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쓰기(bodily:writing)의 정동(3회)_장옥진

4. 다시 來人comer, people이 people 하다

 

TV 프로그램 <고등 래퍼 3>에서 ‘코쿤이 코쿤했다’는 한 고등학생의 감탄사가 유행이 되어 떠돌았다. 래퍼 코드쿤스트의 비트에 대한 리스펙이자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능력을 찬양하는 표현이었다. 이를 빌려 써본다. people이 people 한다. 연구모임 <아프콤>의 잠정적인 해체를 기억한다. 공동체가 해체된 경험, 조직의 구성원이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겪고 사라진 일, 누구의 잘못도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반복되는 공동체의 우울을 기억한다. 동시에 젠더·어펙트연구소로의 접속! 소진해버렸다 생각했는데 체급을 올려(?) 다시 만났을 때의 경의(驚疑)를 기억한다. 모든 뒤바뀜 속에서 여전히 지독하게 ‘함께’인 권명아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새로운 버팀목으로 연구소를 지키는 선생님들을 보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세상을 구하는 아주 중요한 자원 중 하나는 인적 자원(사람)임을 몸소 이해한다. 

 

연구소는 사회적 소수자는 물론 누구나가 참여 가능한 학술 및 예술 행사를 주최한다. 누구나가 참여 가능한 행사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지독한 이해와 특별한 배려에서 온다. 연구모임에서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연구소에서 더 큰 공동체로의 이행에 이르기까지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단계)가 된 연구소는 공동체가 경험하는 트라우마에 쉽게 매몰되지 않으면서, 한계 지점에 다다를 때는 기꺼이 ‘언 상태’에 전염되기도 하면서, ‘몸’과 ‘몸’의 만남을 주최한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왜 저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요. 저희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 작업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의 시위, 새로운 방식을 내놓고 싶습니다. 뭐 세상에 예술 하면 다 죽는다 해도 ‘함께’ 있음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권명아, 2013. 

 

 

5. 2023년판 몸:극, 몸:쓰기(bodily:writing)의 정동 

<몸:쓰기의 정동>이 최근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는 연극, 무용이라고 하는 기존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역의 예술가를 배출하고 발명하려 노력하는 한편 창작극을 기반으로 번역극, 각색극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극단 바다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바문사)은 ‘부산’의 이야기를 전세계적 무대로 펼칠 꿈을 꾸고 있다. 장르에 경계를 두지 않는 현대무용 작업을 펼쳐온 경희댄스시어터 또한 부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용단으로 단체만의 색깔과 개성 있는 움직임으로 관객을 만난다. 특히 경희댄스시어터의 작품은 “정동적 퍼포먼스”를 구현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기도 한다. 박재현 안무가의 최근 작품에 대해 하영신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했다. 

 

“<굿모닝 일동씨-슬픔에 관하여>(이하 굿모닝 일동씨>는 세 작품 중 가장 최근작이다. 2020년 AK21 국제안무가육성경연에 출품해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21년 같은 무대에서 축하연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 무대. ‘일동’은 작품에 출연하는 소리꾼 양일동의 실명(實名)이다. 그러나 관람은 그의 슬픔을 목격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박재현은 정동(affect: 감정(feeling)·정서(emotion)보다 내재적인, 인지적 상태보다 주관적 경험과 생리적 작용을 포함하는 체험적 사태 그 자체를 강조한 정신분석학 용어)의 사태 자체를 구동시키는 일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작품의 시간 30여 분간 우리는 슬픈 서사가 아니라 ‘슬픔 그 자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영신, 「경희댄스씨어터 ‘박재현의 안무노트’」, 『더 프리뷰』, 2022년 6월

 

<굿모닝 일동씨>의 일동은 사실 굿모닝이 될 수 없는 일동씨다. <배수아의 새벽의 극장>의 두 몸이 밤에 살듯, ‘밤’에 사는 예술가인 일동은 예술가로서의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아침이 없는 예술가다. 부산에서 소리하는 일동씨, 안무하는 재현씨, 무용하는 현정씨는 모두 지역의 고단한 예술가이다. 무대에는 넘나들 수 있는 ‘문’이 무대장치로 놓여 있는데 이 문은 무대 위의 몸들이 항상 지나칠 수밖에 없는 통로이다. 예술을 하면서 부닥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무용하는 현정씨(부산 출생, 무용 경력 26년)는 이 문의 ‘문지기’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 이전의 모습-짐승과 같은 움직임으로 작품을 이끈다. 설 수 없는 상태의 몸이 예술가로서의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바닥의 보이지 않는 먼지를 후- 하고 힘껏 불면서 등장하는 무용하는 현정씨의 몸을 필두로 무대가 시작된다. 객석에서 단원들의 첫 등장을 보고 있자면 예술계의 새로운 바람, 예술의 새로운 ‘판’이 차려질 것만 같다. 

 

 

<굿모닝 일동씨> 첫 등장 장면 (사진제공∥무용수 김현정)
설 수 없는 상태의 몸, 무용하는 현정씨((왼쪽)  결국 ‘문’을 열고 걸어 나가야 하는 현실의 몸(오른쪽)     

 

 

최근의 이러한 몸:쓰기의 흐름은 몸짓 위주로 움직임을 풀어가는 움직임극 혹은 몸:극, 연극적인 요소를 무용에 입힌 극무용 같은 장르들, 기존 장르를 깨는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몸’을 ‘몸이 말’을 꾸미는 최근 부산에서 상연한 두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자.

 

 

극단 바문사 <나는 미치지 않았다> 포스터와 후기 이미지

 

배우 박찬영 연극인생 50년 기념 공연 <나는 미치지 않았다>(2022.11.17.)는 극단 바문사 연출의 작품으로, 바문사에는 실제 안무가 혹은 무용수가 극단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배우들의 신체 움직임이 돋보이고 이는 관객의 재미와 몰입을 돕는다. 연극배우들이 신체훈련을 받고 무용적인 요소를 극에 삽입하여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 도구로서 몸을 적극 활용한다. 이러한 몸:쓰기는 70대의 배우를 필두로 20대 신예 배우들까지 함께 하며 군무와 몸짓, 대사와 노래를 모두 소화한다. <돈키호테>, <리어왕>, <노인과 바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등 극중극의 쓰기는 부산에서 연극인생 50년을 산 배우를 위한 헌정극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에서 볼 때 지역에서 ‘오래’ 예술 하는 존재에 대한 애틋한 존경과 의리의 정동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부산의 회동수원지가 배경인 <우물가 살인사건-그곳엔 사람이 산다>(2022.12.03.)는 경희댄스시어터의 무용공연으로, 현대춤, 한국춤, 발레, 연극, 마임, 팝핀, 그리고 라이브 사운드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31인의 출연자가 등장한다. 팝핀을 추는 거대 로봇도 무대에 등장한다. 재밌는 연출은 이날 무대에 연극배우가 대거 출연했음에도 배우는 춤만 열심히 추고 마찬가지로 춤을 열심히 추던 무용수가 말을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해 본 공연 전 지인들만 초대해 벌이는 쇼케이스 현장에서 연극배우를 활용해야지 무용수가 발화하는 것에 대한 코멘트가 있었다고 하는데, 안무가 박재현은 “무용수도 무대에서 말할 줄 알아야 해요.”로 일관했다고 한다. 실제로 박재현은 무대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내가 본 그의 다른 공연에서 그는 소리 하는 분 앞에서 본인이 소리를 하는냥 ‘아-’ 하고 크게 내지르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몸:쓰기는 “일제강점기, 회동수원지댐 건설공사(1940-1942)로 논밭과 집이 수몰되어 생계수단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의 울부짖음과 절규를 담은 창작무대”라는 이번 작품에도 이어진다. 10, 9, 8, …, 0. 카운트다운에 따른 일련된 움직임의 변화와 반복은 농민들이 겪어야 했을 삶의 무게와 중압감을 잘 드러낸다.

 

<우물가 살인사건-그곳엔 사람이 산다> 팸플릿에 있는 perfomers 안내 페이지 / 내 손 안의 우물(우울)을 들여다 보는 자신 혹은 타인의 시선 두 가지를 잘 담고 표현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재미가 있다.

“한적한 공간에서 글을 계속 쓰게 된다. / 처음에는 무슨 글을 쓰는지 모르다가도 / 어느 정도 쓰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 어느 정도 글에 깊숙이 빠져들 때 차이가 드러난다. /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이룰 수 없다. / 전적으로 매달려야 또 하나를 구할 수 있다.
⏤<박재현의 안무노트 中에서>

 

관객의 ‘동의’를 구하는 호소력 있는 무대, ‘전달’되는 무대를 위해서 오늘도 연극배우와 무용수들은 몸을 쓴다. 어떤 상황이나 이야기를 갖게 된 몸이다. 작품을 하다 보면 마치 내가 어떤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것처럼, 그 죽음의 책임을 간직한 채 나비로의 비상까지 상상과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박재현의 작품에 참여한 연극배우는 의미 있는 언어를 골라 주의 깊게 다룬 후 관객에게 닿게 하는 일은 연극으로도 가능하지만, 입을 닫고 내 안의 기운과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임을 통해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경험은 조금 다른 의미라고 말한다. 몸 자체가 나이며, 그 속에서 지나온 역사들, 수많은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몸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갖는 언어의 가능성, 백 마디 말보다 한마디 욕이 본질에 가깝듯이, 움직임이 언어를 뒤따르고, 언어가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몸과 말이 서로를 꾸민다. “전적으로 매달려” “또 하나를 구”한다.

 

극단 노뜰도 새로운 연작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전쟁 연작에 이어 디아스포라 연작이 그것이다. 2022년 말, 이방異邦의 물고기로 첫 선을 보이고 이어 3년간 새로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연작 공연을 하고 있는데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연작 공연으로 “제주와 오사카의 관계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주, 제주, 오사카를 연결하는 다른 관계망을 작품뿐 아니라 작업 방식에서도 실험하고 있다.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연작 첫 번째 작품인 <이방의 물고기> 공연 인터뷰에서 “작품의 주요 리서치가 제주에서 시작되고 진행됐고, 특히 재일한국인의 많은 비율이 제주 출신으로 이카이노 지역은 일본 속 작은 제주라고 불릴 만큼 오사카와 제주는 디아스포라의 삶과 이어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방의 물고기>는 리서치부터 본 공연까지 전 과정을 간드락의 오순희 대표와 공동기획했습니다. 전쟁연작에 이어 두 번째 협업입니다.”(「경계인들의 삶에 부치는 기억 혹은 기록의 연대기」, <제주방송>, 2022년 12월 20일자) 

 

2023년판 몸:극, 제2의 <배수아와 새벽의 극장>을 여는 장소를 상상하면서 글을 마친다.

 

 

끝.

 


 

이 글은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가 주최한 2023년 한일 국제 컨퍼런스 <현장의 정동, 실천의 자리-젠더적 사유와 체현적 리터러시>(일본 히토츠바시 대학 사노서원, 2023년 1월9일)에서 발표한 원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장옥진 선생님이 열어주신 쓸 수 없는 것을 쓰려는 시도로서의 '몸;쓰기'를 이어받아 웹진 <젠더・어펙트>에서 '정동 쓰기'를 연재합니다. 여러 현장에서 마주친 웅성거림과 웅얼거림 사이를 오가며 채집한 말들,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말들을 기록하고 이어보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펼쳐보려고 합니다.  

 


장옥진

동아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대안 연구모임 <아프콤(aff-com)>에서 활동하였다.

현재 <젠더・어펙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본업은 폴댄스 강사다.

글쓰기와 몸쓰기를 좋아하고 몸을 잘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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