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낯선 사람이 꼭 낯선 사람을 불러오는 것도 아닌데, 성애의 발걸음은 급해졌다. 가게에 비워 놓은 이동변기 카트리지와 즉석밥 상자까지 카트 속에 실으니 한 손은 밀고, 한 손은 물건들을 움켜쥐어야 간신히 바퀴가 움직였다. 카트를 미는 와중에도, 조 사장이 무심하게 얹은 젤리 봉지 세 개가 자꾸 카트 밖으로 미끄러졌다. 도무지 사람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거기에 왜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공원을 지나, 성애는 집 쪽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섰다.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해 이 물건들을 부려 놓고 싶었다. 이럴 거면 아예 트럭을 몰고서 모두산 뒤쪽 국도를 돌아 내려올 걸, 후회막심이었다. 계획했던 물건들만 샀고, 예상했던 부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 저 놈의 젤리. 성애가 노려보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1장 애도 * 무덤의 곁은 조용하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한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낙서처럼 밤하늘에 그어진 늙은 갈대의 그림자. 흉터 같은 그림자 너머로 사람의 형체가 보이면, 사람들은 비명 지른다. 보았어, 들었어, 죽었어! 나는 그들을 믿지 않고,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침묵은 나를 사랑한다. 성애는 바람에 휘청대는 갈대를 가만히 보고 섰다. 잠시 숨을 골랐다. 재빠르게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른 글자들을 새겨 넣었다. 모두봉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11월의 냉기가 달아오른 뺨을 쓰다듬었다. 회색빛의 적막 속에 성애의 숨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부쩍 호흡이 거칠어진 걸 알고 있었다. 몸무게가 세 자리를 넘어서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브래지어를 꽉 채우는 가슴을 잃기 싫어 살이 찌는 게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