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영화 <라스트 씬(Last Scene)>(2019) 리뷰 (강희정)

2018년 1월 31일을 끝으로 부산예술영화 전용관 ‘국도예술관’이 잠정휴관에 들어갔다. 2008년 남포동에서 이미 한차례 폐관될 뻔한 위기를 겪고, 남구 대연동으로 이전한 뒤 10년 만의 일이었다.

 

 

  국도예술관은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1969년 ‘국도 극장(現 CGV 남포)’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여,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상지로서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남포동 극장가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대형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오는 동안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향토 영화관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국도 극장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국도 극장은 상업영화에 맞서 독립예술영화의 자리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2005년 ‘부산 국도예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 온라인 카페 ‘국도예술관(http://cafe.naver.com/gukdo.cafe)’을 설립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06년 4월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국도예술관은 2008년 남구 대연동으로 이전한 뒤에도 무려 12년 동안 부산의 향토 영화관이자 대표적인 예술영화 전용관의 역할을 해왔다.

 

  박배일 감독이 <라스트 씬>(2019)은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부산 영화의 역사적·문화적 명맥을 이어온 국도예술관의 제목 그대로 ‘라스트 씬(마지막 장면)’을 기록하는 영화이다. 국도예술관은 부산의 영화를 논하면서 그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두터운 존재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운영난에 결국 2017년 12월 31일, 건물주로부터 “더 이상의 연장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영업 종료라는 안타까운 결정을 내리고, 마지막 상영까지 국도예술관에 허락된 시간은 단 한 달.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간 국도예술관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었던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김형운 상영 팀장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꾸려온 국도예술관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거두어 담는다.

 

  영화 <라스트 씬>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둘러싼 문제들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국도를 직접 운영하고 이용하던 지역인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산 독립예술영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공공의 기억으로서의 국도와, 실제 국도예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해온 이들의 개별적 기억을 동시에 스크린 속으로 불러 모은다. 예정된 마지막 상영을 출발점으로 하여 국도의 지난 12년간 발자취를 되짚어나가기보다, 국도라는 공간을 채웠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국도예술관’의 주관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국도예술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아 상영관을 혼자 사용하는 느낌이 좋았다.”는 말은 상영관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 이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그간 빈번하게 논의되었던 지역의 독립예술영화와 전용 상영관의 생존 문제에서 지역과 자본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아래에 누락되었던 말들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새롭다.

 

  부산의 국도예술관을 시작으로, 강릉의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 서울의 ‘서울 시네마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광주의 ‘광주극장’까지. 영화 <라스트 씬>은 전국 각지에서 운영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순차적으로 돌며 국도예술관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공간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기약할 수 없는 지역 독립영화관들의 현실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존재한다’는 말보다 ‘버틴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이들의 현실은 특정한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지역과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묻고, 사라지는 것은 비단, 영화관이라는 공간(장소)뿐만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한다.

 

 

#1. 사라지는 노동

 

  어둠이 사방에 내려앉고 먼지들이 공기 속에 부유한다. 10분여의 광고 영상이 상영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달리, 국도예술관은 “상영 시작하겠습니다. 휴대폰은 전부 꺼주십시오.” 하는 목소리가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상영관 뒤편에 조그맣게 난 틈 사이로 영사기의 불빛이 스크린을 비추면, 이제는 그리움보다 낯설다는 표현이 더 가까운 필름 릴 돌아가는 소리가 국도예술관을 가득 메운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나, 필름 영사기를 돌리는 손 외에도 국도예술관은 여전히 기계보다 사람의 손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뭔가를 하나 만들어 내면. 특히나 티켓 같은 게 뭐냐면, 핸드메이드로 다 만드는 거고. 어쨌든 뭐 인쇄가 돼서 한 컷 한 컷 자르게 되다 보면 하나하나 다 손때가 묻어나게 되고 사람 손을 타게 되는 거라서. 그런 게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걸 쉽게 못 버리는 거. 그리고 벽면에 붙이는 순간, 그 순간 그게 그 자리에 걔 자리인 거 같은 느낌. 그래서 한번 붙이면 사실 그 자리 잘 못 떼는 것도 있고.
 
- <라스트 씬> 중에서

 

  영화가 가장 핵심적으로 조명하는 인물인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처음 도입될 당시 반발이 심하긴 했으나 어느새 무인 티켓 발권기가 일상화되었고, 그렇지 않은 소규모 상영관이라 할지라도 예매사의 규격화된 티켓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도예술관의 티켓은 휴관 직전까지도 정진아 프로그래머에 의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밖에도 관객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누어주는 ‘국도예술관’ 로고가 새겨진 배지 역시 국도예술관의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김형운 상영 팀장의 손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처럼 국도예술관의 모든 것은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김형운 상영팀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손’의 노동 형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손이 많이 간다’ 라거나 ‘손때가 타는’것들이 어딘가 번거롭고 수고로우며 구시대적이라는 우리들의 인식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국도에서 ‘손때’는 단순히 ‘아날로그’나 ‘레트로(복고)’라는 말들로 치환되지 않는다.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음에도 굳이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거치는 형태의 운영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차라리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에도 이를 마다하지 않는 ‘돌봄’과 ‘보살핌’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손때가 묻은 티켓은 “쉽게 못 버리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벽면에 붙이는 순간 벽은 티켓이 점거하는 하나의 자리이자 공간으로 전환된다. 어쩌면 국도예술관의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운 티켓은, 정진아 프로그래머에게는 마치 나와 이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든든한 동료이며 친구, 그리고 가족으로 티켓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국도예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꾸는 꿈은, “영사사고가 나는 꿈”이라고 말했다. 특히 필름 상영일 경우, 필름의 특성상 한 컷 한 컷을 모두 이어 붙이고, 이어 붙인 부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은 물론이고 이곳, 국도에서 일을 하는 10년 동안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겠더랬다. 필름이 필요 없는 DCP(Digital Cinema Package)[각주:1]가 보편화 된 현재 필름 영사기와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과거의 향수나 추억으로 치부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이를 단순히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시절의 유물로 이미 그 생명의 기한이 끝나버린 것으로 확정 지어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국도는, 과거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지금은 사라진 노동의 세계가 보존되어 있는 세계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주히 움직이는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손은 귀찮고, 고생스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는 오로지 국도와 국도를 방문하는 관객을 향한 애틋하고 다정한 마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 사라지는 관객

 

  지역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대기업 자본이 영화 산업을 장악해 상업성과 수익성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현실적인 문제들 역시 가장 주된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라스트 씬>에서는 그보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경영악화를 초래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수동적인 관객의 태도를 지적하는 듯하다.

 

이렇게 수동적인 관객들이 오늘의 이 사태를 불러온 게 아닌가. 여러분들, 여기 앉아계신 공간, 이 공간이 내일부터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 <라스트 씬> 중에서

 

  강릉의 독립예술극장 ‘신영’이 2016년 휴관하기 전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방문한 관객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 달라 호소하면서도 정작 독립예술전용관에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 관객들에게 야속한 감정을 내비치는 것은 비단 신영 극장만이 아니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 역시도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드는 관객 수를 실감한다며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상영이 있던 날,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관객들 앞에 서서 “사실 최근에는 제가 관객을 많이 미워했었거든요.”라고 어렵사리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고, 여전히 많이 듣고 있는 말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꼭 남아주세요, 꼭 지켜주세요, 영원히 있어주세요이런 말들을 정말 많이 해요. 고정 멘트처럼 항상 듣는 말이고, 그런 말들을 하시는데, 왜 그런 분들이 진짜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찾아주지 않는지.

- <라스트 씬> 중에서

 

  사실 그동안 독립예술영화계가 겪는 어려움과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논점은, 주로 영화 산업 시장을 장악하는 자본이라는 거대하고 의심의 여지 없는 ‘적’에 대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상업영화-독립영화, 멀티플렉스-독립예술영화전용관,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재현되고, 관객(소비자)은 언제나 문제의 중심에서는 멀리 떨어져 소극적인 위치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라스트 씬>은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규격화하여 통제해버리는 자본 시스템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함께 동조하면서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소극적이고 이중적인 관객의 태도를 보다 집중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실제로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손수 만든 국도예술관의 티켓에는 ‘국도의 힘은 관객’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는 국도예술관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상영이 있는 날까지 손수 티켓을 만들고, 영사기를 돌리며, 극장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심지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티켓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공간을 정리했던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김형운 상영 팀장 역시 처음에는 국도예술관이 남포동에 있을 당시 관객으로 시작을 했노라고 회고했다. 우리들이 왜 버티는 존재여야 하냐며, 그냥 존재할 순 없는 거냐는 한탄을 내뱉는 이들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산업을 장악하는 자본으로부터 소수의 독립예술영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우선해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의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라스트 씬> 속에는 평소 한두 자리 외에는 관객 없이 쓸쓸하게 비어 있는 상영관의 모습과, 마지막 상영을 앞두고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상반된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이 대조되는 이미지가 영화를 통해 감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사라져 버린 관객과 텅 비어버린 상영관 앞에서, 관객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순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제껏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은 이미 버틸 대로 버텼고, 지칠 만큼 지쳤다. 영화를 진정 사랑하고, 그들을 지키고 싶다면 이제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바라기보다 관객인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할 때이지 않을까.

 

 

#3. 사라지는 장소(기억)

 

  필요에 의해, 수요에 의해 생존이 결정되는 시대에 ‘장소(들)’ 역시 숱하게 사라지거나 다시 세워지는 운명을 반복해야 했고, ‘국도예술관’ 또한 수많은 장소들 중 하나였다. <라스트 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관객이 없어서, 수익이 나지 않아서 폐관의 절차를 밟거나 휴관을 해야만 했던 많은 극장들이 있었다. 실제로 2019년 2월 17일 강원도 춘천 소재의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역시 폐관 소식을 알렸다. (일시정지시네마의 마지막 상영작은 바로 박배일 감독의 <라스트 씬>이었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관객 수가 감소하는 것은 “늘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는 것이) 놀랍다기보다는 허무하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을 할 정도로 독립예술영화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최근에야 코로나 19로 인해 OTT 서비스가 확대되고 그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대폭 증가하며, 멀티플렉스 상영관까지도 관객과 매출이 급감하는 사태를 체감하고 있다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경영난을 겪어 왔을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감각하는 코로나 19 이후의 변화와는 결이 다를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세에 접어들게 되면, 관객들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복귀하게 되리라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지만, 그들이 소규모 상영관을 다시 찾을 지는 미지수다.

 

  누군가는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이 꼭 특정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 감상 방식의 변화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편의성이나 효율성이라는 측면을 떠나,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영화관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감지하고, 감응할 수 있는 분위기나 그 공간과 관련된 개개인만의 기억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계속 80년 동안 사람들이 숨을 불어 넣어 준 기운과 이 스크린에 상영됐던 수천 편의 영화들, (…) 지금도 영화가 끝난 시간이지만은, 다 끝나고 불이 꺼지면은 극장 안에 뭔가 어떤 기운들이 계속 돌아다니는 그런 느낌들이 간혹 느껴질 때가 굉장히 있어요.

- <라스트 씬> 중에서

 

  1935년 11월에 개관한 현존 유일의 단관 극장[각주:2]인 광주의 ‘광주극장’ 개관 기간이 오래된 만큼 영화관 곳곳에 지역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역인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시대적으로 일제 식민지하에 개관했던 극장이지만, 조선인의 자본으로 조선 사람이 직접 운영했던 최초의 극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각주:3]가 남다를 뿐만 아니라, 광주 시민들에게 광주극장은 영화관 이상으로 이미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80년 전에도 여기서 영화를 보러 오셨던 분들이 2018년에도 계속 이 자리에서 마치 약속을 안 해도 항상 이 자리에 와 있고, 항상 이 자리 극장이 건재하고 있으니까.

- <라스트 씬> 중에서

 

  광주극장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장소가 다양한 사회적 구조나 문화적 맥락과 동떨어져 결코 독립적인 ‘공간’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간은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시간들이 누적됨에 따라 ‘장소’라는 주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승격된다.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대의 변화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온라인이라는 매체를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시·공간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역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오랜 세월 한 지역에서 머물며 지역인들과의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던 장소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자본주의 구조나 기술의 발전이라는 맥락에 포섭되지 않는 지점에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함께 그동안 국도예술관을 운영하거나 보살펴왔던 이들에게 ‘국도예술관’이 어떤 곳이었고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그에 대답하는 인터뷰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국도는,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문화유산’ 같은 획일화된 이미지는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 의지할 수 있었다거나,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볼 수 있었다거나, ‘마음의 집’ 같은 곳이었다고 저마다 방식으로 ‘나의 국도’를 회상한다. 그리고 이 기억들은 다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국도예술관’의 커다란 그림 중 한 조각이 되기도 한다.

 

  즉 국도예술관의 잠정 휴관은, 어떤 물리적인 공간의 생명력이 다했음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닌, 부산이라는 지역과 그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던) 사람들의 ‘기억’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이 없어서,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어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이처럼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기억과 더 나아가 그 지역만의 고유한 장소성의 상실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국도예술관’과 그와 비슷한 처지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이 줄줄이 폐관하는 절차를 밟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4. 모든 새로움의 시작은 다른 것의 끝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은 1995년 서울 대학로에서 개관한 ‘동숭시네마텍’이다. 이후 2003년부터 시행된 영진위 주도의 ‘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화 산업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자리매김한 뒤로는 지역 주민의 문화생활 증진과 인프라를 구축하여 지역 간 영상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작은 영화관 사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각주:4] 이처럼 지역의 소규모 극장(상영관)은 멀티플렉스 사업 구조 아래 소외되기 쉬운 다양성 영화를 보호하는 것 외에도 지역인들의 문화접근성을 향상해 문화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왔다. 더욱이 장소는 세월이 누적됨에 따라 장소만의 고유한 장소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지역의 문화적 자원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이다.

 

  영화 <라스트 씬>은 부산의 국도예술관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의 소규모 지역 극장(상영관)들을 순회하며, 지역의 어떤 장소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 지역과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유한다. 사실 지역의 고유한 장소가 사라지는 것은 오늘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나 소규모 극장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가 산업 전반을 장악하면서 장소의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우선시 되며,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진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지역의 장소성과 장소성을 구축하는 데에 핵심이 되는 지역인들의 기억조차도 상실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효율성이나 편의성의 측면을 떠나, 이러한 현상은 ‘차이’를 무화시킨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적이며 폭력적이다. 결국 국도예술관을 지키는 일은, 영화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도예술관의 잠정 휴관을 막을 수는 없었고, 아마 국도예술관과 유사한 사례들은 앞으로도 빈번하게 반복될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라스트 씬>은 국도예술관을 사랑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국도의 모든 순간을 공유함으로써 ‘앞으로’를 기약하고자 한다.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상영일에 영화관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나눠줄 기념 버튼을 하나하나 제작하며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버튼을 만드는 가장 큰 의미는, 달고 다니면서 잊지 말라는 거지. 다시 영화관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도는 계속 건재하는 거니까. 하나의 소속감? 극장이라는 공간의 소속감이 없어지니까. 버튼 하나 달고 있으면 뭔가 연대하고 소속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기대.

- <라스트 씬>
중에서

 

  비록 그가 애써 지켜내고자 했던 장소는 사라졌지만, 그는 반드시 물리적 공간만이 우리를 실질적으로 이어주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저마다의 자리에 사라진 존재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영화 <라스트 씬>에서는 국도예술관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소규모 상영관의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이를 둘러싼 복합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지역의 상영관이 지역과 지역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고 이를 보는 관객들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다.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상이하게 남아 있는 국도예술관의 이미지는,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마냥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다. 그곳에는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는 숭고한 보살핌과 소수이긴 해도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영화관에 활기를 불어넣는 관객, 그리고 개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마음의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2000년대 말, 자본이 한국의 영화 산업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독립영화(예술영화)의 위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코로나 19 이후 한국의 영화 산업 전반이 유례없는 불황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인기를 끌며 영화 소비 시장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차에, 전염력 높은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다중이용시설 사용에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게 되면서 그 속도가 더욱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라스트 씬>은 영화(예술)를 대하는 관객의 역할, 물리적 공간의 실질적 의미가 사라지는 지금 장소가 지니는 가치, 그리고 기술이나 자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들과 관련해 사유해 볼 수 있는 텍스트다. 그런 점에서 <라스트 씬>은 단순히 사라진 국도와, 사라져 가는 것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애도하기만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으나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을 현재의 시제로 들여와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이며, 사라진 이후의 앞으로를 기록하는 첫 문장인 것이다.

 

  사실상 영화 <라스트 씬>의 시작은, 국도예술관이 대연동에서의 마지막을 선고받기보다 훨씬 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배일 감독은, 2008년 4월 27일 대연동으로 이전하기 전 남포동에서 마지막으로 <미스 언더스탠드>(2008)이 상영될 당시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국도예술관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이를 관객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를 영상으로 남겨 인터넷 카페에 ‘라스트 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고, 그 제목에서 영화의 제목을 따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든 새로움의 시작은 다른 것의 끝에서 생기죠’라는 가수 이승환의 노래 가사를 인용해 비록 국도는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다는 그의 마음의 유효했던지 국도예술관이 잠정 휴관한 이후 2018년 6월 부산독립예술영화관 설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듬해 2019년에는 ‘씨네포크’라는 이름의 영화문화공동체가 출범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 국도는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어쩌면 국도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끝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국도예술관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삶이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나의 국도’들은 <라스트 씬>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의 국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국도’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영화 포스터 속 문구처럼 국도예술관의 “엔딩 크레딧은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우리의 국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 희 정

 

젠더·어펙트연구소 청년인턴. 대단한 건 없지만,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때 마음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1. 극장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시네마용 영상, 음향, 데이터 정보들을 저장하거나 전송하는 데 사용되는 디지털 파일 형식(규격) [본문으로]
  2. 극장 내에 스크린을 단 한 개만 갖춘 극장 [본문으로]
  3. 영화 <라스트 씬> 중에서 발췌 [본문으로]
  4. 정지은·정인선, 「지역 문화공간으로서 작은 영화관의 현황 및 발전 방향에 관한 연구 : 영국 농촌영화관 지원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상품학연구』 366, 한국상품학회, 2018. 12, 12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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