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fective Societies - Affect (2회) (Jan Slaby, Rainer Mühlhoff / 은혜 옮김)

『Affective Societies: Key Concepts』

* 일러두기

- 대괄호는[ ]는 옮긴이가 부연 설명을 위해 임의로 추가한 부분이다.

-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홑따옴표(‘ ’)나 줄표(―)를 적용하였다.

-『에티카』 직접인용의 국역은 황태연본(피앤비, 2011)에서 가져온 후 [국역본]으로 서지사항을 표기했으며, [국역본] 표시가 없는 부분은 본문의 맥락에 맞춰 옮긴이가 직접 번역한 부분이다.

- 원문의 이탤릭체는 고딕체로 강조했다. 단, 외국어(라틴어나 불어)여서 이탤릭체로 표기한 것은 따로 강조하지 않았다.

 

 

 

어펙트(affect)

 

얀 슬라비(Jan Slaby), 라이너 뮐호프(Rainer Mühlhoff)

번역: 은혜

 

우리 시대의 어펙트: 아이디어와 방향성

 

 

이 장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현대 어펙트 연구에서 어펙트 이해에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들, 특히 ‘문화적 정동 이론’(cultural affect theory)이나 ‘정동적 전회’(turn to affect)라 칭하는 것에 속하는 연구 작업들을 가져오려 한다. 어펙트에 대한 스피노자적 관점이 흔히 말하는 어펙트와 감정의 차이를 강조하는 데 유용하지는 않지만, 현저히 인간 중심적이고 범주화된 감정 개념에 중점을 둔 연구와는 다른 분석의 시선, 다른 방법론, 다른 논제를 제시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감정, 감정 개념).

역동적-물질적 존재론(dynamic-materialist ontology)은 이러한 어펙트 개념을 통해 서구 근대성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재귀적 개인주의(reflexive individualism)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고전적인 사유 양식은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과 물질성(materiality)의 분리―‘신체’ 대 ‘정신’, ‘인간’ 대 ‘비인간’, ‘이성’ 대 ‘자연’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합된 이분법―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1990년대 이후의 어펙트 연구가 몇몇에 의해 처음부터 문화적 접합에 대한 담론・언어 기반 접근법과의 발본적인 단절로 상정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포스트구조주의의 헤게모니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 이해되었는데(가령 Massumi, 1995, 2002; Sedgwick & Frank, 1995 참조), 스피노자의 아펙티오/아펙투스는 바로 이러한 근대주의적 배열을 가로지르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즉 아펙티오/아펙투스는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적인 열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완성시킨다(cf. Terada, 2001). 이러한 측면에서 예컨대 어펙트로서의 언어(→ 쓰기 어펙트writing affect)에 대한 설명을 탐구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행위를 추동하는 정서성향에 초점을 두거나, 아니면 어펙트를―들뢰즈(1985/1989)가 제시하듯―오랫동안 그것의 반대개념으로 간주되었던 사유(thought)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아이디어들을 여기서 다 펼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주목받아 온 어펙트 지향의 연구를 크게 세 갈래로 나눠보고자 한다. 이 세 갈래가 모든 연구를 빠짐없이 총망라하는 것은 아니다.[각주:1]이 세 가지 지향의 공통점은 어펙트를 인간 행위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양상의 역능―힘, 유효함, 잠재력―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계열의 연구는, 실천의 다양한 사회적 영역 속에서 종종 분산된 채로 일어나는 역능의 작용과 형성적 활동(formative workings)에 관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정치적 어펙트political affect).

 

 

관계-내-신체

 

 

스피노자의 아펙티오/아펙투스 이해는, 완전한 세속적 복잡성과 환경적 침투성(environmental permeability)을 띠는 신체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신체는 환경과 지속적인 존재형성적(onto-formative)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감각적이고 생생하며 물질적이고 역동적인 모든 종류의 방법으로―기입한다. 이 지점에서 어펙트의 (포스트)현상학적 접근법과의 의미심장한 오버랩이 일어나는데, 이는 위치지어진 체현과 위치지어진 신체의 정동적 감수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인종주의적인 공론, 차별적인 사회적 관행, 주요 제도들의 작용―가령 법 집행, 행정 관료주의, 교육 부문의 작용―이 “백인의 규범”(Ahmed, 2007)을 고안하고 실시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힘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 및 제도의 작용이 가져오는 효과는 결국 언제나 이러한 권력의 동역학에 종속되어있는 사람들의 신체 위에―종종 폭력적으로―내려앉는다.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 속에서 창출된 제도의 규범 및 루틴과 완벽히 일치하는 특권적 주체들의 신체―정동적 침범을 다르게 기입하는―위에도 내려앉는다. “백인의 신체는 자기 형상의 연장선인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편안하다.(Ahmed, 2007, p. 158)”

아메드의 연구는 인종화와 어펙트의 관련성, 그리고 타자화, 차별, 구조적 억압의 폭력적 형태에 대한 물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가령 Ngai, 2005; Chen, 2012; Berg & Ramos-Zayas, 2015; Palmer, 2017; Schuller, 2018 참조)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이다(→ 인종화 어펙트).

 

부분적으로 이러한 계열의 작업들은 ‘정동적 전회’ 속 초기 페미니즘 및 퀴어 이론의 조류를 이어가고 있다. 명망 높은 퀴어 이론가 이브 세즈윅(Eve Sedgwick)은 1990년대 중반, 심리학자 실반 톰킨스(Silvan Tomkins)의 작업을 바탕으로 어펙트 연구를 문화 연구의 핵심적 차원으로 삼는 여정을 시작했다. 세즈윅과 톰킨스의 만남은 심리학 이론이 인문학으로 옮아간 것이라기보다, 초기 인문학의 일반적인 경계 설정과 경계 수호를 넘어서는 유연한 독해로서 등장한다. 톰킨스가 제시한 아홉 가지의 초문화적으로 보편적인 어펙트 프로그램의 범주 모델에는 문화적 어펙트 연구의 저력이 많이 들어있지 않다.

유물론과 학문 영역에서의 이러한 퀴어적 침투로 인해, 세즈윅과 엘리자베스 그로스(Elizabeth Grosz)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페미니즘 이론 작업―포스트구조주의와 담론 이론의 한계를 강조하는 대신 물질성과 체현이라는 문제로 회귀하고 초분과학문적 접합과 재구성에 대한 개방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작업―의 생산적인 노선을 만들어낼 길을 닦았다. 톰킨스의 범주적 접근법에서 영감을 얻은 이 학자들은 대문자 단수형 어펙트(Affect)보다 소문자 복수형 어펙트(affects)를 환기시켰는데, 이는 사회적 배치 및 권력 구조와 관련하여 신체적 정동 양식의 복수성과 이질성을 연구하는 분석적 시각이다.[각주:2]

 

국지적으로 결합하여 효과적인 정동적 배열(affective configurations)과 정동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인간 및 비인간 신체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는 상이한 접근법과 노선이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접근법과 노선을 수렴하는 데 강조점을 둘 것을 권한다(→정동적 공동체). 예컨대, 복잡하게 위치지어지고 테크놀로지로 강화・확장되며 생체매개된(biomediated) 신체에 관한 연구는 오랜 전통―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Manifesto for Cyborgs)은 초창기 랜드마크와도 같다―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단수형 어펙트 또는 복수형 어펙트를 관계-내-신체로 바라보는 보다 고전적인 현상학적 접근법과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연구자들 중에서도 마리-루이제 앙게러(Marie-Luise Angerer), 리사 블랙맨(Lisa Blackman),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테레사 브레넌(Theresa Brennan), 레이 초우(Rey Chow), 패트리샤 클라프(Patricia Clough), 리차드 그루신(Richard Grusin), 마크 핸슨(Mark Hansen), 루치아나 파리시(Luciana Parisi)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의 접근법은 온갖 종류의 신체를 구성적으로 관계 맺는 것으로, 침투 가능하고 확장 가능하며 조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잠정적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각주:3]또한 이들은 환경적(ambient) 힘과 과정에 공명할 줄 아는 신체의 역량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체적이면서 테크놀로지적인 신체 고유의 에너지 전달, 빛 발산, 리듬 조율의 경향성,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중첩 및 얽힘의 경향성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정동적 공명).

위에 언급된 학자들은 손상・강화・매개되지 않은 생물학적 신체―인간이든 동물이든―에 자연적 신성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순결한 상태로 여겨지는 자연적 신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 적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피노자에 바탕을 둔 어펙트의 관점은―상이한 기원을 가진 다른 노선의 연구들과 더불어―고안된 공간, 테크놀로지, 미디어 및 기타 현대 사회의 인위적 배치들과 신체의 특수한 중첩에 관한 연구를 북돋운다.

 

 

정동적 배치: 개체와 환경

 

 

이제 어펙트 중심적 접근의 두 번째 갈래로 가보자. 최신 어펙트 연구의 대부분이 특정 환경・배경・영역의 배치 및 장치와 개체들의 효과적인 얽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로렌스 그로스버그(Lawrence Grossberg, 2010)는 어펙트 연구의 기원과 전망을 다룬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논점을 제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구성하고 있는 기계적 장치(machinic apparatuses) 또는 담론 체제란 무엇인가? 어펙트의 가능성, 그리고 어펙트와 역사적 존재론의 절합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로스버그는 부분적으로 비판의 의도로 이 물음을 던지고 있는데, 몇몇 학자들―그중에서도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이 곧바로 “존재론적 개념에서 경험적・정동적 맥락에 대한 서술로 비약한다”는 혐의를 제기한다(Grossberg, 2010, p. 314). 그로스버그는 이들이 사회적 삶의 특정 장소들에서 어펙트를 실제적으로 유효하게 만드는 다양한 배치와 설정(set-ups)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펙티오로서의 어펙트’가 강렬한 힘의 관계들의 추상적 기입으로서 서술되는 존재론의 평면에는, 각 연구 영역에 따른 구체적인 조직・설비・공간・기술의 설정이 존재한다. 정동하고 정동되는, 실체가 뚜렷한 관계를 북돋우고 흐르게 하고 지속시키는 것, 그리고 시간별・장소별 정동적 동역학의 작동기로서 기능하는 것, 각 사례별로는 푸코가 말할 수 있는 것(the sayable)과 볼 수 있는 것(the seeable)이라 칭한 것들의 독특한 연쇄로 종종 나타나는 것, 이것이 바로 “기계적 배치”(machinic arrangements)―‘아펙투스로서의 어펙트’의 어떤 정교화된 포맷―이다(Foucault 1977/1980; cf. Deleuze, 1986/1988b, pp. 47–69).

 

어펙트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다양한 경험적 방법으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을 연구하는 접근방식을 필요로 한다. 이는 마치 연구자들이 (가령 군중행동 연구나 청중 연구에서) 주어진 장소에 있는 개체들의 조화로운 협응에 초점을 맞추고자 구체적인 위치에 세워진 기둥을 기록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빈도 패턴과 강도 추세, 그리고 (가령 화이트칼라 직장, 유치원, 학교 운동장 등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의 동역학을 확인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의료 환경에서 환자나 고객들의 상이한 정동적 반응을 연구하는 것이거나 사용자 실천 및 사용자 정서성향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또는 소셜미디어의 디자인 기능을 통해 어떻게 그것이 은근하게 자극받는지를 연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작업은 ‘정동의 약속’이 가진 존재론적 측면에서 유익함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 즉 어펙트는 형상을 바꾸는 수준의 물질적 유효성으로서 국지적으로 나타나며 역사적 구성물로 퇴적된다. 이러한 역사적 구성물은 시간의 구애를 받고 처음에는 불완전하나 특징적이고 반복 가능한 감정 구조를 확립・지속하는 데 모든 방식으로 기여한다(Williams, 1977).

여기서 요청되는 것은 존재론 일반에서 역사적 존재론으로의 이행, 즉 문화적 접합이라는 중간 규모의 개념들을 통해 매개되는 단계이다. 이때의 개념이란 들뢰즈・가타리의 ‘기계적 배치’(agencement machinique)나 푸코의 ‘장치’(dispositif) 같은 개념이며, 이는 ‘아펙티프 affectif’(Seyfert, 2012)나 ‘정동적 장치 affective apparatus’(Anderson, 2014) 또는 우리가 선호하는 ‘정동적 배치’(Slaby, Mühlhoff, & Wüschner, 2017) 같은 개념으로 어펙트 연구에 맞게 생산적으로 변형되었다(→ 정동적 배치).

어펙트 연구에는 그로스버그의 방향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작업들이 많이 있다. 가령 멜리사 그레그(Melissa Gregg)의 화이트칼라 직장, 팀워크, 원격근무 노동 배치에 관한 도표(2011)를 예로 들 수 있다. 로버트 세이퍼트(Robert Seyfert, 2018)의 초단타매매 사례연구와 나타샤 다우 슐(Natasha Dow Schüll, 2014)의 라스베이거스 슬롯머신 연구도 예로 들 수 있고, 더 넓게는 그로스버그의 ‘록 형성’과 팝 음악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 마이클 리처드슨(Michael Richardson, 2016)의 정동적 증언(→ 정동적 증언affective witnessing)에 관한 연구, 아메드(2012)의 다양성위원회의 제도적 비수행성에 관한 문화기술지도 있다.[각주:4]

 

 

어펙트와 ‘야성 너머’

 

 

그러나 구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 조직적인 것으로의 이러한 신속한 전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또한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들뢰즈 등의 작업에서 비롯된 또 다른 “정동의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마수미가 어펙트를 헤게모니적 코드・담론・장치에 포획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또 다른 어펙트 정신 아닌가? 이 또 다른 어펙트 정신은, 실제로 마수미가 세계, 주체, 경험보다 앞서 증발하여 항구적 구성물로 응고하는 어펙트의 강도를 환기시키고 드러내고 고수하려 할 때 전개된다.

전(前)의식적이다, 비-인간적이다, 활력(‘잠재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강렬하다, 때때로 야성적이고 무아지경이다. 지적인 고급문화의 사도들 중 일부는 바로 어펙트의 이러한 이미지를 본능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를 고정된 인본주의적 탐구 주제, 즉 재현, 정상성, 주체, 지향성, 비판, 분과학문적 표준 등에 맞서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각주:5]우리는 이 또 다른 어펙트, 어펙트의 이러한 야성적 측면살펴봄으로써 이 장을 마무리하려 한다. 

‘정동적 전회’가 일어나기 오래 전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감정의 구조’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한 바 있는데, 문화적 활동의 씨실과 날실을 이루는 형태들, 총체들, 구조물들 아래에, 그리고 그에 앞서 살아있는 현존들을 환기시키려는 시도였다. 이는 그가 사회분석의 ‘습관적 과거 시제’―“사회적인 것을 고정된 형태로 환원하는 것이 기본적인 오류이다”―라고 부른 것의 일종의 대위(對位) 개념이다(Williams, 1977, p. 129). 이러한 개념은 현대 어펙트 이론의 급진적 요소들을 앞질러 제시한 것이었다.

윌리엄스는 정동적 마주침의 강력한 직접성에 대한, 억눌리지 않는 관계의 힘에 대한 이론적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들뢰즈가 그의 저작 전체에서 어펙트를 논할 때 환기시키고 있는 탈인격적인 활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어펙트 스펙트럼의 보다 급진적인 목적은 틀에 박힌 이해의 조건과 습관 속에서 대부분 인정되지 않은 채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매일의 실존에 활기를 불어넣고, 결정적으로 형태화된다.

이러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전(前)주체적, 전의식적, 전담론적, 비-인간적이라 칭하는 것은 굳어진 학문적 실천과의 나이브한 단절을 뜻하지 않는다. 틀에 박힌 활동 속에서 예기치 못한 강렬함이 한 번씩 솟아날 때, 이는 이전에 자명해 보였던 것들의 새로운 접합을 잠재적으로 자극하는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펙트는, 굳어진 이해에서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담론적・실천적 행보로의 이행을 잠재적으로 부추기는 생성적인 난입이다. 문제는 가능성의 동역학적 저장고, 가능태―형성적이나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의 영역이다.

 

윌리엄스는―사회적 경험의 하부구조에 비해 비-인간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시절에―‘실천적 의식’이라는 다소 단조로운, 현행 어펙트 연구의 여러 목적을 포괄하기에는 너무 좁은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어펙트와 어펙트의 영향을 받은 사상의 역동적인 개방성에 대해 중요한 아이디어를 짚어주고 있다. “실로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그러나 아직은 완전히 뚜렷하게 구별되고 규정될 수 없는 배태(胚胎)의 단계에 있는 느낌과 생각(Williams, 1977, p. 131)”말이다.

부연하자면, 윌리엄스가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예시 중 하나는 언어이다. 그는 선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발화하는 세대는 없다고 지적한다. 어구와 관용어, 발화 습관으로 둘러싸인 존재양식의 변화에 따라, 스타일에서, 어조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윌리엄스가 암시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문화적 실천들, 구성물들, 경험들의 유동적인 지하세계―변화의 씨앗을 담고 있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잠정적으로만 뚜렷하게 표현되고 개념화되는 잠재(virtual)의 영역―이다. 어펙트의 이러한 또 다른 측면을, 즉 내재성의 평면―동시에 구성물, 습관, 상태, 행동양식 그리고 그것의 필수 불가결한 형성적 배경을 결정짓는 ‘야성 너머’―으로의 열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각주:6]

 

이러한 잠재적인 것의 열림 및 봉쇄 불가능함에 대한 감각은, 가령 캐슬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 앤 크베코비치(Ann Cvetkovitch), 에린 매닝(Erin Manning)의 어펙트 연구에서 나타나는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문체의 진가를 아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감각은 그레고리 시그워스(Greg Seigworth)의 폭넓은 포스트스피노자주의를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맥락에서, ‘신유물론’을 둘러싼 보다 형이상학적이고 보다 발본적으로 포스트휴먼적인 노력―특히 캐런 바라드(Karen Barad), 제인 베넷(Jane Bennett),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의 연구에서 볼 수 있는―은 (항상 잘 수행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합리적으로 보인다(cf. Coole & Frost, 2010). 비인간의 행위와 비인간의 살아있음(animacy)에 대한, 그리고 유럽 중심적 인본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정동적 배열에 대한 비-인간중심적 또는 ‘이술적’(heterological) 관점이 그러하듯 말이다.

 

이 어펙트 지향적 사유의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정동적 사회의 주요 개념을 다룬 책의 서두에 적혀 있는 주의사항처럼 기능한다. 사회적・정치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어펙트에 개념적 엄밀성과 명확한 용어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긴 하지만, 어떠한 수준의 개념적 정교화도 연구 중인 현상을 모두 낱낱이 다룰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어펙트는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뉘앙스가 살아있는 개념화조차 추월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또 다른 제언으로 마무리하자면, 잘 만들어진 개념은 그 자체로 정동적 구성물이 될 수 있다. 실재라는 주머니에 빛을 비출 수 있는―비록 때로는 의미론으로 포착할 수 없는 현상의 통렬함을 소환하여 비추는 경우가 더 많을지라도―간명한 구성물, 지적인 강렬함의 전달자 말이다.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핵심 개념들이 사유와 행동을 새로운 길 위에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는 정동적 실천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은 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믿는 번역노동자.

역서로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공통적인 것의 구성을 위한 에세이』(2012),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2013), 『혁명의 철학: 안토니오 네그리의 존재론과 주체론』(2018), 『기본소득이 알려주는 것들: 국민 복지의 뜨거운 화두, ‘기본소득’에 대한 입문서』(2018)가 있다.


* Special thanks to

이 번역은 저자 Jan Slaby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어 번역 및 웹진 게재 수락하에 번역되고 공개된 것입니다.

웹진 <젠더·어펙트>를 통한 번역을 허락해 주신 Jan Slaby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 ‘정동적 전회’ 의 다양한 갈래와 관점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정확하고 폭넓게 제시하는 작업으로는 독창적인 저작 『Affect Theory Reader』의 서문(Gregg & Seigworth, 2010, pp. 6–9 참조)이 있다.(멜리사 그레그‧그레고리 시그워스 편저, ‘『정동 이론』, 최성희 외 옮김, 갈무리, 2015.) ‘어펙트 분석’이라는 혁신적인 방법에 대한 의견을 비롯해, 비인간을 다루는 계열의 어펙트 연구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주목할 만한 최신 작업으로는 Kwek and Seyfert(2018)가 있다. [본문으로]
  2. 단수형 어펙트(affect)보다 복수형 어펙트(affects)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학자들 역시 어펙트와 감정을 덜 엄격하게 구별하는 편이다. 이러한 경향은 가령 아메드의 작업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가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 2011)의 작업과 연관이 있다. 단수형 어펙트 중심의 접근법과 복수형 어펙트 중심의 접근법의 상이한 요소들을 조명한 논의로는 도노반 셰이퍼(Donovan Schaefer, 2015)의 작업이 있다. [본문으로]
  3. 이러한 계열의 사유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역사 연구로는, 19세기의 감수성(impressibility), 감상성(sentimentality), 신체-환경 결합이라는 개념이 가진 문제의 생명정치적 차원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카일라 슐러(Kyla Schuller)의 ‘『The Biopolitics of Feeling』(2018)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역사 연구가 출현한 것은 어펙트를 둘러싼 담론에서 학문적으로 엄격하고 비판적인 인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좋은 신호이다. [본문으로]
  4. 정동하고 정동되는 양식과 관련된 미학적 형태에 관한 연구가 이 두 번째 소제목에 완전히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 어펙트 시학(poetics of affect)은 여러 예술 장르에서 그리고 현대의 미디어 관행 및 포맷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펙트 경제economy of affect). 유지니 브린케마(Eugenie Brinkema, 2014)는 이러한 “어펙트 형태”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제시한 바 있는데, 어펙트 연구 중 몇몇 작업을 비판적으로 바로잡고 (특히) 영화 관련 어펙트에 대한 초창기 접근법을 지속하기 위한 연구이다. [본문으로]
  5.  우리는 여기서 특히 루스 레이스(Ruth Leys, 2011)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마수미가 촉발한 ‘정동적 전회’에 대해, 그리고 인류학의 에밀리 마틴(2013) 같은 다른 명망 높은 학자들이 보인 관련 행보들에 대해 전면적인―그리고 다소 단순화한 경향이 있는―비판을 개진했다. 게이튼스(Gatens, 2014), 헤밍스(Hemmings, 2005), 웨더럴(Wetherell, 2012)은 정동 이론의 급진적 계열에 대해 더욱 균형 잡힌, 그러나 동시에 현저히 비판적인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문으로]
  6. ‘야성 너머’(wild beyond)는 잭 핼버스탬(Jack Halberstam)이 쓴 스테파노 하니(Stefano Harney)와 프레드 모튼(Fred Moten)의 책『 The Undercommons』(2013)의 서문에서 가져온 문구이다. 핼버스탬은 이 문구를 어펙트 관련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유럽-근대성의 구조화되고 조직되고 정치적으로 형식화된 영역과의 단절을 뜻하는 보다 폭넓은 명칭으로 사용한다. 어펙트 연구의 급진적 계열은 적어도 정신에 있어서는 이러한 지향을 공유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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