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 젠더·어펙트 스쿨 제3회 온라인 콜로키움] 의심하고 질문하는 '나'를 위하여 (허윤)

성의 영속성과, 노예와 주인의 영속성은 같은 믿음에 기인한다. 주인이 없으면 노예가 없는 것처럼, 남성이 없으면 여성도 없다.

(모니크 위티그, 성의 범주,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허윤 옮김, 행성비, 2020, 44.)

 

남성과 여성이 없는 세계

 

‘스트레이트(straight)’란 무엇일까?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마지막까지 스트레이트를 어떻게 옮길까를 고민했다. 이성애/정상성/똑바른 등의 의미를 포괄하는 스트레이트는 한국어로 옮겼을 때 의미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이트 마인드’를 ‘이성애 마음’이라고, ‘정상적 사유’라고 번역했을 때, 이성애중심성을 ‘정상적’이고 올바른 것으로 연결시키는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 책의 제목은 원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스트레이트 마인드’가 되었다. 그와 그녀의 번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 글쓰기에서 되도록 그와 그녀를 구분하지 않으려는 나의 글쓰기 습관을 위티그의 책을 번역하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와 그녀로 나누어지는 이항대립을 해체하기 위해 ‘그녀’를 쓰지 않는 것은 어떤 언어적 효과를 낳는 것일까? ‘그녀’를 보편화하기 위한 언어 실험을 하는 위티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대신 그녀로 통일해야 하는 것일까? 같은 질문이다.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의미의 낙차는 남성, 여성 등의 개념어 규정에도 포함된다. 남성적이지 않은 것을 통칭하여 여성적인 것이 구성된다. 근대성의 토대가 된 이항대립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항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를 둘로 나눠 각 항에 특징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남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아닌 것을 모두 여성으로 명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김효빈의 글은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위티그의 비판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을 구분해온 관습은, 나아가 구분하는 것 자체를 인간의 본질로 만들어버렸다.”(김효빈, 「정체를 부수는 정체」) “여성은 없다.” “남성적인/여성적인, 남성/여성은 사회적 차이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질서에 속한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동원되는 범주다.”와 같은 위티그의 파격적인 명제는 구분을 본질화하는 스트레이트 마인드에 대한 문제제기다.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의 젠더 규범은 스트레이트 마인드를 정상화한다.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상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기준을 지키지 않는 ‘이상한’(queer) 사람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로서 처벌받는다. 성전환수술 후 강제전역 당한 변희수 하사의 사건을 생각해보자. 그는 부대원들로부터 트랜지션을 인정받았고, 부대의 허가 하에 해외로 출국하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성기 훼손’이라는 조항을 근거로 삼아 그를 전역시켰다. 이는 군인에게 규범적인 것은 ‘성기’임을 의미한다. 남성의 본질을 상징하는 성기나 정자와 같은 생물학적 요소는 남성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쓰인다. 무정자증이나 발기 부전은 군 면제의 요인이었으나 2012년에 가서야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는 한국사회가 남성을 정자와 성기를 중심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식이 불가능하다면 남성이 아닌 것인가? 생식과 재생산 중심의 세계관은 남성/들 안에서도 무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군대가 한국에서 성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면 무정자증으로 군대에 가지 못하는 남성은 비(非)남성인 것이 아닐까? 이는 사실상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구분이 쉽게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회적 감정, 법, 제도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에 실린 에세이 「호모 숨」에서 위티그는 유일자와 타자로 구성된 이항 대립을 해체하고자 시도한다. 근대 서구 사회를 직조한 변증법은 주인과 노예의 이항 대립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 역시 마찬가지다. 위티그는 이 이항 대립의 변증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자와 대타자의 이항 대립은 일련의 반대 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유일자-남성’의 반대 항에 ‘타자들-여성-불화-불안’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항 대립의 계급투쟁에서 승리하면, 과거 타자들은 유일자가 된다. 프랑스혁명에서 부르주아들이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위티그가 질문하는 것은 모든 타자가 유일자의 범주로 옮겨 간다면, 즉 이항 대립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항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 둘이 모두 인간이라는 범주로 합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유일자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모두 인간이 된다면 말이다. 김효빈의 글은 이를 “이:동성애는 해체되고, 레즈비언을 비롯한 모든 관계 맺음은 성의 범주에 의한 관계성이 아닌 각각의 특수성으로 환원되”는 세계로 이해한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 세계다.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성차별의 근본적인 문제가 젠더에 있다고 문제제기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성(별)이 계급, 계층, 교육 수준 등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심급이라고 지적한다. 조안 리비에르가 언급한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리비에르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 ‘지나친 여성성’을 내세운다고 설명한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 고위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수리공이나 관리인 등 자신보다 계급적, 계층적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며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을 연기한다는 것이다. 리비에르는 이것이 여성의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자신의 여성성을 훼손시키지 않을까 우려한 무의식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계급이나 계층과 젠더 중 어느 것 하나가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티그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은 이항 대립에 근거해 이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고안된 인공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신의 섭리에 따른 구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성(sex)의 구분은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범주에 기댄 것이고, 성별에 따른 본질적인 역할은 없다는 위티그의 주장은 여성성을 신화화하는 데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억압받는 계급이며, 페미니스트의 목표는 억압받는 계급의 해체, 종식에 있다. 그렇다면 여성 계급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위티그는 여기서 보봐르의 유명한 명제를 패러디한다.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이는 차별받는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해체하고 여성을 본질화하는 ‘여성’ 범주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성에 대한 강조는 젠더나 성 정체성이 글쓰기의 성격이나 범주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이라는 언어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질서, 이성애 중심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위티그가 ‘이성애적 사유’라고 불렀던 것이다. 위티그는 스스로를 여성 작가가 아니라 ‘급진적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하며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이는 ‘여성’이 이미 이분법적 이성애 중심주의를 받아들인 언어인 반면 레즈비언은 이성애 규범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레즈비언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소수자로서 자신을 이해하거나 보편과 비교를 통하여 판단하는 방식들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이다. 차이를 통해 나누고 구분 짓는 대신 보편성을 전유하고, 해체해버리는 것이 그의 목적인 것이다.”(박준훈, 「우리는 모두 소수자가 되어간다」) 위티그에게 레즈비언은 여성만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을 해체할 수 있는 세계다.

 

 

이성애는 계약이다

 

나는 이성애를 제도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전유에 기댄 정치적 레짐으로 설명한다. 절박한 궁핍에서, 농노나 노예와 마찬가지로, 여성은 도망가거나 계급이나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고/시도하거나 매일, 사사건건, 사회적 계약에 대한 재협상을 ‘선택’한다. 탈출구는 없다(여성을 위한 땅도, 미시시피강의 저편도, 팔레스타인도, 라이베리아도 없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은 오직 우리 도망자, 탈출한 노예, 레즈비언 자신의 두 발로 서는 것뿐이다.  (모니크 위티그, 「서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허윤 옮김, 행성비, 2020, 5쪽. )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근간하고 있는 것은 이성애라는 ‘정치적 레짐’이다. 위티그는 이성애 제도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전유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성애를 생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살펴보자는 주장은 아직까지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신의 질서를 위반한다고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거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을 금지하고 성소수자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등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는 강고해 보인다. 때로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있다. 2020년 6월 29일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을 비롯한 10여명의 의원이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인권위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의견이 각각 88.5%, 87.7%로 나왔다. 즉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약 13%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은 과잉재현되었다. 왜 13%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일까? 이는 마치 찬성과 반대가 ‘똑같은’ 것처럼 여겨지는 기계적 중립 때문이다. 찬성 측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반대 측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는 구조나 제도를 질문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에서 기인한다. 왜 남성과 여성이 필요한지, 이성애 제도가 근대적 자본주의와 정치 체제를 성차별적으로 지탱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2003년 호주제 폐지 논의 당시 전국의 유림이 대학로, 여의도 등지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무너진다”가 대표적인 구호였다. “호주제를 아예 폐지할 경우 가족개념이 사라져 개인주의가 더 팽배하고 미혼모 급증, 이혼율 증가 등 심각한 폐단이 우려되기 때문에 법 통과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주:1] 이 발언에는 한부모 가족이나 이혼 가족 등은 가족이 아니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호주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섣부른 이상적인 발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호주제 폐지 이후를 살고 있는 지금, 호주제 폐지가 개인주의를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레짐은 사회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거나 유지되고, 폐지된다. 이성애와 동성애의 이분법적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위티그는 프랑스어의 남성형, 여성형을 활용하여 성을 둘러싼 계약을 해체하는 실험을 수행한다. 그는 여성형으로 쓰지 않는 대명사 ‘우리/사람’을 여성화한다. 소설과 희곡 등 문학작품을 통해 벌이는 언어 실험은 사회의 토대를 형성하는 근본적 계약으로서 언어를 재질문한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통해 사회 계약을 해체하는 것이다. 공고한 제도를 내파하는 상상력으로서의 언어 바꾸기는 일종의 레즈비언 선언이다. “비정상성으로 표상되며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에서 비주류에 자리한 존재를 통한 전복이며, 보편의 해체와 최종적으로 모든 획일화된 일반성을 특수성으로 환원하는 작업”(김효빈)으로서 레즈비언 되기는 언어적 차원에서, 섹슈얼리티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꿀 언어나 도구를 주지는 않는다. 여성 해방의 궁극적 목표는 ‘여성’을 없애는 것이라는 위티그의 말은 페미니즘은 이성애중심성이라는 정상성을 질문하고 추궁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당연하다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테제에 대해서 의심하라고 요구하는 위티그의 목소리는 때론 너무 어렵게 들린다.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어렵게 말이다. 철학적이고 누보로망적인 에세이를 옮기면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꼼꼼히 따라 읽으며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리뷰들을 읽고 무척 감사했다. 『스트레이트 마인드』을 정체성을 해체하는 정체성이라는 방법으로 읽어준 김효빈의 에세이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특수와 보편, 자연과 비자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돌파할 수 있는 ‘나’가 되길 빌어본다.

 


허  윤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남성성을 중심으로 젠더 문학/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런 남자는 없다』(오월의봄, 2017),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 『을들의 당나귀귀』(후마니타스, 2019) 등의 공저, 『일탈』(공역, 현실문화, 2015), 『모니카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행성B, 2020) 등의 역서,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젠더수행성 연구』(역락, 2018) 등의 단행본이 있다.

 


 

  1. 호주제 폐지안, 여성 유림계 대립 가속화, 연합뉴스, 2003.9.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45274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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