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젠더·어펙트 스쿨 제1회 리뷰 공모전 당선작] 나쁘게 살지 않기 (안채은)

잘 사는 것은 어렵다. 잘사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세상을 괜찮은 방법으로 잘 살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괜찮은 방법으로 살겠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곳곳에 숨은 수많은 나쁜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고, 싫든 좋든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왕 살 것이면 괜찮은 방법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부터 단단하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정희진 선생님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준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역치가 다르다. 어떤 물질은 역치가 낮아서 적은 물리량으로도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어떤 물질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사람 역시 무언가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순조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일어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꽤 오래 후자로 살았던 것 같다.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아팠다. 자주 죽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에 특히 그게 심했다. 안쪽을 향해 가시가 잔뜩 돋은 침낭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들도 이런 내 사정을 아시고는 각별히 신경 써 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미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도 너 같은데, 우리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오래 못 살아.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난을 크게 느끼는 성격이었고, 책에 나온 것처럼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180쪽)이다. 내가 그렇게 힘들 때에 주변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를 던졌다. 나중에는 더 괜찮아질 거야. 네가 힘냈으면 좋겠어. 행복하길 바랄게. 방식은 달라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모두 감사하게 받았다. 하지만 유독 내 마음에 더 날이 서도록 만드는 발언들이 있었다. 바로 위로해 주는 척하며 자신의 불행이나 남의 불행을 더 끌어오는 말들이었다. 내 고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고민이나 아픔을 안고 산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위로받을 때조차 그 말을 듣는 것에 대해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위로해 준 것뿐인데 왜 예민하게 구냐는 등의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상대는 나에게 특별히 호의를 선사해 준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 특별한 시혜를 무시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에 대해서 계속 대결하는 소모적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대결은 소위 말해서 ‘기 빨리기’ 때문이었다.

 

작가님도 책의 181쪽에서 비슷한 생각을 쓰셨다. “어떤 고통이 더 심각한 고통인지 비교하는 ‘불행 경쟁’은 논의를 왜곡한다. 고통의 정도는 고통의 세기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의 반응 능력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굳이 남의 사정까지 품을 이유가 없고, 사람마다 반응 능력이 다른 것이기에 다른 사람의 상황을 나에게 투영하는 것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히 대화의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상황을 끌어오면 상황이 더 나쁘게 느껴진다. 그것은 듣는 사람과 언급된 사람에 대해 동시에 실례를 저지르는 짓이다. 남의 불행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사례를 통해 겨우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밖에 더 될까? 나는 절대 남을 아프게 하며 내 마음을 치유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님은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머리말에서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고 하셨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 것 같다. ‘왜 쓰는가’와 ‘왜 사는가’가 같은 표현이라고 말씀하신 작가님의 생각에 따르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모두를 구하려는 책임감에 짓눌려 살지는 않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나를 챙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예전만큼 모든 자극이 버겁게 여겨지지도 않는다. 작가님의 표현처럼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가능성을 추구하는 존재”(201쪽)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빈 부분, 가능성을 믿기도 한다.

 

하지만 꽤 무던해졌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아직 면역이 생기지 않는 자극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들을 통해 얻는 상처이다. 사랑이 나를 또 아프게 하고 울게 한다던 김범수의 노래 가사처럼,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은 항상 나에게 상처를 준다. 작가님은 책의 221쪽에서 상처를 정의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기셨다. 상처받았다, 떠난 자리가 크다는 용법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상처는 몸에 있는 어떤 곳(장소)이라고 하셨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그 흔적은 내 몸의 일부고, 그들을 잃으면 평생을 상실감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도 하셨다.

 

내가 접하는 대상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부재할 때 주는 것과 존재하는 동안 주는 것이다. 부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가 잦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그렇다. 나는 최근에서야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늘 있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단지 그 과정이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당신과 나를 비슷하다고 여기셨다. 성격이 거의 똑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자연스레 할아버지를 많이 소중한 존재로, 나의 일부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내 몸의 일부가 되었던 대상이 나에게서 사라지면 환상 같은 아픔을 느낀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 것이었던 존재가 사라지면 아주 속상하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은 아닌데, 유독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진다. 내 손을 떠난 물건이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럴 때는 엄연히 사라진 부분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대상으로 채울 수 있다. 시간은 좀 걸려도 어느 정도의 회복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상이 나에게 존재하는 동안 주는 상처는 회복하기가 어렵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상처는 바로 이런 종류의 상처다. 사람들은 내 근처에 있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비수를 꽂고,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총구를 겨눈다.

 

나도 사람이기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처가 오가게 되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다 알고서도 그런 방식들에 매번 넘어간다. 무슨 상황에 마음이 다칠지 알고서도 계속 사랑하는 대상들에게 나의 장소를 내어 준다. 어디에 덫이 있을지 다 알면서도 걸려든다. 이는 나에게 사랑(성애적인 무언가가 아닌)이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내 근처를 허락하지도 않은 대상들에게 장소를 침범당해 상처받기도 한다. 내 장소를 침범한 자들의 무례함은 무기처럼 나를 훼손한다.

 

작가님이 <길, 저쪽>을 읽고 쓰신 글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사람과 그들의 시대. 치욕과 원한의 못이지만 그것은 권력의 부스러기일 뿐이다.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이기는 ‘못’은 없다. 범람하는 눈물의 강에서도 사랑은 한결같지만, 못은 산화하기 마련인 까닭이다.”(169쪽) 내 장소를 멋대로 침범한 것으로 모자라 못을 박기까지 해 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나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박은 못은 절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을 믿으며, 사랑 하나만을 가지고서 어디 설치되어 있는지 다 보이는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나에게 유독 사랑하는 대상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결코 내 사랑의 기준이 낮은 게 아닌데도 그렇다. 다양하고 많은 존재를 사랑한다. 이런 이유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여 나만의 언어를 가질 것이다. 책에서 나왔듯, 사회적 약자로 상정되는 나의 공부는 아주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안  채  은

젠더·어펙트 스쿨 제1회 리뷰 공모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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