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삶에서 나오는 지식이라고 확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때로 현학적인 용어들과 외부에서 얹어오는 표피적인 해석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그 자명함을 잊어버리곤 한다. 열네 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어 7년의 기간 동안 성구매자들에게 착취를 당했던 레이챌 모랜(Rachel Moran)의 회고록 『페이드 포』를 읽기 전까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성매매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나의 언어 체계가 실은 얼마나 그릇된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것은 강제가 있었느냐 아니냐로 구분지어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성노동자들의 생계와 안위를 위해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한다는 건 그야말로 기만이다. 모랜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길어 올린 생각과 지식은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에 대한 그릇된 신화들을 반박하며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도출해낸다. 바로 “성매매는 상업화된 성학대”라는 것이다(185쪽).
모랜의 글은 그녀 자신이 인정하듯 일반적인 회고록과는 조금 다르다.『페이드 포』는 한 여성의 개인사에 대한 고백이지만 어느 파란만장한 인생을 지닌 자들의 소설 같은 기록과는 거리가 멀다. 모랜은 자신이 탈성매매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을 고통과 치유, 혹은 성장과 같은 키워드로 묶어내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글에 고통과 치유와 성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삶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드라마로 쓰이지 않았다. 모랜의 경험은 그녀 자신에 의해 해부되고 분석되어 사회에 전달되어야만 할 지식, 어쩌면 상식이 되었다.
성매매 산업의 세태를 고발하고 비판하기 위해 모랜이 꺼내드는 소주제들은 여러 가지지만, 그녀가 전달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이 가능하다. 먼저, 성매매는 결코 여성들이 직접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매매 된/되었던 여성을 만나면 ‘왜 그런 일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한다. 대체 어떤 사고와 태도를 지니면 스스로 몸을 거래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는 단지 무지할 뿐 아니라 성매매 된 여성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해하다. 모랜은 자신을 비롯해 성매매 된 여성들의 목소리에 근거하여 거듭 강조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더라면 어떤 여성도 그 일을 택하진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일례로 모랜은 정신병원을 다녔던 두 부모님 밑에서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다. 가난과 더불어 자신에게 쏟아지던 온전치 못한 어머니의 공격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을 나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놀랍게도 국가는 그녀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않’았다. 지낼 곳도, 삶을 끌어나갈 그 어떤 조금의 자원도 없이 거리로 쫓겨난 그녀는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히, 노숙은 호기롭게 이어나갈 수 있는 생활이 아니었으며 곧 그녀의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모랜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만큼 가차 없으며 철저하게 충격적이어서 누구라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방법이 위험하든지 역겹든지 무조건 택하게” 만드는 경험이다(88쪽). 이처럼 하루의 식사와 잠을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절실했던 그녀에게 손을 뻗쳐온 건 거리 성매매였다.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게 가까운 방안으로 보였기에, 모랜은 그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혹자는 그럼에도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성매매 되는 여성들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자들의 착각이다. 모랜이 이야기하듯, 성매매는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일이 아닌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다. 어려서부터 명품백은커녕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허둥지둥하며 살아야 했다면, 삶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성매매는 그런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써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30쪽). 여성들이 가난과 사회적 구조에 의해 조장된 라이프스타일에 의지와 상관없이 유입되는 게 성매매의 실태라면, 그건 엄연히 선택지라 부를 수 없다. 이걸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요에 대한 억제와 여성들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에 사회적 합의가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랜의 글에서 강조되는 두 번째 주장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성매매는 결코 합법화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성을 구매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을 사고 싶다는 욕망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오늘날 노예 시장을 부활시켜 노예를 소유하겠다는 주장에 비견될 수 있다. 성을 사는 것과 노예를 사는 것을 비교선상에 놓는 데에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두 가지의 본질이 학대라는 점에서는 분명한 공통분모가 보인다. 그렇다. 대가를 받았을지라도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학대이다. 미디어에서는 자유 의지로 성을 팔며 심지어 그 행위를 즐기기까지 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광고하지만, 실제 자신을 거래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행복한 창녀’라는 신화는 온전한 허구이다. “성매매의 본질은 성행위를 너무나도 불쾌하고 추잡하게 물들이고 수모와 떼려야 뗄 수 없어 어떤 종류의 전반적 즐거움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249쪽).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들은 고깃덩이 상품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거래 전, 여성이 가능한 성행위의 범위를 분명하게 정해놓지만 그 선은 실제 돈을 쥔 자의 변덕에 따라 쉬이 무너지곤 한다. 접촉은 전혀 위생적이지 않으며 폭력이 행사된다. 구매자는 여성이 순응하지 않으면 힘을 죄어오고 순응하면 불만을 제기한다. 모랜이 역겹다고 표현하는 이 행위 어디에도 즐거움이나 행복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여성은 견디기 위해 자신을 몸에서 분리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어찌 학대가 아닐 수 있겠는가.
조금 더 부연하자면, 정확히 위와 같은 이유로 성매매를 통해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옳지 않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예비) 범죄자들의 흉악한 행위를 다루도록 떠맡기는 것도 비윤리적이지만, 예방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그릇되었다. 여성을 함부로 다루고 정복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또한 모랜이 인용한 수전 맥케이의 말에 따르면, “성매매를 정기적으로 하는 남성들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을 자주 더 폭력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341쪽). 자신의 경험과 여러 연구들에 근거하여 모랜은 “아무것도 최초 시작에 머무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진화하고 자란다. 강간 판타지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343쪽). 이는 성매매의 합법화가 결국은 더 많은 성범죄를 양산하리라는 의미이다. 현재 2020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여성들은 그 말이 진실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고백했듯이 나는 성매매와 강간문화, 그리고 여성혐오의 상관관계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정작 성매매 된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무엇도 명확하게 몰랐다. 그녀들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창녀 신화를 알게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성노동자라는 단어와 함께 그들의 권리를 말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멍하게 양편의 논리를 왔다 갔다 했었다. 단언컨대 사회가 배포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 감염된 이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아니, 필시 이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그러할 것이다. 책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을 보고 느꼈던 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대 남성 포주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를 두고 많은 이들이 양편으로 갈려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에서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한 드라마를 소비할 수 없다고 했으며, 다른 편에서는 그건 오해라며 범죄자가 자업자득으로 나락의 길을 걷는 과정을 주목하라고 했다. 후자의 의견에 대해서는 응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놀라운 건 범죄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논의들이 오가는 도중에도 정작 성매매 된 10대 여성 민희의 경험이 올바르게 묘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점검이나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은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민희를 떠올렸다. 극중 그녀는 일진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폭력적인 구매자를 만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이 설정은 결국 성매매가 학대와 연관된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한편으로는 폭력적 행위가 일기 전까지는 성매매가 참을 만한, 심지어 할 만한 경험이라는 이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이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나는 그동안 내가 여성에 관한 문제들에 관심을 고르게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고, 나는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묵살시키는 사회의 일부였다. 그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자체가 사회의 저변에 자리한 그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중심 바깥에서만 메아리치도록 만드는 원인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그들에 대한 오해를 퍼뜨리고 그들에 대한 비난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모랜이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낸 이유도 그런 무지와 비난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후대에 올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싸워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성매매는 결국 “여성의 젠더 가치가 하락”하도록 하며 여성이 성착취 상태에 놓이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341쪽). 하지만 이 문제가 어떻게 해서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정신적 손해인지를 모랜은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니까 학대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건 우리 모두의 손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당신에게도 권하려 한다. 당신이 이 책을 펼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길 바란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을 향한 편견은 성매매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실제로 살아 있게끔 기여합니다”라는 저자의 진술이 먼 과거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삶 곳곳에 묻어 있는 오해와 편견들을 지워내길 바란다.
이 희 구
젠더·어펙트 스쿨 제5회 리뷰 공모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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