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젠더·어펙트 스쿨 제3회 리뷰 공모전 당선작] 이상한 사회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는 당신에게 (조은별)

 

나의 오늘은 평온했다. 늦잠을 잤고, 밥을 챙겨 먹었으며, 더울 땐 에어컨을 켰다. 늦은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카페에 나와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지금은 이렇게 리뷰를 쓴다. 나의 오늘은 아직도 평온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며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를 두고 싸우는, 평온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노조를 만들었단 이유로,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겠다는 사측에 동의하지 않았단 이유로, 정리해고에 맞섰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일터를 되찾기 위해 오늘 이 시간에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일상은 이리도 평온한데, 저 사람들의 일상은 왜 평온하지 않을까. 왜 그토록 고생하며 싸우고 있는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는, 너무 오래 싸워 와서 이제는 뒤를 돌아봐도 아득할 정도인 이 싸움을 왜 놓지 못하는 것일까. 희정 작가는 이런 질문마저 “싸우는 사람들은 하늘에 오르고, 땅에 온몸을 붙이고, 수십 일을 굶고 나서야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다”고 “질문을 받아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9쪽)”고 말한다. 맞다. 75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400일 넘게, 20일 넘게 단식을 해야만, 차갑거나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온몸을 붙였다가 일어나는 오체투지를 해야만, 언론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던졌던 내 질문들은 어쩌면 투쟁에 향한 것이 아니라 비극에 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투쟁의 이유와 의미보다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극에 주목하는 시선들 사이에서 『여기, 우리, 함께』는 비극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을 만들어낸 사회에 주목하며 그 현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여기, 우리, 함께』에는 비극의 주인공이 없었다. 비극을 만들어낸 사회와 그 사회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오래도록 싸우고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투쟁과 연대의 기록’이다. 이 책을 쓴 작가 희정은 자신을 ‘기록노동자’라 소개하며 “수없이 많아 어느 새 보잘것없어진 억울함들이 아파”서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고 말한다.

 

『여기, 우리, 함께』에도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투쟁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보다는 투쟁의 주체로서 현상을 분석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 “소수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래알 요정(119쪽)”이 되어 부당한 요구에 맞선 모습을 담았다. 이미 여러 번 뉴스에 등장했던 투쟁 이야기도 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 그것들과 다른 이유는 이들에게 던져지는 물음들, 그러니까 비극을 향해 있는 물음들에 오히려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되묻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냐고? 질문 받은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부당한 사회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동안 누려왔던 평온함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들은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들은 묻는 사람이고. 우리가 지나치고 감내하고 넘어가는 일들을 들춰내 묻는 사람(9쪽)”이라는 희정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여기, 우리, 함께』는 투쟁의 기록과 함께 연대의 기록도 담는다. 싸우는 사람들 곁을 지키는 연대. 투쟁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연대의 의미를 묻는다. 희정 작가는 연대자들을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들(13쪽)”이라고 말한다.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들.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갖기까지의 저마다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 연대하는 힘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연대의 기록은, 연대자들의 목소리는, 그동안 연대자가 보여줬던 물적, 심적 지원에 놀라움과 고마움을 표현하는데서 그쳤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했다. 투쟁하는 여성들에게 자주 던져졌던 물음(196쪽)처럼 연대자들에게도 “왜 연대를 하나?”라는 물음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연대를 할 수 있나?”라는 물음으로 연대를 치하하는 데서 그치진 않았던가. 연대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상황은 다양했다. 우연히 소식을 듣고 투쟁 현장에 찾아가게 되거나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당사자거나 같은 처지라서, 그도 아님 공생을 위해서라는 가지각색의 이유로 함께 한다. 연대자들은 획일화된 이유로 투쟁 현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니다. 연대하는 방식마저 다르다. 그들은 자신만의 이유와 목표를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투쟁을 한다. 그래야 투쟁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는 앞서 나가는 이들에 의해서만 바뀌지 않는다. 투쟁 당사자가 앞으로 뚫고 가는 역할을 맡았다면 연대자들은 투쟁의 지평을 옆으로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우리, 함께해야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 이 책을 폈을 땐 알고 있던 이야기를 읽는다 생각했다. 모두 들어봤던 투쟁 현장이었으니까. 책을 덮고 난 지금은 그동안 누구의 시선을 통해 이 투쟁을 바라봤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보여주는 대로만 보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평온하고 그들은 평온하지 않다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희정 작가의 날카롭고 끈질긴 시선 덕분에 투쟁을 대상화했던 시선을 내려놓는다. 희정 작가의 그 시선은 자신의 고민과 우리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들까지도 이어진다. 투쟁하는 우리들 간의 작은 명칭 하나에도 위계가 내재화되어있다는 지적, 투쟁하는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대한 비판, 일하면서도 집안의 돌봄 노동에 이중고를 겪었던 여성들이 해고되고 투쟁을 겪고 나서야 가족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그동안 짚고 넘어가지 못(안)하고 지나쳤던 것들도 꼼꼼히 기록한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희정 작가가 아파하며, 고심하며 써 내려간 기록과 고민들을 읽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나마 미안한 마음을 좀 덜자면, “가벼워진 노동을 덧입은 우리는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사라지기 전에. 아니 사라지지 말라고.” 기록한다는 희정 작가가 던지는 물음에 나도 응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책을 덮고 나니 반항심이 올라와 되묻고 싶어졌다. 우리는 정말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느냐고. 평온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잠시’ 안타까워하고 끝낼 만큼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냐고. 정규직이 마치 무슨 어마어마한 벼슬인 양 되어버렸다. 높은 스펙, 젊은 나이, 좋은 학벌이 아니면 정규직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넘어 섰다. 누군가에게 채용되고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다행인 사회가 되었다. 자신을 스스로 고용하지 않으면 고용되지 못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상한 사회에서 평온하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 “좋았던 날이란 빼앗김을 수긍한 날들인지도 모른다. 모욕 없는 삶이 아니라 실은 빼앗김을 수긍하는 대가로 모욕을 피해간 일상일지도. 평온은 매 순간 말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행위를 통해 획득된다. 그러니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음먹는 순간 싸움이 시작된다(119쪽).” 우리는 이 이상한 사회를 살아 내기 위해, 평온함이라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빼앗김을 수긍하며 살고 있진 않나. 여기, 빼앗기지 않으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우리의 삶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여기, 우리, 함께』는 그 질문을 다시 나에게 건네준다. 그 질문을 곱씹어 본다. 당장 답을 할 순 없지만 평온한 일상이라 믿었던 것들에 는 그 질문을 다시 나에게 건네준다. 그 질문을 곱씹어 본다. 당장 답을 할 순 없지만 평온한 일상이라 믿었던 것들에 균열이 생긴다. 균열 사이로 무엇이 밀려들어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그 질문을 다시 여기, 우리, 함께하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 본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라고.

 

 


조  은  별

 

젠더·어펙트 스쿨 제3회 리뷰 공모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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