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젠더·어펙트 스쿨 제4회 리뷰 공모전 당선작] 모든 여성은 자기 인생에서 진취적이어 왔다 (전수빈)

 

여성 의제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진취적인 경험이 없는 여성은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모든 여성은 독립적인 주체라는 점이다. 난민과 여성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싶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여성 의제는 다른 맥락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난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난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우성 배우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정우성 배우님께서 난민혐오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셔서 이 정도라도 남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난민에 대해서 무지했지만 그나마 아는 것이라고는 마치 주입식 교육처럼 ‘난민에 대한 혐오를 하면 안 된다’는 문장 하나뿐이었다.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문장 하나만 남아버린 내 머릿속에서는 다른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민 때문에 한국이 위험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의식중에 남아있는 난민에 대한 혐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다. 난민에 대한 혐오는 어쩌면 우리는 난민이 될 일이 없다는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한국 국민들 또한 언제든지 난민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 온갖 가짜뉴스들은 통계의 다른 변수들은 고려하지 않은 채로 난민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데이터로 지지되지 않는 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난민들의 가부장적이고 후진적인 문화가 문제가 되니,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식민지 논리와 유사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을 때도 한국의 후진적인 문화를 근거로 하여 합리화하였기 때문이다. 나도 난민 남성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문화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때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난민 여성들은 이런 문화에 당해도 된다는 논리와 치환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여성을 배척하는 논리가 된다. 또한 난민 남성들을 무조건 배척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사회화가 가능한 존재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여성의제를 다룰 때에는 맥락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맨의 조혼 풍습을 예로 들자면 사람들은 예멘의 조혼 풍습이 가부장적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많다. 하지만 이 조혼 풍습이 발생하게 된 원인인 영국과 미국, 그리고 그 이외의 사회적인 원인은 전혀 따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예맨 사회 안에서도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난민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도 나름 진취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문화를 모두 후진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 나은 사회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마냥 가부장제의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인권 운동에 관심이 없는 기득권층의 시혜적인 시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동아시아 여성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이 여성들이 독립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민에 대한 혐오는 일종의 인종 차별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난민 수용에는 어떤 인과관계들이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인과관계를 통해 난민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이 또한 여성들의 다양한 독립적인 행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치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난민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인권을 뭔가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권은 빼앗는게 아니라 서로 넓혀가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혹자는 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원래 국가를 버리고 온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리고 개인 이기주의가 투영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원래 국가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해서 온전히 이익만을 챙길 수는 없다. 난민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우선 사회적으로 약자인 이유는 자신의 문화를 지키는 환경이 주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책에서 예시로 든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말만 ‘다’문화 정책이었다. 실제로는 한국의 문화를 이주여성 상대로 내면화 하는 정책이었다. 법적으로는 난민이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 억울하게 착취되더라도 이를 호소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난민이 과연 그래도 정말 100% 이기주의를 위해 국가를 버리고 왔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싶다.

 

무슬림 여성들이 베일을 쓰는 것은 한국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베일을 쓰는 것과 화장을 하는 것 모두 여성들의 자유의지는 아니지만, 화장을 할 자유, 베일을 쓸 자유는 있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화장을 하는 사람들은 여성인권을 후퇴시키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화장을 하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 화장을 하거나 베일을 쓰는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인생을 지워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잡히고,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누군가 정해둔 정상성의 개념으로 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면 안 되는 것 같다. 여성은 같이 연대할 대상이다. 여성을 낮추는 순간 우리는 같은 여성을 상대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형식과는 다른 형식의 여성혐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여성혐오 논란이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이 여성에게 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해당 여성이 단순히 ‘생각이 없어서’, ‘멍청해서’ 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여성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것이다. 여성이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철저하게 고려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비난의 화살은 사회적 약자를 향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랑의 매와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책에서 언급된, 소수자를 아낀다는 명목 하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합리화 하는 행태는 만연하다는 것을 보고 생각난 것이 있다. 나는 규정이 엄격한 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생들은 ‘빡센’ 규정에 대해서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규정에 대해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불만을 토로하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당시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때였다. 저런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규정이 엄격하다고 하셨다. 우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셨겠지만, 교복 규정이 엄격한 것과 여성혐오 사건 방지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다른 형태의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존재한다. 가령 퀴어에 대한 혐오이다. 특히 요즘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너무 심해진 것 같다. 트랜스젠더가 여태 살아온 그 자신만의 인생은 모두 무시하고, MTF 트랜스젠더가 오직 여성스러운 것을 밝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는 나와 그저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다. 엄연한 혐오이다.

 

혐오의 기준은 그 사람의 삶을 거시적으로 바라보았는가, 미시적으로 바라보았는가가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권은 쟁취가 아니라 넓혀가는 운동이다. 책을 통해 나 스스로의 시혜적인 생각들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전  수  빈

 

젠더·어펙트 스쿨 제4회 리뷰 공모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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