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없는 네모난 집 속에, 모든 것들은 정지했다. 맥스팬도,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던 모니터도, 머리 위에 켜진 불빛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성애는 네모난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웠다. 누웠나 쓰러졌나 좀 전의 기억마저 흐릿해지고 나니,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서러웠다. 이대로 세상에 없는 구멍 속으로 사라졌으면. 마침내 여기 내 몸 아래 그 구멍이 뚫려, 내 생애 단 한 번도 없었던 행운이 한 번에 벼락처럼 몰아쳐 그 구멍 속으로 이 몸뚱이가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렸으면. 사르락삭삭 사르락삭삭 벽 너머에서 다시 집을 쓰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만지는 소리였다. 바람이 지묘 씨를 일으켜, 지묘 씨가 바람을 일으켜 벽을 쓰다듬는 소리. 어떤 몸도 어떤 형체도 가질 필요 없는 존재가 제일 부드러운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