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 젠더·어펙트 스쿨 제5회 온라인 콜로키움] 여성의 몸은 남성의 공공재가 아니다(고진달래)

어디,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있었는가?

 

세대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은 장소 불문, 성애화된 대상으로 박제된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수납을 하는 동안 남자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여성 노동자의 손바닥을 긁거나, 한참을 쳐다보며 바지를 내리기도 했단다. 도시 가스 점검원들 역시 일을 하면서 고충은 남성들의 성적 시선이라고 했다. 혼자 있는 집에 팬티 바람으로 문을 열어주거나, 밤에 오라고 하면서 남자 혼자 있는 집인데 괜찮냐고 희롱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여성의 안전은 어디에서든 위협받고, 몸의 경계는 침범받는다. 성희롱, 폭언, 폭력 등의 일상적인 위험은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일이고 애교를 섞어 부드러운 방식으로 무안하지 않게 대처해나가기를 요구받는다. 어느 국회의원은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것을 각오해야 한다 했고, 예술계에서 일하는 여성 예술노동자들은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주는 대신 애인 관계를 맺자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모여있는 술자리에 참석하고 그 안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술 따르는 역할과 성희롱을 무리 없이 받아쳐줘야 한다. 그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일의 연장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몸과 내 몸의 경험이 어느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이냐, 아니냐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싶어 하겠지만 여성이 해야하는 역할과 여성의 몸을 작동시키는 방식 자체는 비슷하다.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이 수행해야하는 일에는 성적인 역할까지 포함한다. 회식자리나 술자리에서 비일비재하게 성폭력이나 성추행이 일어난다. 남자들의 유흥은 술과 여자를 필요로 하고, 여자를 자기 통제 하에 둔 것을 확인할 때 남성들의 집단적인 흥은 북돋아진다. 제자를 안고 블루스를 추고, 후배의 입에 손가락을 넣고, 노래방 안에서 동료를 눕히는 등 강제가 통용되는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흥분한다. 『페이드 포』의 저자 레이첼 모랜(Rachel Moran)은 성매매를 할 때 ‘구매자들은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서 비롯되는 통제력을 즐긴다’고 했는데, 이는 성매매를 할 때 만이 아닌 것 같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돈을 벌 목적으로 음란물에 대해 브랜드화 하려고 했다’고 증언했고,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는 성인 성착취물과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여성의 몸을 관통한 폭력은 남자들의 집단 재미가 되었고, 이를 이용해 고수익의 ‘브랜드’로 만들어 돈 번 사람들은 넘치도록 많다. 룸이나 집결지에서 술을 팔면서 쇼를 해야 했던 여성들은 쇼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술 취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접대를 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테이블에 올라가 자극적이고 피학적인 쇼를 하며 테이블 시간을 유지해나가면서 온갖 성추행과 성폭력을 감내해야한다. 폭력이 웃음거리가 되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고, 공동으로 변태적인 행위를 해나가면서 남성들은 연대감을 쌓아간다. 룸, 노래방, 안마방, 카톡방, 텔레그램방… 남자들만 모일 수 있는 공간이면 어떤 방 안에서든 여성의 몸은 분할되고 찢겨지고 희화화된다. 남성에게 여성의 몸은 재미를 가장한 폭력으로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장이다. 남성이 만들어놓은 방 안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언제나 팔리는 공공재가 된다.

 

 

생존, 빈곤한 여성에게 주어진 빈약한 선택지

 

정희진의 말처럼,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에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에게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주어졌다면, 여성에게는 유일하게 돈으로 환산 가능한 몸이 자원으로 주어진다. 『페이드 포』에서 성매매 산업은 남성중심의 산업이라고 했고, 여성들이 업소에서 일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첫 번째 여성을 그 곳에 있게 만드는 상황, 즉 돈이 필요한 어떤 조건이다. 두 번째는 그냥 여자이면 된다. 그러므로 돈이 필요한 여성들의 선택지인 성매매는 젠더와 계급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여성에게 선택지로 주어진 성매매 문제는 자본주의 노동 시장 안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의 성격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해 기지촌을 관리하고 기생관광 상품을 홍보하는 등 국가는 여성의 몸을 활용하여 자본을 축적한다. 성산업으로 축적된 자본은 다양한 수요에 맞춰 이제는 필리핀, 태국, 러시아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몸을 수입해온다.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4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남성노동자에 비해서 70퍼센트도 못 받는다. 쉴 틈 없이 일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카드값을 갚고 나면 생활비는 빠듯하게 남는다.

 

일을 해도 빈곤이 지속되는 상태는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매매 여성들 역시 ‘돈은 버는데 나갈 데가 너무 많아. 집세 내고 공과금 내고 핸드폰비 내고 집에 돈 부치고, 일수 갚고 나면 쓸 돈도 빠듯해’ 라고 같은 푸념을 한다. 나의 노동으로 존엄하게 나를 지켜내고 미래를 계획하고, 노동 외 시간에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정신적 풍요를 담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살인적인 노동을 버텨내도 한 달 살이가 빠듯한 노동 시장에서 ‘여자이면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광고는 길거리 전봇대에도, 인터넷 알바사이트에도 널려있다. 여성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취약함을 간파하고, 높은 급여와 유동적인 근무시간, ‘말벗만 해주면 된다’는 노동의 용이함을 내세워 유혹한다. 고수익의 돈으로 지금의 빈곤을 벗어나거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선택은 자못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런 선택을 하도록 세팅돼있다.

 

알바로 근근이 한 달 한 달을 살아가던 그녀는, 홀로 사남매를 키우면서 식당을 전전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오빠의 게임 빚을 대신 갚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생활비를 아껴도 빚은 제 때 갚을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독촉 전화가 쉴 새 없이 왔다. 종일 울려대는 독촉 전화를 보면서 심장이 쪼여왔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우연히 고소득이라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앞 뒤 따져볼 틈이 없었고, 면접을 보는 그 야릇한 장소에서도 그 말을 성매매와 연결시킬 정신이 없었다. 오직 지금의 빈곤, 독촉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스물한 살이었던 그녀는 성매매를 시작했다. 여성학자 김주희는 「여성의 경제적 어려움과 ‘쉬운 돈’: 빈곤 산업으로서의 성산업에 대한 시론적 연구」에서, ‘성산업은 여성들이 현재 경험하는 빈곤 문제에 대해 미래 소득에 신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빈곤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성매매는 전문 기술과 자격증, 학력을 요하지 않고, 변형 가능한 몸만 가지고 있다면 단기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고, 당장 필요한 돈을 몸을 담보로한 신용으로 빌려준다.

 

 

산업 안에서 성매매 여성의 빈곤은 왜 지속되는가

 

성매매를 선택하기 전 여성들은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지속적인 빈곤한 상황들을 마주해 왔다. ‘돈이 필요해서’ 들어온 성산업은 여성들에게 돈을 쥘 수 있도록 허락했을까. 성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빈곤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산업에 있으면서 여성들은 한결같이 ‘한 때 돈 많이 벌었어. 그 돈만 모았어도 이 건물도 샀겠다’ 한다. 업주들은 한 달에 억을 벌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가게를 늘려서 큰 손이 되는데 ‘고수익’인 이 직종에서 실제 돈을 벌어서 나갔다는 여성들은 많지 않다. 성산업 안에서 돈이 돌아가는 구조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 병원에 가면 몇 천 원이면 맞을 주사는 업소 여성들의 몸을 관리하는 주사 이모가 놓으면 십만 원이 되고, 미용실이나 옷가게의 비용도 시세보다 더블, 배달해서 오는 커피도 시세보다 비싸다. 여성들에게 부과된 지각비, 결근비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선불금의 이자는 늘 적정 이자율보다 높다.

 

20-40년 동안 성매매를 했던/하고 있는 노년 여성들을 보면서 더욱, 왜 이 빈곤은 반복되고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청량리 성매매집결지가 폐쇄되면서 60-70대가 된 여성들은 자신을 건사해 줄 관계 자원도 없고, 하루를 편하게 쉴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지역을 이동하여 다시 성매매를 해야 했다. 나이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청소가 대부분인데, 그 노동은 몸의 정상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장시간을 버텨줘야 하기에 성매매로 상한 몸은 접근이 어렵다. 일당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녀들의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들의 경제력에 기댄 사람들은 많았다. 그녀들은 경제력이 없던 남편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고 갚아나가거나, 동생들의 학비를 다 대주고 이제는 조카의 학비까지 책임져야 하거나, 부모님의 부양이나 병원 수발을 도맡아 하거나, 자녀들을 도움 없이 홀로 키워내는 등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였다. 그녀의 경제력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자립을 해나갔다.

 

이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여성들의 자부심은 ‘그래도 내가 내 역할을 다 했다’는 것이다.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 여성의 희생은 당연시되고, 그 희생은 여성에게 구성원으로 책임과 소명을 다했다는 위안만을 남겼다. 여성이 벌어들인 돈에 붙어서 업주, 조직폭력배, 마담, 브로커, 일수업자, 가족, 주변 상권 등이 이득을 취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고수익을 낼 수 있던 여성의 몸은 더 이상 쓸모없어졌고, 자본주의 노동 시장 안에서 노동력을 상실한 몸이 되어버렸다.

 

 

나가며

 

영화 <69세>에서 29세 남자 조무사가 69세 효정을 성폭행하기 전, ‘그 나이처럼 안 보인다, 뒷모습은 20대 같다’는 말을 했다. 도대체 ‘20대 같은’ 몸이란 무엇일까. 20대로 보이는 몸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승인된 몸이다. 그 승인된 몸은 언제든 침범 가능한 장이기도 하다. 잘 가꿔진 여성의 몸은 칭찬은 되어도 몸의 통제권이 여성에게 주어지지는 않기에 그 자원은 늘 위태롭다. 성산업 안에서 여성의 몸의 가치는 남성이 원하는 외모와 서비스에 따라서 위계화 되어있다. 집결지부터 고급 룸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수많은 업소들의 가격은 결국 여성의 몸에 매겨진 가격과 비례한다. 쪽방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60대 여성을 찾아간 20대 남자에게 여성의 몸은 그저 값싼, 상품일 뿐이다.

 

여성에게 부여된 성역할, 노동시장 안에서의 여성 위치, 여성 빈곤, 섹슈얼리티의 위계화, 재미를 가장한 폭력적인 남성문화 등 이 모든 것들이 성산업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남성의 공공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여성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21세기에…

 

 


고  진  달  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

성매매 했던/하고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젠더 폭력 사건들을 보면서, 국가의 속성 자체가 여성의 몸을 착취하면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절망적인 결론을 얻고 허탈해하다,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을 보면서 힘을 받다가....이를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질기게 살아남고 싶은 페미니스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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