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과 앤 츠베트코비치 함께 읽기 – 여성문학 연구를 향한 첫걸음 (서혜민)
- 칼럼
- 2025. 7. 8.
대학원 입학 후 석사 1학기를 마쳤다. 그동안 대학원 수업이나 세미나 등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많아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 중에서 계명대에서 열린 영남여성학포럼에서 김명순에 대한 발표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였다.

여성문학사에 대해서는 대학원 입학 전부터 선배들과 함께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2024) 시리즈를 대상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여성문인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적었기 때문에 김명순을 비롯한 여러 여성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정보가 많았다. 남성 중심 문단이었던 당시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 문인들은 여성의 시선으로 당대 사회에서 비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소외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문학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지 지금까지 주목받지 않았던 문인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 계급과 같은 복합한 정체성을 가진 문인으로서 근대 사회에 대해 재고찰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여성문인들에 관한 공부는 대학원 입학 후 <한국 현대문학과 젠더> 수업에서 이어졌다. 선배들과 함께하는 세미나가 여성 문인들에 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면 수업 시간은 여성문학사에 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여성문학사는 오랫동안 ‘여성’이라는 젠더적인 틀 안에서 논의되어 게토화라는 딜레마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논문 작성을 위해 연구사 검토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최근 여성문학사 연구에서는 김명순에 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구자들이 김명순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져 김명순을 대상으로 연구자 검토를 시도해보았다.
김명순에 대한 최근 논문을 읽어본 결과, 최근 김명순 연구자들은 한국 최초 여성 작가로 인정받는 김명순을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항 담론이나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는 단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심진경(2019)은 작가와 작품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더라도 여성문학을 자전적 요소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연구하는 것은 김명순 문학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독법의 가능성을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여러 연구자가 김명순을 페미니즘 번역가, ‘바깥을 향하는 글쓰기’를 하는 정동 소외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눈에 보였다.
이러한 김명순의 연구는 여성문학사 게토화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의들과 연결되었다. 소영현(2014)은 여성 문학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편향은 도식적이고 경직된 해석을 불러와 오히려 여성문학의 의미를 협소화하고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미현의 연구를 추적한 이은선과 허윤(2024)의 논문에서는 공주병에 걸려 있는 문학 혹은 순교자나 희생양이 되고자 했던 문학은 이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여성문학 연구자들의 논의를 고려해 볼 때, 최근의 김명순 연구는 단지 새로운 해석의 독법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문학사의 게토화라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타파하고 여성 문학 연구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로 이해되었다.





위와 같이 내가 발견한 김명순 연구사 검토를 대학원 수업에서 발표하면서 영남여성학포럼 발표로 이어졌다.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한 내가 포럼에서 발표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김명순 연구자 검토를 시도해 보면서 여성문학사라는 대주제로 김명순을 대상으로 한 작가론 연구를 시도해 보고 싶었기에 용기를 내어 발표를 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어 <젠더·어펙트 연구소> 전임연구원 선생님으로부터 최근 번역 출간된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2025)에 대해 듣게 되어 김명순 연구의 방법론을 찾아보고자 앤 츠베트코비치 이론서를 읽기 시작했다.
앤 츠베트코비치의 책은 우울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담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 흥미로운 내용이라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읽었더니 금세 완독할 수 있었다. 앤 츠베트코비치는 우울을 개인의 병리적인 상태로 보지 않고 인종차별이나 식민주의와 같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울이 개인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상적인 지식과 달리 오랫동안 축적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또 우울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우울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인 상태로도 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앤 츠베트코비치는 이러한 우울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이 느낀 우울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저자가 기록한 우울 회고록이 수록되어 있었고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우울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앞부분의 우울 회고록은 앤 츠베트코비치의 집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등 사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시작해서인지 이론 파트에 들어와서도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김명순이 자신이 겪은 사회적 폭력을 작품에 담은 것처럼 앤 츠베트코비치 또한 자신을 대상으로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포착하고 분석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지점이 보여 신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앤 츠베트코비치의 이론에 따르면 김명순은 우울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여성을 향한 조선 사회의 차별과 폭력을 포착하고 이를 공적 영역에서 발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이었다. 김명순은 첫 번째 일본 유학에서 이응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수많은 소문에 휩쓸리며 자살 시도까지 했다. 그러나 1년 뒤 『청춘』에서 「의심의 소녀」(1917)로 등단을 하고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을 발표하던 시기에도 남성 문인들에게 비난받고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동인 <창조>에서 강제로 축출당하기도 하고 허위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인에게 고소장을 보내는 등 강도 높은 사회적 폭력을 당했다. 그런데도 김명순을 다시 일본 유학을 가면서도 또 한국으로 돌아와 글쓰기를 지속했다. 이러한 김명순의 행적은 앤 츠베트코비치가 말했던 우울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쁜 느낌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는 희망의 정동적affective 토대를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김명순 소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의 우울한 상태와 격렬한 감정 또한 당시 김기진이나 염상섭이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적”이라고 평가했던 것과 달리,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 속에서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의심의 소녀」는 자살한 어머니의 딸 가희가 ‘범네’라는 가명으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삶을 살고 있었으며, 「돌아다볼 때」(1924)는 주변 타자들이 당시 규범에 따라 끊임없이 소련의 상태를 마음대로 진단하고 있었다. 또 「칠면조」(1921)와 「꿈 묻는 날 밤」(1925)에는 여성 주인공들의 급진적인 말과 행동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눌려있던 자아를 되찾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분출된 몸짓과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뚜렷하게 자전적 소설로 읽히는 「탄실이와 주영이」(1924), 유일한 중편 소설 「외로운 사람들」(1924)에서도 등장인물의 감정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거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건과 얽혀 발생하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영남여성학포럼에서는 이 중에서도 「돌아다볼 때」를 대상으로 김명순과 그 작품을 다시 조명했다. 「돌아다볼 때」는 주인공 소련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진단과 당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회의 구조적 폭력 등 남성 중시 사회였던 당대의 정동적 배치로 인해 주인공이 우울한 상태로 내몰리는 상황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명순이 공적 영역으로 진입할 수 없었던 여성 차별적인 사회에서 스스로 글쓰기라는 거처를 마련해 자신의 사상을 발화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밝혔다.
김명순을 앤 츠베트코비치와 함께 읽음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에서 사라지는 젠더화된 정동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울과 같이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감정을 재조명하여 그동안 주목되지 않았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적 구조를 다시 고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남성 문인들에 의해 ‘신경질’적이거나 ‘히스테리적’이라고 평가되었던 김명순은 오늘날 여성들을 향한 비가시화된 사회적·문화적 폭력을 포착해 낸 페미니즘 사상가로 새롭게 명명되어야 할 것이다.
서혜민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석사과정.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보조원. 여성과 정동 이론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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