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블랙홀’ 안에서 자발적인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당신들에게 - 신박진영,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봄알람, 2020. (임은비)

 

“너 얼마나 많은 여자가 성매매하다 죽는지 아니? 뉴스에도 안 나와. 너무 많아서.”

- 드라마 <비밀의 숲> 중에서

 

 

  그렇다. 정말 많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성매매를 하다가 여성들은 다치고 죽는다. 성 구매자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삶을 만든 구조나 사회가 아닌 여성들을 탓하며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성매매로 정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상에는 성매매가 만연해있다. 여성에게 “싸 보인다.”, “비싸게 구네.”, “흥 좀 돋워봐.”, “튕기는 거야?” 등 물건의 값을 매기거나 기생의 역할을 강요하는 발화들도 일상적 의미의 성매매다. 성매매 업소에 등록된 번호만 1800만 개이고, 전염병이 창궐한 이 국가에서 최근 3개월간 룸 형태의 성매매 업소에 6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무수한 피해자를 낳은 n번방 사건이 불거진 지 7개월이 지났다. 한국 남성의 절반이 성매매에 가담하고, 이 나라에는 고등학교나 커피숍보다 성매매 업소가 더 많다. 이와 같은 것들은 성매매를 용인하는 사회에서 생성된 것이며,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에는 셀 수 없는 n번째 방이 여전히 존재하고 만들어진다. 그 방에는 ‘주인님’이 되고 싶어 하는 ‘섹스에서 소외된 시장의 노예’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의 주인인가.

 

  실제로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들은 ‘채무 노예’가 되고, 성매매 여성이 감당해야 할 것은 채무 그 이상으로 무수히 많다. 성 구매자의 전염병·성병 유무, 성매매를 시작할 때 드는 다양한 비용, 임신과 낙태에 대한 염려, 성관계 시 구매자의 다양한 신체 특성과 체취, 구매자의 가학적 취향, ‘인간적’ 교류를 원하는 성 구매자들에 대한 감정 노동, 질염 등의 생식기 질환, 사회적 낙인, 물리적 폭력 등 간략히 말하자면 이 정도다. ‘한국의 성매매는 집단 문화’이기 때문에 성 구매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본능이 성 구매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 성 구매를 만드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관광과 접대 상품으로 관리해온 성매매의 역사가 남성들의 성 구매를 일상적 사건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매매는 사회의 부패된 문제이며, 이 구조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는 성매매를 통한 지배에 지극히 길들여져 있다. 불법적 이권을 챙겨온 거대한 알선 조직과 연결된 채 삶을 유지하는 이들이 잔뜩 버티고 있는 까닭이다. 성매매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은 자들이 군림하는 사회는 인간의 몸을 착취해 돈을 버는 일에 모두를 공모자로 만든다. 반복하지만, 한국은 이 좁은 땅덩이로 전 세계 6위의 성매매 국가다. 성매매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 (신박진영,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봄알람, 2020, 217쪽)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은 한국 성매매의 역사 – 특히 성매매가 어떻게 한국에 유입되어 발전되어왔고 성매매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음지에서는 지금도 사고팔 수 없는 것을 거래하고 있다는 것 -, 성매매 합법화를 찬성하거나 성매매를 성매매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논리에 대처하는 방법, 실제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20년간 성매매 여성을 지원해온 저자의 경험, 여러 국가들이 성매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 등을 드러내 보인다. 이 가운데 우리가 따라야 할 선례로서 스웨덴의 노르딕 모델을 꼽아 보이고,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일들의 당사자이다.”

-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북 토크 라이브 중에서

 

 

  9월 23일 오후 9시에 진행된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북 토크 라이브에서 작가 신박진영은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이 책은 ‘당사자-되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모두 어떤 일들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사자라고 느껴지지 않는 다수자에 속해있더라도 소수자가 되어보기를 제안한다. 또한, 성매매 경험 당사자 조직인 <뭉치>에 대해 소개하며, 모두가 경험 당사자가, 활동가가 ‘되기’를 제안한다. 성매매 여성에게 낙인을 찍고 남성의 입장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이 사회에서 당사자에게도 다른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주창한다. 성매매가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성매매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며, 앞으로 이에 대해 모두가 당사자로서 ‘응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응답할 수 있는 능력(Response-ability)’, 그것이 곧 책임감이다.

 

 


임 은 비

 

젠더·어펙트연구소 청년인턴. 이미 했던 경험에 대한 언어를 찾고 스스로를 너무 많이 탓하지 않기 위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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