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臨界)와 음계(音階) “우리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유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소설가가 가장 좋아한다던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의 이 문장은,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미치기 직전마다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이 문장을 떠올렸고, 이제는 이 문장이 떠오릅니다. 유머 비슷한 것을 주워 삼키거나 내뱉을 때, 내가 지금 미치기 직전인가를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볼라뇨의 문장으로 인해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되었고, 이제는 볼라뇨의 문장과 함께 떠오르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도’를 지나쳐 ‘미’치기 직전, 나(너)는 ‘레’”라는 너스레입니다. 여기에서 계이름 ‘레’는 ‘도’에서 ‘미’를 향하는 정동적 전이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호로서 도입되어 있고, 이 상태는 ..
절실함 . 우선 이 책의 제목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오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강하고 튀는 이미지는 기본. 낚시성 제목 아니냐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지난 15년간 한 출판사하고만 작업해왔다. 편집자 선생님이 엄격하셔서, 제목을 정하는데 대단히 신중하시다. 나로서는 책 출간 자체에 대한 자책감이 있는데다(“종이 낭비,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책이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허위의식이 있어서, 노골적인 제목은 민망하다. 대부분 내 책의 제목은 내가 쓴 문장에서 그대로 가져온다. 책 내용 중에서 고른다. 이 제목은 앞뒤 문장을 빼고 제목 부분만 가져와서 그렇지, 뜻은 글자 그대로이다. 나는 정말, 단지, 오로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
잘 사는 것은 어렵다. 잘사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세상을 괜찮은 방법으로 잘 살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괜찮은 방법으로 살겠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곳곳에 숨은 수많은 나쁜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고, 싫든 좋든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왕 살 것이면 괜찮은 방법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부터 단단하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정희진 선생님의 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준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역치가 다르다...
좋은 글과 좋은 사람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쓴 글’과 ‘글쓴이의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배우들이 종종 하는 언급,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역시, 비슷한 논쟁거리다. 김혜수 배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적절한 ‘답’이 아닌가 싶다. “배우(俳優)라는 단어를 보세요. ‘배’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잖아요.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어야 하는 존재가 배우에요. 그래서 배우가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 내가 이해한 그녀의 말의 의미는 ‘한 인간의 본질이란 없고, 배우는 여러 사람으로 변신해야 한다’이다. 글쓴이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배우가 했던 이전에 역할과 다음 작품의 ..
누구보다도 ‘나’를 알고 싶은 사람으로서 허겁지겁 책을 폈다. 64권의 책과 그 저자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읽었다’도 아니고 ‘썼다’도 아니다. ‘쓴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사람은 죽는다’처럼 늘, 언제나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계속 써야 하나요. 알게 되나요. 언젠가는…? 저자의 탐색과 시도가 나에게도 여러 방향을 보여 준다. 책은 사람마다, 같은 사람도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읽기는 능동적인 쌍방 활동이다. 읽으면서 저마다 다르게 쓰는 것이다. 때로 힘들고 답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알고 싶은가? 사실 얼마 되지 않는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는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알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정신 차리지 않으면 더 ..
죽음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최초의 사망자는 청도의 정신병원 대남병원에서 나왔다. 신천지 감염이 본격화되면서 코로나 19가 한국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 직후 대남병원의 환자들이 연이어 돌아가셔서 총 일곱분이 사망했다. 2월 19일 첫 사망자가 나왔으며, 대남병원과 전국 코로나 19 첫 번째 사망자는 사망시 몸무게가 45kg이었고, 사후검사로 확진이 되었다. 청도의 대남병원은 보건소와 한 건물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환자들이 이렇게 늘어가는 동안, 사망자가 나올 때까지 제대로 된 검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남병원 환자는 104명이 확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대남병원 수용인원의 전원에 가깝다. 인도주의의사협의회의 우석균 의사는 대남병원이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기관에..
#프롤로그 : 풍경1 - 코로나19 아침 8시. 은행 앞. ‘음소거’된 동영상처럼 적막한 풍경.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KF94-‘하얀’ 마스크에 지워진 얼굴들 위로 ‘검은’ 눈동자들만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절박한 듯하지만 공허하고, 불안한 듯하면서도 담담한 서른 개의 눈빛. 순간, 재난 영화에서 본 디스토피아처럼 기괴하다. 누군가 침묵을 깨고 뛰어 들어오며 소리 내어 질문한다. ‘여기서...’ 순간, 그의 일상적인 ‘발성’ 행위는 ‘상황 파악’ 못하는 ‘몰상식’이 되어 다양한 몸짓으로 비난의 피드백을 받는다. 대면과 소통에 대한 상식이 달라졌다. 이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롭게 부상하는 상식)’로 고착될까? 아침 9시. 은행 문이 열리자, 말 없는 몸짓들이 다급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들..
코로나 19는 내게… 대한민국은 5월 6일부터 생활 속 방역으로 살짝 고삐를 늦추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밖 출입이 자제된 어린이의 소원은 씽씽이를 맘껏 타보는 것이 되었다. 이제 그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코로나19는 다시 일상의 긴장을 놓지 말기를 경고한다. 작품의 내용보다 안전을 앞세우며 공연을 기획하는 내게도 속상한 소식이다. 잠시 지난 2월 18일로 플레이백 해본다. 2월 18일 재택 1일차. 나의 일터인 극단은 일찍 재택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일상은 ‘우선 멈춤’이었다. 정지된 일상 속 불안과 위기가 예고되었지만 함께 견디는 것 말고는 없었다. 모두들 집에서 머물 요량으로 사재기를 했다. 그 며칠..
김대성 : 공통 질문에 보면 온라인 강의, 변화된 강의 환경에 의해 느끼는 어떤 불만이나 불안이 있겠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수업을 함께 하고 있다”는 감각은 없을까, 혹시 그런 게 느껴졌다면 무엇이 있을까를 불만과 불안이라는 감정 속에서 같이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다는 질문이 하나 있었고, 다섯 번째 질문은 범위가 커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별도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은데, 강의라는 공통장에서 각자의 몸들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 이 몸들이라는 것이 상징적이고, 비유적이고, 직관적으로 안 와 닿을 수도 있는데, 이게 결국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일 테고, 아주 직접적으로 말해본다면 강의하는 사람의 몸 상태, 듣는 사람의 몸 상태를 말합..
김대성 : 대학 강의실이 천차만별인 것 같고, 제가 놓여있는 환경과 다른 이상적인 강의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가르치는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가치도 있는 강의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그런 강의실이 실재하는 지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기준점이나 공통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픈 카카오톡 방’의 핵심이 오픈이 아니고, 익명 그러니까 비실명인 거잖아요? 그리고 ‘에브리타임’이라는 사이트도 엄청 게시물이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유 게시판에 있는 사소한 질문들이나 외로움 속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체..
웹진 기획 좌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대학 강의의 현단계와 딜레마” 일시 : 2020년 5월 14일 늦은 5시 장소 :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참석 : 박지원(진주교육대학 강사), 이형진(동아대학교 강사), 권두현(동국대학교 강사), 김대성(한국해양대학교 강사), 신민희(경성대학교 강사), 박준훈(동아대학교 석사과정), 박지원(동아대학교 학부생), 김연우(동아대학교 학부생)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개강이 늦춰졌고 비대면/온라인 강좌로 전환되어 9주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모두가 이렇다 할 준비나 충분한 예행연습 없이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을 줄로 압니다.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평등한 방식으로 가시화되었던 것처럼 ‘비대면 온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