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젠더·어펙트 스쿨 제2회 리뷰 공모전 당선작] 이토록 복잡한 세상에서 함께 진화하는 법 (부영)

 

‘여성 상위 시대’라는 말은 1970년대의 한국에도 존재했다.[각주:1] 마치 최근 들어서야 페미니즘이 관심을 얻고 이에 대한 반발도 여느 때보다 심해진 것처럼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여성 상위 시대가 닳고 닳은 표현이라는 사실은, 신 페미니스트 집단이 등장하고 반대파가 역차별을 운운하는 현상 또한 숱하게 반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김현영의 말대로 페미니즘은 유사 이래 몇 번이나 ‘대부흥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 긴 역사의 단면 위에서 한 페미니스트가 겪은 치열한 순간들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2003년부터 수집된 권김현영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특정한 개인의 궤적일 뿐 아니라 15년 넘는 시간 동안의 사회상이 담긴 소중한 자료다. 당시 발생한 사건부터 책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저자는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회고할 기회이고, 한편으로는 미래를 향한 지침을 받는 느낌일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트랜스젠더 혐오에 가담했던 저자의 일화처럼 나에게도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실수를 지우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반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 전진은 다름 아닌 “앎의 갱신(63쪽)”을 통해서 가능하다.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보편으로 간주해온 지식의 권위를 묻고 또 물으며 권력의 작동 과정을 심문하고, 그 자신이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62쪽)”해왔던 사상이며 심지어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92쪽)”하기에 굉장히 변혁적이다. 혁명성을 담지한 페미니스트라면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지 않고 계속 수정해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다수의 사람이 맹신하는 주류적 실천들을 논쟁 가능한 주장의 차원으로 변환한다. 가족주의, 애국주의, 민주주의 같은 거대 신념부터 사소하게는 사측에서 노동자 간 임금을 비공개하는 문제까지 널리 통용되는 관습에 깔려있는 전제들을 섬세하게 해부한다. 기존 질문의 육하원칙을 뒤엎는 것이 그 시발점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사건을 명명하는 단어부터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적절한 관계”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란 두 가지 명명 방식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문제 설정한 결과이다(140쪽). 그리고 기혼 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가 처한 구체적 현실을 묻는다. 또 배제의 방식 자체가 어떻게 페미니즘과 필연적으로 불화하는지 생각하게끔 한다.

 

더없이 객관적이고 탈정치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과학도 도마 위에 오른다. ‘무엇’을 관찰할 것이냐가 연구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학 또한 발견이 아닌 규정의 문제가 된다. 단편적이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설명을 거부하고 의심을 거듭하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인식 체계를 ‘불안’하게 만드는(25쪽)” “‘불온’한 존재”가 되어 있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이냐 못지않게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지만 이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저서는 전자에 비해 적다. 이 점에서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빛을 발한다. 저자에겐 “결과는 동일하다 해도 과정이 달라지면 공론장의 수준이 변한다(109쪽)”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꼬투리 잡기식의 비난은 단호하게 거부하는 의지와 더불어, 대화를 환영하는 자세와 태도를 제안한다. ‘우리끼리’가 구획하는 폐쇄성의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비판하고 다 같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 책은 좋은 토론의 조건과 원칙 등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방식’에 대해서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예컨대, 의견을 발화자와 동일시하지 않을 것, 의견의 변화 가능성을 전제할 것, 토론의 내용을 다른 곳에서 뒷담화 재료로 삼지 말 것 등이다.

 

그런데 빠른 소통을 최선으로 여기는 환경적 조건은 조리돌림을 통한 현대판 마녀사냥을 탄생시켰다. SNS 속에서 누가 가장 완전무결한 피해자인지를 경쟁하고 윤리는 기계적으로 목록화되어 타자를 재단하는 기준이 된다. 끊임없이 누구의 편인지, 찬반을 밝히기를 요구받는다. 차별과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과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기보다는 ‘정의로운 제삼자’의 위치에서 개인을 처형한다. 물론 엄중한 처벌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이상이 논해져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을 ‘맥락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문화에 의문을 던진다. 단단한 가부장제에 숨은 틈을 읽어내고, 그 틈을 벌려 결국엔 모두가 바뀔 수밖에 없도록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을 요구한다.

 

물론 한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 혹은 라이프 스타일의 역전을 추구하는 일보다 사회 구조를 심판대로 끌어내는 일이 훨씬 난도 높은 일이다. “익숙한 궤도의 유혹(49쪽)”에서 벗어나야 하는 어려움에 맞서 저자는 “사회 변혁보다는 개인 변혁에 초점을 맞추던(245쪽)” 1970년대 미국의 문화 페미니즘 운동의 실패를 소환한다. ‘머리 길이, 문신, 화장, 성형, 혼인 여부, 성적 취향, 옷 입는 스타일 등’이 모두 개인의 급진성을 변별하는 기준이 되었던 당시 상황은 현존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일부 흐름과 유사해 보인다.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집단적 행위의 힘, 공동의 목소리를 조직해내는(246쪽)”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개인 간의 암투를 통해서 일부의 승자만 남는 것 대신에 권력 관계 자체를 위협하고 뒤바꿀 해결책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환영하는 것이 그 해결의 실마리일 수 있다. 저자의 사유는 여러 정체성을 인정하자는 식의 이미 꽤 보편적인 언설에 그치지 않는다. 대신에 권김현영은 인간이 대체 누구인지를 적극적으로 탐문한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혹은 성적 선택과 매개되지 않은 관계란 없”으며 “이러한 관계맺음 자체가 인간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즉,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인을 만들어내는 사회관계를 포함해서 인간이 만들어(91쪽)”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고려해야 하며 인간 존재를 쉽게 추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당연히 여성 또한 단일하지 않고 차이를 내포한 존재들이다. 다름을 삭제하면서 통념상의 생물학적 여성으로 회귀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적 영역에서 승인되는 여성의 자리를 수적으로 늘리는 것만으로 ‘여성’ 인권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지는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차별은 단순히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배적인 사회 체계가 차이를 ‘절대적인’ 무언가로 구성하는 방식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되고 불변적인 ‘여성’에 의존하는 정체성 정치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은 오히려 더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다양성의 가치를 운동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완전히 다른 사유를 조직하는 복잡다단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곧 페미니즘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연대’도 이 입체적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결속하고 단합해야 한다는 담론은 넘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각기 다르다. 이런 여건 속에서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연대의 뜻을 쉽게 푼다. 저자에 따르면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역사화하고 성장하는) 과정 전체를 완전히 함께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대이고 연대라는 이름의 신화다. 당신이 내가 아니듯, 나도 당신이 아니다(169쪽).” 오히려 주어진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실천 가능한 연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너와 내가 같지도 않고 같을 필요가 없으며 같지 않기 때문에 더 풍부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오히려 서로 간에 지속 가능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나아가, 여성주의에서 피해자 담론이 지니는 이중적 효과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소개한 “하나의 정거장(170쪽)” 개념은, 양분되지 않은 페미니즘적 인식 틀이 될 수 있다. 경험의 공통성은 여성 연대의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자 긴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정거장일 뿐 정체성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렇게 계속 다른 방식의 사유를 이어나가야 한다.

 

‘변화’와 ‘급진’의 이름으로 답보하는 극히 보수적인 언행들을 종종 목격한다. 지금껏 이야기했듯이 저자는 이렇게 아이러니한 장면들을 비평하며 독자가 이분법 밖의 회색 지대를 탐구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페미니즘이 던지는 ‘곤란함’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증폭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이어간다.

 

“‘입문’ 단계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했다면, 그다음에는 상호 비판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용기가 요구(63쪽)”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는 깊이 있는 대중서로서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지키기보다는 그 내용물을 채우는 데 충실해지길 요청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나 또한 저자의 페미니즘과 생생히 조우하며 나와 우리의 페미니즘을 다시 살피는 시간이었다.

 


부  영

 

젠더·어펙트 스쿨 제2회 리뷰 공모전 당선자

 


  1. 196910월 신상옥 감독의 영화 <여성상위시대>가 개봉했고 영화와 무관하게 여성 상위 시대라는 단어가 국내 신문에 출연한 것은 197011일이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풍속사학자로 소개되는 김화진과 인기여우로 소개되는 고은아의 대담이 그것인데 언급 부분은 다음과 같다. “고양(고은아) : “개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지요. 우리 말로는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뜻이겠는데, 지금껏 남성들에게 눌려 살아왔던 여성들이 가까스로 동등한 지위에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린 이 판국에는 남성들도 생각을 고쳐야죠.” “송사(김화진의 호): 그게 아니지. 여성상위시대라든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보면 몽둥이 찜질 생각이 더욱 간절할밖에헛허허.” 동아일보197011일 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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