 dem.)―과 매한가지이다.

 동시에 개체의 정동적 역량은, 어펙트가 항상 능동이자 수동이기 때문에 수동적 역량(receptive capacity)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텐티아는 그것이 행위나 존재 자체만으로 타자를 정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듯, 타자가 미치는 정동에 대해 개체가 갖는 특수한 감수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합 속에서 포텐티아는 스피노자의 개체 구성에 근본적인 타율(heteronomy)을 만들어낸다. 이때 존재는 자신의 포텐티아가 표현된 것이면서 동시에 주위의 다른 모든 개체들(과 그 포텐티아)에 의해 조율된 것이다.

 

 이러한 동역학적인 개체화 관념에서는 공간적(또는 ‘외연적’) 차원과 시간적 차원이 구별 가능하다. ‘외연적’ 차원은 주로 들뢰즈의 스피노자 독해와 어펙트 연구 관련 글에서 나타난다. 외연적 차원은 하나의 개체란 특수한 “운동과 정지의 관계” 속에서 더 작은 개체들이 합쳐진 것에 다름 아님을 강조한다(Spinoza, 1677/1985, II, axioms and lemmata after prop. 13 [국역본 2부 정리13 이후에 나오는 공리 및 보조정리, 114~115쪽]; Deleuze, 1981/1988a, pp. 91–92, 123 참조).

 하나의 양태가 “다른 양태와 마주칠” 때 이 다른 양태는 자신에게 ‘좋은’ 것일 수 있으며, 그러면 둘은 합쳐진다. “반대로 ‘나쁜’ 것이면 둘은 해체된다.” 이 경우 그 양태의 “행위력이나 존재력이 증/감하는데, 이는 다른 양태의 역능이 추가되거나 반대로 제거되기 때문에 또는 그 양태를 다른 양태가 고정시키고 억제하기 때문에 그렇다.(Deleuze, 1981/1988a, pp. 49–50)”

 한 개체는 주어진 시점마다 늘 바뀐다. 사회적 구성(configuration)의 전개에 맞는 개체화의 일반적인 수준에 따라 변화한다. 때때로 이러한 배열은 인간들로, 인간의 부분들로, 커플, 팀, 가족, 기업, 국가 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권력 현상(power phenomena)을 분석할 때 특히 유용하다. 이를 통해 개체의 근본적인 타율을 다양한 규모의 관련됨(relatedness) 속에서, 그러나 개체를 수동적으로 여기거나 개체에게서 그 역능을 박탈하는 일 없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각주:5]
 또한 개체화의 시간적 차원에서 개체의 포텐티아는 언제나, 정동하고 정동되는 관계의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개체화의 시간 구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련의 상황과 관련됨의 맥락을 통과하는 바로 그 개체의 초상황적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것, 존재론적 설명 과정에서 개체(entities)의 순간성과 변이성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초상황적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개체가 정동하고 정동되는 방식은, 과거의 관계 속에 있던 특수한 패턴의 정서성향과 관련된 일종의 신체적・환경적 저장고의 산물이다. 이 저장고는 과거의 어펙트 패턴이 퇴적되어 포텐티아가 되는 식으로 기능하며, 포텐티아는 현재의 관계에서 가능태(potentials)로 나타나 개체의 어펙트, 행위, 체현을 함께 실현하다(→ 정동적 성향affective disposition).

 이는 과거의 상호작용 패턴이 어떻게 똑같이 반복되지 않으면서 현재의 정동적 관계의 경향―실천 이론에서 ‘아비투스’나 ‘수행성’ 같은 개념들로 표현되는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은 경향(cf. Bourdieu, 1990; Wetherell, 2012)―으로 기능하는지를 보여준다(→ 정동적 실천affective practice).

 이러한 관점에서 개체의 포텐티아의 생성은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 확대될 수 있는데, 가령 정동적 관련됨의 패턴으로 새겨져 영속되는, 그리고 매일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필연적 소여로 상정됨으로써 제도 속으로 통합되어 시야에서 종종 사라지는 젠더화 또는 인종화된 상호작용 양식을 예로 들 수 있다(cf. Mühlhoff, 2018)(→ 인종화 어펙트affects of racialization).

 

 


 은  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믿는 번역노동자.

 역서로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공통적인 것의 구성을 위한 에세이』(2012),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2013), 『혁명의 철학: 안토니오 네그리의 존재론과 주체론』(2018), 『기본소득이 알려주는 것들: 국민 복지의 뜨거운 화두, ‘기본소득’에 대한 입문서』(2018)가 있다.


* Special thanks to

이 번역은 저자 Jan Slaby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어 번역 및 웹진 게재 수락하에 번역되고 공개된 것입니다.

웹진 <젠더·어펙트>를 통한 번역을 허락해 주신 Jan Slaby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 현대 영어의 어펙션’(affection)은 이 맥락에서 오해를 일으키는데, 스피노자가 아펙티오(affectio)라는 말로 가리키고자 했던 온갖 종류의 정동적 관계가 아니라 애착(애정) 관계를 주로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피노자적] 아펙티오에 대한 이해가 확실한 경우에는 라틴어 표현을 고수할 것이다. 한편 어펙트’(affect)는 일단 스피노자의 아펙투스(affectus)를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스피노자의 『에티카』출처 표기는 부(Part IV), 정리(prop.), 주석(schol.), 증명(dem.), 정의(def.) 등 저작 속에서 사용되는 구분법을 적용한 일반적인 인용 방식을 따른다. [본문으로]
  3.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Deleuze(1968/1990, pp. 9195, 217224), Kwek(2015), Mühlhoff (2018)를 참조하라. 스피노자의 『에티카』(1677/1985)에서는 3부 정리49~594부 정리33에 나오는 명제들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역주] 여기서 당구공 모델은 처음 힘이 가해진 공의 속도와 방향으로 다음 공들이 차례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일방향적이고 단선적인 이행의 형식을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힘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작동방식과 상호 구성력을 보여주는 복잡계의 결합 진동자모델과 대조되며 저자는 이러한 두 가지 모델을 대구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으로]
  5.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개체의 역능이라 지칭되는 것은 포텐티아의 발현으로 설명되어야 하는데,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된 수 많은 개체들의 구조적 배열(constellation)에서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개체의 행위력은 (명령하거나 억압하는 역능까지도) 그 개체만의 성질이 아니라, 더 큰 관계적 배열이 만들어낸 공동의 산물이다. 일부 이론가들은 이 결정화된 역능 형태를 포텐티아와 구분하여 포테스타스(potestas)라 칭하는데(Negri, 1991; Hardt & Negri, 2000 참조), 이러한 구분이 명확히 스피노자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Saar, 2013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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