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시 來人comer, people이 people 하다 TV 프로그램 에서 ‘코쿤이 코쿤했다’는 한 고등학생의 감탄사가 유행이 되어 떠돌았다. 래퍼 코드쿤스트의 비트에 대한 리스펙이자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능력을 찬양하는 표현이었다. 이를 빌려 써본다. people이 people 한다. 연구모임 의 잠정적인 해체를 기억한다. 공동체가 해체된 경험, 조직의 구성원이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겪고 사라진 일, 누구의 잘못도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반복되는 공동체의 우울을 기억한다. 동시에 젠더·어펙트연구소로의 접속! 소진해버렸다 생각했는데 체급을 올려(?) 다시 만났을 때의 경의(驚疑)를 기억한다. 모든 뒤바뀜 속에서 여전히 지독하게 ‘함께’인 권명아 선생님을 비롯..
전임연구원인 이지행 선생님이 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K팝 칼럼을 소개합니다. 팬 행동주의(fan activism)의 현장을 살피며 “쓸데없는 짓”으로 폄훼되곤 하는 이들의 실천에서 새로운 정동 경제의 양상과 대항담론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글입니다. 올해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네 번째 강좌였던 과도 이어지는 논의이니 웹진에 발표된 리뷰글(움직이고 접속하고 주장하며 변하는, ‘팬덤’이라는 몸들)과 함께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02009552504597 BTS 알리려 가사 번역하면 쓸데없는 짓? '그들'은 모른다 가수 이승윤의 팬들이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 (감독 권하정, 김아현)가 지난 9월 개봉해 현재까지 ..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던 길고양이 혐오 담론과 문화는 최근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인 형태로 퍼져 새로운 인터넷 놀이 문화의 하나가 되었고, 혐오는 어느새 인터넷상의 지배적 정동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물 혐오가 특정 집단에 국한된 문제적 정동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작동시키는 폭력적 문화로서 다수에게 확산되는 정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면에 존재하는 혐오 정동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러한 동물 학대는 고양이 뿐 아니라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에 대한 혐오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고양이와 캣맘에게 물리적 정신적 위해를 가하면서 캣맘을 향한 성적 조롱과 폭언, 폭행 등의 성차별적 행위로 혐오적 정동을 확산시켜 나갑니다. 강연자인..
젠더・어펙트 연구소에서 펴낸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를 다룬 언론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기사는 1부 서사의 역사와 아상블라주 : 마주침의 어펙트에 수록된 권명아 선생님의 논문 「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를 매개로 삼아 글로벌 자본과 OTT 환경에서의 득세하는 장르의 생산과 수용이 의미하는 바를 짚고 있습니다. 의 흥행에서 읽어야 하는 것이 K-컬쳐의 영향력만이 아니라 주류 장르가 교체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페미니즘에서 반페미니즘으로 기울어지는 초국가적 백래시”의 일환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논문의 주요 골자를 따라갑니다. 을 성차별적 텍스트로 분석하고 한국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메타포로 해석할 때 주류 장르로 급부상한 '도메스틱 누아르'가 K-컬쳐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
현대 사회에서 여러 매체를 통한 흥미롭고 또 자극적인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가운데, 나는 얼마나 진실과 오정보를 구별하고, 또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분별하고 있을까? 오정보 문제는 인류 역사상 꾸준히 있어왔던 문제이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여러 사회관계망이 출현하면서 오정보에 의한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만 있다. 정보의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래거시 미디어 대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같은 SNS 등이 정보 습득의 유용한 수단이 되었고, 때로 그 영향력은 래거시 미디어를 넘어서고 있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오정보로 인해서 분열, 갈등 전쟁 양극화 환경 문제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결과를 야기시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음을 모두가 목도하고 있다. 이진하 선생님은..
1. ‘정동’의 번역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 연구소의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2023)는 젠더 연구에 정동 이론을 접목시키려고 시도로, 서론과 13편의 연구를 묶었다. 이 글은 4부에 실린 세 편에 관한 서평이다. 2000년대 유럽 인문사회에서 기존의 비판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본격화되었는데, 정동 연구는 이러한 시도 가운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동’(affect)이라는 용어는 이항대립적인 인식론에 기반한 추상적이고 고정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결망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연구하기 위한 개념적이자 방법론적인 도구로 진화하였다. 지난 이 십년 동안 ‘정동’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학술 용어이자 연구 분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나라에서 채택 및 번역되어왔다. ..
정동 개념 정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동을 배제하고는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일상에서 ‘느껴질’ 정도의 입체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동은 이념과 정치적인 면을 건너 자기 자신도 넘어서게 한다. 이 구체적인 예시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산지니,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정동의 자장 안에서 변화하는 미디어 및 사회 현상 나아가 정동의 유동적인 특성을 살필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3부 에는 미디어에 나타난 변화된 정동 양상과 아이돌, 예능 등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대에 필요한, 시대가 요구한 몸과 시선을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
‘팬덤’은 움직인다. 주장하고 개입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미디어-네트워크를 따라 어느 곳에서라도 나타나 연결되고 접속하며 흐름을 만들어 다른 것이 되어 간다. 어떻게 나타나 무엇을 요구하고 행동할 지 예측이 어렵고 모습을 달리해 출현하는 팬덤에 대해 이지행은 (연속콜로키엄 ‘젠더스피어’ 4회)에서 “문화적 유대로 형성된 팬덤 공동체를 인터넷 담론 공중이자 정치적 시민으로 간주하고, 문화정치를 포함해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폭넓은 형태의 팬덤 실천을 ‘팬 행동주의(fan activism)’로 정의”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케이팝 팬덤이 ‘행동주의’, ‘능동적 소비자’, ‘정치적 시민’, ‘시민성을 지닌 대중’이라는 자장을 형성해나가는 양상을 살피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기에..
이화진과 소현숙은 장애를 중심으로, 김이진은 해외입양인의 표상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러한 담론들 안에서 어떤 균열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귀, 눈, 피는 모두 신체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것은 특정한 담론과 표상 안에서 신체의 전체, 혹은 한 인간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고 대표하게 된다. 이 세 편의 글이 그러한 담론과 표상의 작동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귀는 어떻게 전체이기를 멈추고 하나의 부분으로 (뜻밖에) 돌아오는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눈은 어떻게 자신의 처지를 역이용하여 저항하는가? 당사자는 자신의 피에 관한 해석을 통해 어떻게 주류적인 표상에 도전하는가? 이 글은 세 글의 문제의식을 분석하고, 논의해 볼..
“그런데, ‘정동’이 무슨 말이야?” 얼마 전 귀한 발표 자리에서 정동에 대해 짧게 언급할 자리가 있었다. 이후 화장실에 들렸을 때 청중 두 분이 손을 씻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앞의 질문을 상대방에게 던졌다. 순간 시간이 부족했음을 아쉬워했지만, 정동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어렵다. 어펙트(affect)에 대한 번역어에서부터 다양한 해석(정동, 감응 등)이 있지 않던가. 그런 와중 가장 반가웠던 한국말은 바로 ‘부대낌’이었다(권명아 2012). 이 표현만큼 어펙트라는 개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마주침’과 ‘되기’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없었다. ‘부대낌’이란 표현 속에는 인간이란 다른 존재와의 끊임없는 마주침 속에 살아가는 “연결신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동아대학..
2. 몸에도 번역이 필요하다 의 배우로 선 지 10년이 지나 그 무대를 기록된 영상으로 다시 보았을 때 재기억되고 재구성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당시에 아무리 말해도 내 안에서만 맴도는 말이란 것을 뱉고, 그럼에도 당신이 있기에 비명처럼 내지를 수 있는 말이란 것을 뱉었다. 대본에 쓰인 나의 말은 추후에 납득/변명/투쟁할 말, 나 이전에 독립된 말, 올바르게 틀려야 할 말, 당신/우리/세계의 말이었다. 무엇을 이해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투쟁하듯 대사를 뱉았을까. 극단 새벽의 연습실에서 어떤 몸을 표현하려고 밤새 연습했을까. 아기부터 노인의 몸, 몸의 시간성을 넘어 물고기의 몸을 상상하면서 내 몸에 입혔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발부터 머리까지 몸을 새로이 감각하면서 발, 다리, 엉덩이, 가슴, 머리에 따로 감..
여전히 화면보다 종이 위에 쓰인 글이 읽기 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날로그 세대다. 그런 나에게 웹소설은 너무 낯선 세계이지만, 댓글과 SNS, 커뮤니티에 남긴 짧은 글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개입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바꿔놓고 있다는 쌍방향적인 웹소설의 세계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독자들의 시시콜콜한 비평이 즉각적으로 작가에게 전해지는 세계에서 웹소설은 단지 작가의 욕망만을 담지 않는다. 독자의 취향과 욕구, 수익을 창출하려는 플랫폼의 치밀한 계산과 인기 있는 서사의 구축을 통해 자기 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작가라는 세 주체가 만나는 장으로서 웹소설의 세계는 서로의 욕망이 만나 충돌하고 타협하는 정동적 공간이다. 이런 서로 다른 주체들의 마주침에 주목하면서 안상원 선생님은 웹소설의 ‘여성적 장르’로..